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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의 統一과 陳의 멸망/冬至節末候水泉動(샘물이 움직인다)2日(陰11/18)己酉

《隋紀1 文帝 開皇 9年》 (己酉, 589) ①. 봄, 정월 1일에 陳 황제가 신하들과 조회를 하는 데, 안개가 많이 끼어서 사방이 막히고 사람의 코에 들어가서 모두 맵고 시었으며, 진 황제는 혼수상태였다가 포시에야 마침내 깨어났다. ①. 春,正月,乙丑朔,陳主朝會羣臣,大霧四塞,〈朝,直遙翻。〉入人鼻,皆辛酸,陳主昏睡,至晡時乃寤。〈日加申爲晡。晡,奔謨翻。〉 이날 隨의 하약필이 광릉에서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넜다. 이보다 앞서 하약필은 노쇠한 말로 진의 배를 사서 이것을 감추고, 낡은 배 50~60척을 사서 작은 부두에 두었다. 陳人들이 그것을 엿보고 수에는 배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약필은 또 강을 따라 지키는 사람들에게 교대할 때마다 반드시 광릉에 모이게 해달라고 청하고, 이에 깃발을 크게 늘어놓고 군영의 장..

카테고리 없음 2021.01.01

君子潛逃,小人得志/冬至節仲候麋角解5日(陰11/16)丁未

《南北朝 陳紀10 長城公 禎明 2年》 (戊申, 588) ②. 산기상시 원아를 파견하여 수를 방문하게 하였고, 또한 산기상시인 구강 사람 주라후를 파견하여 병사를 이끌고 협구에 주둔하도록 하여 수의 협주를 공격하였다. ②. 遣散騎常侍袁雅等聘于隋;〈散,悉亶翻。騎,奇寄翻。〉又遣散騎常侍九江周羅睺將兵屯峽口,侵隋峽州。〈九江郡,江南之尋陽郡,江州治所也。夷陵,梁置宜州,西魏改曰拓州,後周改曰峽州。將,卽亮翻。〉 3월 5일에 수는 겸산기상시 정상현을 파견하여 와서 방문하였다. 9일에 수의 주군이 조서를 내렸다. "진숙보는 손바닥 같은 땅에 의지하여 방자하게 고짜기만한 욕심으로 여염들을 겁주고 빼앗아 자산을 모두 다 쓰고, 안팎으로 몰고 쫓으며 힘든 일을 그치지 안게 하고 있는데, 사치가 끝이 없고 극도에 달하여 낮을 밤으로 알..

카테고리 없음 2020.12.30

構成太子之短:태자의 단점을 얽어서 만들다./冬至節仲候麋角解4日(陰11/15)丙午

《南北朝 陳紀10 長城公 禎明 元年》 (丁未, 587) ⑪. 8월에 수의 주군이 양의 주군을 불러 들어와 조현하도록 하였다. 양의 주군이 그의 신하 무리 200여 명을 이끌고 강릉을 출발하였는데, 18일에 장안에 이르렀다. ⑪. 八月,隋主徵梁主入朝。梁主帥其羣臣二百餘人發江陵;〈朝,直遙翻。帥,讀曰率。〉庚申,至長安。 수의 주군은 양의 주군이 밖에 있자 무향공 최홍도를 파견하여 병사를 이끌고 강릉을 지키도록 하였다. 군대가 도주에 이르자, 양의 주군의 숙부이자 태부인 안평왕 소암과 동생이자 형주 자사인 의흥왕 소환 등은 최홍도가 습격할까 두려워하여, 23일에 도관상서 심군공을 파견하여 형주 자사인 의황후 진혜기에게로 가서 항복을 받아달락도 청하였다. 9월 19일에 소암 등이 문관과 무관, 남자와 여자 10만 명..

카테고리 없음 2020.12.29

망국의 징조 /冬至節仲候麋角解4日(陰11/15)丙午

《南北朝 陳紀9 長城公 至德 2年》 (甲辰, 584) ㉑. 이 해에 장성공이 광소전 앞에 임춘각·결기각·망선각이라는 세 누각을 지었는데, 각각 높이가 수십 장 이었으며 연이어진 것이 수십 칸이었는데, 그 누각의 牕·牖(유:벽을 뚫은 格子窓)·壁帶(벽대: 벽 가운데를 가로지른 기둥)·縣楣((현미:기둥과 기둥 사이 앞 뒤로 가로지른 들보)·欄(처마 아래 계단 사이 난간)·檻(창과 창 사이에 걸친 난간)은 모두 침향과 단으로 만들었고, 장식은 금과 옥으로 하고 사이에는 진주와 비취를 끼워 넣고, 밖으로는 주렴을 늘어뜨리고 안으로는 寶狀과 寶帳이 있었으며, 의복과 완구가 호화롭고 화려하여 최근 이래로 아직 없었던 것이다. 매번 미풍이 잠시 머물 때마다 향이 몇 리까지 냄새가 났다. 그 아래에는 돌을 쌓아 산을 ..

카테고리 없음 2020.12.29

老禾不早殺: 익은 벼는 수확해야 한다/冬至節仲候麋角解4日(陰11/15)丙午

《南北朝 陳紀9 長城公 至德 元年》 (癸卯, 583) ㊳. 수 황제는 장안의 곡식창고가 오히려 텅 비어 잇었으므로 이 해에 조서를 내려 서쪽으로 포와 섬에서 시작하여 동쪽으로 위주와 변주에 이르기까지 강 유역에 있는 13개 주의 정을 모집하여 미곡을 운송하게 하엿다. 또한 위주에 여양창을 설치하고, 섬주에 상평창을 설치하고, 화주에 광통창을 설치하고, 전운으로 수송하게 하였다. 관동과 분주와 진주의 곡식을 조운하여 장안에 공급하였다. ㊳. 隋主以長安倉廩尚虛,是歲,詔西自蒲、陝,東至衞、汴,〈河東郡,蒲州。恆農郡,陝州。汲郡,衞州。陳留郡,汴州。陝,式冉翻。汴,皮變翻。〉水次十三州,募丁運米。〈華、陝、穀、洛、管、汴、汾、晉、蒲、絳、懷、衞、相,凡十三州。〉又於衞州置黎陽倉,陝州置常平倉,華州置廣通倉,〈《五代志》︰京兆郡鄭縣,後魏置..

카테고리 없음 2020.12.28

槿堂體本(12/28)/冬至節仲候麋角解3日(陰11/14)乙巳

槿堂體本(12/28) ☞. 愧除歸盛窮何友成. ☞.人之患在好爲人師.《孟子·離婁章句上》 孟子曰 : 人之患在好爲人師。“사람의 근심은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한다는 데에 있다.” 王勉曰 : 學問有餘, 人資於己, 以不得已而應之可也。 若好爲人師, 則自足而不復有進矣, 此人之大患也。 왕면이 말했다. “학문하고 남음이 있어 남이 자기에게 의뢰하면, 부득이하게 응대함은 괜찮다. 만약 남의 스승 되기를 좋아한다면, 스스로 만족하여 다시는 진보함이 없는 것이니, 이게 사람의 큰 근심이다.” ☞. 和以能就.《新造語》 화합하면 능히 취할 수 있다. ☞. 內不足者其辭煩.《靑城雜記 質言 中·成大中》 禍生於口, 憂生於眼, 病生於心, 垢生於面. 內不足者, 其辭煩. 心無主者, 其辭荒. 謙恭者屈節, 於己何損. 而人皆悅之, 利莫大焉. 驕傲者暴..

카테고리 없음 2020.12.28

선제 진욱의 죽음과 후주 진숙보의 등극/冬至節仲候麋角解3日(陰11/14)乙巳

《南北朝 陳紀9 宣帝 太建 14年》 (壬寅, 582) ①.봄, 정월 5일에 宣帝 陳頊이 몸이 불편하자 태자는 시흥왕 진숙릉과 장사왕 진숙견과 더불어 나란히 들어가서 병시중을 들었다. 진숙릉이 몰래 다른 뜻을 가지고 있어서 약을 관리하는 관리에게 명령하였다. "약재를 자르는 칼이 심히 무디니 그것을 갈아두어라." 10일에 황상이 죽었다. 별안간에 진숙릉이 좌우의 사람들에게 밖에서 검을 손에 들도록 명령하였다. 좌우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조복과 목검을 가지고서 나오자 진숙릉이 화를 냈다. 진숙견이 옆에서 이 소리를 듣고 변고인가 의심하여 그가 하는 짓을 살폈다. ①. 春,正月,己酉,上不豫,太子與始興王叔陵、長沙王叔堅並入侍疾。叔陵陰有異志,命典藥吏曰︰「切藥刀甚鈍,可礪之!」甲寅,上殂。倉猝之際,叔陵命左右於外取劍。..

카테고리 없음 2020.12.28

開皇之治[kāi huáng zhī zhì]/冬至節仲候麋角解3日(陰11/14)乙巳

《南北朝 陳紀9 宣帝 太建 13年》 (辛丑, 581) ㉔. 16일에 수의 문제가 기주에 갔다. 기주 자사인 안정 사람 양언광이 은혜를 베푸는 정치를 하니, 문제가 조서를 내려 미덕을 칭송하고 한 속의 비단과 어산을 하사하고서 천하의 관리들을 격려하였는데, 오래 지나서는 상주 자사로 옮겼다. 기주의 풍속은 질박하고 두터워서 양언광이 그들을 조용한 방법으로 진수하였으므로 고과를 상주하여도 연속해서 천하에서 최고였다. 상주에 살게 되자 여전히 기주에서 적용한 법과 같이 하였다. ㉔. 壬辰,隋主如岐州。〈《隋志》︰扶風郡,舊置岐州。〉 岐州刺史安定梁彥光,有惠政,隋主下詔褒美,賜束帛及御傘,〈傘,與繖同,先旰翻,又蘇旱翻,蓋也。〉以厲天下之吏;久之,徙相州刺史。〈相,悉亮翻;下同。〉岐俗質厚,彥光以靜鎭之,奏課連爲天下最。〈奏課,奏計帳..

카테고리 없음 2020.12.27

법제의 정비/冬至節仲候麋角解2日(陰11/13)甲辰

《南北朝 陳紀9 宣帝 太建 13年》 (辛丑, 581) ㉓. 애초에 주의 법이 제의 법률과 견주어 번잡하지만 요령이 없었는데, 수의 주군이 고경과 정역 그리고 상주국 양소와 솔경령 배정 등에게 명하여 다시 수정을 가하도록 하였다. 배정은 전고를 충분히 익혀서 정사를 좇는 데에 통달하여 마침내 위와 진의 예법을 채택하고, 아래로는 제와 양에 이르기까지 연혁과 형량의 무거움과 가벼움을 살펴 그것을 절충하였다. ㉓. 初,周法比於齊律,煩而不要,隋主命高熲、鄭譯及上柱國楊素、率更令裴政等〈太子率更令,魏、晉之制,主宮殿門戶及掌罰事,職如光祿勳、衞尉。隋制,掌伎樂漏刻。率,如字。更,工衡翻。〉更君脩定。政練習典故,達於從政,乃采魏、晉舊律,下至齊、梁,沿革重輕,〈累世循襲者爲沿,中有變更者爲革。〉取其折衷。〈衷,竹仲翻。〉 당시 수정에 함께 하였..

카테고리 없음 2020.12.27

北周로부터 황위를 강탈한 양견/冬至節仲候麋角解2日(陰11/13)甲辰

《南北朝 陳紀9 宣帝 太建 13年》 (辛丑, 581) ③. 2월, 4일, 수왕 양견이 비로소 상국·백규·구석을 받고 대성을 세우고 백관을 두었다. 6일에 조서를 내려 왕비 독고씨를 올려서 왕후로 삼고, 세자 양용을 태자로 삼았다. 개부의동대장군 유계재가 수왕에게 2월 14일에 하늘의 뜻에 호응하여 천명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고 권고하였다. 태부 이목과 개부의동대장군 노분 또한 이를 권고하였다. 이에 주 정제가 조서를 내리고 거처를 겸손하게 하여 별궁에 거처하였다. 14일에 겸태부인 기공 우문춘에게 명령하여 책서를 받들게 하고, 대종백 조경에게 황제의 옥새와 인끈을 받들게 하고, 隋(隨를 피휘하여 隋로 함)에게 황제의 자리를 선양하였다. ③. 二月,甲寅,隋王始受相國、百揆、九錫,〈自初命至是五十一日,乃受。〉〈【..

카테고리 없음 2020.1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