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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의 사망 중종 즉위 후 폐립 무후의 등극/春分節初候玄鳥至 海棠花風4日(陰2/11)庚午

solpee 2021. 3. 23. 05:35

《唐紀19 高宗 弘道 元年》 (癸未, 683)

 

 

 ⑳. 12월 4일에 연호를 고치고, 천하를 사면하였다. 황상은 측천문 위에 있는 누각으로 가서 사면령을 선포하려 하였으나, 기운이 거꾸로 흘러서 말을 탈 수 없었기 때문에 마침내 백성들을 불러서 대전 앞으로 들어오도록 하여 이를 선포하였다.

 ⑳. 十二月,丁巳,改元,赦天下。上欲御則天門樓宣赦,氣逆不能乘馬,乃召百姓入殿前宣之。

 

 이날 밤에 배염을 불러서 들어가서 정치를 보필하라는 유조를 내리고 황상은 정관전에서 붕어(56세)하였다. 유조에서 태자는 황제의 영구 앞에서 즉위하고, 군대와 국가의 중대한 일 중에서 결정하지 않은 것이 있으면 천후의 의견을 아울러 듣고 계속 진행하거나 중지하도록 하였다. 萬泉· 芳桂· 奉天 등의 궁을 폐쇄하였다.

 是夜,召裴炎入,受遺詔輔政,上崩於貞觀殿。〈年五十六。觀,古玩翻。〉遺詔太子柩前卽位,〈柩,音舊。〉軍國大事有不決者,兼取天后進止。廢萬泉、芳桂、奉天等宮。

 

 7일에 배염이 주문을 올려서 태자가 아직 즉위하지 않았으니 응당 칙령을 선포해서는 안 되면, 속히 처분해야 하는 것이 있다면 중서성과 문하성에서 천후가 명령을 바라고 선포하여 이를 시행해야 한다고 하였다.

 庚申,裴炎奏太子未卽位,未應宣敕,有要速處分,〈處,昌呂翻。分,扶問翻。〉望宣天后令於中書、門下施行。

 

 11일에 중종(李哲)이 즉위하여 천후를 높혀서 황태후로 삼앗는데, 정사는 모두 가져다가 결제하였다. 태후는 택주 자사인 한왕 이원가 등이 지위가 높고 명망이 중하여 그들이 반란을 일으킬까 두려워하여 나란히 삼공 등의 관직을 더해주어 그들의 마음을 위무하였다.

 甲子,中宗卽位,尊天后爲皇太后,政事咸取決焉。太后以澤州刺史韓王元嘉等,地尊望重,〈澤州,漢高都、端氏、泫氏之地。西燕慕容永置建興郡,後魏置建州,隋改澤州;大業廢州爲長平郡,唐復曰澤州。宋白曰:取濩澤爲名。〉恐其爲變,並加三公等官以慰其心。

 

 

《唐紀19 高宗 光宅 元年》 (甲申, 684)

 

 

 ④. 중종이 위현정으로 시중을 삼으려 하고 또 유모의 아들에게 5품 관직을 주려고 하자, 배염이 고집스레 다투니, 중종은 화를 내며 말하였다.

 "나는 천하를 위현정과 함께 다스리려고 하는데 어찌하여 할 수 없다는 것인가? 도리어 시중 자리도 아낀단 말인가?"

 ④. 中宗欲以韋玄貞爲侍中,又欲授乳母之子五品官;裴炎固爭,中宗怒曰:「我以天下與韋玄貞何不可!而惜侍中邪!」

 

 배염이 두려워서 황태후에게 아뢰면서 몰래 폐립을 계획하였다. 2월 6일에 태후가 건원전에서 모든 관료들을 모으니, 배염이 중서시랑 유의지지· 우림장군 정무정· 장건욱과 더불어 군사를 챙겨서 들어오고 태후의 명령을 선포하고, 중종을 폐위하여 여릉왕으로 삼고, 그를 부축하여 대전을 내려가게 하였다.

 炎懼,白太后,密謀廢立。二月,戊午,太后集百官於乾元殿,裴炎與中書侍郎劉禕之、羽林將軍程務挺、張虔勗漢置南北軍,掌衞京師。南軍若唐諸衞也,北軍若唐羽林軍也。漢武帝名羽林曰建章營騎,屬光祿勳,後更名羽林騎,取六郡良家子及死事之孤爲之。後漢置羽林監,南朝因之。後魏、周曰羽林率;隋左、右屯衞所領兵名曰羽林。貞觀中,置北衙七營兵,選才力驍勇者充,龍朔二年曰左、右羽林軍,置大將軍各一員,將軍各二員,品同諸衞,統領北衙禁兵之法令,而督攝左右廂飛騎之儀仗,以統諸曹之職。取府兵、越騎、步射,以爲羽林軍士,大朝會,則執仗以衞階陛,行幸則夾馳道爲內仗。邪,音耶。禕,吁韋翻。勒兵入宮,宣太后令,廢中宗爲廬陵王,扶下殿。下,遐嫁翻。

 

 중종이 말하였다.

 "내가 무슨 죄를 지었는가?"

 태후가 말하였다.

 "너는 천하를 위현정과 함께 다스리려고 하였는데, 어찌 죄를 지은 적이 없다고 할 수 있는가?"

 마침내 다른 곳에 유폐시켰다.

 中宗曰:「我何罪?」太宗曰:「汝欲以天下與韋玄貞,何得無罪!」乃幽于別所。

 

 7일에 옹주목인 예왕 이단을 세워 황제로 삼았다. 정사는 태후께서 결제되었고, 예종을 별전에 거주하도록 하엿기 때문에 정사에는 간여할 수 없었다. 에왕의 왕비인 유씨를 세워서 황후로 삼았다. 황후는 유덕위의 손녀이다.

 己未,立雍州牧豫王旦爲皇帝。〈雍,於用翻。〉政事決於太后,居睿宗於別殿,不得有所預。立豫王妃劉氏爲皇后。后,德威之孫也。〈劉德威,審禮之父。〉

 

 동네의 거리에서 술을 마시고 있던 飛騎(외곽 경호군) 10여 명이 있었는데, 한 사람이 말하였다.

 "이전부터 별다른 훈상이 없을 것이라고 알고는 있었지만, 여릉왕을 받드는 것만 같지 못하다."

 한 사람이 일어나서 북문으로 가서 그를 고발하였다.

 有飛騎十餘人飲於坊曲,〈置飛騎見一百九十五卷貞觀十二年。騎,奇寄翻。〉一人言:「曏知別無勳賞,不若奉廬陵。」一人起,出詣北門告之。〈北門,玄武門也。〉

 

 술자리가 해산되기 전에 모두 체포되어 우림군의 감옥에 갇히게 되었다. 말을 꺼낸 자는 목이 베어졌고,  나머지는 반역을 알고 있었으면서 알리지 않았기 때문에 모두 교수형에 처해졌으며, 고발한 자는 5품의 관직에 재수되었다. 密告하는 실마리는 여기에서부터 일어났다.

 座未散,皆捕得,繫羽林獄。言者斬,餘以知反不告皆絞;告者除五品宮。告密之端自此興矣。

 

 

 ⑦. 12일에 태후가 무성전으로 나가자, 황제가 왕공 이하 모든 대신들을 거느리고서 존호를 올렸다. 15일에 태후가 평대에 올라가서 예부상서 무승사를 파견하여 황제를 이어받도록 책봉하였다. 이때부터 태후는 항상 자신전에 나가서 옅은 자주색의 휘장을 치고 정사를 처리하였다.

 ⑦. 甲子,太后御武成殿,《唐六典》:洛陽宮南三門:中曰應天,左曰興敎,右曰光政。光政之內曰廣運,其北曰明福,明福之東曰武成門,其內曰武成殿。皇帝帥王公以下上尊號。帥,讀曰率。上,時掌翻。丁卯,太后臨軒,遣禮部尚書武承嗣册嗣皇帝。自是太后常御紫宸殿,《唐六典》,洛陽宮不載紫宸殿。以西京大明宮準之,紫宸殿內朝也,其位置當在乾元殿後。施慘紫帳以視朝。紫色之淺者爲慘紫。朝,直遙翻。

 

 

 ⑩. 구신적은 파주에 도착하자, 이전에 태자였던 이헌을 별실에 유페하고 그를 압박하여 자살하도록 하였다. 태후는 마침내 구신적에게 죄를 뒤집어 씌우고,  16일에 혐복문에서 애도를 거행하고, 구신적을 좌천시켜서 첩주 자사로 삼았다.

 ⑩. 丘神勣至巴州,幽故太子賢於別室,逼令自殺。《考異》曰:《則天實錄》,賢死在二月丘神勣往巴州下。《舊本紀》在三月。《唐曆》,遣神勣、舉哀、追封皆有日。今從之。太后乃歸罪於神勣,戊戌,舉哀於顯福門,顯福門,意卽明福門,《六典》避中宗諱,改「顯」爲「明」耳。貶神勣爲疊州刺史。

 

 17일에 이현을 추봉하여 옹왕으로 삼았다. 구신적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수도로 들어오게 되어 좌금오장군이 되었다.

 己亥,追封賢爲雍王。雍,於用翻。神勣尋復入爲左金吾將軍。復,扶又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