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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군 徐(李)敬業의 사망/春分節初候玄鳥至 海棠花風5日(陰2/12)辛未

solpee 2021. 3. 24. 07:48

唐紀20 則天后 光宅 元年》 (甲申, 684)

 

 

 ㉗. 곡아현령 하간 사람 윤원정이 군대를 이끌고 윤주를 구원하였으나 패하여 이경업에게 붙잡히게 되었는데, 번득이는 칼날을 들이대어도 굽히지 않다가 죽었다.

 ㉗. 曲阿令河間尹元貞引兵救潤州,〈曲阿縣,本雲陽,秦始皇改曰曲阿。前漢屬會稽郡,後漢屬吳郡,晉屬晉陵郡,隋屬江都郡,唐屬潤州。河間,漢州鄕縣地,屬涿郡,隋爲河間縣,屬瀛州。〉戰敗,爲敬業所擒,臨以白刃,不屈而死。

 

 

 ㉙. 10월 19일에 이경업의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관작을 삭탈하고 무덤을 파서 관을 부수었으며, 성을 서씨로 되돌렸다.

 ㉙. 丁酉,追削李敬祖考官爵,發冢斲棺,復姓徐氏。

 

 

 ㉛. 11월, 4일에 좌응양대장군 흑치상지를 강남도대총관으로 삼아서 서경업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위초가 병사들을 거느리고 도량산을 점거하니, 제장들이 모두 말하였다.

 "위초가 험한 곳에 기대어 스스로 굳게 지키려고만 하므로, 병사들은 그들의 용맹함을 발휘할 곳잉 ㅓㅄ고 기병들은 그 다리를 펼칠 곳이 없으며 또 궁박한 도둑들은 죽음을 무릅쓰고 싸울 것인데, 그들을 공격하여 사졸들을 많이 죽이는 것은 병사들을 나누어서 지키게 하고, 대군이 곧바로 강도로 들이닥쳐서 그드르이 소굴을 뒤집어 놓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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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㉛. ....................................상략............... 十一月,辛亥,以左鷹揚大將軍黑齒常之爲江南道大總管,討敬業。〈是年,改左、右武衞爲左、右鷹揚衞。〉

韋超擁衆據都梁山,諸將皆曰:「超憑險自固,士無所施其勇,騎無所展其足;且窮寇死戰,攻之多殺士卒,不如分兵守之,大軍直趣江都,覆其巢穴。」

...........................중략.............................

 

 13일에 이효일 등의 여러 군대가 계속 도착하여 싸우기를 자주 하엿으나 이기지 못하였다. 이효일이 두려워서 군대를 이끌고 후퇴하려고 하자, 위원충과 행군관기 유지유가 이효일에게 말하였다.

 "바람이 순조로우면 풀이 마를 것이니, 이는 화공이 유리합니다."

 굳게 결전할 것을 요청하였다.

 孝逸等諸軍繼至,戰數不利。孝逸懼,欲引退,魏元忠與行軍管記劉知柔言於孝逸曰:「風順荻乾,〈數,所角翻。乾,音干。〉此火攻之利。」固請決戰。

 

 서경업이 진지를 설치하고 이미 오래되어서 사졸들은 대부분 피로하고 권태를 느껴서 관망하엿고, 진지가 정돈되지 않았는데, 이효일은 나아가 그들을 공격하며 바람을 이용하여 불을 지르니 서경업의 군대는 대패하여 머리가 베인 자가 7천 급이고 물에 빠져 죽은 자는 기록할 수 없었다.

 敬業置陳旣久,士卒多疲倦顧望,陳不能整;孝逸進擊之,因風縱火,敬業大敗,斬首七千級,溺死者不可勝紀。〈陳,讀曰陣。勝,音升。〉

 

 서경업 등은 경무장한 말을 타고 달아나서 강도에 들어가서, 처와 자식들을 이끌고 윤주로 달아났다가 장차 바다를 통해서 고리로 달아나려고 하였는데, 이효일은 전진하여 강도에 주둔하고, 제장들을 나누어 파견하여 그들을 뒤쫓게 하였다.

 敬業等輕騎走入江都,挈妻子奔潤州,將入海奔高麗;〈麗,力知翻。〉孝逸進屯江都,分遣諸將追之。

 

 18일에 서경업은 해릉의 경계에 이르렀는데, 바람으로 막혀서 그의 장수인 왕나상이 서경업· 서경유· 낙빈왕의 목을 베어 가지고 항복하러 왔다. 나머지 한패인 다잊기와 위사온이 모두 체포되었으며, 그들의 머리가 신도에 전달되니, 양주· 윤주· 초주의 세 주가 평정되었다.

 乙丑,敬業至海陵界,阻風,〈海陵縣,漢屬臨淮,後漢、晉屬廣陵;梁置海陵郡,隋廢郡爲縣,屬江都郡,唐屬揚州,今爲泰州。《九域志》:揚州東至海陵界九十八里,又自海陵東至海一百七里。〉其將王那相斬敬業、敬猷及駱賓王首來降。〈《考異》曰:《唐紀》:「初,官軍逆風不利,俄而風回甚勁,孝逸縱火,賊懼燒而潰。敬業、猷、之奇、求仁、賓王走歸江都,焚簿書,攜妻子潛算山下,手書召宗臣。敬業初與宗臣木契爲約,時亡其契,宗臣疑而不赴,或云宗臣已歸順。敬業入海,欲奔東夷,至海陵界,阻風,僞將王那相斬之來降,餘黨赴水死。」今從《實錄》、《唐統紀》。〉餘黨唐之奇、魏思溫皆捕得,傳首神都,揚、潤、楚三州平。

 

 진악이 논평하였다.

 "서경업이 진실로 위사온의 계책을 이용하여 곧바로 황하와 낙양을 향하여 나아가서 오로지 복위하는 것만을 전념하였다면, 설사 군대는 패하고 몸은 죽임을 당하였더라도 역시 충의만은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망령되게 금릉의 왕기를 바라보았으니, 이는 진짜 반역이 되었으므로 패하지 아니하였더라도 무엇을 기다리 겠는가?"

 陳嶽論曰:敬業苟能用魏思溫之策,直指河、洛,專以匡復爲事,縱軍敗身戮,亦忠義在焉。而妄希金陵王氣,是眞爲叛逆,不敗何待!................하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