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琨檄告華、夷[kūn xí gào huá, yí] / 立秋節末候寒蟬鳴初日(음6/28)壬辰

《晉紀12 元帝 建武 元年》 (丁丑, 317) ⑤. 유곤과 단필제는 서로 삽혈을 하고 동맹을 맺고서 晉의 황실을 보좌하기로 하였다. 19일 유곤이 華族과 夷族(화족은 누구며 이족은 누구인가?)들에게 격문을 보내 좌장사·우사마를 겸한 온교를 파견하고, 단필제는 좌상사 영소를 파견하여 표문과 맹약한 글을 받들고 건강에 이르러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도록 권고하였다. 온교는 온선의 조카이고, 온교의 이모는 유곤의 처였다. ⑤. 劉琨、段匹磾相與歃血同盟,〈磾,丁奚翻。歃,色洽翻,歠也。〉期以翼戴晉室。辛丑,琨檄告華、夷,遣兼左長史、右司馬溫嶠,匹磾遣左長史榮卲,奉表及盟文詣建康勸進。〈漢之禪于魏也,文帝三讓,魏朝羣臣累表請順天人之望,此則勸進之造端也。晉受魏禪,何曾等亦然。是時愍帝蒙塵,四海無君,琨等勸進,爲得其正。〉嶠,羨之弟子也,〈溫羨見八十..

카테고리 없음 2020.08.17

風俗淫僻,恥尚失所[fēngsúyínpì,chǐshàngshīsuǒ]/立秋節末候寒蟬鳴初日(음6/28)壬辰

《晉紀11 愍帝 建興 4年》 (丙子, 316) ⑫. 간보가 평론하였다. ⑫. 干寶論曰: 옛날에 고조선황제(사마의)는 영웅의 재질과 넓은 도량을 가지고 시대에 맞추어 일어났으며, 성품은 깊고 침착하여 마치 성을 쌓은 것 같았고, 관대하여 다른 사람을 받아들였고, 술수를 시행하여 사물을 통제하고 다른 사람의 훌륭한 것을 알고 발탁하여 채용하였다. 이에 백성들이 그의 능력과 더불어 하니 위대한 법은 비로소 구성되었다. 昔高祖宣皇帝,以雄才碩量,應時而起,性深阻有若城府,而能寬綽以容納;行數術以御物,而知人善采拔。〈言胸中有城府者多不能寬容,任數用術者多不能用人,而宣帝能之也。〉於是百姓與能,〈謂天下皆推其能,莫與爭也。〉大象始構。〈劉良曰:象,法也;言晉之興成,大法從此始立也。〉 세종은 기업을 이어받고, 태조는 대업을 이어서 다르게 도..

카테고리 없음 2020.08.16

人之云亡,邦國殄悴[rénzhīyúnwáng,bāngguótiǎncuì]/立秋節末候寒蟬鳴初日(음6/28)壬辰

《晉紀11 愍帝 建興 4年》 (丙子, 316) ②. 한의 중상시 왕침과 선회· 중궁복야 곽의 등이 모두 총애를 받아서 정사를 휘둘렀다. 한황제 유총이 후궁에서 졸고 연회를 베풀면서 어떤 때에는 3일 동안 술이 안 깼으며, 어떤 때에는 100일 동안 밖으로 나오지를 않았다. 지난해 겨울부터 조회에 나오지 않았고, 정치적인 일은 모두 상국 유찬에게 위임하고, 오직 사람을 죽이는 것과 관직을 주는 것만 왕침 등에게 들어와서 보고하게 하였다. 왕침 등은 대부분 보고하지 않았고, 스스로 그의 개인적인 마음으로 결정하니 그러므로 공훈을 세웠던 구관에게는 혹 서임하지 않고, 간사한 소인들 가운데는 며칠 사이에 이천석의 자리에 이른 사람이 있었다. ②. 漢中常侍王沈、宣懷、中宮僕射郭猗等,〈沈,持林翻。〉皆寵幸用事。漢主聰游..

카테고리 없음 2020.08.16

將無同![jiāngwútóng]/立秋節中候白露降5日(음6/27)辛卯

《晉紀4 惠帝 元康 7年》 (丁巳, 297) ③. 7월 21일, 정릉원공 왕혼이 죽었다. 9월에 상서우복야 왕융을 사도로 삼고, 태자태사 하소가 상서좌복야가 되었다. 왕융은 삼공이 되어서 그 시절과 더불어 올라갓다 내려갓다 하였지 시대의 병폐를 고치려고 한 바가 없었으며, 일을 소속 관료들에게 위임하고 가벼이 나가서 유람하고 놀았다. 성격이 탐욕스럽고 인색하여 그의 전원이 천하에 두루 퍼져 잇엇는데 매일 스스로 牙籌를 쥐고서 밤낮으로 계산하면서 항상 재산이 부족한 것 같이 생각하였다. ③. 丁丑,京陵元公王渾薨。九月,以尚書右僕射王戎爲司徒,太子太師何劭爲尚書左僕射。 戎爲三公,與時浮沈,無所匡救,委事僚寀,〈寀,此宰翻。《說文》曰:同官爲僚,同地爲寀。《爾雅》曰:寀,僚官。〉輕出遊放。性復貪吝,園田徧天下,每自執牙籌,晝夜會計..

카테고리 없음 2020.08.15

履霜堅冰,陰始凝也[lǚ shuāng jiān bīng,yīn shǐ níng yě]/ 立秋節中候白露降4日(음6/26)庚寅 光復節

《晉紀1 武帝 太康 2年》 (辛丑, 281) ①. 봄,3월 조서를 내려서 손호의 궁인들 가운데 5천 명을 선발하여 입국시키라고 하였다. 황제는 이미 오를 평정하였스므로 자못 놀고 연회를 여는 일을 하고 정사에 태만하였으며, 액정에는 거의 1만 명이나 되었다. 늘 羊車를 타고 가는 곳을 멋대로 하였는데, 도착해서는 바로 연회를 열고 잠을 잤다. 궁인들은 경쟁하듯 매나무 잎을 문에 꽂아 놓고 소금물을 땅에 부어 놓고 황제의 수레를 유인하였다. 그러자 황후의 아버지 양준과 그의 동생인 양요·양제가 비로소 일을 마음대로 하기 시작하였고, 이리저리 연락하면서 청탁하고 만나게 되니, 세력은 안팎을 기울이게 하여서 당시 사람들은 이를 三楊이라고 불렀고, 옛날 신하들은 대부분 멀어지고 퇴출당하였다. 산도가 자주 풍자하..

카테고리 없음 2020.08.15

辯則辯矣[biànzébiànyǐ]/立秋節中候白露降4日(음6/26)庚寅 光復節

《晉紀1 武帝 泰始 10年》 (甲午, 274) ⑫. 8월, 19일 원황후를 준양능에 장사지냈다. 황제와 여러 신하들은 상복을 벗고 바로 吉服(평상복)을 입었는데, 박사 진규가 논의하며 말하였다. "오늘 시점에서 시행하는 것은 한나라의 황제가 임시로 만든 것입니다. 태자는 국사를 처리할 일이 없으니 스스로 규정대로 상복을 끝까지 입어야 됩니다." ⑫.八月,戊申,葬元皇后于峻陽陵。帝及羣臣除喪卽吉,博士陳逵議,以爲「今時所行,漢帝權制;太子無有國事,自宜終服。」 상서 두예가 말하였다 "옛날에 천자·제후가 삼년상을 치르는 것은 처음에 齊衰(제최; 숙마포로 만들고 옷의 변두리와 아랫부분을 보통바느질 부모상에 입는다.)·斬衰(참최; 거친 생마포 상복 변두리 아랫부분 바느질하지 않음.부모상)를 똑같이 하였고, 장사를 지내고 ..

카테고리 없음 2020.08.15

分幽州置平州/立秋節中候白露降4日(음6/26)庚寅 光復節

《晉紀1 武帝 泰始 10年》 (甲午, 274) ④. 유주를 나누어서 평주를 설치하였다. 〈昌黎·遼東·樂浪·免玄·帶方 등 5郡을 평주로 하였다.(모두 지금의 창려, 위중, 평천, 우안, 능원, 건창 일원이다.)〉 ④. 分幽州置平州。〈幽州,言北方太陰幽冥也。杜佑曰:因幽都山爲名。《山海經》有幽都山。今列北荒,統范陽、燕、北平、上谷、代、遼西。漢末,公孫度自號平州牧,今分昌黎、遼東、樂浪、玄菟、帶方五郡,置平州。〉 ※.한사군은 지금의 대릉하를 넘어 온적이 없었다. 한대의 요하는 지금의 난하다. ⑩. 전에 태상이었던 산도를 이부상서로 삼았다. 산도는 관리를 선발하는 일을 10여 년 동안 하였는데, 한 명의 관리가 결원이 될 때마다 번번이 재주와 자질로 보아 그 일을 할 만한 사람을 골라서 몇 명을 의정하여 아뢰어 황제의 뜻이 어..

카테고리 없음 2020.08.14

死無所恨[sǐwúsuǒhèn]죽어도 한이 없다./立秋節仲候白露降3日(음6/25)己丑

《晉紀1 武帝 泰始 9年》 (癸酉, 273) ⑥. 처음에, 등애가 죽자 사람들은 모두 그를 억울하게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조정에서는 아무도 그를 위하여 변명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황제가 즉위하기에 이르자 의랑인 돈황 사람 단작이 상소를 올렸다. ⑥. 初,鄧艾之死,〈事見七十八卷魏元帝咸熙元年。〉人皆冤之,而朝廷無爲之辨者。〈爲,于僞翻。〉及帝卽位,議郎敦煌段灼上疏曰:〈敦,徒門翻。〉 "등애는 마음에 지극한 충성심을 품고 있었는데, 반역이라는 이름을 짊어졌습니다. 巴· 蜀을 평정하고서도 삼족이 족멸되는 형벌을 받앗는데, 등애는 성격이 강하고 급하며 공로를 자랑하고 자기의 좋은 점을 나타내려고 하며 친구들과 협동할 수 없었으니 그러므로 그에 관하여 제대로 처리하려고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鄧艾心懷至忠而荷反逆之名..

카테고리 없음 2020.08.14

作大艦,長百二十步(174.24m)/立秋節仲候白露降3日(음6/25)己丑

《晉紀1 武帝 泰始 8年》 (壬辰, 272) ⑤. 왕준에게 조서를 내려서 둔전군을 철폐하고 주함을 대대작으로 제작하게 하였다. 별가 하반이 생각하였다. "둔전병은 불과 500~600명뿐이니 갑작스럽게 배 만드는 일을 할 수 없고, 뒤에 만드는 배가 완성되지도 않았는데, 앞서 만들었던 것은 이미 썩어버릴 것입니다. 마땅히 여러 군의 병사들을 소집하여 도합 1만여 명으로 그것을 만들게 한다면 연말이면 다 완성시킬 수가 있습니다. 왕준이 먼저 상황을 알리고 회보를 기다리려고 하였는데 하반이 말하였다. ⑤. 夏,詔濬罷屯田軍,大作舟艦。〈艦,戶黯翻。〉別駕何攀以爲「屯田兵不過五六百人,作船不能猝辦,後者未成,前者已腐。宜召諸郡兵合萬餘人造之,歲終可成。」濬欲先上須報,〈上,時掌翻。〉攀曰: "조정에서 갑자기 1만 명을 소집한다는 ..

카테고리 없음 2020.08.13

政事多闕[zhèngshì duōquè]대부분의 정치가 잘못되다./ 立秋節中候白露降2日(陰6/24)戊子.

《晉紀60 武帝 泰始 6年》 (庚寅, 270) ③. 여름, 4월에 오의 좌대사마 시적이 죽었다. 진군대장군 육항을 신릉(호북 자귀)· 서릉호북 의창)· 이도(호북 의도)· 낙향(호북 송자)· 공안(호북 공안)의 여러 군사에 관한 일을 총감독하도록 하고 낙향에 치소를 두게 하였다. 육항은 오황제가 정치하는 일들이 대부분 잘못되었으므로 상소를 올렸다. ③. 夏,四月,吳左大司馬施績卒。以鎭軍大將軍陸抗都督信陵、西陵、夷道、樂鄕、公安諸軍事,治樂鄕。〈《水經註》:樂鄕城在南平郡之孱陵縣,江水逕其北,江水又東逕公安縣北。宋白曰:樂鄕者,春秋鄀國之地,其城陸抗所築,在松滋縣界。《晉‧地理志》:信陵縣屬建平郡。沈約曰:疑是吳立。《水經註》曰:江水自夔城而東,逕信陵縣南,又東過夷陵縣南。夷陵,卽西陵也。樂鄕城在今江陵府松滋縣東,樂鄕城北,江中有沙磧,對岸踏淺..

카테고리 없음 2020.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