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隋의 統一과 陳의 멸망/冬至節末候水泉動(샘물이 움직인다)2日(陰11/18)己酉

solpee 2021. 1. 1. 04:13

紀1 文帝 開皇 9》 (己酉, 589)

 

 ①. 봄, 정월 1일에 陳 황제가 신하들과 조회를 하는 데, 안개가 많이 끼어서 사방이 막히고 사람의 코에 들어가서 모두 맵고 시었으며, 진 황제는 혼수상태였다가 포시에야 마침내 깨어났다.

 ①. 春,正月,乙丑朔,陳主朝會羣臣,大霧四塞,〈朝,直遙翻。〉入人鼻,皆辛酸,陳主昏睡,至晡時乃寤。〈日加申爲晡。晡,奔謨翻。〉

 

 이날 隨의 하약필이 광릉에서 군사를 이끌고 강을 건넜다. 이보다 앞서 하약필은 노쇠한 말로 진의 배를 사서 이것을 감추고, 낡은 배 50~60척을 사서 작은 부두에 두었다. 陳人들이 그것을 엿보고 수에는 배가 없다고 생각하였다. 하약필은 또 강을 따라 지키는 사람들에게 교대할 때마다 반드시 광릉에 모이게 해달라고 청하고, 이에 깃발을 크게 늘어놓고 군영의 장막이 들을 덮게 하니, 진인으드른 수군들이 대거 도착하였다고 여기고 급히 군사를 발동하여 대비하는데, 이미 그렇게 하자 방어하는 사람들이 교대하는 것임을 알고 그 무리들은 다시 흩어졌으며, 그 뒤에는 평상적인 것이라 생각하고 다시 방비를 설치하지 않았다.

 是日,賀若弼自廣陵引兵濟江。〈若,人者翻。〉先是弼以老馬多買陳船而匿之,買弊船五六十艘,置於瀆內。〈先,悉薦翻。艘,蘇漕翻。《爾雅》︰水注澮曰瀆。〉陳人覘之,以爲內國無船。〈覘,丑廉翻,又丑豔翻。內國,卽中國,隋避諱,改曰內。〉弼又請緣江防人每交代之際,必集廣陵,於是大列旗幟,營幕被野,〈幟,昌志翻。被,皮義翻。〉陳人以爲隋兵大至,急發兵爲備,旣知防人交代,其衆復散;後以爲常,不復設備。〈復,扶又翻。〉

 

 또 병사로 하여금 강을 따라서 때때로 사냥을 하도록 하여 사람과 말의 소리가 떠들석하게 하였다. 그러므로 하약필이 장강을 건너도 진인들은 알아차리지 못하였다. 한금호가 500명을 거느리고 횡강에서 밤에 채석을 건너는데, 지키는 자들이 모두 술에 취해 있어서 그곳에서 승리하였다. 晉王 앵광이 많은 군사를 거느리고 휵합진에 잇는 도엽산에 주둔하였다.

 又使兵緣江時獵,人馬喧譟。故弼之濟江,陳人不覺。韓擒虎將五百人自橫江宵濟采石,〈橫江浦,在和州界。采石磯,在今太平州北三十里對岸津渡處。將,卽亮翻;下將兵同。〉守者皆醉,遂克之。〈德祐甲戌十有二月沙武口之事亦猶此。〉晉王廣帥大軍屯六合鎭桃葉山,〈《隋志》︰江都郡六合縣,舊曰尉氏,置秦郡,後齊置秦州。後周改州曰方州,改郡曰六合。開皇初,郡廢;四年,改尉氏曰六合。張舜民曰︰桃葉山,卽今瓜步鎭之地。帥,讀曰率。〉

 

 2일에 채석의 수주인 서지건이 급히 말을 달려 변고를 알렸는데, 3일에 공경을 소집하여서 군사 문제를 논의하도록 하였다. 4일에 진 황제가 조서를 내렸다.

 "개와 양 같은 놈들이 업신여기고 방종하여 경기의 근교를 침범하고 도둑질하는데, 벌과 전갈은 독을 가지고있으니 의당 적시에 쓸어내고 평정하여야 한다. 짐이 친히 육사를 거느리고 팔방의 끝까지 깨끗이 떨쳐버려야 하니, 안팎으로 모두 경계를 엄중히 하라."

 丙寅,采石戍主徐子建馳啓告變;丁卯,召公卿入議軍旅。戊辰,陳主下詔曰︰「犬羊陵縱,侵竊郊畿,蜂蠆有毒,宜時掃定。〈蠆,丑邁翻。〉朕當親御六師,廓清八表,內外並可戒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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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以驃騎將軍蕭摩訶、護軍將軍樊毅、中領軍魯廣達並爲都督,〈驃,匹妙翻。騎,奇寄翻。〉司空司馬消難、湘州刺史施文慶並爲大監軍,〈去年冬,陳主擢施文慶督湘州,未及之鎭而隋兵渡江。難,乃旦翻。監,工銜翻。〉遣南豫州刺史樊猛帥舟師出白下,〈陳南豫州治宣城,時徙鎭姑孰。白下城合白石壘,唐武德移江寧縣於此,名白下縣。帥,讀曰率。〉散騎常侍皋文奏將兵鎭南豫州。重立賞格,僧、尼、道士,盡令執役。〈尼,女夷翻。〉

 

 6일에 하약필이 경구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진의 남예주 자사 황각을 잡았다. 하약필의 군령은 엄숙하여 티끌만큼도 법하지 않았고, 민간에서 술을 산 군사가 있으면 하약필은 즉시 그의 목을 베었다. 포로로 잡은 6천여 명을 모두 풀어주며 양식을 주고 위로하여 보내면서 칙서를 주어 길을 나누어 가며 수문제의 유시를 널리 알리도록 하였다. 이에 도착하는 것마다 바람에 저절로 쓰러지듯 하였다.

 庚午,賀若弼攻拔京口,執南徐州刺史黃恪。〈南徐州治京口。〉弼軍令嚴肅,秋毫不犯,有軍士於民間酤酒者,弼立斬之。所俘獲六千餘人,弼皆釋之,給糧勞遣,〈勞,力到翻。〉付以敕書,令分道宣諭。〈令,力丁翻。〉於是所至風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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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樊猛在建康,其子巡攝行南豫州事。辛未,韓擒虎進攻姑孰,半日,拔之,執巡及其家口。〈今太平州當塗縣南二里有姑孰溪,西入大江,蓋因舊鎭而得名。〉皋文奏敗還。江南父老素聞擒虎威信,來謁軍門者,晝夜不絕。

魯廣達之子世眞在新蔡,與其弟世雄及所部降於擒虎,〈侯景之亂,魯悉達糾合鄕人以保新蔡,魯氏遂世襲以事陳。新蔡註見一百六十四卷梁世祖承聖元年。降,戶江翻。〉遣使致書招廣達。〈使,疏吏翻。〉廣達時屯建康,自劾,詣廷尉請罪;〈劾,戶槪翻,又戶得翻。〉陳主慰勞之,加賜黃金,遣還營。〈勞,力到翻。〉樊猛與左衞將軍蔣元遜將青龍八十艘於白下遊弈,以禦六合兵;陳主以猛妻子在隋軍,懼有異志,欲使鎮東大將軍任忠代之,〈任,音壬。〉令蕭摩訶徐諭猛,猛不悅,陳主重傷其意而止。〈重,如字,難也。〉

於是賀若弼自北道,韓擒虎自南道並進,〈京口於建康爲北,姑孰於建康爲南。〉緣江諸戍,望風盡走;弼分兵斷曲阿之衝而入。〈曲阿,本雲陽,秦時,人言其地有天子氣,始皇鑿北坑以敗其勢,截直道使阿曲,改曰曲阿。其地在武進、丹徒二縣之間。弼分兵斷其衝,恐三吳之兵入救建康,掎其後也。斷,音短。〉陳主命司徒豫章王叔英屯朝堂,蕭摩訶屯樂遊苑,〈朝,直遙翻。樂,音洛。〉樊毅屯耆闍寺,〈闍,視遮翻。〉魯廣達屯白土岡,忠武將軍孔範屯寶田寺,〈忠武將軍,梁置,班十九;陳擬官品第四,秩中二千石,位次四平將軍。〉己卯,任忠自吳興入赴,〈去年使任忠出守吳興。〉仍屯朱雀門。〈晉孝武帝建朱雀門,上有兩銅雀,前直大航,謂之朱雀航。〉

辛未,賀若弼進據鍾山,〈鍾山在今上元縣東北十八里。《輿地志》︰古曰金陵山,縣名因此。又名蔣山,漢末秣陵尉蔣子文討賊死此山下,孫氏都秣陵,以其祖諱鍾,因改名蔣山。〉頓白土岡之東。晉王廣遣總管杜彥與韓擒虎合軍,步騎二萬屯于新林。〈新林浦,去今建康城二十里,西直白鷺洲。〉蘄州總管王世積以舟師出九江,〈蘄,音機,又音其。王世積,闡熙新囶人。按班《志》,廬江郡尋陽縣,《禹貢》九江皆在南,東合爲大江。應劭曰︰江自廬江尋陽分爲九。漢之尋縣在今蘄州界。王世積以舟師自蘄水出九江。囶,古國字。〉破陳將紀瑱於蘄口,〈蘄水入江之口。將,卽亮翻;下同。瑱,他殿翻,又音鎭。〉陳人大駭,降者相繼。〈降,戶江翻。〉晉王廣上狀,〈上,時掌翻。〉帝大悅,宴賜羣臣。

 

 이때 건강에는 오히려 갑옷을 입은 병사가 10여만 명이었으나 진황은 평소에 겁이 많고 군사에 통달하지 못하여 오직 주야로 눈물을 흘리며 소리를 내어 울며, 대내의 조치는 모두 시문경에게 맡겼다. 시문경은 이미 제장들이 자기를 싫어하고 있는 것을 알고, 그들이 공을 세울까 두려워하여 마침내 상주하였다.

 "이 무리들은 불만스러워하고 평소에 관에게 복종하지 않았는데, 이 일을 압박하는 기회에 어찌 오로지 믿을 수 있겠습니까?"

 이로 말미암아 제장들이 계문을 올려 청하는 것이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모두 시행되지 않았다.

 時建康甲士尚十餘萬人,陳主素怯懦,不達軍士,〈懦,乃臥翻,又奴亂翻。士,讀曰事。〉〈【章︰乙十一行本正作「事」;孔本同;張校同;退齋校同。】〉唯日夜啼泣,臺內處分,一以委施文慶。〈處,昌呂翻。分,扶問翻。〉文慶旣知諸將疾己,恐其有功,乃奏曰︰「此輩怏怏,〈怏,於兩翻。〉素不伏官,迫此事機,那可專信!」由是諸將凡有有啓請,率皆不行。

 

 하약필이 경구를 공격하자 소마가가 군사를 거느리고 맞이하여 싸울 것을 요청하엿으나 진황은 허락하지 않았다. 하약필이 종산에 도착하니, 소마가가 또 말하였다.

 "하약필의 군대는 현군으로 보루와 해자도 아직은 경고하지 않으니 군사를 내보내어 기습하면 반드시 이길 수 있습니다."

 또 하락하지 않았다.

 賀若弼之攻京口也,蕭摩訶請將兵逆戰,陳主不許。及弼至鍾山,摩訶又曰︰「弼懸軍深入,壘塹未堅,〈塹,七豔翻。〉出兵掩襲,可以必克。」又不許。

 

 진황이 소마가와 임충을 불러서 내전에서 군사적인 일을 의논하도록 하였는데, 임충이 말하였다.

 "병법에는 객병은 신속한 전투를 귀하게 여기고, 주군은 신중히 버티는 것을 귀하게 여깁니다. 지금 국가에서는 병사가 충분하고 먹을 것이 충분하니, 대성을 굳게 지키고, 회수 연변에 목책을 세우고, 북방의 군대가 비록 오더라도 더불어 싸우지 말아야만 하며, 군사를 나누어서 강의 통로를 차단하여 저들의 서신을 왕래할 수 없도록 하여야 합니다.

 陳主召摩訶、任忠於內殿議軍事,忠曰︰「兵法︰客貴速戰,主貴持重。今國家足兵足食,宜固守臺城,緣淮立栅,北軍雖來,勿與交戰;分兵斷江路,〈斷,丁管翻;下同。〉無令彼信得通。

 

 신에게 군사 1만과 金翅(전함) 300척을 주시면 강을 내려가육합을 지름길로 기습하겠으며, 저쪽의 대군은 반드시 강을 건넌 장수와 병사가 이미 포로로 잡혔다고 생각할 것이니 자연히 기가 꺾일 것입니다. 회남에 사는 토착인들은 신과 더불어 오랫동안 서로 잘 아니 지금 신이 간다는 소리를 들으면 반드시 모두 그림자처럼 따를 것입니다.

 給臣精兵一萬,金翅三百艘,下江徑掩六合;彼大軍必謂其渡江將士已被俘獲,自然挫氣。〈被,皮義翻。〉淮南土人與臣舊相知悉,今聞臣往,必皆景從。〈師古曰︰景從,言如景之從形也。〉

 

 신이 다시 겉으로 소리를 쳐서 서주에 가서 저들이 돌아가는 길을 차단한다면 여러 군대는 공격하지 않아도 스스로 물러날 것입니다. 봄을 기다려서 물이 이윽고 불어나면 상강의 주라후 등 여러 군대가 반드시 물결을 따라 내려와 구원할 것입니다. 이것은 좋은 계책입니다."

 진황은 따를 수 없었다.

 臣復揚聲欲往徐州,斷彼歸路,則諸軍不擊自去。〈徐州,彭汴之路也。復,扶又翻。斷,丁管翻。〉待春水旣漲,上江周羅睺等衆軍必沿流赴援。〈周羅睺時督水軍,在郢漢。〉此良策也。」陳主不能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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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明日,欻然曰︰〈欻,許勿翻。〉「兵久不決,令人腹煩,可呼蕭郎一出擊之。」任忠叩頭苦請勿戰。孔範又奏︰「請作一決,當爲官勒石燕然。」〈孔範以竇憲破匈奴事自詭,姦諂之誤國亡家如此。爲,于爲翻;下同。燕,於賢翻。〉陳主從之,謂摩訶曰︰「公可爲我一決!」摩訶曰︰「從來行陳,〈行,戶剛翻。陳,讀曰陣。〉爲國爲身;今日之事,兼爲妻子。」陳主多出金帛賦諸軍以充賞。〈賦,給與也,分畀也。〉甲申,使魯廣達陳於白土岡,〈陳,讀曰陣;下同。〉居諸軍之南,任忠次之,樊毅、孔範又次之,蕭摩訶軍最在北。諸軍南北亙二十里,首尾進退不相知。

賀若弼將輕騎登山,望見衆軍,因馳下,與所部七總管楊牙、員明等〈將,卽亮翻。騎,奇寄翻;下同。員,音運,姓也。〉甲士凡八千,勒陳以待之。

 

 진황이 소마가의 처와 간통하였으니 그러므로 소마가는 애초에 싸울 마음이 없었는데, 오직 노광달만이 그 무리를 가지고서 힘써 싸우고 하약필과 서로 대적하였다. 수군이 물러나 달아난 것이 횟수로 네 번이고, 하약필의 휘하 가운데서 죽은 사람이 273명이었는데, 하약필은 연기를 피워 스스로를 가려 곤궁하였다가 다시 분발하였다. 진병은 사람의 머리를 얻으면 모두 뛰어가 진황에게 바치고 상을 요구하였는데, 하약필은 그들이 교만하고 나태한 것을 알고 다시 병력을 이끌고 공범 쪽을 급히 공격하고, 공범군은 잠깐 저항하다가 곧 달아나, 진의 여러 군이 그것을 돌아보고 기병이 갑작시 어지럽게 무너져서 다시 멈출 수가 없었고 죽은 병사가 5천 명이었다. 운명이 소마가를 사로잡아서 하약필에게 보내자, 하약필은 그를 끌어다 ㅜ목을 베도록 명령하였는데, 소마가의 안색이 태연하자 마침내 그르 풀어주고 예우 하였다.

 陳主通於蕭摩訶之妻,故摩訶初無戰意;唯魯廣達以其徒力戰,與弼相當。隋師退走者數四,弼麾下死者二百七十三人,弼縱煙以自隱,窘而復振。〈窘,渠隕翻。復,扶又翻;下同。〉陳兵得人頭,皆走獻陳主求賞,弼知其驕惰,更引兵趣孔範;〈趣,七喻翻,又讀曰趨。〉範兵暫交卽走,陳諸軍顧之,騎卒亂潰,不可復止,死者五千人。員明擒蕭摩訶,送於弼,弼命牽斬之,摩訶顏色自若,弼乃釋而禮之。

 

 임충이 말을 달려 대성으로 들어가서 진황을 알현하고 패배한 상황을 보고하였다.

 "관께서는 의당 잘 머물러 있어야 하나 신은 쓸 힘이 없습니다."

  진황이 그에게 금주머니 두 개를 주면서 사람을 모아 방어토록 하니, 임충이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오직 배와 노를 갖추고 상류에 있는 군으로 가셔야만 하며, 신이 죽기로 보위하겠습니다."

 진황이 그 말을 믿고 임충에게 칙령을 내려 나가서 부대를 나누고, 궁인으로 하여금 길 떠날 차림을 하고서 그를 기다리도록 하였으나, 그가 오래 되어도 도착하지 않는 것을 이상하게 생각하였다.

 任忠馳入臺,見陳主言敗狀,曰︰「官好住,〈好,宜也;住,止也;今南人猶是言。〉臣無所用力矣!」陳主與之金兩縢,〈縢,徒登翻。以繩約物曰縢。〉使募人出戰,忠曰︰「陛下唯當具舟楫,就上流衆軍,〈謂往就周羅睺等。〉臣以死奉衞。」陳主信之,敕忠出部分,〈分,扶問翻。〉令宮人裝束以待之,怪其久不至。

 

 이때 한금호가 신림에서 군을 전진시켰고, 임충은 이미 여러 기병을 인솔하고 석자강에서 맞이하고 항복하였다. 영군 채징이 주작항을 지켰으나 한금호가 곧 도착할 것이라는 소식을 듣고 무리가 두려워하여 무너졌다. 임충이 한금호군을 이끌고 곧바로 주작문으로 들어갔는데, 진인들이 싸우려고 하자, 임충이 그들을 지휘하며 말하였다.

 "이 늙은이도 항복하였는데, 여러분이 무슨 방어를 하겠는가!"

 무리가 모두 흩어져 달아났다.

 時韓擒虎自新林進軍,忠已帥數騎迎降於石子岡。〈帥,讀曰率。降,戶江翻;下同。〉領軍蔡徵守朱雀航,聞擒虎將至,衆懼而潰。忠引擒虎軍直入朱雀門,陳人欲戰,忠揮之曰︰「老夫尚降,諸軍何事!」〈「軍」,或作「君」。〉衆皆散走。

 

 이에 성 안에 있는 문무백관은 모두 숨었고 오직 상서복야 원헌만이 궁전 안에 잇고 상서령 강총 등 몇 명이 대성 안에 머물렀다. 진황진숙보가 원헌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전부터 지금까지 경을 대우하기를 다른 사람보다 낫게 하지 않았는데 오늘 다만 지나간 일 때문에 부끄럽구나! 짐에게 덕이 없는 것뿐만 아니고 역시 강동에 사는 사람들의 도도 다 없어졌다."

 진황 숙보가 당황하고 급하여 숨으려고 하자 원헌이 정색하며 말하였다.

 "수군이 들어오면 반드시 범접하는 바가 없을 것입니다. 큰 일이 이와 같은데 폐하께서는 간다 하여도 어디로 가려하십니까? 신은 바라건대 의관을 바로 하시고 정전에 오르시어 양의 무제가 후경을 접견하였던 고사처럼 하십시오."

 진황 숙보는 따르지 않고 탑에서 내려와 급히 달아나며 말하였다.

 "칼날 아래에서 아직은 감당할 수 없으니, 나는 스스로 계책을 가지고 있다!"

 於是城內文武百司皆遁,唯尚書僕射袁憲在殿中,尚書令江總等數人居省中。陳主謂袁憲曰︰「我從來接遇卿不勝餘人,今日但以追愧。〈此猶劉禪之於郤正也。〉非唯朕無德,亦是江東衣冠道盡。」

陳主遑遽,將避匿,憲正色曰︰「北兵之入,必無所犯。大事如此,陛下去欲安之!臣願陛下正衣冠,御正殿,依梁武帝見侯景故事。」〈事見一百六十二卷梁武帝太清三年。〉陳主不從,下榻馳去,曰︰「鋒刃之下,未可交當,吾自有計!」

 

 궁인 10여 명을 따르게 하고 후당의 경양전으로 나가서 곧 스스로 우물에 투신하려고 하는데 원헌이 어렵게 간하였으나 듣지 않았고, 후합사인 하후공운이 몸으로 우물을 가리자 진황은 그와 다투었으며 오래 지나서 마침내 들어갈 수 있었다. 이미 그렇게 하였는데 수군이 우물을 살피고 그를 불렀으나 응답하지 않으니, 돌을 떨어뜨리려고 하자 마침내 외치는 소리가 들렷고, 새끼줄로 끌어당기는데  그가 대단히 무거운 것에 누랐으며, 나오게 되자 마침내 장귀비와 공귀빈도 함께 묶여서 올라 왔다.

 從宮人十餘出後堂景陽殿,將自投于井,憲苦諫不從;後閤舍人夏侯公韻以身蔽井,〈夏,戶雅翻。〉陳主與爭,久之,乃得入。旣而軍人窺井,呼之,不應,欲下石,乃聞叫聲;以繩引之,驚其太重,及出,乃與張貴妃、孔貴嬪同束而上。〈祝穆曰︰景陽井在法寶寺。或云,白蓮閣下有小池,面方丈餘。或云,在保寧寺覽輝亭側。舊傳云︰欄有石脈,以帛拭之,作臙脂痕,一名臙脂井,又名辱井。梁制︰有殿中舍人、守舍人。陳制︰殿中舍人爲三品蘊位,守舍人爲三品勳位,在九品之外。後閤舍人,蓋殿中舍人之守後閣者。〉

 

 심후가 거처하는 것은 평상시와 같았다. 태자 진심은 나이가 15세였으며, 합문을 닫고 앉았고, 사인 공백어가 곁을 지켰는데, 군사가 합문을 두드리고 들어가자 진심은 편안하게 앉아서 그들을 위로하며 말하였다.

 "길에서 전쟁을 하는데 지극히 수고롭지 않겠는가!"

 군사는 공경을 드렸다.

 沈后居處如常。〈處,昌呂翻。〉太子深年十五,閉閤而坐,舍人孔伯魚侍側,〈此太子舍人也。梁制︰太子中舍人四人,掌其坊之禁令;舍人十六人,掌文記。中舍人八班,舍人三班。陳制:中舍人六百石,舍人亦如之。〉軍士叩閤而入,深安坐,勞之曰︰〈勞,力到翻。〉「戎旅在塗,不至勞也!」軍士咸致敬焉。

 

 이때 진인의 종실과 왕후 가운데 건강에 있던 사람은 100여 명이었고, 진황은 그들이 변고를 일으킬 것을 두려워하여 모두 불러들여서 조당에 머물게 하며 예장왕 진숙영으로 하여금 그들을 감독하도록 하고 또 몰래 그들을 위하여 대비하도록 하였으나, 대성이 지켜지지 못하게 되자 서로 인솔하고 나가서 항복하였다.

 時陳人宗室王侯在建康者百餘人,陳主恐其爲變,皆召入,令屯朝堂,使豫章王叔英總督之,又陰爲之備,及臺城失守,相帥出降。〈朝,直遙翻;下同。守,式又翻。帥,讀曰率。降,戶江翻。〉

 

 하약필은 이긴 기세를 타고 낙유원에 이르고, 노광달은 오히려 잔여 병사를 지휘하여 힘든 싸움을 계속하여 죽이고 잡은 사람이 수백 병이엇으나, 마침 날이 저물자 마침내 갑옷을 벗고 궁성을 향하여 두 번 절하고통곡하며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나 자신은 나라를 구원할 수가 없었으니 짊어진 죄가 깊다."

 병사들은 모두 눈물을 흘리며 흐니끼고 마침내 가서 사로잡혔다.

 賀若弼乘勝至樂遊苑,〈樂,音洛。〉魯廣達猶督餘兵苦戰不息,所殺獲數百人,會日暮,乃解甲,面臺再拜慟哭,謂衆曰︰「我身不能救國,負罪深矣!」士卒皆流涕歔欷,〈歔,音虛。欷,音希,又許旣翻。〉遂就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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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諸門衞皆走,弼夜燒北掖門入,聞韓擒虎已得陳叔寶,呼視之,叔寶惶懼,流汗股栗,向弼再拜。弼謂之曰︰「小國之君當大國之卿,拜乃禮也。入朝不失作歸命侯,〈朝,直遙翻。孫晧降晉,封歸命侯。〉無勞恐懼。」旣而恥功在韓擒虎後,與擒虎相訽,挺刃而出;〈訽,苦候翻,罵也。挺,拔也。〉欲令蔡徵爲叔寶作降箋,命乘騾車歸己,〈騾,盧戈翻。〉事不果。弼置叔寶於德敎殿,以兵衞守。

高熲先入建康,熲子德弘爲晉王廣記室,〈熲,居永翻。隋制,諸王記室參軍在錄事、功曹之下。〉廣使德弘馳詣熲所,令留張麗華,熲曰︰「昔太公蒙面以斬妲己,〈妲己,有蘇氏之美女,商紂嬖之,武王勝殷,殺紂,幷誅妲己。妲,當割翻。己,音紀。〉今豈可留麗華!」乃斬之於青溪。德弘還報,廣變色曰︰「昔人云,『無德不報』,〈《詩‧大雅‧抑》之辭。〉我必有以報高公矣!」由是恨熲。〈使高熲留麗華而廣納之,文帝必怒,安得成他日奪嫡之謀,是誠宜德之也,顧恨之邪!史爲廣殺熲張本。〉

丙戌,晉王廣入建康,以施文慶受委不忠,曲爲諂佞以蔽耳目,沈客卿重賦厚斂以悅其上,與太市令陽慧朗、刑法監徐析、尚書都令史曁慧皆爲民害,斬於石闕下,以謝三吳。〈斂,力贍翻。曁,戟乙翻。「陽慧朗」一作「惠朗」。「曁慧」之下逸「景」字。〉使高熲與元帥府記室裴矩〈帥,所類翻。〉收圖籍,封府庫,資財一無所取,天下皆稱廣,以爲賢。矩,讓之之弟子也。〈裴讓之見一百五十八卷梁武帝大同四年。〉

廣以賀若弼先期決戰,違軍令,收以屬吏。〈先,悉薦翻。屬,之欲翻。〉上驛召之,詔廣曰︰「平定江表,弼與韓擒虎之力也。」賜物萬段;又賜弼與擒虎詔,美其功。

開府儀同三司王頒,僧辯之子,夜,發陳高祖陵,焚骨取灰,投水而飲之。〈報讎也。陳高祖殺僧辯事見一百六十六卷梁敬帝紹泰元年。〉旣而自縛,歸罪於晉王廣;廣以聞,上命赦之。詔陳高祖、世祖、高宗陵,總給五戶分守之。

上遣使以陳亡告許善心,〈使,疏吏翻。〉善心衰服號哭於西階之下,藉草東向坐三日;〈去年陳遣善心來聘,留於客館,不遣還,事見上卷。西階,賓階也。衰服、藉草,喪禮也。衰,叱雷翻。號,戶刀翻。藉,慈夜翻。〉敕書唁焉。〈唁,魚戰翻。弔生曰唁。〉明日,有詔就館,拜通直散騎常侍,〈散,悉亶翻。騎,奇寄翻。〉賜衣一襲。〈衣單複具曰襲。〉善心哭盡哀,入房改服,〈改衰服,服賜服。〉復出,北面立,〈復,扶又翻。〉垂泣,再拜受詔,明日乃朝,〈朝,直遙翻。〉伏泣於殿下,悲不能興。上顧左右曰︰「我平陳國,唯獲此人。旣能懷其舊君,卽我之誠臣也。」敕以本官直門下省。〈通直散騎常侍屬門下省。今敕善心以本官直門下省,何也?按《唐六典》,晉始有門下省,散騎常侍雖隸門下,別爲一省,潘岳云「寓直散騎之省」是也,此隋所以命許善心以通直散騎常侍直門下省歟?〉

陳水軍都督周羅睺與郢州刺史荀法尚守江夏,〈江夏,陳郢州治所。夏,戶雅翻。〉秦王俊督三十總管水陸十餘萬屯漢口,不得進,〈漢水入江之口,卽沔口也。〉相持踰月。陳荊州刺史陳慧紀遣南康內史呂忠肅屯岐亭,〈按《楊素傳》,忠肅屯岐亭,正據江峽。則岐亭在西陵峽口也。《考異》曰︰《隋書》作「呂仲肅」,《南史》作「呂肅」,今從《陳書》。〉據巫峽,〈按《水經》,江水出巫峽過秭歸夷陵,逕流頭狼尾灘,而後東逕西陵峽。去年冬,楊素破戚昕,其舟師已過狼尾而東,呂忠肅所據者,蓋西陵峽也。當從《楊素傳》作「江峽」爲通。〉於北岸鑿巖,綴鐵鎖三條,〈《考異》曰︰《南史》作「五條」,今從《隋書》。〉橫截上流以遏隋船,忠肅竭其私財以充軍用。楊素、劉仁恩奮兵擊之,四十餘戰,忠肅守險力爭,隋兵死者五千餘人,陳人盡取其鼻以求功賞。旣而隋師屢捷,獲陳之士卒,三縱之。忠肅棄栅而遁,素徐去其鎖;〈去,羌呂翻。〉忠肅復據荊門之延洲,素遣巴蜑千人,〈蜑亦蠻也。居巴中者曰巴蜑。此水蜑之習於用舟者也。蜑,徒旱翻。〉乘五牙四艘,以拍竿碎其十餘艦,〈艘,蘇遭翻。艦,戶黯翻。〉遂大破之,俘甲士二千餘人,忠肅僅以身免。陳信州刺史顧覺屯安蜀城,棄城走。〈梁置信州於巴東,西魏取之,其地時屬隋,故陳信州刺史屯於安蜀城。〉陳慧紀屯公安,〈公安,陳荊州治所。〉悉燒其儲蓄,引兵東下,於是巴陵以東無復城守者。陳慧紀帥將士三萬人,樓船千餘艘,沿江而下,〈復,扶又翻。帥,讀曰率;下同。將,卽亮翻;下同。〉欲入援建康,爲秦王俊所拒,不得前。是時,陳晉熙王叔文罷湘州,還,至巴州,慧紀推叔文爲盟主。〈巴州,治巴陵。〉而叔文已帥巴州刺史畢寶等致書請降於俊,俊遣使迎勞之。〈帥,讀曰率。降,戶江翻。使,疏吏翻;下同。勞,力到翻。〉

 

 마침 건강이 평정되자 晉王 楊廣은 진황 진숙보에게 명령하여 손수 편지를 써서 장강 상류에 있는 제장들을 부르게 하고, 번의로 하여금 주라후에게 가도록 하였고, 진혜기의 아들인 진정업은 진혜기에게 가서 지시한 것을 알리도록 하였다. 이 당시에 여러 성에서 모두 갑옷을 벗으니, 주라후는 마침내 제장들과 사흘간 곡을 하고 군사를 해산한 후에 양준에게 가서 항복하였으며, 진혜기도 역시 항복하여 상강은 모두 평정되었다.

 會建康平,晉王廣命陳叔寶手書招上江諸將,使樊毅詣周羅睺,陳慧紀子正業詣慧紀諭指。時諸城皆解甲,羅睺乃與諸將大臨三日,〈將,卽亮翻。臨,力浸翻。〉放兵散,然後詣俊降,陳慧紀亦降,上江皆平。

 

 양소는 내려가 한구에 도착하여 양준과 만났다. 왕세적은 기구에 있다가 진이 이미 망하였다는 소식을 듣고서 강남에 있는 여러 군에 편지를 보내어 이 사실을 알리고 타이르니, 이에 강주사마가 성을 버리고 달아나고, 예장에 속한 여러 군의 태수들이 모두 왕세적에게 가서 항복하였다.

 楊素下至漢口,與俊會。王世積在蘄口,聞陳已亡,〈【章︰甲十一行本「亡」下有「移書」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告諭江南諸郡,於是江州司馬黃偲棄城走,〈蘄,音機,又音其。偲,音思。〉豫章諸郡太守皆詣世積降。〈守,式又翻。〉

 

 29일에 조서를 내려서 사자를 파견하여 진에 속하엿던 주와군을 순시하고 안무하도록 하였다. 2월 1일에 회남 팽대성을 철폐하였다.

 癸巳,詔遣使者巡撫陳州郡。二月,乙未,廢淮南行臺省。〈晉王廣於時將凱還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