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君子潛逃,小人得志/冬至節仲候麋角解5日(陰11/16)丁未

solpee 2020. 12. 30. 04:03

《南北朝 陳紀10 長城公 禎明 2》 (戊申, 588)

 

 

 ②. 산기상시 원아를 파견하여 수를 방문하게 하였고, 또한 산기상시인 구강 사람 주라후를 파견하여 병사를 이끌고 협구에 주둔하도록 하여 수의 협주를 공격하였다.

 ②. 遣散騎常侍袁雅等聘于隋;〈散,悉亶翻。騎,奇寄翻。〉又遣散騎常侍九江周羅睺將兵屯峽口,侵隋峽州。〈九江郡,江南之尋陽郡,江州治所也。夷陵,梁置宜州,西魏改曰拓州,後周改曰峽州。將,卽亮翻。〉

 

 3월 5일에 수는 겸산기상시 정상현을 파견하여 와서 방문하였다.

 9일에 수의 주군이 조서를 내렸다.

 "진숙보는 손바닥 같은 땅에 의지하여 방자하게 고짜기만한 욕심으로 여염들을 겁주고 빼앗아 자산을 모두 다 쓰고, 안팎으로 몰고 쫓으며 힘든 일을 그치지 안게 하고 있는데, 사치가 끝이 없고 극도에 달하여 낮을 밤으로 알며, 바른 말을 하는 사람을 목베고 죄 없는 집을 죽여서 없애고, 하늘을 속이고 나쁜 짓을 저지르며 귀신에게 제사를 지내며 은덕을 구하고 있으며, 화장을 짙게 하게하여 창과 방패를 잡게 하고, 비단 옷을 끌면서 경필을 하고 있으니, 옛날부터 아둔하고 어지럽혔다고 하지만 혹 비교할 만한 사람이 드물다.

 三月,甲戌,隋遣兼散騎常侍程尚賢等來聘。

戊寅,隋主下詔曰︰「陳叔寶據手掌之地,〈辛臣說田戎曰︰「洛陽地如掌耳。」〉恣溪壑之欲,〈溪壑難盈,故以爲喻。〉劫奪閻閭,資產俱竭,驅逼內外,勞役弗已;窮奢極侈,俾晝作夜;斬直言之客,滅無罪之家;欺天造惡,祭鬼求恩;盛粉黛而執干戈,曳羅綺而呼警蹕;自古昏亂,罕或能比。

 

 군자는 숨어 도망하고, 소인들이 뜻을 얻었다. 하늘이 재난을 내리고 땅이 재앙을 내려 물건이 괴이하며 사람은 요사스러워졌다. 의관을 갖춘 사람은 입을 다물고 길거리에서 서로 눈짓으로 전한다. 더하여서 은덕을 등지고 말을  어기면서 강토를 뒤흔들고 있는데, 낮에는 엎드려 있다가 밤에는 놀고 있으니 쥐처럼 훔치고 개처럼 도둑질을 한다.

 君子潛逃,小人得志。天災地孽,〈孽,魚列翻。〉物怪人妖。衣冠鉗口,〈鉗,其廉翻。〉道路以目。〈《國語》︰周厲王監謗,道路以目。言道路相逢,以目相視,不敢有言。〉重以背德違言,搖蕩疆埸;〈重,直用翻。背,蒲妹翻。埸,音亦。〉晝伏夜遊,鼠竊狗盜。

 

 하늘이 덮고 있는 것 가운데 짐의 신하가 아닌 것이 없는데, 매번 이에 관한 말을 듣거나 볼 때마다 가엾은 마음을 품게 하였다. 군사를 내보내어 법을 가르치고 상황에 따라 주살하여 없애는데, 이 한 번의 일어남으로 오월을 영원히 맑게 하라."

 또 陳 황제의 스무 가지 죄악을 밝힌 새서를 보냈고, 이어서 조서를 30만 지에 써서 뿌리며 강외에 두루 알렸다.

 天之所覆,無非朕臣,〈覆,敷救翻。〉每關聽覽,有懷傷惻。可出師授律,應機誅殄;在斯一舉,永清吳越。」又送璽書暴帝二十惡;〈璽,斯氏翻。〉仍散寫詔書三十萬紙,遍諭江外。〈中原以江南爲江外。

 

 

 ⑤. 겨울 10월 23일에 수가 수춘에 회남행성을 설치하고, 진왕 양광을 상서령으로 삼았다.

 황제가 겸 산기상시 왕완과 겸통직산기상시 허선심을 파견하여 수를 방문하게 하였는데, 수인들이 객관에 남아있게 하였다. 왕완 등이 돌아갈 것을 청하였으나, 들어주지 않았다.

 ⑤. 己未,隋置淮南行省於壽春,〈行省,卽行臺也。〉以晉王廣爲尚書令。

帝遣兼散騎常侍王琬、兼通直散騎常侍許善心聘于隋,〈散,悉亶翻。騎,奇寄翻。〉隋人留於客館。琬等屢請還,不聽。〈還,音旋,又如字。爲隋主褒美許善心張本。〉

 

 28일에 수가 병사를 내보내면서 태묘에 제사를 지내고, 晉王 양광·秦王 양준·청하공 양소에게 명하여 모두를 행군원수로 삼았다. 양광은 육합에서 출발하고, 양준은 양양에서 출발하고, 양소는 영안에서 출발하고, 형주 자사 유인은은 강릉에서 출발하고, 기주 자사 왕세적은 기춘에서 출발하고, 여주홍관 한금호는 여강에서 출발하고, 청주총관인 홍농 사람 연영은 동해에서 출발하였는데, 모두 총관이 90명이고 병사가 51만8천 명이었으며, 모두 晉王의 지휘를 받도록 하였다.

 甲子,隋以出師,有事於太廟,命晉王廣、秦王俊、清河公楊素皆爲行軍元帥。〈帥,所類翻。〉廣出六合,〈六合本漢堂邑縣之地,江左立秦郡及尉氏縣,後周改秦郡爲六合郡。隋開皇初,廢郡,改尉氏縣爲六合縣。〉俊出襄陽,〈秦王俊以山南道行臺鎭襄陽;今自襄陽出指漢口。〉素出永安,〈素鎭永安,自永安下三峽。〉荊州刺史劉仁恩出江陵,〈荊江治江陵,使劉仁恩出師,會楊素東下。〉蘄州刺史王世積出蘄春,〈蘄州治蘄春,使王世積出師,自蘄口臨江津。蘄,音機,又音其。〉廬州總管韓擒虎出廬江,〈廬州治廬江,使韓擒虎出師,自橫江渡,攻姑孰。〉吳州總管賀若弼出廣陵,〈吳州治廣陵,使賀若弼自瓜洲渡江,攻京口。若,人者翻。〉青州總管弘農燕榮出東海,〈東海郡,海州。青州治益都。此蓋使燕榮以青州之師出朐山渡海以攻南沙也。燕,因肩翻。〉凡總管九十,兵五十一萬八千,皆受晉王節度。

 

 동쪽으로는 창해(연운)에 닿았고 서쪽으로는 巴·蜀에 이르렀으며, 정기와 배와 노가 널리 뻗은 것이 수천리였다. 좌복야 고경을 晉王의 원수장사로 삼고, 우복야 왕소는 사마로 삼아서 군대 안의 일을 모두 다스리며 결정하도록 하였는데, 구별하여 처리하는 것이 걸려서 막히는 바가 없었다.

 東接滄海,西拒巴、蜀,旌旗舟楫,橫亙數千里。以左僕射高熲爲晉王元帥長史,〈帥,所類翻。長,知兩翻。〉右僕射王韶爲司馬,軍中事皆取決焉;區處支度,〈總,昌呂翻。度,徒洛翻。〉無所凝滯。

 

 11월 2일에 수의 주군이 친히 장군과 병사들을 전별하였고, 10일에 정성에 이르자 군대를 늘어놓고 병사들에게 맹세하도록 알렸다.

 十一月,丁卯,隋主親餞將士;乙亥,至定城,〈《述征記》︰定城去潼關三十里,夾道各一城。〉陳師誓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