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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국의 징조 /冬至節仲候麋角解4日(陰11/15)丙午

solpee 2020. 12. 29. 11:26

《南北朝 陳紀9 長城公 至德 2年》 (甲辰, 584)

 

 

 ㉑. 이 해에 장성공이 광소전 앞에 임춘각·결기각·망선각이라는 세 누각을 지었는데, 각각 높이가 수십 장 이었으며 연이어진 것이 수십 칸이었는데, 그 누각의 牕·牖(유:벽을 뚫은 格子窓)·壁帶(벽대: 벽 가운데를 가로지른 기둥)·縣楣((현미:기둥과 기둥 사이 앞 뒤로 가로지른 들보)·欄(처마 아래 계단 사이 난간)·檻(창과 창 사이에 걸친 난간)은 모두 침향과 단으로 만들었고, 장식은 금과 옥으로 하고 사이에는 진주와 비취를 끼워 넣고, 밖으로는 주렴을 늘어뜨리고 안으로는 寶狀과 寶帳이 있었으며, 의복과 완구가 호화롭고 화려하여 최근 이래로 아직 없었던 것이다. 매번 미풍이 잠시 머물 때마다 향이 몇 리까지 냄새가 났다. 그 아래에는 돌을 쌓아 산을 만들고 물을 끌여들여 연못을 만들며 여러 가지의 진기한 꽃과 이상한 풀을 심었다.

 ㉑. 是歲,上於光昭殿前起臨春、結綺、望仙三閣,各高數十丈,〈高,古到翻。〉連延數十間,其牕、牖、壁帶、縣楣、欄、檻皆以沈、檀爲之,〈《釋名》曰︰牕,聰也,於內見外之聰明也。牖,亦牕也。《說文》︰牖,穿壁,以木爲交牕。壁帶,壁中橫木。班固《西都賦》︰金釭銜璧,是爲列錢。賢《註》曰︰以黃金爲釭,其中銜璧,納之於壁帶,爲行列,歷歷如錢也。懸楣,橫木,施於前後兩楹之間,下不裝構,今人謂之掛楣。欄、檻皆所以凭也,施於簷下階際者曰欄,施於牕牖間者曰檻。沈、檀,皆香木。縣,讀曰懸。沈,持林翻。〉飾以金玉,間以珠翠,〈珠,珍珠。翠,翡翠毛。間,古莧翻。〉外施珠簾,內有寶牀、寶帳,其服玩瑰麗,近古所未有。每微風暫至,香聞數里。〈瑰,工回翻。聞,音問。〉其下積石爲山,引水爲池,雜植奇花異卉。〈卉,百草總名,音許偉翻,又音諱。〉

 

 장성공은 스스로 임춘각에 머물며, 장귀비는 결기각에서 거주하고, 龔과 孔 두 귀빈은 방선각에서 머무는데, 나란히 놓은 구름다리로 서로 어울리며 오갔다. 또한 王과 李 두 미인이 있으며, 張과 薛 두 숙원, 원소의·하첩여·강수용도 아울러서 총애를 받았는데 바꾸어 가며 그 위에서 놀았다.

 궁인 가운데 글을 배운 사람인 원대사 등을 여학사로 삼았다. 복야 강총은 비록 재보였으나 몸수 정무를 가까이 하지 않고 날마다 도관상서 공범과 산기상시 왕차 등 문사 10여 명과 더불어 황상을 모시고 후원에서 잔치를 하며 노는데, 다시는 높고 낮은 서열이 지켜지지 않으니 이르기를, '狎客(압객: 다른 사람을 즐겁게 해주는 손님)'이라고 하였다.

 上自居臨春閣,張貴妃居結綺閣,龔、孔二貴嬪居望仙閣,並複道交相往來。又有王、李二美人,張、薛二淑媛,袁昭儀、何婕妤、江脩容,並有寵,〈梁制︰貴妃、貴嬪、貴姬,是爲三夫人,金章龜鈕,紫綬八十首,佩于窴玉、虎頭鞶。淑媛、淑儀、淑容、昭華、昭儀、昭容、脩華、脩儀、脩容,是爲九嬪,金章龜鈕,青綬八十首,虎頭鞶,佩采瓄玉。婕妤、容華、充華、承徽、列榮五職,位亞九嬪,銀印珪鈕,艾綬,虎頭鞶。美人、才人、良人三職,散位,銅印環鈕,墨綬,虎頭鞶。嬪,毗賓翻。媛,于眷翻。婕妤,音接于。〉迭遊其上。以宮人有文學者袁大捨等爲女學士。僕射江總雖爲宰輔,不親政務,日與都官尚書孔範、散騎常侍王瑳等〈散,悉亶翻。騎,奇寄翻。瑳,倉何翻。〉文士十餘人,侍上遊宴後庭,無復尊卑之序,謂之「狎客」。

 

 황상이 매번 술을 마실 때마다 여러 비와 빈, 그리고 여학사들은 압객들과 더불어 시부를 지어 서로 답을 주고받는데, 그 가운데 아주 곱고 화려한 것을 뽑아서 새로운 곡조를 붙이고, 1천여 명의 궁녀를 뽑아서 익히도록 하여 노래를 하게 하였는데, 부로 나누어 번갈아 나오게 하였다. 그 곡조 가운데에는 玉樹後庭花와 臨春樂 등이 있었는데, 대략 모두 여러 비빈들의 얼굴을 아름답다고 한 것이다. 군주와 신하가 달콤한 술을 마시고 노래를 부르며 저녁부터 새벽까지 보냈는데, 항상 이러한 것을 하였다.

 上每飲酒,使諸妃、嬪及女學士與狎客共賦詩,互相贈答,〈《考異》曰︰《平陳記》云︰「張貴妃等八人夾坐,江總等十人預宴。先令八婦人襞采牋製五言詩,十客一時繼和,稽緩則罰酒。」今從《陳書》、《南史》。〉采其尤艷麗者,被以新聲,〈被,皮義翻。〉選宮女千餘人習而歌之,分部迭進。其曲有《玉樹後庭花》、《臨春樂》等,〈《五代志》︰後主於清樂中造《黃鸝留》及《玉樹後庭花》、《金釵兩鬢垂》等曲,與幸臣製其歌詞,綺豔相高,極於輕薄。男女唱和,其音甚哀。《臨春樂》者,言臨春閣之樂也。樂,音洛。〉大略皆美諸妃嬪之容色。君臣酣歌,自夕達旦,以此爲常。

 

 장귀비의 이름은  麗華이고 본래 군인 집안의 딸로 공귀빈의 시녀였는데, 황상이 그녀를 보고서 좋아하여 총애를 입고 태자 진심을 낳았다. 귀비의 머리카락은 7尺인데 그 빛남은 비추어볼 만하였고, 성격은 민첩하고 지혜로우며, 神彩가 있고, 나아거거나 멈출 때에도 한가롭고 화려하였고, 매번 우러러 보거나 바로 보거나 곁눈질 하거나 돌아볼 때마다 찬란한 빛이 눈에 넘쳐 좌우를 환하게 비추었다.

 張貴妃名麗華,本兵家女,爲龔貴嬪侍兒,上見而悅之,得幸,生太子深。貴妃髮長七尺,其光可鑑,〈長,直亮翻。〉性敏慧,有神彩,進止詳〈【章︰十二行本「詳」作「閑」;乙十一行本同。】〉華,〈詳審而華麗也。〉每瞻視眄睞,〈仰視曰瞻。正觀曰視。斜視曰眄。旁視曰睞。眄,莫甸翻。睞,洛代翻。〉光采溢目,照映左右。

 

 인주의 안색을 잘 살펴 여러 궁녀를 끌어서 바치니 후궁들은 모두 그를 덕스럽게 생각하여 다투어 그녀가 착하다고 말하였다. 또한 厭魅(염미:남자를 홀리는 기술)하는 기술을 가지고 있으며, 항상 궁중에서 음사를 차려놓고서 여자 무당을 모아놓고 북을 치며 춤을 추었다. 황상이 정사에 게을러서 백관에서 주문을 오리는데 나란히 환관 채탈아와 이선도를 통하여 나아가기를 청하니, 황상은 은낭(몸을 기대는 자루)에 기대어 장귀비를 무릎 위에 올려놓고 함께 이를 결정하였다. 이선도와 채탈아가 기억할 수 없는 것은 장귀비가 아룰러서 하나하나 남김없이 적었는데, 남기거나 빠뜨린 적이 없었다.

 善候人主顏色,引薦諸宮女;後宮咸德之,競言其善。又有厭魅之術,〈厭魅,所謂婦人媚道也。厭,一琰翻。魅,音媚。〉常置淫祀於宮中,聚女巫鼓舞。上怠於政事,百司啓奏,並因宦者蔡脫兒、李善度進請;上倚隱囊,〈隱囊者,爲囊實以細輭,置諸坐側,坐倦則側身曲肱以隱之。隱,於靳翻。〉置張貴妃於膝上,共決之。李、蔡所不能記者,貴妃並爲條疏,〈疏,分也。爲,于僞翻。〉無所遺脫。

 

 밖의 일에 참여하였거나 살펴보았던 까닭에 사람들 사이에 있었던 한 마디의 말이나 한 가지의 일도 장귀비가 반드시 먼저 알고 말하니, 이로 말미암아서 더욱 다르게 총애를 더하여 후궁 가운데 가장 뛰어났다. 환관이 가까이에서 모시면서 안팎을 연결하고 종척을 끌어들여 제멋대로 불법을 행하여 관직을 팔거나 옥사는 값을 받고 팔았으며, 뇌물이 공공연히 행하여지니, 상과 벌을 주는 사람이 있으면 이어서 그를 참소하였다. 이에 공귀빈과 장귀비의 권세가 사방을 달구어서 대신으로 정치를 하는 사람은 풍문을 좇아서 아첨하며 붙었다.

 因參訪外事,人間有一言一事,貴妃必先知白之;由是益加寵異,冠絕後庭。〈冠,古玩翻。〉宦宮近習,內外連結,援引宗戚,縱橫不法,〈援,于元翻。橫,下孟翻。〉賣官鬻獄,貨賂公行;賞罰之命,不出于外。〈言出命不由中書而出於宮掖也。〉大臣有不從者,因而譖之。於是孔、張之權熏灼四方,〈孔、張,謂孔貴嬪、張貴妃也。〉大臣執政皆從風諂附。

 

 공범은 공귀빈과 오빠와 여동생으로 결의하였는데, 황상이 잘못하였다는 말을 듣기 싫어하여서, 매번 잘못된 일이 있으면 공범은 반드시 구부려서 글을 짓고 추켜올리며 칭송하니, 이로 말미암아 총애하며 대우하는 것을 두텁게 하여 말하는 것을 들어주고 계책을 따랐다. 군신 가운데 간하는 사람이 있으면 번번이 죄를 씌워 물리쳤다. 중서사인 서문경은 경전과 역사책을 모두 두루 읽어 일찍이 동궁에서 황상을 모셧고, 촘명하고 민첩하며 기억력도 좋아서 관리가 할 직분에 밝고 익숙하며, 마음으로 헤아리고 입으로 점치면서 때에 따라 갈피를 바르게 세우니, 이로 말미암아 크게 가까이하는 총애를 입었다.

 孔範與孔貴嬪結爲兄妹;上惡聞過失,〈惡,烏路翻。〉每有惡事,孔範必曲爲文飾,稱揚贊美,由是寵遇優渥,言聽計從。羣臣有諫者,輒以罪斥之。中書舍人施文慶,頗涉書史,嘗事上於東宮,聰敏強記,明閑吏職,〈閑,習也。〉心算口占,應時條理,由是大被親幸。〈被,皮義翻。〉

 

 또 사이가 좋은 오흥 사람 심객경·양혜랑·서철·기혜경 등을 천거하며, '관리의 재능이 있다.'고 하여 황상이 그들을 모두 뽑아서 써서 심객경은 중서사인이 되었다. 심객경은 말쏨씨가 있고 자못 조정의 전고를 알아서, 아울러서 금백국(근고지기)을 관장하였다. 옛날의 제도에는 군인과 사인은 아울러서 관시의 세금이 없었다. 황상이 성대하게 궁실을 짓고 귀와 눈을 최고로 즐겨서 부구는 텅 비어 있고, 새로 지을 것이 있어도 늘 공급하지 못하여 고생하였다. 심객경이 주문을 올려 청하기를, '선비와 서민을 묻지 않고 아울러서 관시의 세금을 받도록 하겠다.'고 하며, 또한 옛날보다 늘려 무겁게 하였다.

 又薦所善吳興沈客卿、〈《五代志》︰吳郡烏程縣,舊置吳興郡。〉陽惠朗、徐哲、曁慧景等,〈《姓纂》︰周景王封少子於陽樊,因邑命氏。余按春秋之時,齊人遷陽,子孫蓋以國爲氏。江南自來有曁姓,吳時有曁豔。曁,戟乙翻。〉云有吏能,上皆擢用之;以客卿爲中書舍人。客卿有口辯,頗知朝廷典故,兼掌金帛局。〈陳中書省分爲二十一局。〉舊制︰軍人、士人並無關市之稅。上盛脩宮室,窮極耳目,府庫空虛,有所興造,恆苦不給。客卿奏請不問士庶並責關市之征,而又增重其舊。

 

 이에 양혜랑을 태시령(시장관리)으로 삼고, 기혜경을 상서금(상서대 재무담당)·창도영사(군량가 말먹이 담당)로 삼았는데, 두 사람은  본래 낮은 관리였으므로 장부를 캐묻고 헤아리며 조사하는데 조금도 틀림이 없게 하였지만, 그러나 모두 대체에는 이르지 못하여, 독촉하고 책망하는 것이 가혹하고 자질구레하여 모아 거둬들이는데 만족할 줄 몰라서 선비와 백성들이 탄식하며 원망하였다.

 於是以陽惠朗爲太市令,曁慧景爲尚書金、倉都令史,〈梁制︰太市令屬太府卿,秩六百石。尚書金、倉都令史,金部、倉部都令史也。梁制,尚書都令史視奉朝請。恆,戶登翻。〉二人家本小吏,考校簿領,纖亳不差;然皆不達大體,督責苛碎,聚斂無厭,〈斂,力贍翻。厭,於鹽翻。〉士民嗟怨。

 

 심객경이 전체를 감독하는데, 매년 들어오는 것이 평상시 정해진 액수보다 수십 배를 넘었다. 황상이 크게 기뻐하였는데, 더욱더 시문경은 잘 아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한층 더 가까이 하고 중요하게 여기면서 적거나 크거나 많은 일들을 맡기지 않은 것이 없었고, 돌아가면서 끌어들여서 구슬을 늘어뜨린 초선관을 쓴 사람이 50명이었다.

 客卿總督之,每歲所入,過於常格數十倍。〈過,工禾翻。〉上大悅,益以施文慶爲知人,〈臨亂之君,各賢其臣,其信然矣。〉尤見親重,小大衆事,無不委任;轉相汲引,〈汲水者引綆期必上,人臣之相汲引,亦猶是也。〉珥貂蟬者五十人。〈珥,市志翻。〉

 

 공범은 스스로 문무의 재능이 조정에서는 따를 사람이 없다고 생각하면서 한가하고 편안 할 때 황상에게 말하였다.

 "밖에 있는 제장들이 행오에서부터 시작하였으니 보통의 남자의 적수일 뿐입니다. 깊이 보고 멀리 생각하는 것이야 어찌 그들이 알바이겠습니까?"

 황상이 시문경에게 묻자, 시문경은 공범을 두려워하여 또한 그렇다고 하였는데, 사마신이 다시 그것을 칭찬하였다. 이로부터 장수들은 조그만 과실이라도 있으면 곧바로 그 병사를 빼앗아 문리에게 나누어 주었는데, 임충의 부곡을 빼앗아 공범과 재징에게 배치하였다. 이로부터 문무관이 풀어헤쳐져서 뒤집혀 멸망하는 데까지 이르렀다.

 孔範自謂文武才能,舉朝莫及,〈朝,直遙翻。〉從容白上曰︰「外間諸將,起自行伍,〈從,千容翻。將,卽亮翻。行,戶剛翻。〉匹夫敵耳。深見遠慮,豈其所知!」上以問施文慶,文慶畏範,亦以爲然;司馬申復贊之。〈復,扶又翻。〉自是將帥微有過失,〈帥,所類翻。〉卽奪其兵,分配文吏;奪任忠部曲以配範及蔡徵。由是文武解體,以至覆滅。〈《通鑑》具敍陳氏亡國之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