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琨檄告華、夷[kūn xí gào huá, yí] / 立秋節末候寒蟬鳴初日(음6/28)壬辰

solpee 2020. 8. 17. 09:26

《晉紀12 元 建武 元 (丁丑, 317)

 

 ⑤. 유곤과 단필제는 서로 삽혈을 하고 동맹을 맺고서 晉의 황실을 보좌하기로 하였다. 19일 유곤이 華族과 夷族(화족은 누구며 이족은 누구인가?)들에게 격문을 보내 좌장사·우사마를 겸한 온교를 파견하고, 단필제는 좌상사 영소를 파견하여 표문과 맹약한 글을 받들고 건강에 이르러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도록 권고하였다. 온교는 온선의 조카이고, 온교의 이모는 유곤의 처였다.

 ⑤. 劉琨、段匹磾相與歃血同盟,磾,丁奚翻。歃,色洽翻,歠也。期以翼戴晉室。辛丑,琨檄告華、夷,遣兼左長史、右司馬溫嶠,匹磾遣左長史榮卲,奉表及盟文詣建康勸進。漢之禪于魏也,文帝三讓,魏朝羣臣累表請順天人之望,此則勸進之造端也。晉受魏禪,何曾等亦然。是時愍帝蒙塵,四海無君,琨等勸進,爲得其正。嶠,羨之弟子也,溫羨見八十六卷惠帝永興二年。嶠之從母爲琨妻。母之姊妹爲從母。從,才用翻。

 

 유곤이 온교에게 말하였다.

 "晉이 비록 쇠약해졌다고 하여도 천명이 아직은 고쳐지지 않았으니, 나는 마땅히 河朔(北中)에서 공로를 세울 것이며, 경에게 강남에서 명예를 드날리게 하고자 한다. 가서 열심히 하여라."

 왕은 신비대도독 모용외를 도독遼左(遼東)雜夷유민제군사· 용상장군· 대선우· 창여공으로 삼았는데 모용외는 받지 않았다. 정로장군 노창이 모용외에게 유세하였다.

 琨謂嶠曰:「晉祚雖衰,天命未改,吾當立功河朔,使卿延譽江南。行矣,勉之!」

王以鮮卑大都督慕容廆爲都督遼左雜夷流民諸軍事、龍驤將軍、大單于、昌黎公;廆不受。遼左,卽遼東。流民,謂中州之民流移入遼東者。廆,戶罪翻。驤,思將翻。征虜將軍魯昌說廆曰:

 

 "지금 양경이 함락되었고, 천자는 몽진하였는데, 낭야왕이 강동에서 승제하여 그의 소속이 되었습니다. 명공께서 비록 한 지방에서 웅거하고 있으나, 여러 부에서는 오히려 군사로 저항하면서 아직 항복하지 않고 있는 것은 관위가 왕명에 의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당 낭야왕에게 사자를 보내 대통을 잇도록 권고하고, 그런 다음에 조령을 받들어 죄 지은 사람을 토벌하면 누가 감히 좇지 않겠습니까?"

 「今兩京覆沒,天子蒙塵,《左傳》,叔帶之難,襄王出居于鄭,使告難于魯。臧文仲對曰:「天子蒙塵于外,敢不奔問官守。」說,輸芮翻。琅邪王承制江東,爲四海所係屬。屬,之欲翻。明公雖雄據一方,而諸部猶阻兵未服者,蓋以官非王命故也。謂宜通使琅邪,使,疏吏翻;下同。勸承大統,然後奉詔令以伐有罪,誰敢不從!」

 

 처사인 요동 사람 고후가 말하였다.

 "패왕의 밑천은 의가 아니면 넘어가지 않습니다. 지금 晉 황실이 비록 쇠미하였으나, 사람들의 마음은  아직은 그들에게 붙고 있으니, 의당 사자를 강동에 파견하여 존경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시고, 그런 다음에 대의를 내세우면서 여러 부를 정벌한다면 할 말이 없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용외가 이를 좇아서 장사 왕제를 파견하여 배를 타고 건강에 가게 하여 황제의 자리로 나아갈 것을 권고하였다.

 處士遼東高詡曰:處,昌呂翻。「霸王之資,非義不濟。今晉室雖微,人心猶附之,宜遣使江東,示有所尊,然後仗大義以征諸部,不患無辭矣。」晉室雖衰,慕容、苻、姚之興,其初皆借王命以自重。廆從之,遣長史王濟浮海詣建康勸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