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文宗 死亡과 武宗의 승계/夏至節末候半夏生2日(陰5/23)辛亥

《唐紀62 文宗 開成 5年》〈庚申, 840年) ①. 봄, 정월 2일에 조서를 내려서 영왕 이전(목종의 5랑 당25세)을 세워서 황태제로 삼고 응군국사권영구당으로 하였다. 또 말하길, 태자 이성미의 나이가 아직은 어리고 사자(師資:《老子》曰︰善人者,不善人之師;不善人者,善人之資。)에 물들지 아니하였으니, 다시 진왕에 책봉해야 한다고 하였다. ①. 春,正月,己卯,詔立潁王瀍爲皇太弟,〈瀍,直連翻。〉應軍國事權令句當。〈句,古候翻。當,丁浪翻。〉且言太子成美年尚沖幼,未漸師資,〈漸,子廉翻。《老子》曰︰善人者,不善人之師;不善人者,善人之資。〉可復封陳王。 이 당시에 황상은 병이 심해져서 지추밀인 유홍일과 설계릉에게 명령하여 양사복과 이각을 끌어들여 금중에 오게 하고 태자를 받들어 감국하게 하려고 하였다. 주위 구사량과 어홍지는 태..

카테고리 없음 2021.07.02

時和年豐,是爲上瑞: 한해가 평화롭고 풍요로운 것이 으뜸가는 상서로운 일/夏至節末候半夏生2日(陰5/23)辛亥

《唐紀61 文宗 開成 3年》〈戊午, 838年〉 ⑨. 애초에, 태화 말기에 두종이 봉상절도사가 되었는데, 조서를 내려 승니를 도태시키도록 하였다. 이 당시에 다섯 색깔의 구름이 기산에 보였고, 법문사에 가까웠으며, 민간에서는 부처의 뼈가 상서로운 것을 내리게 한 것은 승니가 불안한 때문이라는 말이 와전되고 있었다. 감군이 그것을 상주하려고 하자, 두종이 말하였다. ⑨. 初,太和之末,杜悰爲鳳翔節度使,有詔沙汰僧尼。〈事見上卷太和八年。〉時有五色雲見于岐山,〈見,賢遍翻;下同。〉近法門寺,民間訛言佛骨降祥,〈佛骨在法門寺,故云然。〉以僧尼不安之故。監軍欲奏之,悰曰︰ "구름이란 사물은 색깔을 바꾸는 것이 어찌 항상 똑 같겠는가? 부처가 만약 승니를 사랑한다면 응당 경사에 나타나야 하였을 것이오." 얼마 지나지 않아 흰 토끼를 잡..

카테고리 없음 2021.07.01

無丸들의 專橫 . /夏至節末候半夏生1日(陰5/22)庚戌

《唐紀61 文宗 太和 9年》〈乙卯, 835年〉 ㉟. 왕애에게는 6촌동생인 왕목이 있엇는데, 강남에 집이 있었으며 늙고 또 가난하였다. 왕애가 재상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자, 노새에 걸터앉아 그에게 가서 簿(부:주부)나 尉(위 현위 둘 다 현의 속관) 하나를 요구하려고 하였다. 장안에 머문지 2년여 만에 비로소 한 번 볼 수 있었으나 왕애는 그를 매우 냉대 하였다. ㉟. 王涯有再從弟沐,〈從,才用翻。〉家於江南,老且貧。聞涯爲相,跨驢詣之,欲求一簿、尉。留長安二歲餘,始得一見,涯待之殊落莫。〈落,冷落也。莫,薄也。落莫,唐人常語。〉 오래 지나서 왕목은 총애를 받는 노복을 통하여 원하는 것을 말하자, 왕애는 미천한 관직을 주겠다고 허락하였고, 이로 부터 아침저녁으로 왕애의 문에 가서 명령을 나기만을 기다렸는데, 왕애의 집이 ..

카테고리 없음 2021.06.30

역습당한 甘露之變과 가짜 감로/夏至節仲候蜩始鳴4日(陰5/20)戊申

《唐紀61 文宗 太和 9年》〈乙卯, 835年〉 ㉞. 11월 5일에 대리경 곽행여를 빈녕절도사로 삼았다. ....중략.... ㉞. 十一月,丙午,以大理卿郭行餘爲邠寧節度使。癸丑,以河東節度使、同平章事李載義兼侍中。丁巳,以戶部尚書、判度支王璠爲河東節度使。戊午,以京兆尹李石爲戶部侍郎、判度支;以京兆少尹羅立言權知府事。石,神符之五世孫也。〈襄邑王神符,淮安王神通之弟。〉己未,以太府卿韓約爲左金吾衞大將軍。 애초에, 정주는 이훈과 더불어 모의하고 진에 도착하여 장사 수백 명을 뽑아서 모두 하얀 몽둥이를 쥐고 도끼를 가슴에 품게 하여 그들을 친위병으로 생각하였다. 이 달 27일에 왕수징이 산수에 장사 지내는데, 정주는 주문을 올려서 들어가 장사 지내는 일을 호상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이어서 친위병으로 하여금 스스로 뒤쫓게 하였다. 이어서..

카테고리 없음 2021.06.29

槿堂體本(6/28)/夏至節仲候蜩始鳴3日(陰5/19)丁未

槿堂體本(6/28) ☞.陽春布德澤, 萬物生光暉.《長歌行·漢樂府》 靑靑園中葵, 朝露待日晞. 陽春布德澤, 萬物生光暉. 常恐秋節至, 焜黃華葉衰. 白川東到海, 何時復西歸. 少壯不努力, 老大徒傷悲. 푸르른 동산의 해바라기는 아침 이슬을 머금고 해뜨기를 기다린다. 양춘의 따뜻한 볕이 덕택(德澤)을 펴니 만물이 생기 있고 빛이 난다. 항상 가을이 찾아와서, 꽃과 잎이 시들까 두려워함이라. 백천이 동쪽으로 바다에 이르면, 언제 다시 서쪽으로 올까! 젊어 건강할 때 노력하지 않으면, 늙어서 부질없이 상심하며 슬퍼하리라! ☞.怠於夙宵若者之愛. ☞.浮世榮華暫時事, 笑看天際白雲來.《三淸洞。次金而彦 忠烈 韻·附元韻·金忠烈》 松間緩步路縈回。却喜煩襟得快開。三洞靈光通御井。五城佳氣繞仙㙜。閑臨曲澗潺湲水。細酌流霞㶑灧杯。浮世榮華暫時事。笑看..

카테고리 없음 2021.06.28

붕당의 발생 원인 대책!/辛丑秊夏至節仲候蜩始鳴(매미 울기 시작)3日(陰5/19)丁未

《唐紀61 文宗 太和 8年》〈甲寅, 834年〉 ⑭. 이종민은 이덕유에 대한 제명이 이미 시행되었으니 의당 스스로 편의대로 할 수 없다고 말하였다. 11월 29일에 다시 이덕유를 진해절도사로 삼고 평장사를 다시 겸하지 않게 하였다. 이 당시에 이덕유와 이종민은 각기 붕당을 가지고 서로 밀어내고 끌어당겼다. 황상은 그것을 걱정하고 매번 탄식하며 말하였다. "하북의 도적을 내쫓는 것은 쉬우나 조정의 붕당을 없애는 것은 어렵구나!" ⑭. 李宗閔言李德裕制命已行,不宜自便。〈以德裕自請留京師也。〉乙亥,復以德裕爲鎭海節度使,不復兼平章事。〈復,扶又翻。〉時德裕、宗閔各有朋黨,互相擠援。〈非其黨則相擠,同黨則相援。擠,子西翻,又子細翻。援,于元翻,又于眷翻。〉上患之,每歎曰︰「去河北賊易,去朝廷朋黨難!」〈去,羌呂翻;下同。〉 사마광이 말하였다..

카테고리 없음 2021.06.27

仲言之惡,著於心本,安能悛改邪!: 중언의 악행은 마음의 뿌리에 있어서 고쳐지지 않는다./辛丑秊夏至節仲候蜩始鳴(매미 울기 시작)2日(陰5/18)丙午

《唐紀61 文宗 太和 8年》〈甲寅, 834年〉 ⑥. 애초에, 이중언은 象州(광서)로 유배되었다가 사면을 받아 동도로 돌아왔다. 마침, 유수 이봉길이 다시 재상으로 들어갈 것을 생각하였는데, 이중언이 스스로 정주와 친하다고 말하자, 이봉길은 이중언으로 하여금 그에게 후하게 뇌물을 주도록 하였다. 정부는 이중언을 이끌어 왕수징에게 보였고, 왕수징은 이중언을 황상에게 추천하면서 이중언이 《周易》을 잘 안다고 하자, 황상은 그를 불러 접견하였다. 이 당시에 이중언은 모친상 중이어서 궁궐에 들어가기 어려웠으나 마침내 서민의 옷을 입도록 하면서 왕산인이라 불렀다. ⑥. 初,李仲言流象州,〈事見二百四十三卷敬宗寶曆元年。〉遇赦,還東都。會留守李逢吉思復入相,〈復,扶又翻。〉仲言自言與鄭注善,逢吉使仲言厚賂之。注引仲言見王守澄,守澄薦..

카테고리 없음 2021.06.27

杜牧의 국방정책 2 / 夏至節初候鹿角解4日(陰5/15)癸卯

《唐紀60 文宗 太和 7年》〈癸丑, 833年〉 또 《戰論》을 지었다. "하북이 천하를 보면 마치 진주 구슬과 같고, 천하가 하북을 보면 마치 四脂와 같다. 하북의 기질과 풍속은 순박하고 후덕하ㅓ며, 전쟁을 하거나 농경을 하는 것에서도 과감하고, 게다가 토착지에서 건강한 말들이 자라고 있어서 적이 있는 곳으로 말을 달리기에도 편리하니, 이리하여 출동하면 이기고, 머물러 있으면 넉넉하게 되어서, 천하에서 생산하는 것을 엿보지 않고도 스스로 배양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역시 마치 대농의 집 같아서 진주 구슬을 기다리지 않고도 부자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又作《戰論》,以爲︰「河北視天下,猶珠璣也;〈言河北不資天下所產以爲富。〉天下視河北,猶四支也。河北氣俗渾厚,果於戰耕,加以土息健馬,〈息,生也。〉便於馳敵,是以出則勝,處則饒..

카테고리 없음 2021.06.24

杜牧의 국방정책 1 / 夏至節初候鹿角解4日(陰5/15)癸卯

《唐紀60 文宗 太和 7年》〈癸丑, 833年〉 ⑯. 두목은 하삭 3진이 포악하고 오만한 것에 대해 분개하였지만, 조정에서 논의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고식적인 것을 일삼고 있어서 마침내 책을 지었고, 서명은 《罪言》으로 하였다. 그 대략이다. ⑯. 杜牧憤河朔三鎭之桀驁,〈驁,五到翻。〉而朝廷議者專事姑息,乃作書,名曰《罪言》,大略以爲︰ "국가는 천보 연간에 도적(안·사)들이 일어나고부터 하북의 100여개 성은 한 자나 한 치도 얻지 못하였고,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기를 마치 회골과 토번과 같이 하니, 감히 엿보는 사람도 없었다. 齊· 梁· 蔡는 그들의 풍습에 물들어졌고, 이어서 역시 도적이 되었다. 「國家自天寶盜起,河北百餘城不得尺寸,人望之若回鶻、吐蕃,無敢窺者。齊、梁、蔡被其風流,因亦爲寇。〈齊,李正己;梁,李靈曜;蔡,李..

카테고리 없음 2021.06.23

將帥之廢置殺生皆出於士卒之手: 장수의 생살여탈권을 사졸이 가지다./夏至節(12:32)初候鹿角解3日(陰5/14)壬寅

《唐紀60 文宗 太和 5年》〈辛亥, 831年〉 ②. 21일에 노룡감군이 주문을 올려서 '이재의가 측사와 더불어 구장의 후원에서 잔치를 베풀었는데, 부병마사 양지성이 그의 무리들과 소리를 지르며 반란을 일으키니, 이재의와 아들 이정원은 역주로 달아났고, 양지성은 또 막주 자사 장경초를 살해하였다..' 고 하였다. 황상이 재상들을 불러 그것을 논의하였는데, 우승유가 말하였다. ②. 正月, 庚申,盧龍監軍奏李載義與敕使宴於毬場後院,副兵馬使楊志誠與其徒呼噪作亂,載義與子正元奔易州;志誠又殺莫州刺史張慶初。〈宋白曰︰幽州南至莫州二百八十里。〉上召宰相謀之,牛僧孺曰︰ "범양(范陽: 今 保定定兴县固城镇 고구리의 옛 땅이었다.)은 안·사 이래로 나라의 소유가 아니고, 유총이 그 땅을 잠시 헌납하니, 조정은 전 80만 민을 소비하고도 ..

카테고리 없음 2021.0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