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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 徐(李)敬業의 사망/春分節初候玄鳥至 海棠花風5日(陰2/12)辛未

《唐紀20 則天后 光宅 元年》 (甲申, 684) ㉗. 곡아현령 하간 사람 윤원정이 군대를 이끌고 윤주를 구원하였으나 패하여 이경업에게 붙잡히게 되었는데, 번득이는 칼날을 들이대어도 굽히지 않다가 죽었다. ㉗. 曲阿令河間尹元貞引兵救潤州,〈曲阿縣,本雲陽,秦始皇改曰曲阿。前漢屬會稽郡,後漢屬吳郡,晉屬晉陵郡,隋屬江都郡,唐屬潤州。河間,漢州鄕縣地,屬涿郡,隋爲河間縣,屬瀛州。〉戰敗,爲敬業所擒,臨以白刃,不屈而死。 ㉙. 10월 19일에 이경업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작을 삭탈하고 무덤을 파서 관을 부수었으며, 성을 서씨로 되돌렸다. ㉙. 丁酉,追削李敬祖考官爵,發冢斲棺,復姓徐氏。 ㉛. 11월, 4일에 좌응양대장군 흑치상지를 강남도대총관으로 삼아서 서경업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위초가 병사들을 거느리고 도량산을 점거하니, 제장들이..

카테고리 없음 2021.03.24

무후의 전횡과 이경업의 반란/春分節初候玄鳥至 海棠花風5日(陰2/12)辛未

·《唐紀19 高宗 光宅 元年》 (甲申, 684) ㉕. 무승사가 태후에게 그 조상들을 왕으로 추봉하고 무씨7묘를 세울 것을 요청하자, 태후가 그의 의견을 따랐다. 배염이 간하였다. "태후께서는 어머니로서 천하의 사람들에게 다가가시면서 마땅히 지극히 공적인 모습을 보여야 하며, 가까운 삼에게 사사로워서는 안됩니다. 홀로 여씨의 실패를 보지 못하셨습니까?" ㉕. 武承嗣請太后追王其祖,〈王,于況翻。〉立武氏七廟,太后從之。裴炎諫曰:「太后母臨天下,當示至公,不可私於所親。獨不見呂氏之敗乎!」 태후가 말하였다. "여씨는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맡겼으니, 그러므로 실패하기에 이르렀다. 지금 내가 죽은 사람들을 추존하는데 무엇을 다치겠는가?" 대답하였다. "일이란 것은 마땅히 사소한 것을 막고 조금씩 늘어나는 것을 막아서 자라날 수..

카테고리 없음 2021.03.23

고종의 사망 중종 즉위 후 폐립 무후의 등극/春分節初候玄鳥至 海棠花風4日(陰2/11)庚午

《唐紀19 高宗 弘道 元年》 (癸未, 683) ⑳. 12월 4일에 연호를 고치고, 천하를 사면하였다. 황상은 측천문 위에 있는 누각으로 가서 사면령을 선포하려 하였으나, 기운이 거꾸로 흘러서 말을 탈 수 없었기 때문에 마침내 백성들을 불러서 대전 앞으로 들어오도록 하여 이를 선포하였다. ⑳. 十二月,丁巳,改元,赦天下。上欲御則天門樓宣赦,氣逆不能乘馬,乃召百姓入殿前宣之。 이날 밤에 배염을 불러서 들어가서 정치를 보필하라는 유조를 내리고 황상은 정관전에서 붕어(56세)하였다. 유조에서 태자는 황제의 영구 앞에서 즉위하고, 군대와 국가의 중대한 일 중에서 결정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천후의 의견을 아울러 듣고 계속 진행하거나 중지하도록 하였다. 萬泉· 芳桂· 奉天 등의 궁을 폐쇄하였다. 是夜,召裴炎入,受遺詔輔政,上..

카테고리 없음 2021.03.23

槿堂體本(3/22)/ 春分節初候玄鳥至 海棠花風3日(陰2/10)己巳

槿堂體本(3/22) ☞.世, 寧異今德, 旣傾乾覆. ☞.身居鬧市一塵不染.[shēnjū nàoshì yìchén bùrǎn] 도시에 살고 있지만 세상의 物慾과 나쁜 습관에 전혀 물들어 있지 않다. remain uncontaminated amidst the temptations of a big city ☞.隆冬願作送暖人.《聖嚴法師108自在語》 枯旱祈降及時雨. 隆冬願作送暖人 / 가물 때 기원하여 단비가 내리게 하고, 한겨울에는 따뜻함을 가져다 줄 사람이 되기를 바란다. ☞.☞. ☞. ☞.流. 牛斗恢恢地, 神游刃...《書劒柄贈趙壯元瑗· 曺植》 离宮抽太白, 霜拍廣寒流. 牛斗恢恢地, 神遊刃不遊./ 불 속에서 하얀 칼날 뽑아내니, 서릿발 칼빛이 달을 치고 흐르네. 견우성 북두성 넓디넓은 하늘에, 정신은 놀아도 칼날은 ..

카테고리 없음 2021.03.22

鳳鳴朝陽/ 春分節初候玄鳥至 海棠花風3日(陰2/10)己巳

《唐紀19 高宗 永淳 元年》 (壬午, 682) ⑫. 황상은 태산에서 봉선을 거행한 후, 오악에서 두루 봉선을 거행하려 하였으므로, 가을, 7월에 崇山의 남쪽에 봉천궁을 지었다. 감차어서리행 이선감이 간언하였다. "폐하께서 태산에서 봉선을 거행하며 천하가 태평하여 많은 상서로운 일이 발생하였음을 알렸으니, 三皇· 五帝와 비교해도 융성한 것입니다. ⑫. 上旣封泰山,欲遍封□□,〈【章:十二行本空格作「五嶽」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秋,七月,作奉天宮於嵩山南。〈奉天宮在洛州嵩陽縣。〉監察御史裏行李善感諫曰:〈裏行者,資序未至,未正除監察御史,令於監察御史班裏行也。監,古銜翻。〉「陛下封泰山,告太平,致羣瑞,與三皇、五帝比隆矣。 근래 몇 년 동안 콩과 조가 익지 않아서 굶어죽은 사람들이 서로 바라보아고, 사방의 오랑캐들은 교대로 침..

카테고리 없음 2021.03.22

黑齒常之의 등장 /春分節(18:37)初候玄鳥至 海棠花風3日(陰2/10)己巳

《唐紀17 高宗 儀鳳 3年》 (戊寅, 678) ⑨. 9월, 12일에 이경현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토번의 장수인 노흠릉과 청행에서 싸워서 군사가 패배하고, 공부상서· 우취대장군인 팽성희공 유심례가 토번의 포로가 되었다. 이때에 유심례는 선봉군을 거느리고 깊이 들어가서 호소에 주둔하였다가 오랑캐에게 공격받았고, 이경현은 나약하고 겁을 먹어 군사를 누르고 구원하지 않았다. ⑨. 丙寅,李敬玄將兵十八萬與吐蕃將論欽陵戰於青海之上,〈將,卽亮翻;下同。〉兵敗,工部尚書、右衞大將軍彭城僖公劉審禮爲吐蕃所虜。〈《諡法》:剛克曰僖;又,小心畏忌曰僖;又戴《記》,有伐有還曰僖。〉時審禮將前軍深入,頓于濠所,爲虜所攻,敬玄懦怯,按兵不救。 유심례가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낭패하여 돌아서서 달아나서 승풍령에 주둔하며 진흙으로 된 도랑으로..

카테고리 없음 2021.03.22

고리의 패망과 신라의 다물/春分節(18:37)初候玄鳥至 海棠花風2日(陰2/9)戊辰

《唐紀17 高宗 咸亨 元年》 (庚午, 670) ⑧. 고리의 추장인 검모잠이 반란을 일으키고 고장의 외손자인 안순을 세워 주군으로 삼았다. 좌감문대장군 고간을 동주도행군총관으로 삼고, 군사를 발동하여 이를 토벌하게 하였다. 안순이 검모잠을 죽이고 신라로 달아났다. ⑧. 高麗酋長劍牟岑反,立高藏外孫安舜爲主。以左監門大將軍高侃爲東州道行軍總管,〈高麗在東,時已列置州府,故曰東州道。監,古銜翻。〉發兵討之。安舜殺劍牟岑,奔新羅。 *통감에 보면 신라가 삼국통일에 신라가 한 일은 거의 기록하지 않았는데 마지막으로 新城( 중국에선 今 撫順이라 하나 원래는 正定縣 新城鋪다)에 있던 안동도호부마저 신라에게 탈취 당하고 신라는 고리의 구토를 다 회복하였다. 《唐紀18 高宗 咸亨 2年》 (辛未, 671) ④. 가을, 7월, 초하루에 고간..

카테고리 없음 2021.03.20

銓選: 시험과 인재 선발/春分節(18:37)初候玄鳥至 海棠花風1日(陰2/8)丁卯

《唐紀17 高宗 總章 2年》 (己巳, 669) ⑥. 고리의 백성들 가운데 이반하는 사람이 많아서 칙령을 내려서 고리의 호구 3만8천 200을 장강과 화수의 남쪽과 산남과 경서에 있는 여러 주의 텅 빈 땅으로 옮기도록 하고 그들 가운데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남겨서 安東을 지키게 하였다. ⑥. 高麗之民多離叛者,敕徙高麗戶三萬八千二百於江、淮之南,及山南、京西諸州空曠之地,留其貧弱者,使守安東。 ⑮. 당시에는 평화의 시기가 길어져서 사람을 뽑는 일이 더욱 많아졌는데, 이 해에 사열 소상백인 배행검이 처음으로 원와랑 장인의와 함께 장명성역방을 두고, 銓注(시험의 성적과 그 내용에 관한 자새한 설명)를 인용하는 방법을 만들었다. 또 주현 관리의 승급과 강등· 관리 자질의 높고 낮은 표준을 정하였다. 그 후에 드디어 영재..

카테고리 없음 2021.03.20

고리의 멸망./春分節(18:37)初候玄鳥至 海棠花風1日(陰2/8)丁卯

《唐紀17 高宗 總章 元年》 (戊辰, 668) ①. 봄, 정월, 28일에 우상 유인궤를 요동도 부대총관으로 삼았다. ①. 春,正月,壬子,以右相劉仁軌爲遼東道副大總管。 ②. 2월 6일에 이적 등이 고리의 扶餘城을 점령하였다. 설인귀가 이미 고리를 金山에서 공격하고 나자, 승리한 기세를 타고서 3천 명을 거느리고 장차 扶餘城을 공격하려 하였는데, 제장들은 그드르이 군사가 적어서 이를 중지시켰다. 설인귀가 말하였다. "군사란 많은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할 뿐이다." 드디어 선봉이 되어서 나아가서 고리와 싸워서 그들을 대파하였고, 죽이거나 사로잡은 것이 만여 명이었고, 드디어 부여성을 확보한 것이다. ②. 二月,壬午,李勣等拔高麗扶餘城。〈扶餘國之故墟,故城存其名。〉薛仁貴旣破高麗於金..

카테고리 없음 2021.03.19

당 고종의 고리침략 2./春分節(18:37)初候玄鳥至 海棠花風1日(陰2/8)丁卯

《唐紀17 高宗 麟德 2年》 (乙丑, 665) ⑪. 9월, 14일에 이적이 고리의 新城을 접령하고 글필하력으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하였다. 이적은 처음으로 遼河를 건너서 제장들에게 말하였다. "新城은 고릐의 서쪽 변두리의 요충지이니, 먼저 이를 얻지 아니하면 나머지 성들은 쉽게 빼앗지 못할 것이다." 드디어 공격을 하였는데, 성에 사는 사람인 사부구 등이 성주를 결박하고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 이적은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여 16개의 성을 모두 점령하였다. ⑪. 辛未,李勣拔高麗之新城,使契苾何力守之。勣初度遼,謂諸將曰:「新城,高麗西邊要害,不先得之,餘城未易取也。」〈易,以豉翻。〉遂攻之,城人師夫仇等縛城主開門降。〈降,戶江翻。〉勣引兵進擊,一十六城皆下之。 방동선과 고간은 아직도 신성에 있었는데 연남건이 군사를 파견하여..

카테고리 없음 2021.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