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黑齒常之의 등장 /春分節(18:37)初候玄鳥至 海棠花風3日(陰2/10)己巳

solpee 2021. 3. 22. 05:44

《唐紀17 高宗 儀鳳 3年》 (戊寅, 678)

 

 

 ⑨. 9월, 12일에 이경현이 군사 1만을 거느리고 토번의 장수인 노흠릉과 청행에서 싸워서 군사가 패배하고, 공부상서· 우취대장군인 팽성희공 유심례가 토번의 포로가 되었다. 이때에 유심례는 선봉군을 거느리고 깊이 들어가서 호소에 주둔하였다가 오랑캐에게 공격받았고, 이경현은 나약하고 겁을 먹어 군사를 누르고 구원하지 않았다. 

 ⑨. 丙寅,李敬玄將兵十八萬與吐蕃將論欽陵戰於青海之上,〈將,卽亮翻;下同。〉兵敗,工部尚書、右衞大將軍彭城僖公劉審禮爲吐蕃所虜。〈《諡法》:剛克曰僖;又,小心畏忌曰僖;又戴《記》,有伐有還曰僖。〉時審禮將前軍深入,頓于濠所,爲虜所攻,敬玄懦怯,按兵不救。

 

 유심례가 싸우다 포로가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낭패하여 돌아서서 달아나서 승풍령에 주둔하며 진흙으로 된 도랑으로 막으며 스스로 굳게 하였는데, 오랑캐는 높은 지재에 주둔하고서 이들을 압박하였다.

 聞審禮戰沒,狼狽還走,頓于承風嶺,〈杜佑曰:承風嶺在廓州廣威縣西南,東北去鄯州三百一十三里,故吐谷渾界。〉阻泥溝以自固,虜屯兵高岡以壓之。

 

 좌령군 원외장군인 흑치상지가 밤에 결사대의 병사 500명을 인솔하고 오랑캐의 영채를 습격하니 오랑캐의 무리들이 무너지고 혼란하여지자, 그들의 장수인 발지설은 군사를 이끌고 숨어서 달아났으며 이경현은 마침내 남은 무리를 수습하여 선주로 돌아왔다.

 左領軍員外將軍黑齒常之,夜帥敢死之士五百人襲擊虜營,虜衆潰亂,其將跋地設引兵遁去,〈帥,讀曰率。將,卽亮翻。〉敬玄乃收餘衆還鄯州。〈《考異》曰:《朝野僉載》曰:「中書令李敬玄爲元帥,吐蕃至樹敦城,聞劉尚書沒蕃,著鞾不得,狼狽而走,遺卻麥飯,首尾千里,地上尺餘。」言之太過,今不取。〉

 

 유심례의 여러 아들이 스스로 결박지어가지고 대궐에 이르러서 토번에 들어가서 그의 아버지를 대속해 오게 해달라고 청하니 칙령을 내려서 둘째아들 유이종이 토번에 가서 그를 살피는 것을 허락하였다. 도착할 때쯤에 유심례가 병들어 죽으니 유이종은 밤낮으로 통곡을 하면서 그치지 아니하였는데, 토번에서는 그것을 애달프게 여겨서 그 시체를 돌려주었고, 유이종은 맨발로 이를 짊어지고 왔다.

 審禮諸子自縛詣闕,請入吐蕃贖其父,敕聽次子易從詣吐蕃省之。比至,審禮已病卒,〈易,以豉翻。省,悉景翻。比,必利翻。卒,子恤翻。《考異》曰:《新本紀》:「審禮死之。」按《舊傳》,審禮永隆二年,卒于蕃中,《新紀》誤也。今終言之。〉易從晝夜號哭不絕聲;〈號,戶高翻。〉吐蕃哀之,還其尸,易從徒跣負之以歸。

 

 황상은 흑치상지의 공로를 가상하게 여겨서 발탁하여 좌무위장군으로 삼고 하원군의 부사로 충임하였다. 이경현이 서역 정벌을 하면서 감찰어사인 원무 사람 누사덕은 맹사의 모집에 응모하여 종군하였는데, 패배하자 누사덕에게 칙령을 내려서 흩어져 돰ㅇ하는 사람들을 거두어 모으라고 하니, 군사들은 마침내 다시 떨쳤다. 이어서 토번에 사자로 가라고 명령하니 토번의 장수인 논찬파가 적령에서 그를 맞았다.

 上嘉黑齒常之之功,擢拜左武衞將軍,充河源軍副使。〈杜佑曰:河源軍在鄯州西一百二十里。使,疏吏翻;下同。〉

李敬玄之西征也,監察御史原武婁師德應猛士詔從軍,〈時詔募猛士以討吐蕃,師德應募從軍。監,古銜翻。〉及敗,敕師德收集散亡,軍乃復振。〈復,扶又翻,又如字。〉因命使于吐蕃,吐蕃將論贊婆迎之赤嶺。〈宋白曰:石堡城西三十里有山,土石皆赤,北接大山,南連小雪山,號曰赤嶺,去長安三千五百里。自鄯州鄯城縣西行二百里,至赤嶺。將,卽亮翻。〉

 

 누사덕은 황상의 뜻을 알리며 이끌어주고 화가 되는 것과 복이 되는 것을 알아듣게 타일렀더니, 논찬파는 대단히 기뻐하였고 이 때문에 몇년간은 변새를 침법하지 않았다. 누사덕은 전중어사로 승진하고 하원군사마에 충임 되었으며 지영선사를 겸하게 하였다.

 師德宣導上意,諭以禍福,贊婆甚悅,爲之數年不犯邊。〈爲,于僞翻。〉師德遷殿中侍御史,充河源軍司馬,〈《考異》曰:《御史臺記》,「充河源軍使」。今從《舊傳》。〉兼知營田事。

 

 황상은 토번이 걱정거리가 되어 시신들을 다 불러서 이를 모의하게 하니 어떤 사람은 화친하여 백성들을 휴식시키고자 하였고, 어떤 사람은 엄하게 수비를 설치하여 공사간에 부유하고 알차게 되기를 기다렸다가 이를 토벌하고자 하였고, 어떤 사람은 일찍 군사를 발동하여 이를 치자고 하였다. 논의는 끝내 결정짓지 못하였으나 먹을 것을 하사하여 돌려보냈다.

 上以吐蕃憂,悉召侍臣謀之,或欲和親以息民;或欲嚴設守備,俟公私富實而討之;或欲亟發兵擊之。議竟不決,賜食而遣之。

 

 태학생인 송성 사람 위원충이 봉사를 올려서 토번을 막을 계책을 말하였다.

 "국가를 처리하는 요체는 文과 武에 달려 있습니다. 지금 문을 말하는 사람은 언사가 화려한 것은 첫머리에 내놓지만 경륜하기에는 미치지는 못하여, 무를 말하는 사람들은 말 타고 활 쏘는 것을 우선으로 하지만 방략하기에는 이르지 못하니, 이는 모두 어지러운 것을 다스리는데 무슨 이익이 되겠습니까?

 太學生宋城魏元忠上封事,〈宋城縣帶宋州,舊睢陽縣也,隋開皇十八年更名。上,時掌翻。〉言禦吐蕃之策,以爲:「理國之要,在文與武。今言文者則以辭華爲首而不及經綸,言武者則以騎射爲先而不及方略,〈騎,奇寄翻。〉是皆何益於理亂哉!

 

 그러므로 육기는 《辨亡論》을 저술하였지만 河橋의 실패를 구원하지 못하였고,  양유기는 활을 쏘아 일곱 겹의 갑옷을 뚫었지만 언릉에서 군사에 도움이 되지 못하였으니, 이것은 이미 그러한 것이 분명한 본보기입니다.

 故陸機著《辨亡》之論,無救河橋之敗,〈陸機痛吳之亡,著《辨亡論》,迹吳之所以興及其所以亡,其論甚悉。河橋之敗,見八十五卷晉惠帝太安二年。〉養由基射穿七札,不濟鄢陵之師,〈《左傳》:晉、楚遇於鄢陵,楚大夫養由基、潘黨蹲甲而射之,徹七札焉。以示楚共王曰:「君有二臣,何憂於戰。」王怒曰:「大辱國!詰朝,爾射,死藝。」及戰,楚師敗。杜預曰:濟,益也。〉比已然之明效也。

 

 옛말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늘 지니는 습속이 없지만, 정치에는 잘 다스려지는 것과 혼란한 것이 잇고, 군사에는 강약의 구분이 없지만 장수는 교묘한 사람과 바보 같은 사람이 있다.'

 古語有之:『人無常俗,政有理亂;兵無強弱,將有巧拙。』

 

 그러므로 장수를 고르는 것은 지략을 근본으로 삼아야 하며 용기와 힘을 맨 끝으로 고려해야 합니다. 지금 조정에서 사람을 채용하는 것은 장군 집안의 자제와 목숨을 바친 일을 한 집안 사람을 분류하여 뽑는데. 저들은 모두 용열한 재주를 가진 사람들 뿐이니, 어찌 곤외에 있는 일을 충분히 감당하겠습니까?

 故選將當以智略爲本,勇力爲末。今朝廷用人,類取將門子弟及死事之家,〈將,卽亮翻;下同。〉彼皆庸人,豈足當閫外之任!

 

 이좌거·진탕·여몽·맹관 등은 모두 가난하고 천한 집안에서 나왔지만 특수한 공로를 세웠고, 아직 그 집안에서 대대로 장수가 되었다는 말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李左車、陳湯、呂蒙、孟觀,皆出貧賤而立殊功,〈李左車見十卷漢高帝三年。陳湯見二十九卷元帝建昭三年。呂蒙見《獻帝紀》六十五卷至六十八卷。孟觀見八十三卷晉惠帝元康九年。〉未聞其家代爲將也。

 

 무릇 상과 벌이라는 것은 군사와 국가에서 절실하게 힘써야 할 것이니 진실로 공로를 세웠는데 상을 주지 않거나 죄를 지었는데 주살하지 않으면 비록 堯·舜이라도 가지런하게 다스릴 수 없습니다. 의논하는 사람들은 말을 합니다. '근래에 정벌하면서 헛되게 상을 준다는 격식은 있었지만 실질적인 것은 없엇다.' 대개 적은 재주를 가진 관리는 커다란 몸통을 모르고 다만 공훈을 주는 것을 애석하게 생각하며 창고가 빌까를 걱정합니다. 병사가 목숨을 걸지 않으면 그 손해 보는 것이 얼마인지를 모릅니다.

 夫賞罰者,軍國之切務,苟有功不賞,有罪不誅,雖堯、舜不能以致理。議者皆云:『近日征伐,虛有賞格而無事實。』蓋由小才之吏,不知大體,徒惜勳庸,恐虛倉庫。不知士不用命,所損幾何!

 

 검은 머리를 한 사람들은 비록 미미한 존재라 하더라도 속일 수 없습니다. 어찌 믿을 수 없는 명령을 걸어놓고 헛되이 상을 준다는 조목만 설치하고서 그들이 공로를 세우기를 기대할 수 있겠습니까? 소정방이 요동을 정벌하고서부터 이적이 평양을 격파하였는데 상을 주는 일이 끊어져서 시행하지 않으니 공훈은 여전히 꽉 밀려 있어서 한 명의 대량을 목 베었다거나 한 명의 영사를 죽여서 공로를 세운 사람에게 사과하였다는 소식을 듣지 못하였습니다

 黔首雖微,不可欺罔豈得懸不信之令,設虛賞之科,而望其立功乎!自蘇定方征遼東,〈見二百卷龍朔元年、二年。〉李勣破平壤,〈見上卷總章元年。〉賞絕不行,勳仍淹滯,不聞斬一臺郎,戮一令史,以謝勳人。〈尚書諸曹郎,皆謂之臺郎。勳轉淹滯,則司勳之責耳。司勳令史三十三人。〉

 

 대비천에서 패배하였지만 설인귀와 곽대봉 등은 즉각적으로 중하게 주살하지 아니하였으니, 가령 일찍 설인귀 등을 주살하였다면 나머지 제장들이 어찌 감히 뒤에 가서 실패하였겠습니까? 신은 아마도 토번을 평정하는 것이 아침이나 저녁에 기대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두렵습니다.

 大非川之敗,薛仁貴、郭待封等不卽重誅,〈見上卷咸亨元年。卽,就也。〉曏使早誅仁貴等,則自餘諸將豈敢失利於後哉!臣恐吐蕃之平,非旦夕可冀也。

 

 또 군사를 내는 중요한 것은 모두 말의 힘에 의지합니다. 신이 청하건대 말 기르는 것을 금지하는 조항을 열어서 백성들로 하여금 모두가 말을 기를 수 있게 하고, 만약에 관군이 크게 일어나서 주와 현의 장리에게 위임하여 관전을 가지고 늘린 값으로 이것을 구입한다면 모두는 관청에서 갖게 되는 것입니다. 저들 흉노 오랑캐들은 말의 힘을 믿고서 강하다고 생각하는데, 만약에 사람들에게 이것을 기르는 것을 허락하여준다면 마침내 이는 저들의 강한 것을 덜어내어 중국의 이로움으로 삼는 것입니다."

 又,出師之要,全資馬力。臣請開畜馬之禁,使百姓皆得畜馬;〈畜,吁玉翻。〉若官軍大舉,委州縣長吏以官錢增價市之,則皆爲官有。彼胡虜恃馬力以爲強,若聽人間市而畜之,乃是損彼之強爲中國之利也。」

 

 이보다 먼저 백성들이 말 기르는 것을 금지하였는데 그러므로 이원충이 이것을 말하였다. 그의 말을 훌륭하다고 생각하여 불러서 보고 중서성에서 당직을 서게 하고 장내공봉하게 하였다.

 先是禁百姓畜馬,〈長,知兩翻。畜,吁玉翻。先,悉薦翻。〉故元忠言之。上善其言,召見,令直中書省,仗內供奉。〈仗內供奉,朝會得隨百官入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