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杜牧의 국방정책 1 / 夏至節初候鹿角解4日(陰5/15)癸卯

solpee 2021. 6. 23. 19:27

《唐紀60 文宗 太和 7年》〈癸丑, 833年〉

 

 ⑯. 두목은 하삭 3진이 포악하고 오만한 것에 대해 분개하였지만, 조정에서 논의하는 사람들은 오로지 고식적인 것을 일삼고 있어서 마침내 책을 지었고, 서명은 《罪言》으로 하였다. 그 대략이다.

 ⑯. 杜牧憤河朔三鎭之桀驁,〈驁,五到翻。〉而朝廷議者專事姑息,乃作書,名曰《罪言》,大略以爲︰

 

 "국가는 천보 연간에 도적(안·사)들이 일어나고부터 하북의 100여개 성은 한 자나 한 치도 얻지 못하였고, 사람들은 그들을 바라보기를 마치 회골과 토번과 같이 하니, 감히 엿보는 사람도 없었다. 齊· 梁· 蔡는 그들의 풍습에 물들어졌고, 이어서 역시 도적이 되었다.

 「國家自天寶盜起,河北百餘城不得尺寸,人望之若回鶻、吐蕃,無敢窺者。齊、梁、蔡被其風流,因亦爲寇。〈齊,李正己;梁,李靈曜;蔡,李希烈、吳氏。被,皮義翻。〉

 

 일찍이 5년 사이에 전쟁을 안 하였던 적이 없어서 초조하게 애태운 것이 70여 년이었다. 지금의 상책은 먼저 스스로 다스리게 하는 것만 같은 것이 없고, 중책은 위주를 빼앗는 것만 못한 것이 없으며, 가장 하책은 마구 싸우는 것인데, 땅의 형세를 헤아리지 않고, 공격할 것인지 수비할 것인지를 살피는 것이다."

 未嘗五年間不戰,焦焦然七十餘年矣。今上策莫如先自治,中策莫如取魏;最下策爲浪戰,不計地勢,不審攻守是也。」

 

 또 부병제가 폐지되어 무너진 것에 대해 슬퍼하여서 《原十六衞(원십육위)》를 지었는데, 그의 생각이다.

 "국가는 애초에 수의 제도를 계승하여 십육위를 개설하였는데, 지금의 입장에서 그것을 본다면, 관직을 설치하였었지만 생각할 것이 없는 것이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십육위이다. 원래의 일의 발자취를 본다면 그것은 실제로 천하의 커다란 운명과 관계된 것이었다.

 又傷府兵廢壞,作《原十六衞》,以爲︰「國家始踵隋制,開十六衞,自今觀之,設官言無謂者,其十六衞乎!本原事迹,其實天下之大命也。〈唐承隋制,開十六衞,改左、右翊衞曰左、右衞府,左、右驍騎衞曰左、右驍衞府,左、右屯衞曰左、右威衞府,左、右禦衞曰左、右領軍衞府,左、右備身曰領左、右府。唯左‧右武衞府、左‧右監門府、左‧右候衞府,仍隋不改。顯慶五年,改左、右府曰左、右千牛府。龍朔二年,左‧右衞府、驍衞府、武衞府皆省府字。左、右威衞曰左、右武威,左、右領軍衞曰左、右戎衞,左、右候衞曰左、右金吾衞,左、右監門府曰左、右監門衞,左、右千牛府曰左、右奉宸衞,後復曰左、右千牛衞。咸亨元年,復改左、右戎衞曰領軍衞。武后光宅元年,改左、右驍衞曰左、右武威衞,左、右武衞曰左、右鷹揚衞,左、右威衞曰左、右豹韜衞,左、右領軍衞曰左、右玉鈐衞。唐初,十六衞置大將軍各一人,正三品;將軍各二人,從三品。貞元二年,十六衞各置上將軍一人,從二品。雖設官而無兵可掌,故當時以爲無謂。〉

 

 정관 중반 시기에 안으로는 십육위를 가지고 무신들을 모아 길러냈고, 밖으로는 절충부와 과의부 574개를 개설하여 병졸의 대오를 비축하여서, 일이 생기면 무신들은 병사들을 이끌고 밖에 머물렀고, 일이 없으면 군사를 놓고 안에 머물렀다.

 貞觀中,內以十六衞蓄養武臣,外開折衝、果毅府五百七十四,〈諸府,每府折衝都尉一人,上府正四品上,中府從四品下,下府正五品下。左、右果毅都尉各一人,上府從五品下,中府正六品上,下府正六品下。〉以儲兵伍,有事則戎臣提兵居外,無事則放兵居內。其居內也,

 

 그들이 안에 머물면서 부귀와 은택으로써 그들을 받들었고, 거느리는 병사들은 여러 부에 분산시켜 살게 하였다. 상부라 해도 1천200명을 넘지 않았고, 세 계절에는 밭 갈며 농사짓고, 한 계절에는 무기를 다듬으며 병적은 장군부에 넣어두고 대오는 논밭으로 분산시켜서, 힘은 풀어지고 기세는 깨져서 사람마다 스스로를 아꼈으니, 비록 치우를 통수로 삼았다 하여도 역시 반란을 일으키게 할 수 없었다.

 富貴恩澤以奉其身;所部之兵散舍諸府。〈散者,分散之散。舍者,居舍之舍。〉上府不越千二百人,三時耕稼,一時治武,籍藏將府,〈治,直之翻。將,卽亮翻。〉伍散田畝,力解勢破,人人自愛,雖有蚩尤爲帥,亦不可使爲亂耳。〈帥,所類翻;下同。〉

 

 그들이 밖에 머물러 있게 되면 이웃하는 병사들은 격문을 받고서 마침내 오게 되는데, 부월은 앞에 있게 되고, 작위와 은상은 뒤에 있게 하며, 질풍과 폭우같이 번갈아가면서 머리채를 잡아당기니, 어느 겨를에 다른 계책을 세우게 되겠는가! 비록 치우가 통수가 되었다 해도 역시 반란을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及其居外也,緣部之兵被檄乃來,〈被,皮義翻。〉斧鉞在前,爵賞在後,飃暴交捽,豈暇異略!〈飃,卽飄字。捽,昨沒翻。〉雖有蚩尤爲帥,亦無能爲叛也。〈此所謂實天下之大命也。〉

 

 정관에서 개원까지 130여 년간 무신과 병졸들이 아직은 반역과 찬탈을 하지 않았었는데, 이것은 대성인(당 태종)께서 통치의 경중을 장악할 수 있었고, 막아내는 곳의 안팎을 제어할 수 있는 까닭이었으니, 성스러운 계산과 신기한 술책이었다.

 自貞觀至于開元百三十年間,戎臣兵伍未始逆篡,此大聖人所以能柄統輕重,制鄣表裏,聖算神術〈【張︰「術」作「謨」。】〉也。

 

 개원 말기에 으르면 어리석은 유학자들이 주문을 올려서 말하였다. '천하는 문학이 승리하였으니 청컨대 부병제를 철폐하여 주십시오.' 무인들은 주문과 표장을 올려서 말하였다. '천하의 무력이 강하니 청컨대 사방의 오랑캐를 치게 해주십시오.' 이에 안에서는 부병제가 없어지게 되었고, 밖에서는 변방의 군대가 만들어지게 되어, 무신의 대오는 물살 같이 급하게 달려가는 것이 화살 같으니 안에는 한 명도 없게 되었던 것이다.

 至于開元末,愚儒奏章曰︰『天下文勝矣,請罷府兵。』武夫奏章曰︰『天下力強矣,請搏四夷。』於是府兵內剷,〈字書無「剷」字,今以類求之,音楚限翻。〉邊兵外作,戎臣兵伍,湍奔矢往,內無一人矣。

 

 꼬리는 크고 중앙는 말라서, 연국에 편중되게 되었고, 천하는 높이 치켜들고 일어나니 뿌리와 싹이 잿더미가 되어서, 일곱의 성인들께서는 해가 진 후에야 밥을 먹으면서, 그들을 제거하려고 하였지만 또 할 수 없었다. 이런 것으로부터 살펴본다면 무신과의 병오들이 어찌 하루 사이에 鈴鍵(영건: 관건)을 떨어뜨리게 할 수 있었는가?

 尾大中乾,〈乾,音干。〉成燕偏重,〈謂成安祿山偏重之勢也。燕,於賢翻。〉而天下掀然,根萌燼然,七聖旰食,〈七聖,謂肅、代、德、順、憲、穆、敬。〉求欲除之且不能也。由此觀之,戎臣兵伍,豈可一日使出落鈴〈【章︰十二行本「鈴」作「鈐」;乙十一行本同。】〉鍵哉!

 

 그러나 국가를 만들어간다는 것은 군사를 없앨 수는 없는 것이지만, 밖에 거처하게 하면 반란을 일으키게 되고, 안에 거처하게 하면 찬탈을 하게 되는 것이다. 박에 거처하게 하면서도 반란을 일으키지 않고, 안에 있게 하면서도 찬탈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에 대해서 고금 이래로 돌아보건대, 방법과 술책 가운데 제일 좋은 것이라면 그것은 부를 두고 위를 세우는 것이다.

 然爲國者不能無兵,居外則叛,居內則篡。使外不叛,內不篡,古今以還,法術最長,其置府立衞乎!

 

 근대 이래로 그 장수들에게 있어서 나쁜 것이 더욱 심하게 되었는데, 대체적으로 모두가 시장의 어린 녀석들이 대부분 금과 옥을 싸고 환관들에게 짊어지게 하여 의지하면, 돈으로 환산하여 물품을 건네주어서 도달할 수 있는 것이었으니, 결코 부모와 형제에 대하여 예의를 차리는 교화를 알지 못하였으며, 또 慷慨(강개: 정의로운 기개가 넘침)와 感慨(감개: 개탄하고 분개함)의 의기도 없었다.

 近代以來,於其將也,弊復爲甚,〈將,卽亮翻。復,扶又翻;下同。〉率皆市兒輩多齎金玉、負倚幽陰、〈謂負倚宦官,行貨賂以進取也。〉折券交貨所能致也;絕不識父兄禮義之敎,復無慷慨感槪之氣。

 

 100개의 성과 1천 리라도 하루아침에 그것을 얻게 되었고, 그들 가운데 힘이 세고 포악하며 말을 듣지 않고 일을 ㄷ일으키는 사람들은 법제를 어지럽히고 해쳤으며, 자기 자신을 속박시키지 않으려고 충성스럽고 뛰어난 사람들의 전 가족을 참수시켰고, 자기 자신에게 어기지않게 만들려고 힘을 하나로 하고 형세를 편리하게 만드니 도적놈이 되지 않는 사람이 없었으며, 그들 가운데 음침하고 교활한 사람들 역시 가구 수를 계산해서 부세를 거둬들이고 간사하고 아첨하는 사람에게 위임하여서, 경대부의 자리에서 공을 사들이고, 군을 버리고 도를 얻었으니, 사방으로 다스리는 곳을 밟으면서 가리켜서 별관으로 삼았으며, 혹은 일부가 불행스럽게도 오래 살게 되면 살아잇는 사람을 긴 창으로 찢어 죽이고 약탈하는 것이 천하에 두루 미쳤다.

 百城千里,一朝得之,其強傑愎勃者則撓削法制,〈愎,弼力翻。撓,奴敎翻。〉不使縛己,斬族忠良,不使違己,力一勢便,罔不爲寇;其陰泥巧狡者,〈「泥」,恐當作「昵」。〉亦能家算口斂,委於邪倖,由卿市公,去郡得都,〈郡,謂列郡。都,謂五都。〉四履所治,指爲別館;〈《左傳》︰管仲曰︰「賜我先君履,東至於海,西至于河,南至于穆陵,北至于無棣。」杜預《註》云︰履,所踐履之界。後人言賜履者本此。此四履謂四境所至。〉或一夫不幸而壽,則戛割生人,略帀天下。〈帀,作答翻,周也。〉

 

 이리 하여서  천하의 병란이 쉬지 않게 되었고 백성들은 생고생을 하게하며 헛되이 써버리게 하였으니, 이것을 원인으로 하지 않은 것이 없다. 오호라! 문황제의 십육위에 대한 뜻을 그 누가 근원을 캐서 그것을 회복시키겠는가!"

 是以天下兵亂不息,齊人乾耗,〈乾,音干。〉靡不由是矣。嗚呼!文皇帝十六衞之旨,其誰原而復之乎!」〈太宗文皇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