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당 고종의 고리침략 2./春分節(18:37)初候玄鳥至 海棠花風1日(陰2/8)丁卯

solpee 2021. 3. 19. 06:16

《唐紀17 高宗 麟德 2》 (乙丑, 665)

 

 

 ⑪. 9월, 14일에 이적이 고리의 新城을 접령하고 글필하력으로 하여금 이를 지키게 하였다. 이적은 처음으로 遼河를 건너서 제장들에게 말하였다.

 "新城은 고릐의 서쪽 변두리의 요충지이니, 먼저 이를 얻지 아니하면 나머지 성들은 쉽게 빼앗지 못할 것이다."

 드디어 공격을 하였는데, 성에 사는 사람인 사부구 등이 성주를 결박하고 성문을 열고 항복하였다. 이적은 군사를 이끌고 진격하여 16개의 성을 모두 점령하였다.

 ⑪. 辛未,李勣拔高麗之新城,使契苾何力守之。勣初度遼,謂諸將曰:「新城,高麗西邊要害,不先得之,餘城未易取也。」〈易,以豉翻。〉遂攻之,城人師夫仇等縛城主開門降。〈降,戶江翻。〉勣引兵進擊,一十六城皆下之。

 

 방동선과 고간은 아직도 신성에 있었는데 연남건이 군사를 파견하여 그 군영을 습격하였고, 좌무위장군 설인귀가 그를 공격하여 격파하였다. 고간이 나아가서 金山에 이르러서 고리와 싸웠는데, 승리하지 못하자 고리는 이긴 기세를 타고서 북쪽으로 쫓아왔고, 설인귀는 군사를 인솔하여 가로질러 쳐서 그들을 대파하였는데, 목을 벤 것이 5만여 급이었고, 南蘇· 木底· 蒼巖의 세 성을 탈취하고 연남생의 군사와 합쳤다.

 龐同善、高侃尚在新城,泉男建遣兵襲其營,左武衞將軍薛仁貴擊破之。侃進至金山,與高麗戰,不利,高麗乘勝逐北,仁貴引兵橫擊,大破之,斬首五萬餘級,〈《新書》作斬馘五千。〉拔南蘇、木底、蒼巖三城,〈三城後皆置爲州。〉與泉男生軍合。

 

 곽대봉이 수군을 데리고 다른 길로 가서 평양으로 향하니 이적은 별장 풍사본을 파견하여 양식과 무기를 싣고 그에게 대 주었다. 풍사본의 배가 깨지고 시기를 놓치니, 곽대봉의 군대 안에서는 주리고 군색해졌고 편지를 써서 이적에게 보내려고 하였으나 적들이 얻어 보고 그들의 허실을 알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離合詩(간첩들이 쓰는 허위대화)를 써서 이적에게 보냈다.

 郭待封以水軍自別道趣平壤,勣遣別將馮師本載糧仗以資之。〈趣,七喻翻。將,卽亮翻。〉師本船破,失期,待封軍中飢窘,欲作書與勣,恐爲虜所得,知其虛實,乃作離合詩以與勣。〈離合詩,離析字畫,合之成文,以見其意。〉

 

 이적이 화가 나서 말하였다.

 "군사는 바야흐로 급한데 어찌 시를 썼는가? 반드시 그를 목 베리라."

 행군관기의 통사사인인 원만경이 그 뜻을 해석하니 이적이 마침내 다시 양식과 무기를 보내어 그에게 가게 하였다.

 勣怒曰:「軍事方急,何以詩爲?必斬之!」行軍管記通事舍人元〈【章:十二行本「元」上有「河南」二字;乙十一行本同;張校同,云無註本亦無。】〉萬頃爲釋其義,〈管記,掌軍中書檄。爲,于僞翻。〉勣乃更遣糧仗赴之。

 

 원만경이 '檄高麗文'을 지어서 말하였다.

 "鴨綠江의 험한 곳을 지키는지 모르겠다."

 연남건이 보고하였다.

 "삼가 명령을 따르겠습니다."

 바로 군사를 옮겨서 鴨綠津을 점거하니 당의 군사들이 건널 수가 없었다. 황상이 이 소식을 듣고, 원만경을 영남으로 유배보냈다.

 萬頃作《檄高麗文》曰:「不知守鴨綠之險。」泉男建報曰:「謹聞命矣!」卽移兵據鴨綠津,唐兵不得渡。上聞之,流萬頃於嶺南。

 

 학처준이 고리의 성 아래에 있었지만 아직 列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였는데, 고리가 갑자기 이르니 군대 안에서 크게 놀랐지만 학처준은 胡床에서 바야흐로 마른 음식을 먹고 있다가 몰래 정예의 병사를 선발하여 그들을 쳐서 물리치니, 장사들은 그의 담대함과 지략에 복종하였다.

 郝處俊在高麗城下,未及成列,高麗奄至,軍中大駭,處俊據胡床,方食乾糒,〈胡床,卽今之交床。乾,音干。糒,音備。〉潛簡精銳,擊敗之,〈敗,補邁翻。〉將士服其膽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