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死無所恨[sǐwúsuǒhèn]죽어도 한이 없다./立秋節仲候白露降3日(음6/25)己丑

solpee 2020. 8. 14. 05:51

《晉紀1 武 泰始 9 (癸酉, 273)

 

 ⑥. 처음에, 등애가 죽자 사람들은 모두 그를 억울하게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조정에서는 아무도 그를 위하여 변명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황제가 즉위하기에 이르자 의랑인 돈황 사람 단작이 상소를 올렸다.

 ⑥. 初,鄧艾之死,事見七十八卷魏元帝咸熙元年。人皆冤之,而朝廷無爲之辨者。爲,于僞翻。及帝卽位,議郎敦煌段灼上疏曰:敦,徒門翻。

 

 "등애는 마음에 지극한 충성심을 품고 있었는데, 반역이라는 이름을 짊어졌습니다. 巴· 蜀을 평정하고서도 삼족이 족멸되는 형벌을 받앗는데, 등애는 성격이 강하고 급하며 공로를 자랑하고 자기의 좋은 점을 나타내려고 하며 친구들과 협동할 수 없었으니 그러므로 그에 관하여 제대로 처리하려고 하려는 사람이 없었다.

 「鄧艾心懷至忠而荷反逆之名,荷,下可翻。平定巴、蜀而受三族之誅;艾性剛急,矜功伐善,不能協同朋類,故莫肯理之。

 

 신이 가만히 생각하건대, 등애는 본래 둔전하는 곳에서 소 기르는 일을 관장한 사람이었는데, 총애를 받는 것과 지위가 이미 아주 높아졌고 공명을 달성한 일흔 살의 노인이었으니 다시 무엇을 구하려고 하였겠습니까? 바로 유선이 처음 항복하였지만 멀리 있는 군들이 아직 귀부하지 아니하니 명령을 고치고 승제하여서 임시로 사직을 편안히 하였습니다.

 臣竊以爲艾本屯田掌犢人,鄧艾本義陽棘陽人,魏太祖破荊州,徙汝南,爲農民養犢。寵位已極,功名已成,七十老公,復何所求。復,扶又翻。正以劉禪初降,降,戶江翻。遠郡未附,矯令承制,權安社稷。

 

 종회는 패역한 마음을 갖고 있었는데, 등애의 위엄있는 이름을 두려워하여 그가 의심 받기에 비슷한 것을 이용하여 그러한 일을 얽어 맸습니다. 등애는 조서를 펴보고 나서 즉시 강한 군사를 놓아버리고 자기 몸에 결박을 지우면서 돌아볼 생각을 감히 갖지 아니하였으니, 진실로 선황을 받들어 알현하게 되더라도 반드시 마땅히 죽어야 할 이유가 없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鍾會有悖逆之心,悖,蒲內翻,又蒲沒翻。畏艾威名,因其疑似,搆成其事。艾被詔書,卽遣強兵,束身就縛,不敢顧望,被,皮義翻。誠知奉見先帝,必無當死之理也。

 

 종회가 주살된 다음 등애에게 소속되엇던 장령과 관리들은 어리석게도 서로 모여서 스스로 함께 등애를 좇아가서 함거를 파괴하고 잡힌 죄수를 풀어 주었으니 등애는 곤란한 지경이 되었고, 낭패를 당하여 근거할 바를 잃었습니다. 아직 일찍이 심복되는 사람들과 평소에 모의한 일이 없었는데, 홀로 앞뒤에서 죽임을 맞이하게 되었으니, 어찌 슬프지 아니합니까?

 會受誅之後,艾官屬將吏,愚戇相聚,自共追艾,破壞檻車,解其囚執;戇,直降翻。壞,音怪。艾在困地,狼狽失據,狼前則跋其胡,退則疐其尾。狽,狼屬也。生子或欠一足,二足相附而後能行,離則顚蹶。故猝遽謂之狼狽。狽,博蓋翻。未嘗與腹心之人有平素之謀,獨受腹背之誅,腹在前,背在後,謂前後皆不免於誅。豈不哀哉!

 

 폐하께서는 용으로 일어나셔서 대도를 넓히시고 계시니 등애를 그 조상들의 옛 묘가 있는 곳에 장사지내게 하고 그의 전택을 돌려주셔서 촉한을 정벌한 공로로 그의 후손들이 작위를 잇게 하시며, 등애로 하여금 관을 덮은 다음에 시호를 정해주셔서 죽어도 한이 없게 하는 것을 들어주신다면 천하의 명예를 좇는 인사들이 공로를 세우는 신하가 되기를 생각하게 되어 반드시 펄펄 끓는 물과 불속에도 뛰어들어 폐하를 위하여 즐겁게 죽을 것입니다."

 陛下龍興,闡弘大度,謂可聽艾歸葬舊墓,還其田宅,以平蜀之功繼封其後,使艾闔棺定諡,死無所恨,諡,神至翻。則天下徇名之士,思立功之臣,必投湯火,樂爲陛下死矣!」樂,音洛。爲,于僞翻。

 

 황제는 그 말이 훌륭하다고 하였지만 아직은 좇을 수 없었다.

 마침 황제가 급사중 번건에게 제갈량이 촉한을 다스린 상황에 대해 묻고서 말하였다.

 "나만이 홀로 제갈량과 같은 자를 얻어 신하로 삼을 수 없단 말인가?"

 번건이 머리를 조아리며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등애가 억울하게 죽었다는 것을 아시면서 이를 바로 잡을 수 없으신데 비록 제갈량 같은 자를 얻는다고 하여도  풍당의 말과 같이 됨이 없을 수 있는지요?"

 帝善其言而未能 풍당從。會帝問給事中樊建以諸葛亮之治蜀,樊建故蜀臣。治,直之翻。曰:「吾獨不得如亮者而臣之乎?」建稽首曰:「陛下知鄧艾之冤而不能直,稽,音啓。雖得亮,得無如馮唐之言乎!」言不能用也。馮唐事見十四卷漢文帝十四年。

 

 폐하가 웃으면서 말하였다.

 "경이 나의 생각을 일깨웟도다."

 마침내 등애의 손자 등랑을 낭중으로 삼았다.

 帝笑曰:「卿言起我意。」乃以艾孫朗爲郎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