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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牧의 국방정책 2 / 夏至節初候鹿角解4日(陰5/15)癸卯

solpee 2021. 6. 24. 05:58

《唐紀60 文宗 太和 7年》〈癸丑, 833年〉

 

 또 《戰論》을 지었다.

 "하북이 천하를 보면 마치 진주 구슬과 같고, 천하가 하북을 보면 마치 四脂와 같다. 하북의 기질과 풍속은 순박하고 후덕하ㅓ며, 전쟁을 하거나 농경을 하는 것에서도 과감하고, 게다가 토착지에서 건강한 말들이 자라고 있어서 적이 있는 곳으로 말을 달리기에도 편리하니, 이리하여 출동하면 이기고, 머물러 있으면 넉넉하게 되어서, 천하에서 생산하는 것을 엿보지 않고도 스스로 배양하고 성장할 수 있으며, 역시 마치 대농의 집 같아서 진주 구슬을 기다리지 않고도 부자가 되는 것과 비슷하다,

 又作《戰論》,以爲︰「河北視天下,猶珠璣也;〈言河北不資天下所產以爲富。〉天下視河北,猶四支也。河北氣俗渾厚,果於戰耕,加以土息健馬,〈息,生也。〉便於馳敵,是以出則勝,處則饒,〈處,昌呂翻。〉不窺天下之產,自可封殖;亦猶大農之家,不待珠璣然後以爲富也。

 

 국가에 하북이 없다는 것은 정교한 갑옷· 날래고 용맹한 병졸· 날카로운 칼· 좋은 칼· 튼튼한 말을 가지 갖지 못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이 첫 번째 가지로, 무기들이 사라지게 되는 것이다.

 國家無河北,則精甲、銳卒、利刀、良弓、健馬無有也,是一支,兵去矣。

 

 河東(하동:태원)· 盟津(맹진: 하남 맹현)· 滑臺(활대: 활현)· 大梁(대량: 개봉)· 彭城(팽성: 강소 서주)· 東平(동평)은 모두 두텁게 무장한 병사들을 숙위하게 하여서 오랑캐들의 요충지를 막게 하고서 다른 것에는 사용할 수 없으니, 이것이 두 번째 가지로, 병사들이 없어지게 한 것이다.

 河東、盟津、滑臺、大梁、彭城、東平,盡宿厚兵以塞虜衝,不可他使,是二支,兵去矣。〈河東、太原之全軍。盟津,河陽軍。滑臺,義成軍。大梁,宣武軍。彭城,武寧軍。東平,天平軍。盟,讀曰孟。塞,音悉則翻。〉

 

 육진의 군대는 그 수가 3억인데 고개를 숙여서 공급해 주기만을 바라보고 횡공(두팔을 가로로 맞잡고 두목에게 충성 외에 하는 일이 없음)하면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어서, 회의 북쪽을  따라 흐르는 곳과 하의 남쪽을 빙빙 돌아가서 동으로는 바다에 닫는 곳에 이르고, 서쪽으로 낙을 두드리고 赤地가 모든 것을 빼앗아야만 비로소 비용에 대응할 수 있으니, 이것이 세 번째 가지로, 재원이  없어지게 된 것이다.

 六鎭之師,厥數三億,低首仰給,〈仰,牛向翻。〉橫拱不爲,〈橫拱者,言橫其兩肱,拱立而事其帥,他無所爲也。〉則沿淮已北,循河之南,東盡海,西叩洛,赤地盡取,才能應費,是三支,財去矣。〈才能之才,卽纔字,《漢書》作「財」,後人從省便,又去「貝」作「才」。〉

 

 함양 서북쪽애 융이들이 대규모로 주둔하여 吳· 越· 荊· 楚의 풍요로움을 모두 떼어 내어서 수졸들을 먹이고 있다. 이 는 네 번째 가지로, 재물이 없이지게 된 것이다. 천하의 네 가지가 전부 해체되고, 머리와 배가 벌거벗겨졌으니, 그래가지고 이것들을 가지고서 오랫동안 안정되게 할 수 있겠는가?

 楚咸陽西北,戎夷大屯,〈謂自咸陽西北,列大屯以防戎夷也。〉盡剷吳、越、荊、楚之饒以啖兵戍。〈啖,徒濫翻。〉是四支,財去矣。天下四支盡解,頭腹兀然,其能以是久爲安乎!

 

 지금 진실로 다섯 가지의 실패하였던 것을 다스릴 수 있다면, 한 번의 싸움으로 안정시킬 수 있으며, 네 가지를 살릴 수 있을 것이다.

 무릇 천하에 일이 없을 때에는 殿奇(전기: 국방)대신들은 안락함을 훔쳐서 사사로움을 받들게 하고, 전사들은 떠나가고 흩어졌으며, 무기와 갑옷은 무디고 낡았으니, 이것들은 모아서 훈련을 하지 않은 잘못인데, 그 실패의 첫 번째이다.

 今者誠能治其五敗,則一戰可定,四支可生。夫天下無事之時,殿寄大臣偷安奉私,〈殿寄大臣,謂受殿邦之寄者,牧蓋謂當時節度使也。《詩‧采菽》,殿天子之邦,毛氏《註》云︰殿,鎭也。音丁練翻。〉戰士離落,兵甲鈍弊,是不蒐練之過,其敗一也。

 

 100명이 창을 메고서 현관에게 식량 보내주기를 바라보게 하니 1천 사람의 이름을 넣어 가지고 크게는 장수들과 작게는 비장들이 그 가운데 남아서 넘치는 것을 조종하고, 오랑캐들이 건장한 것을 행운으로 여기며, 출병을 오래하는 것을 오락으로 여기고 있었는데, 이는 무기를 잡고 있는 사람은 항상 적고 식량을 허비하는 사람은 항상 많은 것이니 이것은 사실을 따져 밝히거나 양식을 헤아리지 않았던 잘못인데, 그 실패의 두 번째이다.

 百人荷戈,〈荷,下可翻。〉仰食縣官,則挾千夫之名,大將小裨,操其餘贏,〈小裨,謂裨將。操,七刀翻。〉以虜壯爲幸,以師老爲娛,是執兵者常少,糜食常多,此不責實料食之過,其敗二也。

 

 전쟁에서 작은 승리를 하면 그 공로를 크게 과장하여, 달려가서 상황을 보고해서 황상의 은상을 요구하니, 혹은 하루에 두 차례 내려졌고, 혹은 한 달에 누차 봉작을 하였는데, 승리의 노래를 아직 부르지도 않았지만, 쓰여 있는 품계는 이미 높아졌고, 작위의 임명은 이미 극에 달하여 밭과 저택은 넓고, 금과 비단은 가득차 있으며, 자손들은 관직에 오르게 하는데, 어찌 기이한 계책을 찾아서 나아가 죽으려고 하면서 자기 자신에게 부지런히 하려 하겠는가! 이것은 은상을 두텁게 한 잘못으로 그 실패하였던 세 번째이다.

 戰小勝則張皇其功,奔走獻狀以邀上賞,或一日再賜,或一月累封,凱還未歌,書品已崇,〈戰勝,則奏凱歌而還。書品,謂書其官品也。還,音旋。〉爵命極矣,田宮廣矣,〈田宮,猶言田宅也。〉金繒溢矣,〈繒,慈陵翻。〉子孫官矣,焉肯搜奇出死,勤於我矣!此厚賞之過,其敗三也。〈焉,於虔翻。〉

 

 병사들을 많이 상실하고 큰 도읍들을 무너지고 뒤집히게 하였다면 몸만을 도망쳐서 오지만 한 지방의 자사로 삼아가니, 칼이나 톱처럼 된 형틀을 돌아서 보고도 기색은 매우 펴\ㄴ안하엿으며, 다시 1년이 되지 않앗는데도 곧바로 이미 壇墀(단지: 지휘관의 연단)의 위에 서있었으니, 이는 형벌을 가볍게 다루었던 잘못인데, 그 실패의 네 번째이다.

 多喪兵士,顚翻大都,則跳身而來,刺邦而去;〈跳身而來,謂逃至京師也。刺邦而去,謂貶爲刺史也。喪,息浪翻。〉回視刀鋸,氣色甚安,一歲未更,〈更,工衡翻。〉旋已立於壇墀之上矣,〈立壇墀之上,謂復登大將之壇也。〉此輕罰之過,其敗四也。

 

 대장이 군대의 지휘권을 독점할 수 없었고, 은총을 받는 신하와 칙사(환관)들이 번갈아가면서 와서 그것을 휘둘렀으니, 당당하게 거느리며 늘어놓기도 하고 성대하게 거느리고 북을 치기도 하면서, 한 사람은 반드시 偃月陳(언월진: 초승달 모양 중군은 중앙 양 날개를 앞으로)을 쳐야 한다고 하고 또 다른 한 사람은 반드시 魚麗陳(어려진: 앞은 치우치고 뒤는 대오를 이룸 대오는 미봉)을 쳐야 한다고 하여서 3군의 1만 병졸들이 뒤돌아서기도 하고 배회하다가 당황하여 어지러워하는 사이에 오랑캐의 기병들이 이를 탔고 결국에는 우리의 북과 깃발을 빼앗아 갔으니, 이는 독점적으로 맡겨서 책임지고 완성하게 하지 못하엿던 잘못인데, 그 실패의 다섯 번째이다.

 大將兵柄不得專,恩臣、敕使迭來揮之,〈恩臣,亦指宦官之怙恩者。〉堂然將陳,殷然將鼓,一則曰必爲偃月,一則曰必爲魚麗,〈陳,讀曰陣。麗,力知翻。偃月、魚麗,皆陳名。偃月陳,中軍偃居其中,張兩角向前。《左傳》︰爲魚麗之陳,先偏後伍,伍承彌縫。〉三軍萬夫,環旋翔羊愰駭之間,〈翔羊,猶云徜徉,徘徊也。愰,呼廣翻。〉虜騎乘之,遂取吾之鼓旗,此不專任責成之過,其敗五也。

 

 지금은 진실로 방패와 창을 조절하고 잡게 하여 티끌과 오물을 물로 씻고 비로 쓸게 하려고 하지만, 마침내 이전의 잘못을 뒤쫓고 있으니, 할 수가 없다.

 今者誠欲調持干戈,洒掃垢汙,〈【章︰十二行本「汙」下有「以爲萬世安」五字;乙十一行本同;退齋校同;張校同,云無註本亦無。】〉而乃踵前非,是不可爲也。」

 

 또 수론을 지었다.

 又作《守論》,以爲︰

 

 "오늘날 논의하는 사람들은 모두 말하고 있다.

 '무릇 고집이 세고 강력한 무리들(발호하는 번진들)이라면 우리들이 좋은 장수와 힘센 병사들을 가지고 재갈을 물리거나 채찍질을 하고, 높은 자리와 아름다운 작위를 가지고 그들의 창자를 배부르게 하면서, 편안하게 잇게 하되 건드리지 말며, 밖에 있게 하되 구속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마치 호랑이와 이리를 곡식으로 기르면서 길들이기는 하되 그들의 심기를 어긋나게 하지 않는다면 화가 나는 싹이 트지 않을 것과 같은 것이고, 이것이 대력과 정원에 나라를 지키게 한 이유이지만, 역시 하필이면 고통스럽게 싸워서 우리의 백성들을 불 태워 바싹 묶고 그런 다음에 고통을 준 연후에 거둘수 있겠는가!'

  「今之議者皆曰︰夫倔強之徒,吾以良將勁兵爲銜策,〈倔,渠勿翻。強,其兩翻。銜策,所以馭馬。〉高位美爵充飽其腸,安而不撓,外而不拘,〈撓,如巧翻,又火高翻。〉亦猶豢擾虎狼而不拂其心,〈豢,養也。擾,馴也,順也。拂,讀曰咈。〉則忿氣不萌;此大曆、貞元所以守邦也,亦何必疾戰,焚煎吾民,然後以爲快也!

 

 어리석은 나의 말이다.

 '대력과 정원 사이에는 바로 이것 때문에 화가 된 것이다. 이 당시에 성 수십 개와 몇천몇백의 병졸들을 가지고 있다면 조정에 이를 별도로 대우하고 법도로 용서하였다. 이에 넓게 쳐다보고 큰 소리를 치면서, 스스로 하나의 기문을 수립하여 제도를 파괴하고 법률을 깎아내리고, 촉각을 세워 지쥐를 높이고 사치를 하여도, 천자는 위엄을 기른다고 하면서 문책하지 않았고, 유사(관계부처)는 편안함을 지킨다고 하면서 꾸짖지 않았다.

 愚曰︰大曆、貞元之間,適以此爲禍也。當是之時,有城數十,千百卒夫,則朝廷別待之,貸以法度。於是闊視大言,自樹一家,破制削法,角爲尊奢,天子養威而不問,有司守恬而不呵。

 

 왕과 제후 등은 작위를 받은 사람은 월록을 받았고, 근빙하였는데 오지 않았어도 궤장을 내려 그들을 부축하여주었으며, 반역자의 자식이나 오랑캐의 혈통이라도 황제의 자식들은 그들에게 시집보내면서, 가장자리를 꾸미고 채색하여 치장한 것이 갖추어지지 않은 것이 없었다.

 王侯通爵,越錄受之;〈凡賞功者錄其功而加之封爵,無功而超越授之以爵,是謂越錄。受,讀曰授。〉覲聘不來,几杖扶之;〈言不朝者賜之几杖,以安其心。〉逆息虜胤,皇子嬪之;〈息,子也。胤,繼嗣也。河北蕃將之子,率多尚主。〉裝緣采飾,無不備之。〈緣,以絹翻。〉

 

 이리하여 영역은 더욱 넓어졌고, 병력은 더욱 강해졌으며, 분수에 넘치게 모방하는 것이 더욱 심해졌고, 사치스런 마음은 더욱 창성하게 되었다. 이에 토지와 전택 그리고 명기들을 분할하여 거의 바닥이 났는데, 도리어 도적놈들의 탐하는 마음은 목적지에 도달하지 않아서 드디어 명분에 어긋나고 호령을 뛰어넘거나 혹은 황제로 혹은 왕이라 하며 자립하겠다고 맹세를 하고도 편안하고 담담하여 두려움이 없었으며, 병사들을 보내서 사방으로 약탈하게 하여서 자기가 뜻하는 것을 배부르게 하였던 것이다.

 是以地益廣,兵益強,僭擬益甚,侈心益昌。於是土田名器,分劃殆盡,〈劃,呼麥翻,又音畫。〉而賊夫貪心,未及畔岸,遂有淫名越號,或帝或王,盟詛自立,〈詛,莊助翻。〉恬淡不畏,走兵四略以飽其志者也。

 

 이리하여서, 조· 위· 연· 제가 우뚝 일어나 크게 주창하자, 양· 채· 오· 촉이 뒤쫒아서 그들에게 화답하였는데, 그 나머지들은 뒤섞여서 웃고 떠들면서 서로 본받으려 하는 사람들은 가는 곳마다 이러하였다.

 是以趙、魏、燕、齊卓起大唱,梁、蔡、吳、蜀躡而和之;〈謂朱滔、王武俊、田悅、李納相立爲王,李希烈、李錡、劉闢繼亂也。和,戶臥翻。〉其餘混澒軒囂,〈澒,戶孔翻。〉欲相效者,往往而是。

 

 굴러가다가 효무 시기를 맞이하여 宵旰(소간: 宵衣旰食의 준말로 어두워 옷 입고 \저물어 밥 먹기)하는 것을 잊지 않고 앞에 있는 영웅들과 뒤에 있는 호걸들은 저녁에 생각하였다가 아침에 의논하였으니 그러므로 큰 놈들은 주살하여 없애고, 작은 놈들은 은혜를 베풀어 올 수 있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지 않았더라면 周와 秦의 교외는 거의 침범을 받아 사냥터가 되었을 것이다!

 運遭孝武,〈謂憲宗。〉宵旰不忘,〈宵,宵衣也,謂未明求衣也。旰,旰食也,謂日旰而食也。〉前英後傑,夕思朝議,故能大者誅鋤,小者惠來。不然,周、秦之郊,幾爲犯獵哉!〈周、秦之郊,謂河南、關內也。〉

 

 대체로 사람이 태어나면 자연스럽게 많은 것을 바라는데, 바랐지만 얻을 수 없게 되면 화가 나고, 화가 나면 다툼과 혼란이 그 뒤를 따르게 되는 것이니, 이리 하여서 가정에서는 볼기를 쳐서 가르치고 국가에서는 형벌을 내리는 것이며, 천하에서는 정벌을 하는 것인데, 이러한 것들은 그들의 하고 싶은 것을 억제시키고 그들의 다툼을 막아주는 것이다.

 大抵生人油然多欲,欲而不得則怒,怒則爭亂隨之,是以敎笞於家,刑罰於國,征伐於天下,此所以裁其欲而塞其爭也

 

 대력과 정원 사이에서는 이 도리를 전부 위반하고서, 아주 사소한 소유물을 손에 들고서 끝이 없는 다툼을 막고 있었는데, 이것으로는 머리와 꼬리 그리고 사지는 거의 서로 움직이게 하거나 흔들 수가 없게 되었다. 지금에 이것을 비난할 줄 모르고, 도리어 사용하면서 항상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다. 어리석은 내가 보기에는 도적놈이 된 곳은 하북에만 그치는 것뿐만이 아니다. 오호라! 대력과 정원에 나라를 지키는 술책을 영원히 경계해야 할 것이다!"

 大曆、貞元之間,盡反此道,提區區之有而塞無涯之爭,〈區區之有,謂朝廷爵命。塞,悉則翻。〉是以首尾指支,幾不能相運掉也。〈幾,居於翻。掉,走弔翻。〉今者不知非此,而反用以爲經。〈經,常也。〉愚見爲盜者非止於河北而已,嗚呼!大曆、貞元守邦之術,永戒之哉!」

 

 또 손자에 주석을 달고 그 서를 썼다.

 又註《孫子》,爲之序,以爲︰

 

 "군사라는 것은 형벌(大刑)이고, 형벌이라는 것은 나라를 다스리는 일인데, 부자의 제자가 한 것은 사실 중유(자로 이며 무에 통달)와 염유(염구이며 나라를 잘 다스림)가 하였던 일이다. 어느 시대 어느 사람부터 두 가지 도를 나누어 文과 武라 불렀는지는 모르지만, 떼어놓고서 동시에 나아가게 하고, 이어서 縉紳(진신: 선비 문관 그 출신)의 선비들로 하여금 감히 군사를 말하지 않게 하니, 혹은 그것을 말하는 것을 부끄럽게 여겼으며, 만약 말하는 사람이 있으면 세상에서는 거칠고 포학하며 이상한 사람으로 여기며 사람들은 친구로 쳐주지도 않았다.

 「兵者,刑也;〈大刑,用甲兵。刑者,政事也;〉爲夫子之徒,實仲由、冉有之事也。不知自何代何人分爲二道曰文、武,離而俱行,因使縉紳之士不敢言兵,或恥言之;苟有言者,世以爲粗暴異人,人不比數。

 

 오호라! 근본을 잃어버린 것 가운데 이것이 제일 심하다. 《禮記》에서 말하였다. '사방의 교외에 성채가 많으니 이것은 경대부의 부끄러움이다.' 고대로부터 더듬어 보면, 그들의 나라를 수립하던지 그들의 나라가 멸망되엇던지 아직은 군대로 말미암지 않은 적이 없었다.

 嗚呼!亡失根本,斯最爲甚!《禮》曰︰『四郊多壘,此卿大夫之辱也。』〈《記‧曲禮》之言。〉歷觀自古,樹立其國,滅亡其國,未始不由兵也

 

 군사를 주관하는 사람은 반드시 뛰어나고 현명하며 재능 있고 박학다식한 섭비여야만 마침내 공로가 있을 수 있는 것이고, 조정이 위에서 논의하면서, 군대의 형체는 이미 완성되는 것이며, 그런 후에야 그것을 장군에게 넘겨주는 것이다.

 主兵者必聖賢、材能、多聞、博識之士乃能有功,議於廊廟之上,兵形已成,然後付之於將。〈將,卽亮翻。〉

 

 한 고조(유방)가 말하였다.

 '가리켜서 쫓게 하는 것은 사람이고, 토끼를 사로잡는 것은 개이다.' 이것이 그 옳은 것이다.

 저들 가운데 재상이 된 사람이 말할 것이다. '군대는 나의 일이 아니고 내가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아니요.' 그러면 군자는 말할 것이다. '그 자리에 머물러 있지 말아야 하는 것이 옳은 것이오.'"

 漢祖言『指蹤者人也,〈指蹤,謂指示獸蹤。此與《漢書》因文取義小不同。〉獲兔者犬也』,此其是也。彼爲相者曰︰『兵非吾事,吾不當知。』君子曰︰『勿居其位可也!』」〈觀溫公取杜牧此語,則其平時講明相業,可以見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