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顔眞卿의 활동 /小滿節仲候靡草死 4日(음4/18)丁丑

《唐紀44 德宗 建中 4年》〈癸亥, 783年〉 ②. 정월 13일에 이희열은 그의 장수인 이극성을 파견하여 여주를 기습하여 함락시키고 별가 이원평을 잡았다. 이원평은 본래 호남판관이지만 재주가 적고 성격은 엉성하고 거만하였으며 감히 큰소리를 치고 군사에 관하여 이야기 하기를 좋아하였는데, 관파가 그를 기이하게 여기고 황상에게 추천하여 장상의 그릇이라고 말하니, 여주가 허주와 거리가 가장 가까운 까닭에 이원평을 발탁하여 여주별가로 삼아 지주사로 하였다. ②. 庚寅,李希烈遣其將李克誠襲陷汝州,執別駕李元平。〈將,卽亮翻。汝州,治梁縣,漢承休侯封邑也。〉元平,本湖南判官,薄月才藝,性疏傲,敢大言,好論兵;〈好,呼到翻。〉關〈【張︰「關」上脫「中書侍郎」。】〉播奇之,薦於上,以爲將相之器,以汝州距許州最近,〈《九域志》︰汝州,東南至許州二百..

카테고리 없음 2021.05.28

아! 郭子儀!/小滿節仲候靡草死 2日(음4/16)乙亥

《唐紀43 德宗 建中 2年》〈辛酉, 781年〉 ③.6월 14일에 분양충무왕 곽자의가 죽었다. 곽자의는 상장이 되어 강한 군사를 거느렸는데, 정원진과 어조은이 온갖 방법으로 헐뜯었으나 조서 한 장으로 그를 불러들이면 그 날로 길에 오르지 않는 일이 없엇고 이로 말미암아 참소하고 비방한 것이 통용되지 않았다. ③. 辛丑,汾陽忠武王郭子儀薨。〈薨,呼肱翻。〉子儀爲上將,擁強兵,程元振、魚朝恩讒毀百端,詔書一紙徵之,無不卽日就道,由是讒謗不行。〈事並見《代宗紀》。朝,直遙翻。〉 일찍이 사자를 파견하여 전승사가 있는 곳에 가도록 하였는데, 전승사는 서쪽을 바라보고 절을 하며 말하였다. "이 무릎을 다른 사람에게 굽히지 않은 것이 몇 년이었습니다!" 嘗遣使至田承嗣所,承嗣西望拜之曰︰「此膝不屈於人若干年矣!」 이령요가 변주를 점거하여 ..

카테고리 없음 2021.05.28

不置豪髮之私於其間: 인사에 털끝 만한 사사로움도 없어야 함/小滿節仲候靡草死 2日(음4/16)乙亥

《唐紀41 代宗 大曆 14年》〈己未, 779年〉 ⑦. 상곤은 성격이 굳세고 급하며 정치하는 것이 가혹하고 자잘하여 여러 사람들의 뜻에 맞지 아니하였다. 이때에 여러 신하들이 아침과 저녁으로 빈소에 나왔는데, 상곤이 통곡을 하고 녹초가 되자, 따르던 관리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를 부축하였다. 중서사인 최우보가 그들을 가리켜 여러 사람들에게 보이며 말하였다. "신하가 주군 앞에서 통곡을 하다가 부축을 받는 것이 예인가?" ⑦. 常袞性剛急,爲政苛細,不合衆心。時羣臣朝夕臨,〈臨,力鴆翻,哭也。〉袞哭委頓,從吏或扶之。〈從,才用翻。〉中書舍人崔祐甫指以示衆曰︰「臣哭君前,有扶禮乎!」 상곤이 이를 듣고 그에게 원한을 더하였다. 마침 여러 신하들이 상복을 입는 것을 논의하였는데, 상곤이 말하였다. "예에는 신하는 주군을 위하여 ..

카테고리 없음 2021.05.27

槿堂體本(5/24)/小滿節仲候靡草死(냉이 잎이 시든다.)1日(음4/15)甲戌

槿堂體本(5/24) ☞.接天, 縱一葦之所如, 凌萬 ☞.君諱猛龍字神因南陽 ☞.觀我. ☞.閑看秋水心無事, 坐對長松氣自豪. ☞.人敬天有歲, 政明國無憂. ☞.陽. 雲騰致雨. 露結爲.. ☞.猶是六朝春樹歌餘金蓮舞沒收拾適殘山剩問湖 ☞.旣貴不忘儉養德人神. ☞.古人学问无遗力,少壮工夫老始成。纸上得来终觉浅,绝知此事要躬行。《冬夜读书示子聿·陸游》 ☞.萬歲盤石爲我開. ☞. ☞.☞.

카테고리 없음 2021.05.25

현종 숙종의 사망/小滿節初候苦菜秀4日(4/13)壬申

《唐紀38 肅宗 寶應 元年》〈壬寅, 762年〉 ⑱. 4월 5일에 상황이 신룡전에서 붕어하였는데 나이는 일흔 여덟 살이었다. 6일에 태극전으로 옮겨서 모셨다. 황상은 아파서 누워있어서 내전에서 애도하였고, 여러 신하들은 태극전에서 애도함을 드러냈다. 번족 관리 가운데 얼굴을 베고 귀를 자르는 사람이 400여 명이었다. ⑱. 甲寅,上皇崩于神龍殿,〈神龍殿,蓋中宗於神龍間居之,遂以名殿。〉年七十八。乙卯,遷坐於太極殿。〈坐,徂臥翻,神御坐也。〉上以寢疾,發哀於內殿,羣臣發哀於太極殿。〈內殿,上居大明宮之寢殿也。太極殿,西內前殿,大行所御。〉蕃官剺面割耳者四百餘人。〈剺,里之翻。〉 7일에 묘진경에게 명령하여 섭총재하게 하였다. 황상은 중춘부터 병으로 누워있었는데 상황이 등하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슬프고 사모하여 병이 더욱 심해져서 마침내..

카테고리 없음 2021.05.24

人無遠慮,必有近憂./小滿節(04:37)初候苦菜秀3日(4/12)辛未

《唐紀36 肅宗 乾元 元年》〈戊戌, 758年〉 ㊵. 평로(靑州)절도사 왕현지가 죽자 황상은 중사를 파견하여 가서 장사를 안무하도록 하고, 또 군중에서 세우려고 하는 사람을 살펴가지고 정기와 부절을 주도록 하였다. 고리 사람 이희옥은 비장이었는데 왕현지의 아들을 죽이고 후희일을 추대하여 평로군사로 삼았다. 후희일의 어머니는 이희옥의 고모이니 그러므로 이희옥은 그를 세운 것이다. 조정에서는 이어서 후희일을 절도부사로 삼았다. 절도사가 군사로 말미암아 폐립된 것은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㊵. 平盧節度使王玄志薨,上遣中使往撫將士,且就察軍中所欲立者,授以旌節。高麗人李懷玉爲裨將,殺玄志之子,推侯希逸爲平盧軍使。希逸之母,懷玉姑也,故懷玉立之。〈立侯希逸者李懷玉,而逐侯希逸者亦李懷玉也。懷玉後賜名正己。〉朝廷因以希逸爲節度副使。節度使由軍..

카테고리 없음 2021.05.23

殲厥渠魁,脅從罔理:괴수만 죽이고 협박으로 굴복한 사람은 처리하지 않는다 /小滿節(04:37)初候苦菜秀1日(4/10)己巳

《唐紀36 肅宗 志德 2載》〈丁酉, 757年〉 ㉘. 757년 당 숙종 지덕2재 최기와 여인이 말씀을 올렸다. "여러 역적에게 빠졌던 관리들은 나라를 등지고 거짓으로 좇았으니, 법률에 준거하여 모두 응당 사형에 처해야 합니다." 황상은 그 말을 좇으려고 하였다. 이현이 말하였다. ㉘. 崔器、呂諲上言︰「諸陷賊官,背國從僞,準律皆應處死。」〈上,時掌翻。北,蒲妹翻。處,昌呂翻。〉上欲從之。李峴以爲︰ "역적이 양경을 함락시키고 천자께서는 남쪽으로 순행하시니, 사람들은 스스로 도망하여 살았습니다. 이 무리는 모두 폐하의 친척이거나 혹은 훈구귀족의 자손인데 지금 일제히 반역을 범한 법을 가지고 사형에 처하면 용서하는 도리에 어긋날까 두렵습니다. 「賊陷兩京,天子南巡,人自逃生。此屬皆陛下親戚或勳舊子孫,今一槪以叛法處死,恐乖仁恕之道..

카테고리 없음 2021.05.22

낙양 탈환과 서경입성/小滿節(04:37)初候苦菜秀1日(4/10)己巳

《唐紀36 肅宗 志德 2載》〈丁酉, 757年〉 ⑦. 윤자기가 오래도록 수양을 포기하자 성안에 먹을 것이 다 없어지니, 성을 버리고 동쪽으로 달아날 것을 논의하였는데, 장순과 허원이 모의하고 말하였다. "수양은 강과 회를 막고 보전하는 곳인데, 만약 그곳을 버리고 떠나면 역적이 반드시 이긴 기세를 타고 멀리까지 달려올 것이니, 이는 강과 회를 없애는 것입니다. 또 우리가 굶주리고 파리하여 달아난다 해도 반드시 도달하지 못합니다. 예전에 전국시대의 제후들은 서로 구원하고 어루만지는 것을 숭상하였는데 하물며 가까이에 있는 제장들인 경우에서야 굳게 지켜서 그들을 기다리는 것만 같지 못합니다." ⑦. 尹子奇久圍睢陽,城中食盡,議棄城東走,張巡、許遠謀,以爲︰「睢陽,江、淮之保障,若棄之去,賊必乘勝長驅,是無江、淮也。〈《考異..

카테고리 없음 2021.05.21

장안탈환/小滿節(04:37)初候苦菜授1日(4/10)己巳

《唐紀36 肅宗 志德 2載》〈丁酉, 757年〉 ②. 상략.................... ②. 郭子儀以回紇兵精,勸上益徵其兵以擊賊。懷仁可汗遣其子葉護及將軍帝德等將精兵四千餘人來至鳳翔;上引見葉護,宴勞賜賚,惟其所欲。〈見,賢遍翻。勞,力到翻。〉丁亥,元帥廣平王俶將朔方等軍及回紇、西域之衆十五萬,號二十萬,發鳳翔。俶見葉護,約爲兄弟,葉護大喜,謂俶爲兄。回紇至扶風,郭子儀留宴三日。葉護曰︰「國家有急,遠來相助,何以食爲!」宴畢,旣行。日給其軍羊二百口,牛二十頭,米四十斛。 庚子,諸軍俱發;壬寅,至長安西,陳於香積寺北澧水之東。〈此皆漢上林苑地也。《地說》云︰豐水出鄠南豐谷,北流逕漢龍臺觀東南,與渭水會于短陰山。程大昌曰︰香積寺,呂《圖》在子午谷正北微西。郭子儀收長安,陳于寺北,距澧水,臨大川。大川者,沈水、交水,唐永安渠也。蓋寺在澧水之東,交水之西也。呂《圖》云在鎬水發..

카테고리 없음 2021.05.21

안록산 사망/小滿節(04:37)初候苦菜授1日(4/10)己巳

《唐紀35 肅宗 志德 2載》〈丁酉, 757年〉 ②. 안록산은 군사를 일으킨 이래로부터 눈이 점차 어두워져서 이때에 이르러서는 다시 사물을 보지 못하였는데, 또 등창이 생기니 성질이 더욱 성급하고 포악해져서 좌우에 있는 사령이 조금이라도 뜻대로 하지 않으면 움직여서 채찍질과 매질을 가하였으며 혹은 그를 죽였다. ②. 安祿山自起兵以來,目漸昏,至是不復睹物;〈復,扶又翻。〉又病疽,性益躁暴,左右使令,小不如意,動加箠撻,或時殺之。 이미 황제를 칭하고 나자 금중에 깊이 머물면서 대장도 그의 얼굴을 보는 일이 드물었고 모두 엄장을 통하여 일을 보고하였다. 엄장은 비록 귀하고 용사하였으나 역시 채찍질과 매질당하는 것을 피하지 못하였고, 환관 이저아는 매질을 당하는 일이 더욱 많았으니, 좌우에 있는 사람들은 스스로를 보전하지..

카테고리 없음 2021.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