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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의 멸망./春分節(18:37)初候玄鳥至 海棠花風1日(陰2/8)丁卯

solpee 2021. 3. 19. 06:21

《唐紀17 高宗 總章 元年》 (戊辰, 668)

 

 

 ①. 봄, 정월, 28일에 우상 유인궤를 요동도 부대총관으로 삼았다.

 ①. 春,正月,壬子,以右相劉仁軌爲遼東道副大總管。

 

 

 ②. 2월 6일에 이적 등이 고리의 扶餘城을 점령하였다. 설인귀가 이미 고리를 金山에서 공격하고 나자, 승리한 기세를 타고서 3천 명을 거느리고 장차 扶餘城을 공격하려 하였는데, 제장들은 그드르이 군사가 적어서 이를 중지시켰다. 설인귀가 말하였다.

 "군사란 많은데 있는 것이 아니고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는가를 돌아보아야 할 뿐이다."

 드디어 선봉이 되어서 나아가서 고리와 싸워서 그들을 대파하였고, 죽이거나 사로잡은 것이 만여 명이었고, 드디어 부여성을 확보한 것이다.

 ②. 二月,壬午,李勣等拔高麗扶餘城。〈扶餘國之故墟,故城存其名。〉薛仁貴旣破高麗於金山,乘勝將三千人將攻扶餘城,諸將以其兵少,止之。仁貴曰:「兵不在多,顧用之何如耳。」遂爲前鋒以進,與高麗戰,大破之,殺獲萬餘人,遂拔扶餘城。

 

 扶餘川에 있는 40여 개의 성이 모두 풍문을 듣고는 항복을 받아달라고 청하였다.

 시어사인 낙양 사람 가언충이 사신의 업무를 받들어 처리하고 요동에서 돌아오자 황상이 군사에 관하여 물었더니, 가언충이 대답하였다.

 "고리는 반드시 평정될 것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경이 그것을 어떻게 아는가?"

 扶餘川中四十餘城皆望風請服。

侍御史洛陽賈言忠奉使自遼東還,〈使,疏吏翻。〉上問以軍事,言忠對曰:「高麗必平。」上曰:「卿何以知之?」

 

 대답하였다.

 "수 양제가 동쪽 정벌을 떠나서 이기지 못하였던 것은 사람들의 마음이 떠나고 원망하였던 연고이고, 선황께서 실패하였던 것은 고리에 아직은 틈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지금 고장은 미약하고 권신들이 명령을 멋대로 부리며 연개소문이 죽자 연남건의 형제들이 안에서 서로 공격하고 빼앗으며, 연남생이 마음을 기울여서 속으로 귀부하여 우리의 길을 인도하니, 저들의 사정과 속임수는 이를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對曰:「隋煬帝東征而不克者,人心離怨故也;〈事見《隋煬帝紀》。〉先帝東征而不克者,高麗未有釁也。〈事見《太宗紀》。釁,許覲翻。〉今高藏微弱,權臣擅命,蓋蘇文死,男建兄弟內相攻奪,男生傾心內附,爲我鄕導,〈鄕,讀曰嚮。〉彼之情僞,靡不知之。

 

 폐하의 성스러운 밝음으로 국가는 부강하고 장사들은 힘을 다하고 있으며 고리의 혼란함을 틈타고 있으니 그 형세는 반드시 이기게 되어 있고 다시 군사를 일으킬 것을 기다리지 않을 것입니다. 또 고리에는 계속하여 몇 년 동안 기근이 들고 妖異한 일들이 계속하여 내려오고, 사람들의 마음은 위태롭고 놀라고 있으니, 그들이 망하는 것은 발 뒷꿈치를 들고서도 기다릴 수 있습니다."

 以陛下明聖,國家富強,將士盡力,以乘高麗之亂,其勢必克,不俟再舉矣。且高麗連年饑饉,妖異屢降,〈妖,於喬翻。〉人心危駭,其亡可翹足待也。」

 

 황상이 또 물었다.

 "요동의 제장들 가운데 누가 현명하오?"

 대답하였다.

 "설인귀가 용감하기로는 삼군에서 으뜸이고, 방동선은 비록 전투를 잘하지 못하나 군사를 유지하는 것이 엄정하고, 고간은 부지런하고 절약하며 스스로 처신하며 충성스럽고 과단성있으며 지모도 있으며, 글필하력은 침착하고 의연하며 단안을 내릴 수 있으니, 비록 자못 앞에 나간 사람을 꺼린다 하여도 통솔하는 재주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나 밤낮으로 조심하며 자기 몸을 잊고서 나라를 걱정하는 데서는 모두 이적을 따라잡지는 못합니다."

 황상은 깊이 그 말을 그러하다고 생각하였다.

 上又問:「遼東諸將孰賢?」〈謂征遼東之諸將也。〉對曰:「薛仁貴勇冠三軍;龐同善雖不善鬬,而持軍嚴整;高侃勤儉自處,忠果有謀;契苾何力沈毅能斷,雖頗忌前,〈冠,古玩翻。處,昌呂翻。沈,持林翻。斷,丁亂翻。忌前,忌人在己前也。〉而有統御之才;然夙夜小心,忘身憂國,皆莫及李勣也。」上深然其言。

 

 연남건은 다시 군사 5만 명을 파견하여 부여성을 구원하며 이적 등과 더불어 薛賀水에서 만나서 싸웠지만 그들을 대파하고 목 베고 사로잡은 것이 3만여 명이었고 나아가서 大行城을 공격하여 이를 확보하였다.

 泉男建復遣兵五萬人救扶餘城,〈復,扶又翻。〉與李勣等遇於薛賀水,〈《新書》作「薩賀水」。〉合戰,大破之,斬獲三萬餘人,進攻大行城,拔之。

 

 

 ⑤. 여름, 4월 2일에 혜성이 五車座에 보였다. 황상이 정전을 피하고, 보통 때보다 음식을 줄이며, 음악도 철폐하였다. 허경종 등이 상주하였다.

 "혜성이 도북쪽에 나타났으니 장차 고리가 멸망할 징조입니다."

 황상이 말하였다.

 ⑤. 夏,四月,丙辰,彗星見于五車。〈五車,五星,五帝車舍也,五帝坐也,主天子五兵;一曰:主五穀豐耗。西北大星曰天庫,主太白,主秦;次東北曰獄,主辰星,主燕、趙;次東星曰天倉,主歲星,主魯、衞;次東南曰司空,主塡星,主楚;次西南曰卿星,主熒惑,主魏。五星有變,皆以其所占之。據《舊紀》,五車在昴、畢間。見,賢遍翻;下同。彗,祥歲翻。〉上避正殿,減常膳,撤樂。許敬宗等奏請復常,曰:「彗見東北,高麗將滅之兆也。」上曰:

 

 "짐이 부덕하여 하늘에 견책을 보였는데, 어찌 작은 이적에게 허물을 돌리겠는가? 또 고리의 백성도 짐의 백성이다."

 허락하지 않았다. 14일에 혜성이 소멸되었다.

 「朕之不德,謫見于天,豈可歸咎小夷!且高麗百姓,亦朕之百姓也。」不許。戊辰,彗星滅。

 

 

 ⑨. 9월, 12일에 이적이 평양을 점령하였다. 이적은 이미 大行城에서 이기고 나자 여러 군사들 가운데 다른 길로 나갔던 사람들이 모두 이적과 만나서 나아가서 鴨綠柵에 이르니, 고리에서는 군사를 내어 막으며 싸웠는데 이적 등이 분발하여 쳐서 그들을 대파하고 도망하는 것을 200여 리를 뒤쫓았고, 辱夷城을 점령하니, 여러 성에서는 숨어서 도망하여 항복하는 사람들이 서로 이었다.

 ⑨. 九月,癸巳,李勣拔平壤。勣旣克大行城,諸軍出他道者皆與勣會,進至鴨綠栅,高麗發兵拒戰,勣等奮擊,大破之,追奔二百餘里,拔辱夷城,諸城遁逃及降者相繼。〈降,戶江翻,下同。〉

 

 글필하력이 먼저 군사를 이끌고 평양성 아래에 도착하고, 이적의 군사가 그르 이어서 평양을 포위하고 한 달여를 있었는데, 고리왕 고장이 연남산을 파견하여 수령 98명을 인솔하고 백기를 들고 이적에게 와서 항복하게 하니 이적이 그들을 예의로 접대하였다.

 契苾何力先引兵至平壤城下,勣軍繼之,圍平壤月餘,高麗王藏遣泉男產帥首領九十八人,持白幡詣勣降,勣以禮接之。〈帥,讀曰率。〉

 

 연남건은 오히려 문을 닫고 막고 지키며 자주 군사를 파견하여 나와서 싸웠지만 모두 패배하였다. 연남건은 군사를 승려인 신성에게 위임하니 신성은 비밀리에 사람을 파견하여 이적에게 가게 하여 안에서 호응하게 해달라고 청하였다. 닷새 후에 신성은 문을 열었고, 이적은 군사를 풀어서 성에 올라가서 북을 울리고 성을 태우는데, 넉 달이나 걸렸다.(항복이 분명한데 왜 불태웠을까?) 연남건은 스스로 찔렀으나 죽지 않았고 드디어 그를 사로잡았다. 고리는 모두 평정되었다.

 泉男建猶閉門拒守,頻遣兵出戰,皆敗。男建以軍事委僧信誠,信誠密遣人詣勣,請爲內應。後五日,信誠開門,勣縱兵登城鼓譟,焚城四月,〈「月」,當作「角」,否則作「周」。〉男建自刺,不死,〈刺,七亦翻。〉遂擒之。高麗悉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