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將無同![jiāngwútóng]/立秋節中候白露降5日(음6/27)辛卯

solpee 2020. 8. 15. 17:41

《晉紀4 惠 元 7 (丁巳, 297)

 

 ③. 7월 21일, 정릉원공 왕혼이 죽었다. 9월에 상서우복야 왕융을 사도로 삼고, 태자태사 하소가 상서좌복야가 되었다.

 왕융은 삼공이 되어서 그 시절과 더불어 올라갓다 내려갓다 하였지 시대의 병폐를 고치려고 한 바가 없었으며, 일을 소속 관료들에게 위임하고 가벼이 나가서 유람하고 놀았다. 성격이 탐욕스럽고 인색하여 그의 전원이 천하에 두루 퍼져 잇엇는데 매일 스스로 牙籌를 쥐고서 밤낮으로 계산하면서 항상 재산이 부족한 것 같이 생각하였다.

 ③. 丁丑,京陵元公王渾薨。九月,以尚書右僕射王戎爲司徒,太子太師何劭爲尚書左僕射。

戎爲三公,與時浮沈,無所匡救,委事僚寀,寀,此宰翻。《說文》曰:同官爲僚,同地爲寀。《爾雅》曰:寀,僚官。輕出遊放。性復貪吝,園田徧天下,每自執牙籌,晝夜會計,常若不足。復,扶又翻。會,古外翻。

 

 자기 집에는 좋은 자두나무가 있었는데, 그 과일을 팔면서 다른 사람이 그 종자를 얻게 될까 두려워하여 항상 그 씨를 파냈다. 무릇 상을 주거나 인재를 선발하면서 오직 헛된 명성만을 가지고 시행하였다. 완함의 아들 완첨이 일찍이 왕융을 보았는데, 왕융이 그에게 물었다.

 "성인은 名敎(공자가 이름에 따른 바른 행동을 하라는 正名論)를 귀하게 생가하고, 노장은 자연을 밝혔는데, 그 뜻이 다른가?"

 완첨이 말하였다.

 "아마도 같지 않을까요!"

 왕융이 감탄을 오래 하다가 드디어 그를 벽소하였다. 그 당시의 사람들은 이를 '세마디 말로 된 掾吏(관리)'라고 하였다.

 家有好李,賣之恐人得種,種,章勇翻。常鑽其核。凡所賞拔,專事虛名。阮咸之子瞻嘗見戎,戎問曰:「聖人貴名敎,老、莊明自然,其旨同異?」瞻曰:「將無同!」程大昌曰:不直云「同」而云「將無同」者,晉人語度自爾也。庾亮辟孟嘉爲從事,正旦大會,褚裒問嘉何在。亮曰:「但自覓之。」裒歷觀,指嘉曰:「將無是乎?」將無者,猶言殆是此人也,意以爲是而未敢自主也。阮瞻指孔、老爲同,亦此意。戎咨嗟良久,遂辟之。時人謂之「三語掾」。掾,于絹翻。

 

 이때 왕연이 상서령이었고, 남양 사람 악광이 하남윤이었는데, 모두 청담을 잘하여 마음을 일의 밖에다 두었으며, 명성이 당세에 중시되어서 조정과 민간에 있는 사람들이 다투어 그를 흠모하여 본받으려고 하였다. 왕연과 그의 동생 왕징은 인물을 품평하기를 좋아하였는데, 세상에서 모두 그의 품평이 표준이 된다고 생각하였다. 

 是時,王衍爲尚書令,南陽樂廣爲河南尹,皆善清談,宅心事外,宅,居也。名重當世,朝野之人,爭慕效之。衍與弟澄,好題品人物,舉世以爲儀準。朝,直遙翻。好,呼到翻。

 

 왕연은 정신과 마음이 밝고 우수하여 어렸을 때 산도가 그를 보고 오래도록 감탄하다가 말하였다.

 "어느 집의 노파가 어찌 이런 아이를 낳았을까? 그러나 천하의 창생들을 오도하는 사람이니, 아직은 반드시 이 사람이 하지 않은 것이 없을 것이다."

 衍神情明秀,少時,山濤見之,嗟歎良久,曰:「何物老嫗,生寧馨兒!少,詩照翻。楊正衡《晉書音義》:嫗,紆遇翻。馨,呼刑翻。嫗,老婦之稱。今人傳讀「寧」如甯武子之「甯」。洪邁《隨筆》曰:今吳中人語,尚多用「寧馨」字爲言,猶言若何也。劉夢得詩,「爲問中華學道者,幾人雄猛得寧馨?」蓋得其義。以寧字作平聲讀。然誤天下蒼生者,未必非此人也!」

 

 악광은 성품이 겸손하고 조용하여 다른 사람과 경쟁하는 일이 없었다. 매번 담론을 할 때마다 간단한 말로 이치를 분석하여 사람들의 마음을 압도하였고, 그가 알지 못하는 바는 잠자코 있었다. 무릇 사람을 평론할 때 반드시 먼저 그 사람의 장점을 말하고 단점이 되는 것은 말하지 않고도 스스로 알게 하였다.

 樂廣性沖約,【章:甲十一行本「約」下有「清遠」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與物無競。每談論,以約言析理,厭人之心,而其所不知,默如也。

 

 왕징과 완함·완함의 조카 완수·태산 사람 호무보지·진국 사람 사곤·성양 사람 왕니·신채 사람 필탁은 모두 자연에 맡겨 내버려두는 점에서 달통하엿으며, 술에 취하여 미친 듯이 벌거벗는 경우에 이르러서도 잘못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凡論人,必先稱其所長,則所短不言自見。厭,於叶翻,伏也。見,賢遍翻。王澄及阮咸、咸從子脩、泰山胡毋輔之、毋,音無。《姓譜》:齊宣王封母弟於毋鄕,其鄕本胡國,因曰胡毋氏。漢有太史胡毋恭。陳國謝鯤、城陽王?、「?」,《晉書》作「尼」。按?,古仁字,又音夷。王?,字孝孫,或者當讀爲仁字乎?然永嘉三年,書河內王尼,卽此王?也。《晉書》曰:尼,城陽人,或云河內人。若作尼,則當音女夷翻。新蔡畢卓,皆以任放爲達,帝分汝陰置新蔡郡。任者,任物之自然;放者,縱其心而不制。至於醉狂裸體,不以爲非。

 

 호무보지는 일찍이 술을 마시고 크게 취하였는데, 그의 아들 호무겸지가 문틈으로 보다가 큰 소리로 자가 아버지의 자를 부르며 말하였다.

 "언국아! 나이가 늙었으니 이 짓을 할 수 없을 거요!"

 호무보지가 환영하듯 웃으며 불러들여 같이 술을 마셨다.

 胡毋輔之嘗酣飲,其子謙之闚而厲聲呼其父字曰:「彥國!年老,不得爲爾!」輔之歡笑,呼入共飲。畢卓嘗爲吏部郎,比舍郎釀熟,比,毗寐翻,近也。

 

 필탁은 일찍이 이부랑이었는데, 이웃집에서 술을 담아놓은 것이 익었다 하면 필탁이 술이 취하여 밤중에 술독이 있는 곳에 가서 그 술을 훔쳐 마셨는데, 술을 관리하는 사람에게 잡혀 포박되엇고 날이 밝아서 그를 보니 바로 필이부였다. 악관이 이 보고를 받고 웃으면서 말하였다.

 "명교 속에도 스스로 즐길 만한 것이 잇는데, 하필이면 마침내 이런 짓을 하다니!"

 卓因醉,夜至甕間盜飲之,爲掌酒者所縛,明旦視之,乃畢吏部也。樂廣聞而笑之曰:「名敎內自有樂地,樂,音洛。何必乃爾!」

 

 처음에, 하안 등이 노장의 이론을 서술하고 논리를 세워서 말하였다.

 "천지의 만물은 '無'를 근본으로 삼았다. '無'라는 것은 사물을 만든 것이며 일을 완성하는 것이니, 무는 어디를 가도 없는 곳이 없다. 음양은 이것에 의지하여 변화하여 생겨나는 것이고, 현명한 사람은 이것에 의지하여 덕을 완성한다. 그러므로 무가 쓰임새에는 작위가 없어도 귀한 것이다."

 왕연의 무리들이 모두 이것을 아끼고 중히 여겼다. 이로 말미암아서 조정의 사대부들은 모두 들뜨고 이상한 것을 아름답다고 하면서 직책과 해야 할 업무에 게을러지고 폐기하였다.

 初,何晏等祖述老、莊,立論以爲:「天地萬物,皆以無爲本。無也者,開物成務,《易‧繫辭》曰:夫《易》開物成務。韓康伯《註》曰:言《易》通萬物之志,成天下之務。張氏曰:物,凡物也;務,事也。開,明之也;成,處之也。事無大小,不能明則何由處矣。楊萬里曰:開達物理,成就世務。余謂何晏之旨,以爲事事物物,自無而有。無者,物之未生,事之未形見者也。故曰無者開物成務,與諸儒說《易》之旨不同。無往而不存者也。陰陽恃以化生,賢者恃以成德。故無之爲用,無爵而貴矣!」王衍之徒皆愛重之。由是朝廷士大夫皆以浮誕爲美,弛廢職業。

 

 배외가 《崇有論》을 지어서 그 폐단을 해석하여 말하였다.

 裴頠著《崇有論》以釋其蔽曰:

 

 "무릇 이롭기를 바라는 것은 덜어낼 수는 있지만 이것이 존재하는 것을 끊어버릴 수는 없다. 일에 힘쓰는 것은 절제할 수는 잇지만 이것을 완전히 없애지는 못한다. 대개 수식을 하면서 고상한 담론을 다 갖추는 사람은 형체를 갖고 있는 것의 누를 깊이 있게 열거하면서 텅비고 없음의 아름다움을 대단하게 늘어놓는다.

 「夫利欲可損而未可絕有也,事務可節而未可全無也。蓋有飾爲高談之具者,深列有形之累,盛陳空無之美。

 

 형체난 그릇 같은 것의 누는 증거를 갖고 있으나, 텅 비고 없다는 뜻은 검증하기 어렵다. 교묘함을 변설하는 글로는 즐거워할 수 있고, 모습과 비슷한 말은 충분히 사람을 현혹시킬 수 잇다. 무리들은 이 말을 듣고 현혹되어 그 완성된 논리에 빠져버린다.

 形器之累有徵,累,力瑞翻。空無之義難檢;辯巧之文可悅,似象之言足惑;衆聽眩焉,溺其成說。

 

 비록 자못 이것과 다른 마음을 가진 사람이 있어도 말로는 이를 건져내지 못하고 익혀진 것에 굴복하고 마니, 이를 통하여 허무의 이치는 진실로 덮어 없애버릴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이 이러한 말을 부르짖으면 백 사람이 화답하며 가면 다시 돌아오지 않게 되니, 드디어 세상을 종합하여 다스리는 업무를 가볍게 생각하고, 공로를 세우고 이익을 구하는 것의 용도를 천하게 생각하며, 들뜨고 떠돌아다니는 일을 높이 생각하며 실제를 거치는 현명함을 낮게 생각한다.

 雖頗有異此心者,辭不獲濟,屈於所習,濟,通也。謂虛無習以成俗,崇有者辭不能通其意,遂爲所屈也。因謂虛無之理誠不可蓋。蓋,掩也。一唱百和,和,戶臥翻。往而不反,遂薄綜世之務,賤功利【嚴:「利」改「烈」。】之用,高浮游之業,卑經實之賢。經實,謂有經世之實用者。

 

 사람의 마음이 좇아가는바 되어 명성과 이익이 이를 좇으니 이에 글을 잘 쓰는 사람은 그 말을 늘려나가고. 눌변인 사람은 그 뜻에 찬동한다. 말의 논리를 세우는 사람이 허무에 의거하여 말하면 이를 현묘하다 하고, 관직에 있는 사람이 그 맡은 일에 가까이 가지 아니하면 이를 우아하고 세속에서 멀리 떨어졌다고 여기며, 자기 몸을 받들면서 그 염치와 품격 있는 행동을 흩어버리면 이를 광달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서로 다듬어 주는 기풍은 짓눌리고 지지부진하게 되었다.

 人情所徇,名利從之,於是文者衍其辭,訥者贊其旨。立言藉於虛無,謂之玄妙;處官不親所職,謂之雅遠;處,昌呂翻。奉身散其廉操,謂之曠達;故砥礪之風,彌以陵遲。砥礪,謂砥節礪行也。

 

 放이라는 것은 이것으로 인하여 혹 길례나 흉례를 치러야 할 때 어그러지게 하고, 얼굴을 가다듬고, 행동거지를 제대로 표현하는 것에 소홀하며, 장유의 질서를 모독하고, 귀천의 등급을 혼란스럽게 하니, 심한 경우에는 자기 몸을 벌거벗은 채 내놓고 외설스럽고 멋대로 하며 가지 않는 곳이 없게 되어 선비들의 행동은 또한 일그러지게 되었다.

 放者因斯,或悖吉凶之禮,悖,蒲內翻。忽容止之表,瀆長幼之序,混貴賤之級,甚者至於裸裎褻慢,無所不至,裸裎,露體也。裸,郎果翻。裎,馳成翻。士行又虧矣。行,下孟翻。

 

 무릇 만물은 형체를 갖고 있게 되는 것이 비록 무에서 낳았다고 하여도 그러나 생겨난 뒤면 有는 이미 無와는 이미 나누어진 것이니, 무란 유가 버린 것이다. 그러므로 길러서 이미 변화된 것이 잇다면 무가 이것을 운용하여 온전하게 해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스려서 이미  이것을 있게 한 무리가 되었다면 無가 이것을 위하여 닦아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夫萬物之有形者,雖生於無,然生以有爲已分,物之未生,則有無未分,旣生而有,則與無爲已分矣。則無是有之所遺者也。遺,棄也。故養旣化之有,非無用之所能全也;治旣有之衆,非無爲之所能脩也。治,直之翻。

 

 마음은 일 자체는 아니지만 일을 통제하는 것은 반드시 마음에서부터 말미암는 것이니 그러나 마음이 無라고 말할 수는 없다. 匠(기술)이란 그릇 자체는 아니지만 그릇을 만들려면 반드시 기술의 작용을 기다려야 하는 것이니 그러나 기술이라는 것이 없다고는 말할 수 없다.

 心非事也,而制事必由於心,然不可謂心爲無也;匠非器也,而制器必須於匠,然不可謂匠非有也。

 

 이리하여서 깊은 연못 속의 물고기를 잡으려고 한다면 집에서 비스듬히 누워서 쉬면서 잡을 수 잇는 것이 아니다. 높은 담장 위에 잇는 새를 잡으려면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는 성공할 수 없다. 이러한 것으로 본다면 모든 有라는 것은 모두 존재하는 것이다. 허무라는 것이 어찌 이미 잇는 많은 생명들에게 유익하겠는가!"

 그러나 습관과 풍속이 이미 오나성되어서 배외의 이론으로도 또한 구제할 수 없었다.

 是以欲收重淵之鱗,非偃息之所能獲也;重,直龍翻。隕高墉之禽,非靜拱之所能捷也。由此而觀,濟有者皆有也,虛無奚益於已有之羣生哉!」然習俗已成,頠論亦不能救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