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曹操[Cáo Cāo]의 복수 /土潤溽暑6日(음6/12)丙子

solpee 2020. 8. 1. 14:19

《韓紀52 孝獻帝 初平 4 (癸酉, 193)

 

 ⑭ 전임 태위 조숭이 난을 피하여 낭야에 있었는데, 그의 아들 조조가 태산 태수 응소에게 그를 맞이하게 하였다. 조숭의 치중은 100여 대였다. 도겸의 별장이 음평(강소 술양)을 지켰는데 병사들이 조숭의 財寶를 탐내 華縣과 費縣 사이에서 조숭을 엄습하여 죽이고 아울러 어린 아들 조덕추도 죽였다.

 ⑭ 前太尉曹嵩避難在琅邪,難,乃旦翻。其子操令泰山太守應劭迎之。嵩輜重百餘兩,重,直用翻。兩,音亮。陶謙別將守陰平,陰平縣,屬東海郡。賢曰:故城在今沂州承縣西南。士卒利嵩財寶,掩襲嵩於華、費間,殺之,《前漢志》,華、費二縣皆屬泰山郡。《續漢志》,泰山有費縣,無華縣,蓋併省也。《水經》:時水南過華縣東,又南過費縣東,入沂。賢曰:費縣故城,在費縣東北。費,音祕。幷少子德。秋,

 

 조조는 군사를 빼내어 도겸을 쳐서 10여 개의 성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팽성에 이르러 큰 전투를 치렀는데, 도겸의 군사가 패하여 달아나서 담(산동 담성)을 지켰다.

 操引兵擊謙,攻拔十餘城,至彭城,大戰,謙兵敗,走保郯。郯縣,屬東海郡,徐州刺史治所。

 

 애초에 京·雒은 동탁의 난을 만나서 백성들이 떠돌아다니다가 동쪽으로 빠져나가 많은 사람이 서주 땅에 의지 하였는데, 조조가 부임하여 남여 수십만 명을 사수에서 파묻어 죽이니 물이 흐르지 않았다.

 初,京、雒遭董卓之亂,民流移東出,多依徐土,遇操至,坑殺男女數十萬口於泗水,水爲不流。爲,于僞翻。

 

 조조가 담을 공격하였으나 이길 수가 없자 마침내 떠났으며, 慮·睢陵·夏丘를 공격하여 빼앗고 모두 도륙하였는데, 닭과 개 역시 다 없애니 텅 빈 읍에는 다니는 사람이 다시 없게 되었다.

 操攻郯不能克,乃去,攻取慮、睢陵、夏丘,三縣皆屬下邳國。杜佑曰:泗州下邳縣北有漢武原故城,又北有郯縣故城。睢陵故城在下邳東南。夏丘,堯封禹爲夏伯,邑於此,漢爲夏丘縣。師古曰:取,音趨,又音秋。慮,意廬。睢,音雖。夏,戶雅翻。皆屠之,雞犬亦盡,墟邑無復行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