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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제 진욱의 죽음과 후주 진숙보의 등극/冬至節仲候麋角解3日(陰11/14)乙巳

solpee 2020. 12. 28. 04:34

《南北朝 陳紀9 宣帝 太建 14年》 (壬寅, 582)

 

 

 ①.봄, 정월 5일에 宣帝 陳頊이 몸이 불편하자 태자는 시흥왕 진숙릉과 장사왕 진숙견과 더불어 나란히 들어가서 병시중을 들었다. 진숙릉이 몰래 다른 뜻을 가지고 있어서 약을 관리하는 관리에게 명령하였다.

 "약재를 자르는 칼이 심히 무디니 그것을 갈아두어라."

 10일에 황상이 죽었다. 별안간에 진숙릉이 좌우의 사람들에게 밖에서 검을 손에 들도록 명령하였다. 좌우의 사람들이 깨닫지 못하고 조복과 목검을 가지고서 나오자 진숙릉이 화를 냈다. 진숙견이 옆에서 이 소리를 듣고 변고인가 의심하여 그가 하는 짓을 살폈다.

 ①. 春,正月,己酉,上不豫,太子與始興王叔陵、長沙王叔堅並入侍疾。叔陵陰有異志,命典藥吏曰︰「切藥刀甚鈍,可礪之!」甲寅,上殂。倉猝之際,叔陵命左右於外取劍。左右弗悟,取朝服木劍以進,〈朝服帶劍,以爲儀飾,非求其適用,故爲木劍。朝,直遙翻。〉叔陵怒。〈怒其不能會己意。〉叔堅在側,聞之,疑有變,伺其所爲。〈伺,相吏翻。〉

 

 11일에 소렴을 치렀다. 태자는 슬피 울며 통곡하느라 엎드려 있었다. 진숙릉은 약도를 빼내어 태자를 베는데 목에 적중하니 태자는 땅에 괴롭게 쓰러졌다. 어머니 유황후가 달려와서 그를 구원하려고 하자 또한 황후를 여러 번 내려 찍엇다. 유온 오씨가 스스로 뒤에서 그의 팔꿈치를 끌어당기자 태자는 마침내 일어날 수 있었는데, 진숙릉이 태자의 옷을 붙잡앗지만 태자는 스스로 분발하여 죽음을 면하였다.

 乙卯,小斂。〈斂,力贍翻。〉太子哀哭俯伏。叔陵抽剉藥刀斫太子,中項,〈中,竹仲翻。〉太子悶絕于地;母柳皇后走來救之,又斫后數下。乳媼吳氏自後掣其肘,〈媼,烏皓翻。掣,昌列翻。〉太子乃得起;叔陵持太子衣,太子自奮得免。

 

 진숙견이 손수 진숙릉을 붙잡아 그가 가지고 있던 칼을 빼앗아서 버리고 이어서 기둥으로 끌고 가서 그의 소매를 가지고 그를 묶었다. 당시 유온은 이미 태자를 부축하여 적을 피하였으며 진숙견이 태자가 있는곳을 찾아서 살리고 죽이는 권한을 받고자 하였다.

 叔堅手搤叔陵,奪去其刀,仍牽就柱,以其褶袖縛之。〈搤,於革翻。去,羌呂翻。褶,音習,布褶衣也,今之寬袖。《山海經註》︰魏毌丘儉破高句麗,遣王頎窮追,過汙沮千餘里。彼人言,海中有長臂人,近於海中得布褶衣,兩袖各長三丈有餘。則知所謂褶衣,有自來矣。〉時吳媼已扶太子避賊,叔堅求太子所在,欲受生殺之命。

 

 진숙릉은 힘이 세어서 소매를 떨치고 탈출할 수 있었으며, 갑자기 달려 운룡문을 지나서 수레를 타고 달려 동부에 돌아와서 좌우의 사람들을 불러 청계의 길을 차단하고, 동성의 죄수들을 사면하여서 전사로 보충하고 금백을 흩어서 상으로 내렸는데, 또한 사람을 파견하여 신림에 가서 거느리던 군사들을 챙겨서 뒤쫓게 하였고, 이어서 스스로 갑옷을 입고 백포모를 쓰고 성 서쪽 문에 올라서 백성들을 불러 모앗고, 또한 여러 왕들과 장수들을 불렀지만 도착한 사람이없었으며, 오직 신안왕 진백고 만이 홀로 말을 타고 그에게 와서 진숙릉을 도와서 지휘하였다. 진숙릉는 군사가 1천 명이 되자 성을 점거하고 스스로 지키려고 하였다.

 叔陵多力,奮袖得脫,突走出雲龍門,馳車還東府,召左右斷青溪道,〈斷,音短。〉赦東城囚以充戰士,〈東城,卽東府城。〉散金帛賞賜;又遣人往新林追所部兵;仍自被甲,著白布帽,〈被,皮義翻。著,則略翻。〉登城西門招募百姓;又召諸王將帥,〈將,卽亮翻。帥,所類翻。〉莫有至者,唯新安王伯固單馬赴之,助叔陵指揮。叔陵兵可千人,欲據城自守。

 

 이때에 여러 군대들은 모두 장강을 따라 방어하며 지키고 있어서 대 안은 텅비어 있었다. 진숙견이 유후에게 아뢰고, 태자궁 사인 하내 사람 사마신으로 하여금 태자의 명령으로 우위장군 소마가를 불러 들어와서 알현하고 칙령을 받도록 하고, 기병과 보병 수백을 인솔하고 동부에 가서 성 서쪽 문에 주둔하게 하였다. 진숙릉이 당황하고 두려워하여 기실 위량을 파견하여 그의 고취를 보내어 소마가에게 주게 하고 말하였다.

 時衆軍並緣江防守,臺內空虛。叔堅白柳后,使太子舍人河內司馬申,以太子命召右衞將軍蕭摩訶入見受敕,〈見,賢遍翻。〉帥馬步數百趣東府,〈帥,讀曰率;下同。趣,七喻翻;下同。〉屯城西門。叔陵惶恐,遣記室韋諒送其鼓吹與摩訶,〈吹,昌瑞翻。〉謂曰︰

 

 "일이 성공하면 반드시 공을 태보로 삼을 것이오."

 소마가가 속여서 그에게 보고하였다.

 "모름지기 왕의 심려인 절장이 스스로 오셨으니, 바야흐로 감히 명령을 좇겠습니다."

 진숙릉은 그가 가까이하는 대온 담기린을 파견하여 소마가에게 가게 하니 소마가가 붙잡아서 대로 압송하여 그들의 목을 베고 동성에 두루 돌렸다.

 「事捷,必以公爲臺輔。」摩訶紿報之曰︰「須王心膂節將自來,方敢從命。」〈紿,徒亥翻。將,卽亮翻。〉叔陵遣其所親戴溫、譚騏驎詣摩訶,〈譚,徒含翻。《春秋》︰齊滅譚,子孫以國爲氏。驎,離珍翻。〉摩訶執以送臺,斬其首,徇東城。

 

 진숙릉은 스스로 헤어나지 못할 것을 알고 집안으로 들어가서 그의 비 장씨와 총애하는 첩 일곱 명을 우물 속에 빠뜨리고 보병과 기병 수백을 인솔하여 소항에서 건너서 신림에 가려고 하였다가 배를 타고 수로 도망갔다. 가다가 백양로에 도착하였는데, 대군에게 요격되었다. 진백고는 군사가 도착한 것을 보고 몸을 돌려 피하여 골목으로 들어가자 진숙릉이 말을 타고 칼을 빼들고 그를 뒤쫓으니, 진백고가 다시 돌아왔으나 진숙릉의 부하들은 대부분 갑옷을 버리고 무너져서 떠나갔다.

 叔陵自知不濟,入內,沈其妃張氏及寵妾七人于井,〈沈,持林翻。〉帥步騎數百自小航渡,〈六朝都建業,航秦淮而渡者非一處,當朱雀門者爲大航,當東府門者爲小航。騎,奇寄翻;下同。航,戶剛翻。〉欲趣新林,乘舟奔隋。行至白楊路,爲臺軍所邀。伯固見兵至,旋避入巷,叔陵馳騎拔刃追之,伯固復還,叔陵部下多棄甲潰去。

 

 소마가의 마용인 진지심이 진숙릉을 맞이하여 찔러서 땅바닥에 쓰러뜨리니, 진중화가 곧바로 그의 수급을 베었고, 진백고도 난병에게 살해되었는데, 인시에서 시작하여 사시에 이르러서야 마침내 평정되었다. 진숙릉의 여러 자식들에게도 나란히 죽음이 내려졌으며, 진백고의 여러 자식들은 용서 받아 서인이 되었다.

 摩訶馬容陳智深迎刺叔陵僵仆,陳仲華就斬其首,〈軍行,擇便於鞍馬、軀幹壯偉者,乘馬居前,以壯軍容,謂之馬容。刺,七亦翻。〉伯固爲亂兵所殺,自寅至巳乃定。叔陵諸子並賜死,伯固諸子宥爲庶人。

 

 위량과 전에 형양내사였던 팽고와 자의참군인 겸기실 정신과 전첨 유공희도 나란히 복주되었다. 팽고는 진숙릉의 외삼촌이다. 정신과 위량은 진숙릉에게서 총애를 받았으며 항상 모의에 참가하였었다. 위량은 위찬의 아들이다.

 13일에 태자가 황제의 자리에 오르고, 크게 사면하였다.

 韋諒及前衡陽內史彭暠、〈《五代志》︰長沙郡衡山縣,舊置衡陽郡。陳爲王國,故置內史。暠,古老翻。〉諮議參軍兼記室鄭信、典籤俞公喜並伏誅。暠,叔陵舅也。信、諒有寵於叔陵,常參謀議。諒,粲之子也。〈韋粲,梁臣,死於侯景之難。〉

丁巳,太子卽皇帝位,大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