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以爲不懷其親,安能愛君;부모를 사랑하지 않으면서 어떻게 임금을 사랑하겠는가?/大暑節大雨始行(때때로 큰비)初日(음6/13)丁丑

solpee 2020. 8. 1. 14:38

《韓紀53 孝獻帝 興平 元 (甲戌, 194)

 

 ⑥ 예주 자사 곽공이 무리 수만 명을 거느리고 와서 성 밑에 당도하니, 어떤 사람이 여포와 함께 모의했다고 말하자 많은 무리들이 몹시 두려워하였다. 곽공이 순욱을 만나보자고 요청하여 순욱이 막 가려고 하는 참에 하우돈 등이 말하였다.

 "그대는 하나의 주를 진정시키는 사람입니다. 가면 필히 위험할 것이니 안 됩니다."

 ⑥ 豫州刺史郭貢率衆數萬至城下,或言與呂布同謀,衆甚懼。貢求見荀彧,彧將往,惇等曰:「君一州鎭也,謂一州倚之爲重也。往必危,不可。」

 

 순욱이 말하였다.

 "곽공과 장막 등은 나뉘어서 평소 결합하고 있지도 않았는데, 지금 온 것이 빨리 온 것은 계획이 아직 확실하게 정해지지 않았는데 그를 설득한다면 설사 사용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중립에 서게 할 수는 있습니다. 만약 먼저 그를 의심한다면 저 사람이 분노하여 계획을 세울 것입니다."

 곽공이 순욱을 보았는데 두려워하는 뜻6이 없자, 견성은 쉽게 공격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이에 군대를 끌고 가버렸다.

 彧曰:「貢與邈等,分非素結也,分,扶問翻。今來速,計必未定,及其未定說之,縱不爲用,可使中立。賢曰:不令其有所去就也。說,輸芮翻;下同。若先疑之,彼將怒而成計。」貢見彧無懼意,謂鄄城未易攻,易,以豉翻。遂引兵去。

 

 이때 연주에 있는 군과 현은 모두 여포에게 호응했으나, 오직 견성·범·동아만이 움직이지 않았다. 여포의 군대에 있다가 항복한 자들이 말하였다.

 "진궁이 스스로 병사들을 거느리고 동아를 점령하려 하고, 또 범억을 시켜 범현을  탈취하려고 합니다."

 관리와 백성들이 모두 두려워하였다.

 是時,兗州郡縣皆應布,唯鄄城、范、東阿不動。賢曰:范縣屬東郡,今濮陽縣。東阿縣屬東郡,今濟州縣也。布軍降者言:「陳宮欲自將兵取東阿,又使氾嶷取范。」降,戶江翻。氾,符咸翻。皇甫謐云:本姓凡氏,遭秦亂,避地於氾水,因氏焉。嶷,鄂力翻。吏民皆恐。

 

 정욱이 본래 동아 사람인데, 순욱이 정욱에게 말하였다.

 "지금 주를 들어서 모두가 배반하였지만 오직 이 세 성만이 남아 있는데, 진궁 등이 중무장한 병사들을 거느리고 이곳으로 침공하니 그들을 마음 깊이 맺어놓지 않으면 이 세 성도 반드시 동요될 것입니다. 그대는 백성들의 희망이니 마땅히 가서 그들을 어루만져주십시오."

 程昱本東阿人,彧謂昱曰:「今舉州皆叛,唯有此三城,宮等以重兵臨之,非有以深結其心,三城必動。君,民之望也,宜往撫之。」

 

 정욱이 돌아가는 길에 범현을 지나며 현령 근윤에게 유세하였다.

 "듣자하니 그대의 어머니, 아우, 처자를 인질로 잡고 있다고 하는데, 효자로서는 정말로 마음을 놓을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은 천하가 크게 어지럽고 영웅이 나란히 일어나니 반드시 세상에 명령을 내릴 사람이 있어야 천하의 혼란을 그치게 할 수 있을 것이고, 이는 지혜로운 자가 마땅히 상세히 살펴보고 선택해야 할 바입니다.

 昱乃歸過范,說其令靳允曰:過,工禾翻。說,輸芮翻。靳,居焮翻,姓也。戰國楚有幸臣靳尚。「聞呂布執君母、弟、妻子,孝子誠不可爲心。今天下大亂,英雄並起,必有命世能息天下之亂者,此智者所宜詳擇也。

 

 주인을 얻는 자는 창성할 것이나 주인을 잃는 자는 망할 것입니다. 진궁이 배반하여 여포를 맞아들이자 모든 성들이 호응하니 마치 능히 무엇을 할 것 같지만 그러나 당신이 볼 때 여포는 어떤 사람입니까?

 대저 여포는 거친 가운데 가까이 하는 일이 적으며, 굳세지만 무례하니, 보통 사내 정도의 영웅일 뿐입니다.

 得主者昌,失主者亡。陳宮叛迎呂布而百城皆應,似能有爲;然以君觀之,布何如人哉?夫布麤中少親,剛而無禮,匹夫之雄耳。

 

 진궁 등이 세력을 가지고 임시로 합쳤으나 서로 군신 관계를 맺을 수 없을 것이고 군사가 비록 많지만 끝내 성공하지 못할 것입니다. 조 사군의 지략은 불세출로서 거의 하늘에서 준 것이니, 그대가 반드시 범현을 굳게 방비하고, 나는 동아를 지킨다면 전단의 공을 세울 수가 있습니다.

 宮等以劫假合,不能相君也;相,如字。言不能相與定君臣之分也。兵雖衆,終必無成。曹使君智略不世出,殆天所授;君必固范,我守東阿,則田單之功可立也。田單事見五卷周赧王三十六年。

 

 충성스러움을 어기고 악을  좇다가 어머니와 아들이 함께 망하는 것과 비교해보면 어떠하겠습니까? 오직 그대는 이 점을 깊이 생각하십시오!"

 근윤이 눈물을 흘리며 말하였다.

 "감히 두 가지 마음을 가지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

 이때 범익이 이미 현에 있었으니, 근윤이 이에 범익을 보고 복병을 시켜 칼로 찔러 죽이고, 돌아와 군대를 지휘하며 수비에 전념하였다.

 孰與違忠從惡而母子俱亡乎?唯君詳慮之!」允流涕曰:「不敢有貳心。」時氾嶷已在縣,允乃見嶷,伏兵刺殺之,刺,七亦翻。歸,勒兵自守。

 

 서중이 평론하였다.

 "근윤이 조조에게는 아직 군신 관계가 성립하지 않았지만, 어머니는 지친의 관계이니 의리에서는 응당 가야 했다. 위의 공자인 개방이 제나라에서 벼슬을 하면서 수년 동안 돌아가지 않았는데, 관중이 '부모를 생각하지 않고 어찌 임금을 사랑할 수 있겠는가?라고 생각하였다.

 徐衆評曰:允於曹公未成君臣;母至親也,於義應去。衞公子開方仕齊,積年不返,管仲以爲不懷其親,安能愛君!齊桓公問管仲曰:「開方何如?」對曰:「棄親以適君,非人情,難親。」

 

 이리하여서 충신을 구하려면 반드시 효지 집안에서 구하라는 것인데, 근윤은 마땅히 먼저 지친을 구제했어야 했다. 徐庶의 어머니가 조공에게 붙잡히자 유비는 서서를 보내어 북으로 돌아가게 하였는데, 이는 천하를 도모하려는 사람은 반드시 다른 사람 자식의 정을 헤아려야 한다는 것이다. 조조도 마땅히 근윤을 보냈어야 했다.

 是以求忠臣必於孝子之門;允宜先救至親。徐庶母爲曹公所得,劉備遣庶歸北,欲爲天下者恕人子之情也;事見後六十五卷建安十三年。曹公亦宜遣允。

 

※. 후일 후덕했던 유비의 후손들은 살아 있지만, 간악한 조조의 후손들은 멸족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