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人情崩恐,不保朝夕。 / 大暑節仲候土潤溽暑4日(음6/10)甲戌

solpee 2020. 7. 30. 08:25

《韓紀51 孝靈帝 中平 5 (戊辰, 188)

 

 19. 장순과 구력거(오환족 추장)가 함께 靑州(山東省淄博市臨淄縣)·徐州(江蘇省 徐州;治所는 山東淡城縣)·幽州(河北省薊縣,北京市大興縣)·冀州(河北省冀縣 중남부)의 네 주를 노략질하니 기도위 공손찬에게 조서를 내려 이들을 토벌하게 하였다. 공손찬의 속국(北京薊縣,豊潤,迂安일대다. 당시 遼河는 지금의 灤河다)에 있는 석문에서 싸웠는데, 장순 등이 대패하자 처자를 버리고 요새를 넘어 달아났다.

※.그러니까 오환이 석문일대(지금의 북경)에 집짓고 살았다는 뜻이다.

 19. 張純與丘力居鈔略青、徐、幽、冀四州;鈔,楚交翻。詔騎都尉公孫瓚討之。瓚與戰於屬國石門,屬國,遼東屬國也。賢曰:石門,山名,在今營州柳城縣西南。瓚,藏旱翻。純等大敗,棄妻子,踰塞走;

 

 약탈당했던 남여를 모두 얻었다.(언젠가 빼앗겼다가 다시 찾았다는 것) 공손찬이 깊숙히 들어갔지만 뒤를 이어주는 부대가 없어 도리어 구력거 등에게 遼西(춘추필법으로 錦州라 하나 당시의 요서는 북경일대이다)의 관자성에서 포위당하였고, 200여일이 되자 양식은 다 떨어지고 무리가 무너지니 병사 가운데 죽은 자가 열에 대여섯 명이나 되었다.

 悉得所略男女。瓚深入無繼,反爲丘力居等所圍於遼西管子城,二百餘日,糧盡衆潰,士卒死者什五六。

 

《韓紀51 孝靈帝 中平 6 (己巳, 189)

 24. 동탁은 성질이 잔인하였는데 하루 아침에 정치를 오로지 하게 되자,  나라의 군대와 진기한 보물을 점거하고 천하 사람들에게 위엄을 떨치며 바라는 것이 끝이 없었는데, 빈객에게 말하였다.

 "나의 관상을 보면 고귀함에서 더 높은 것이 없다."

 24. 董卓性殘忍,一旦專政,據有國家甲兵、珍寶,威震天下,所願無極,語賓客曰:「我相,貴無上也!」〈自言非人臣之相,其悖逆如此。語,牛倨翻。相,息亮翻。〉

 

 시어사 요용종이 동탁에게 와서 사무에 대하여 아뢰는데 칼을 풀어놓지 않았다 하여 즉시 채찍으로 때려서 죽였다. 이때 낙양 안에 사는 귀한 척족들은 집들이 서로 바라볼 정도로 가까이 이어져 있었고, 금과 비단과 재산이 집집마다 가득 쌓여 있었는데, 동탁이 병사(융의 일족)들을 풀어놓아 그들의 집안으로 돌진하여 돈과 물건들을 빼앗았으며 부녀자들을 아내로 삼고 귀척을 가리지 않았다.

 侍御史擾龍宗詣卓白事,不解劍,〈擾龍,姓也,蓋古擾龍氏之後。〉立檛殺之。〈檛,側瓜翻。〉是時,雒中貴戚,室第相望,金帛財產,家家充積,卓縱放兵士,突其廬舍,剽虜資物,〈剽,匹妙翻。〉妻略婦女,不避貴戚;〈【章:甲十一行本「戚」作「賤」;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

 

 사람들의 마음은 무너지는 듯 두려움에 떨었으며 아침에 저녁을 보장하지 못하였다.

 人情崩恐,不保朝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