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開皇之治[kāi huáng zhī zhì]/冬至節仲候麋角解3日(陰11/14)乙巳

solpee 2020. 12. 27. 11:20

《南北朝 陳紀9 宣帝 太建 13年》 (辛丑, 581)

 

 

 ㉔. 16일에 수의 문제가 기주에 갔다.

 기주 자사인 안정 사람 양언광이 은혜를 베푸는 정치를 하니, 문제가 조서를 내려 미덕을 칭송하고 한 속의 비단과 어산을 하사하고서 천하의 관리들을 격려하였는데, 오래 지나서는 상주 자사로 옮겼다. 기주의 풍속은 질박하고 두터워서 양언광이 그들을 조용한 방법으로 진수하였으므로 고과를 상주하여도 연속해서 천하에서 최고였다. 상주에 살게 되자 여전히 기주에서 적용한 법과 같이 하였다.

 ㉔. 壬辰,隋主如岐州。〈《隋志》︰扶風郡,舊置岐州。〉

岐州刺史安定梁彥光,有惠政,隋主下詔褒美,賜束帛及御傘,〈傘,與繖同,先旰翻,又蘇旱翻,蓋也。〉以厲天下之吏;久之,徙相州刺史。〈相,悉亮翻;下同。〉岐俗質厚,彥光以靜鎭之,奏課連爲天下最。〈奏課,奏計帳及輸籍也。〉及居相,部如岐州法。

 

 업에서는 제가 망하면서부터 의관을 갖춘 인사들 대부분이 관중으로 옮겨갔다. 오직 공인·상인·악공의 호구만이 주곽에 옮겨 채웠으며, 풍속은 간사하고 풍설과 소송을 일으키기를 좋아하니 양언광을 눈여겨보고서 '著帽餳(착모당: 모자 쓴 물엿 즉 만만한 놈)'이라고 불렀다. 환제가 이 소식을 듣고 양언광의 관직을 면직하였다. 1년여 지나서 조주 자사로 삼았다. 양언광은 스스로 다시 상주 자사로 삼아 줄 것을 요청하니, 황제가 이를 허락하였다.

 鄴自齊亡,衣冠士人多遷入關,唯工商樂戶移實州郭,〈城外曰郭。《釋名》︰郭,廓也;廓落在城外也。〉風俗險詖,好興謠訟,〈詖,彼義翻。好,呼到翻。〉目彥光爲「著帽餳」。〈餳,飴也。餳軟而甘,言彥光爲人軟美如團餳,特著帽耳。孔穎達曰︰凡飴謂之餳,關東之通語也。《方言》曰︰餳謂之張皇,或云滑餹。著,則略翻。餳,徐盈翻。〉帝聞之,免彥光官。歲餘,拜趙州刺史。〈《五代志》︰趙郡大陸縣,舊曰廣阿,置殷州及南鉅鹿郡,後改南趙郡,改州爲趙州。〉彥光自請復爲相州,帝許之。

 

 힘있고 교활한 사람들이 양언광이 다시 온다는 소식을 듣고 모두 그를 비웃었다. 양언광이 도착하여 간사하게 숨어사는 사람들을 적발하는데 귀신처럼 밝으니 힘 있고 교활한 사람들은 몰래 잠적하여 경계 안이 크게 다스려졌다. 이에 명유들을 초빙하여 오게 하고, 향마다 학교를 세우고  친히 가서 책시를 주관하고, 근면한 사람에게 포상하고 게으른 사람을 내쫓았다. 수재를 천거하게 되면 교외에서 조도를 열고 재물을 그에게 주었다. 이에 풍속과 교화가 크게 변하였으며, 관리들과 백성들은 감복하고 기뻐하여 다시는 소송을 하는 사람이 없었다.

 豪猾聞彥光再來,皆嗤之。〈嗤,丑之翻,笑也。〉彥光至,發擿姦伏,〈擿,他狄翻,發也,動也。〉有若神明,豪猾潛竄,闔境大治。〈治,直吏翻。〉於是招致名儒,每鄕立學,親臨策試,褒勤黜怠。及舉秀才,祖道於郊,以財物資之。於是風化大變,吏民感悅,無復訟者。〈史因岐州之政,終言彥光歷刺他州事。復,扶又翻。〉

 

 당시에 또한 상주 자사인 진류 사람 변숙략이 있었는데, 특별한 정치적 업적이 있어서 황제가 새서를 가지고서 포상하고 찬양하며 천하에 알리고 징소하여 사농경에 임명하였다.

 신풍 현령 방공의는 정치적 업적이 삼보에서 최고여서 황제가 속미와 비단을 하사하였다. 옹주의 여러 현령들이 조정에서 알현할 때에 황제는 방공의를 보면 반드시 불러서 榻前(탑전:임금 의자 앞)으로 오게 하고 백성들을 다스리는 방법에 대하여 자문하였다. 여러 차례 승진하여 덕주사마가 되었다. 황제가 朝集使(조집사: 주에서 파견된 사자들)들에게 말하였다.

 時又有相州刺史陳留樊叔略,有異政,帝以璽書褒美,班示天下,徵拜司農。〈按《樊叔略傳》,徵拜司農卿。璽,斯氏翻。〉

新豐令房恭懿,〈新豐縣,自漢以來屬京兆。〉政爲三輔之最,帝賜以粟帛。雍州諸縣令朝謁,〈雍,於用翻。朝,直遙翻;下同。〉帝見恭懿,必呼至榻前,咨以治民之術。累遷德州司馬。〈《五代志》︰平原郡,開皇九年置德州。治,直之翻。〉帝謂諸州朝集使曰︰〈《隋志》︰每元會,諸州悉遣使赴京師朝集,謂之朝集使。使,疏吏翻。〉

 

 "방공의는 뜻을 나라의 본체에 두고 나의 백성들을 아끼고 길렀으니 이는 바로 하늘과 종묘가 도운 바이다. 짐이 만약 내버려두고 상을 내리지 않는다면 하늘과 종묘가 반드시 나를 책망하게 될 것이오. 상등은 마땅히 그를 배우고 모범으로 삼도록 하시오."

 이어서 발탁하여서 해주(강소성 연운항) 자사로 삼았다. 이로부터 주현의 관리들이 대부분 직책에 맞도록 일하니 백성들은 푸요로웠다.

 「房恭懿志存體國,愛養我民,此乃上天宗廟之所祐。朕若置而不賞,上天宗廟必當責我。卿等宜師範之。」因擢爲海州刺史。〈海州,東海郡。〉由是州縣吏多稱職,百姓富庶。〈樊叔略、房恭懿之被褒擢,非必皆是年事。《通鑑》因梁彥光事,悉書於此,以見開皇之治,以賞良吏而成。稱,尺證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