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勞謙君子有終吉(겸손한 군자는 끝이 길하다.)/土潤溽暑6日(음6/12)丙子

solpee 2020. 8. 1. 03:34

《韓紀52 孝獻帝 初平 3 (庚午, 192)

 

 ⑧ 기미일(2)에 천하에 사면령을 내리고 이각을 양무장군으로 삼고, 곽사를 양렬장군으로 삼았으며, 번조 등은 모두 중랑장으로 삼았다. 이각 등이 사예교위 황완을 체포하여 죽였다.

 ⑧ 五月,己未,赦天下,以李傕爲揚武將軍,郭汜爲揚烈將軍,揚武將軍始於建武之初,馬成爲之。揚烈將軍蓋始於是時。樊稠等皆爲中郎將。傕等收司隸校尉黃琬,殺【章:甲十一行本「殺」上有「下獄」二字;乙十一行本同。】之。

 

 애초에 왕윤이 같은 군 사람인 송익을 좌풍익으로 삼고, 왕굉을 우부풍에 임명하였는데, 이각 등이 왕윤을 죽이려고 하였으나 두 군이 우환이 될까 두려워서 먼저 송익·왕굉을 불러들였다.

 왕굉이 사자를 보내어 송익에게 말하였다.

 "곽사·이각은 우리 두 사람이 밖에 있어서 아직 왕공(왕윤)을 위태롭게 하지 못하고 있는데, 오늘 불렀다 하여 가면 내일은 함께 멸족당할 것이니 장차 계책을 어떻게 내어야하겠습니까?"

 初,王允以同郡宋翼爲左馮翊,王宏爲右扶風,允,太原人。傕等欲殺允,恐二郡爲患,乃先徵翼、宏。宏遣使謂翼曰:「郭汜、李傕以我二人在外,故未危王公,危,謂殺也。今日就徵,明日俱族,計將安出?」

 

 송익이 말하였다.

 "비록 화가 될지 복이 될지를 측량하기 어렵습니다만, 왕명이니 피할 수 없는 바입니다."

 왕굉이 말하였다.

 "관동 지역의 의병이 솥에 물 끓듯 들끓으며 동탁을 죽이려고 하였는데, 지금 동탁이 이미 죽엇으니 그 무리는 제압하기에 쉬울뿐입니다. 만약 군사를 일으켜 함께 이각 등을 토벌하고 산동 지역 사람들과 서로 호응하면 이는 전화위복이 되는 계책입니다."

 翼曰:「雖禍福難量,量,音良。然王命,所不得避也!」宏曰:「關東義兵鼎沸,欲誅董卓,今卓已死,其黨與易制耳。易,以豉翻。若舉兵共討傕等,與山東相應,此轉禍爲福之計也。」

 

 송익이 따르지 않으니 왕굉이 홀로 세울 수 없어 마침내 함께 불려갔다. 갑자일(7)에 이각은 왕윤과 송익·왕굉을 잡아서 함께 죽였고, 왕윤의 처자도 모두 죽였다. 왕굉은 처형될 때 욕하며 말하였다.

 "송익 같은 유생 녀석과 큰 계책을 논하기에 충분치 않군!"

 翼不從,宏不能獨立,遂俱就徵。甲子,傕收允及翼、宏,幷殺之;允妻子皆死。宏臨命詬曰:詬,許候翻,又古候翻,怒罵也。「宋翼豎儒,不足議大計!」賢曰:豎者,言賤劣如僮豎。

 

 이각은 왕윤의 시체를 거리에 매달아놓아 사람들이 보도록 하였는데, 감히 거두는 자가 없었지만 옛 부하관리였던 평릉 현령인 경조 사람 조전이 관직을 버리고 그것을 거두어 이를 장사지냈다. 처음에 왕윤이 동탁을 토벌한 공로를 독차지하였고, 사손서는 공로를 돌리고 열후를 받지 아니하였기 때문에 어려움에서 벗어날 수 있있다.

 傕尸王允於市,莫敢收者,故吏平陵令京兆趙戩棄官收而葬之。戩,子踐翻。始,允自專討卓之勞,士孫瑞歸功不侯,故得免於難。難,乃旦翻。

 

 신 사마광이 말씀드립니다.

 "《易‧繫辭》에서는 '수고를 하고도 겸손한 군자는 끝맺음이 길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사손서는 공로를 세우고도 내세우지 않아서 자신의 몸을 보호하였으니 그를 '지혜롭다.'라고 말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臣光曰:《易》稱「勞謙君子有終吉」,《易‧繫辭》曰:勞而不伐,有功而不德,厚之至也。語以其功下人者也。德言盛,禮言恭。謙也者,致恭以存其位者也。程頤《註》曰:有勞而能謙,又須君子行之,有終則吉。夫樂高喜勝,人之常情。平時能謙,固已鮮矣,況有功勞可尊乎!雖使知謙之善,勉而爲之,若矜負之心不忘,則不能常久,欲其有終不可得也。惟君子安履謙順,故久而不變,乃所謂有終則吉也。士孫瑞有功不伐,以保其身,可不謂之智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