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父子兄弟,罪不相及[fùzǐ xiōngdì,zuì bù xiāng jí]/大暑節末候大雨始行3日(음6/15流頭日)己卯

《韓紀54 孝獻帝 建安 2年》 (丁丑, 197) ⑨. 沛國(안휘 회북) 사람 허저는 용기와 힘이 남보다 뛰어나 청년들과 종족 수천 가구를 모아 성벽을 견고하게 하고서 밖에서 방어하니, 회수·여수·진·양 일대의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꺼렸고, 조조가 회수·여수를 순행하자, 허저가 무리를 데리고서 조조에게 귀부하니 조조가 말하였다. ⑨. 秋,九月, 沛國許褚,勇力絕人,聚少年及宗族數千家,堅壁以禦外寇,淮、汝、陳、梁間皆畏憚之,操徇淮、汝,褚以衆歸操,操曰: "이 사람은 나의 번쾌다." 그날로 도위에 임명하고 끌어 들여서 숙위하게 하였는데, 허저를 좇는 여러 협객들은 모두가 호랑이 같은 무사였다. 「此吾樊噲也!」卽日拜都尉,引入宿衞,諸從褚俠客,皆以爲虎士焉。〈俠,戶頰翻.〉 ⑩. 옛날에 태위를 지냈던 양표가 원술의 집안과 ..

카테고리 없음 2020.08.03

일사일언

처음에 여포가 진등을 통하여 서주목을 시켜달라고 요구하였으나 얻지 못하니 진동이 돌아오자, 여포는 화가 나서 창을 뽑아들고 책상을 찍으면서 말하였다. "경의 아바지는 나에게 조조와 협력하고 公路(원술)와의 혼약을 끊으라고 권고하였는데, 지금 내가 요구한 것은 얻은 것이 없고, 경의 부자는 나란히 현달하고 중후해졌으니, 단지 경에게 팔림을 당한 것뿐이오." 始,布因登求徐州牧不得,登還,布怒,拔戟斫几曰:「卿父勸吾協同曹操,絕婚公路;今吾所求無獲,而卿父子並顯重,但爲卿所賣耳!」 진등은 얼굴색도 변하지 않고 천천히 말하였다. "저 진등은 조조를 만나서 말하기를 '장군을 키우는 것은, 비유하건데 호랑이를 키우는 것과 같아서 마땅히 그에게 고기를 배불리 먹여야 하고, 배부르지 않으면 장차 사람을 삼킬 것입니다.'하자, 조..

카테고리 없음 2020.08.03

紹是非不可知[shào shìfēi bù kězhī]원소는 옳고 그름을 분간하지 못했다./大暑節末候大雨始行3日(음6/望)己卯

《韓紀54 孝獻帝 建安 2年》 (丁丑, 197) ② 원소가 조조에게 편지를 보냈는데, 그 말투가 교만하였다. 조조가 순욱과 곽가에게 말하였다. "지금 의롭지 못한 사람을 토벌해야겠는데, 힘으로는 대적하지 못하겠으니, 어찌해야 하겠소?" 대답하였다. "유방이 항우의 적수가 되지 않았다는 것은 공도 아는 바입니다. 한 고조는오직 지혜만으로 항우를 이겼으니 그러므로 항우가 비록 강하기는 했지만 끝내 사로잡혔습니다. ② 袁紹與操書,辭語驕慢。操謂荀彧、郭嘉曰:「今將討不義而力不敵,何如?」對曰:「劉、項之不敵,公所知也。漢祖惟智勝項羽,故羽雖強,終爲所禽。 지금 원소는 10가지의 패배할 이유를 가지고 있고, 공은 10가지의 승리할 요소들을 가지고 있으니, 원소는 비록 강하지만 아무 것도 할 수 없습니다. 1. 지금 원소는 예..

카테고리 없음 2020.08.03

百全而功名可立[bǎiquán ér gōngmíng kělì]백 가지가 온전해야 공을 이룰 수 있다./大暑節大雨始行2日(음6/14)戊寅

《韓紀54 孝獻帝 建安 元年》 (丙子, 196) ⑫ 애초 곽가가 가서 원소를 만났는데, 원소는 그를 극진한 존경과 예의로 대하였으며 거주한 지 수십 일이 되자 원소의 謀臣인 신평과 곽도에게 말하였다. "무릇 지혜로운 사람은 훌륭한 주인을 자세히 살펴보아야 하니, 그러므로 백 가지가 온전해야 공명을 세울 수 있습니다. ⑫ 初,郭嘉往見袁紹,紹甚敬禮之,居數十日,謂紹謀臣辛評、郭圖曰:「夫智者審於量主,〈量,音良。〉故百全而功名可立。 원공은 다만 주공이 하사들을 예우했던 일을 본받으려고 하기는 하였지만 사람을 등용하는 기틀을 모르고, 사단을 많이 벌이지만 중요한 일이 적고, 모의를 좋아하여도 결정하지를 못하니, 함께 천하를 큰 어려움에서 구제하고 패왕의 대업을 완성하려고 해도 어렵습니다. 내가 장차 고쳐서 받들 다른 ..

카테고리 없음 2020.08.02

避世據[bì shì jù]:燕南趙北[yàn nán zhào běi]//大暑節大雨始行初日(음6/13)丁丑

《韓紀53 孝獻帝 興平 2年》 (乙亥, 195) ⑮ 공손찬이 이미 유우를 죽이고서 유주를 거의 차지하여 사기가 더욱 왕성해지자, 그 재주와 힘을 믿고 백성을 구휼하지 않고 잘못한 것은 기억하고 잘한 것은 잊어버리며 눈만 흘기는 조그마한 잘못이라도 반드시 찾아내어 복수를 하였다. 의관을 갖춘 훌륭한 선비 가운데에서 명성이 그보다 나은 사람은 반드시 법을 가지고 해쳤고, 재주가 우수한 사람은 반드시 억눌러 어렵게 만들어 고통스러운 입장에 처하게 하였다. ⑮公孫瓚旣殺劉虞,〈事見上卷初平四年。〉盡有幽州之地,志氣益盛,恃其才力,不恤百姓,記過忘善,睚眦必報。〈睚,牛懈翻。眦,土懈翻。〉衣冠善士,名在其右者,必以法害之,有材秀者,必抑困使在窮苦之地。 어떤 사람이 그 까닭을 묻자 공손찬이 말하였다. "의관을 갖춘 사람들은 모두 스스..

카테고리 없음 2020.08.02

以爲不懷其親,安能愛君;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임금을 사랑하겠는가?/大暑節大雨始行(때때로 큰비)初日(음6/13)丁丑

《韓紀53 孝獻帝 興平 元年》 (甲戌, 194) ⑥ 예주 자사 곽공이 무리 수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성 밑에 당도하니, 어떤 사람이 여포와 함께 모의했다고 말하자 많은 무리들이 몹시 두려워하였다. 곽공이 순욱을 만나보자고 요청하여 순욱이 막 가려고 하는 참에 하우돈 등이 말하였다. "그대는 하나의 주를 진정시키는 사람입니다. 가면 필히 위험할 것이니 안 됩니다." ⑥ 豫州刺史郭貢率衆數萬至城下,或言與呂布同謀,衆甚懼。貢求見荀彧,彧將往,惇等曰:「君一州鎭也,〈謂一州倚之爲重也。〉往必危,不可。」 순욱이 말하였다. "곽공과 장막 등은 나뉘어서 평소 결합하고 있지도 않았는데, 지금 온 것이 빨리 온 것은 계획이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를 설득한다면 설사 사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중립에 서게 할 수는 있습니다..

카테고리 없음 2020.08.01

曹操[Cáo Cāo]의 복수 /土潤溽暑6日(음6/12)丙子

《韓紀52 孝獻帝 初平 4年》 (癸酉, 193) ⑭ 전임 태위 조숭이 난을 피하여 낭야에 있었는데, 그의 아들 조조가 태산 태수 응소에게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조숭의 치중은 100여 대였다. 도겸의 별장이 음평(강소 술양)을 지켰는데 병사들이 조숭의 財寶를 탐내 華縣과 費縣 사이에서 조숭을 엄습하여 죽이고 아울러 어린 아들 조덕추도 죽였다. ⑭ 前太尉曹嵩避難在琅邪,〈難,乃旦翻。〉其子操令泰山太守應劭迎之。嵩輜重百餘兩,〈重,直用翻。兩,音亮。〉陶謙別將守陰平,〈陰平縣,屬東海郡。賢曰:故城在今沂州承縣西南。〉士卒利嵩財寶,掩襲嵩於華、費間,殺之,〈《前漢志》,華、費二縣皆屬泰山郡。《續漢志》,泰山有費縣,無華縣,蓋併省也。《水經》:時水南過華縣東,又南過費縣東,入沂。賢曰:費縣故城,在費縣東北。費,音祕。〉幷少子德。秋, 조조는 군사를 빼..

카테고리 없음 2020.08.01

勞謙君子有終吉(겸손한 군자는 끝이 길하다.)/土潤溽暑6日(음6/12)丙子

《韓紀52 孝獻帝 初平 3年》 (庚午, 192) ⑧ 기미일(2)에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이각을 양무장군으로 삼고, 곽사를 양렬장군으로 삼았으며, 번조 등은 모두 중랑장으로 삼았다. 이각 등이 사예교위 황완을 체포하여 죽였다. ⑧ 五月,己未,赦天下,以李傕爲揚武將軍,郭汜爲揚烈將軍,〈揚武將軍始於建武之初,馬成爲之。揚烈將軍蓋始於是時。〉樊稠等皆爲中郎將。傕等收司隸校尉黃琬,殺〈【章:甲十一行本「殺」上有「下獄」二字;乙十一行本同。】〉之。 애초에 왕윤이 같은 군 사람인 송익을 좌풍익으로 삼고, 왕굉을 우부풍에 임명하였는데, 이각 등이 왕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두 군이 우환이 될까 두려워서 먼저 송익·왕굉을 불러들였다. 왕굉이 사자를 보내어 송익에게 말하였다. "곽사·이각은 우리 두 사람이 밖에 있어서 아직 왕공(왕윤)을 위..

카테고리 없음 2020.08.01

遼東은 지금의 豊潤·昌黎다./ 大暑節仲候土潤溽暑5日(음6/11)乙亥

《韓紀51 孝獻帝 初平 元年》 (庚午, 190) 13. 여름, 4월에 유주목 유우를 태부로 삼았는데, 도로가 막혀서 신명이 끝내 지나갈 수 없었다. 이보다 먼저 유주 지역은 荒外지역(국경 밖)과 맞대어 있어서 재물과 비용이 매우 많이 들었고, 해마다 항상 청주(산동)와 기주(하북 남부)의 부조인 2억 전 남짓을 갈라서 충당하였었다. 13. 夏,四月,以幽州牧劉虞爲太傅,道路壅塞,〈塞,悉則翻。〉信命竟不得通。先是,幽部應接荒外,〈荒外,言荒服之外也。先,悉薦翻。〉資費甚廣,歲常割青、冀賦調二億有餘以足之。〈調,徒弔翻。〉 이때 곳곳의 길이 끊겨서 수송을 위탁한 화물이 오지 않아 유우는 해진 옷을 입고 짚신을 신었으며 음식에는 고기반찬을 곁들이지 못했지만, 너그러운 정치에 힘쓰고 농업과 양잠을 권장하였으며 上谷(懷來)에서 胡..

카테고리 없음 2020.07.31

人情崩恐,不保朝夕。 / 大暑節仲候土潤溽暑4日(음6/10)甲戌

《韓紀51 孝靈帝 中平 5年》 (戊辰, 188) 19. 장순과 구력거(오환족 추장)가 함께 靑州(山東省淄博市臨淄縣)·徐州(江蘇省 徐州;治所는 山東淡城縣)·幽州(河北省薊縣,北京市大興縣)·冀州(河北省冀縣 중남부)의 네 주를 노략질하니 기도위 공손찬에게 조서를 내려 이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공손찬의 속국(北京薊縣,豊潤,迂安일대다. 당시 遼河는 지금의 灤河다)에 있는 석문에서 싸웠는데, 장순 등이 대패하자 처자를 버리고 요새를 넘어 달아났다. ※.그러니까 오환이 석문일대(지금의 북경)에 집짓고 살았다는 뜻이다. 19. 張純與丘力居鈔略青、徐、幽、冀四州;〈鈔,楚交翻。〉詔騎都尉公孫瓚討之。瓚與戰於屬國石門,〈屬國,遼東屬國也。賢曰:石門,山名,在今營州柳城縣西南。瓚,藏旱翻。〉純等大敗,棄妻子,踰塞走; 약탈당했던 남여를 모두 얻..

카테고리 없음 2020.07.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