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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습당한 甘露之變과 가짜 감로/夏至節仲候蜩始鳴4日(陰5/20)戊申

solpee 2021. 6. 29. 15:19

《唐紀61 文宗 太和 9年》〈乙卯, 835年〉

 

 ㉞. 11월 5일에 대리경 곽행여를 빈녕절도사로 삼았다. ....중략....

 ㉞. 十一月,丙午,以大理卿郭行餘爲邠寧節度使。癸丑,以河東節度使、同平章事李載義兼侍中。丁巳,以戶部尚書、判度支王璠爲河東節度使。戊午,以京兆尹李石爲戶部侍郎、判度支;以京兆少尹羅立言權知府事。石,神符之五世孫也。〈襄邑王神符,淮安王神通之弟。〉己未,以太府卿韓約爲左金吾衞大將軍。

 

 애초에, 정주는 이훈과 더불어 모의하고 진에 도착하여 장사 수백 명을 뽑아서 모두 하얀 몽둥이를 쥐고 도끼를 가슴에 품게 하여 그들을 친위병으로 생각하였다. 이 달 27일에 왕수징이 산수에 장사 지내는데, 정주는 주문을 올려서 들어가 장사 지내는 일을 호상하게 해달라고 요청하고 이어서 친위병으로 하여금 스스로 뒤쫓게 하였다. 이어서 주문을 올려서 신중위 이하 모든 사람으로 산수에 모여 장사 지내는 것을 배웅하도록 하고 정주는 이 틈에 문을 닫고 친위병으로 하여금 그들을 도끼로 찍어서 남은 무리가 없게 하기로 하였다.

 始,鄭注與李訓謀,至鎭,選壯士數百,皆持白棓,懷其斧,以爲親兵。〈棓,蒲項翻。白棓,猶言白梃也。〉是月,戊辰,王守澄葬於滻水,〈《雍錄》︰滻水源出藍田縣境之西,稍北行至白鹿原西,卽趨京城。王守澄蓋葬於白鹿原西南。〉注奏請入護葬事,因以親兵自隨。仍奏令內臣中尉以下盡集滻水送葬,注因闔門,令親兵斧之,使無遺類。

 

 약속이 이미 확정되자 이훈은 그의 패거리와 더불어 모의하였다.

 "만약 이와 같이 일이 이루어진다면 정주가 그 공로를 오로지할 것이니, 곽행여와 왕번으로 하여금 진소에 가는 것을 명분으로 삼아 장사를 많이 모아서 부곡으로 만들고, 금오위와 어사대의 이졸을 함께 사용하여 먼저 환관을 죽이기를 기약하고, 그렇게 하고 나서 정주도 아울러 제거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約旣定,訓與其黨謀︰「如此事成,則注專有其功,不若使行餘、璠以赴鎭爲名,多募壯士爲部曲,幷用金吾、臺府吏卒,先期誅宦者者,〈先,悉薦翻。〉已而幷注去之。」〈去,羌呂翻。〉

 

 곽행여· 왕번· 나립언· 한약 그리고 중승 이효본은 모두 이훈이 평소 두텁게 대해준 사람이었으니, 그러므로 중요한 지위에 두었고, 오직 이 몇 사람과 서원여가 이일을 모의하엿고 다른 사람은 모두 알지 못하였다.

 行餘、璠、立言、約及中丞李孝本,皆訓素所厚也,故列置要地,獨與是數人及舒元輿謀之,他人皆莫之知也。

 

 21일에 황상이 자신전에 올랐다. 백관이 배열을 정하자, 한약은 평안이라고 보고하지 않고, 주문을 올려서 말하였다.

 "좌금오청사 뒤에 있는 석류나무에 밤에 감로가 내리어 신이 이미 문주를 올렸습니다."

 이어서 걸으며 춤을 추고 두 번 절하니 재상 역시 백관을 인솔하고 축하하였다. 이훈과 서원여는 황상에게 직접 가서 그것을 보고 天貺(천주: 하늘이 내리는 선물)를 이어받도록 권하자, 황상이 그것을 허락하였다.

 壬戌,上御紫宸殿。百官班定,韓約不報平安,〈唐制,凡朝,皇帝旣升御座,金吾將軍奏︰「左右廂內外平安。」〉奏稱︰「左金吾聽事後石榴夜有甘露,臣遞門奏訖。」〈言夜中聞奏,禁門已扃,於隔門遞入以奏也。〉因蹈舞再拜,宰相亦帥百官稱賀。〈帥,讀曰率;下同。〉訓、元輿勸上親往觀之,以承天貺,上許之。

 

 백관들은 물러나서 함원전에서 배열하였다. 해가 진시가 지나자 황상은 연여를 타고 자신문을 나가 함원전에 올랐다. 먼저 재상과 양성의 관리들에게 명령하여 조장에게 가서 그것을 살피도록 하였는데, 오래 지나서 돌아왔다. 이훈이 주문으로 말하였다.

 "신이 사람들과 더불어 그것을 조사하였는데, 아마 진짜 감로가 아닌 것 같으니 갑자기 선포해서는 아니 되는데, 천하가 축하하는 말을 할까 두렵습니다."

 百官退,班於含元殿。〈紫宸,內殿也;含元,前殿也。上欲往觀甘露,故百官自紫宸退而出,立班於含元殿,以左、右金吾仗在含元殿前左右也。〉日加辰,上乘軟輿出紫宸門,〈軟輿,蓋以裀褥積而爲之,下施棢,令人舉之。〉升含元殿。先命宰相及兩省官詣左仗視之,良久而還。〈還,音旋,又如字。〉訓奏︰「臣與衆人驗之,殆非眞甘露,未可遽宣布,〈《考異》曰︰按訓與韓約共謀,詐爲甘露,而自言恐非眞瑞者,蓋欲使宦官盡往金吾覆視,因伏兵誅之耳。故二十二日令狐楚所草制書亦云「兇渠仍請其覆視」。今從《實錄》。〉恐天下稱賀。」

 

 황상이 말하엿다.

 "어찌 이런 일이 있는가?"

 좌·우중위인 구사량· 어지홍·을 돌아보고 환과들을 인솔하고 가서 그것을 살피도록 하였다. 환관이 이미 떠나고 나자, 이훈은 황급히 곽행여와 왕번을 불러 말하였다.

 "와서 칙령을 받아라."

 왕번은 다리를 떨면서 감히 앞으로 나가지 못하엿고 오직 곽행여가 전 아래에서 절을 하였다. 이 당시에 두 사람의 부곡인 수백 명이 모두 무기를 잡고 담봉문 밖에 서 있었고, 이훈은 이미 우선 사람을 시켜 그들을 불러 들어와 칙성를 받도록 하였다. 다만 동의 군사만 들어왓고 빈녕의 병사는 끝내 도착하지 않았다.

 上曰︰「豈有是邪!」顧左、右中尉仇士良、魚志弘帥諸宦者往視之。〈帥,讀曰率。〉宦者旣去,訓遽召郭行餘、王璠曰︰「來受敕旨!」璠股栗不敢前,獨行餘拜殿下。時二人部曲數百,皆執兵立丹鳳門外,訓已先使人召之,令入受敕。獨東兵入,〈河東兵也,「東」上逸「河」字。〉〈【章︰孔本正有「河」字。】〉邠寧兵竟不至。

 

 구사량 등이 좌장에 이르러 감로를 살피자, 한약은 안색이 바뀌고 땀을 흘리니, 구사량이 그것을 괴이하게 여기고 말하였다.

 "장군께서는 어찌 이와 같으십니까?"

 갑자기 바람이 불어서 장막이 올라기자 무기를 잡은 사람이 매우 많은 것을 보았고 또 병장기의 소리를 들었다. 구사량 등이 놀라서 문으로 달아나니, 문을 지키는 사람이 문을 닫으려고 하였으나 구사량이 그를 꾸짖자 닫을 수가 없었다. 구사량 등은 달아나 황상에게 가서 변고를 알렸다.

 仇士良等至左仗視甘露,韓約變色流汗,士良怪之曰︰「將軍何爲如是?」俄風吹幕起,見執兵者甚衆,又聞兵仗聲。士良等驚駭走出,門者欲閉之,士良叱之,關不得上。〈關,門牡也。上,時掌翻;下來上同。〉士良等奔詣上告變。

 

 이훈이 그것을 보고 황급히 금위오사를 불러 말하였다.

 "와서 전에 올라가서 승여를 호위하는 사람은 1인당 금전 100민을 상으로 내리겠다."

 환관이 말하였다.

 "사태가 급하니 청컨대 폐하께서는 궁전으로 돌아가십시오."

 즉시 연거를 들고 황상을 맞이하고 승여에 부축하여 올리고 궁전 뒤의 그물망을 끊고 빨리 달려 북쪽으로 나갔다. 이훈이 가마에 올라타고 소리쳤다.

 訓見之,遽呼金吾衞士曰︰「來上殿衞乘輿者,人賞錢百緡!」宦者曰︰「事急矣,請陛下還宮!」卽舉軟輿,迎上扶升輿,決殿後罘罳,疾趨北出。〈唐宮殿中罘罳,以絲爲之,狀如網,以捍燕雀,非如漢宮闕之罘罳也。今諸宦者能決之而出,則可知矣。程大昌曰︰罘罳者,鏤木爲之,其中疏通,可以透明。或爲方空,或爲連鎖,其狀扶疏,故曰罘罳,讀如浮思,猶曰䯱髵也。因其形似而想其本狀,自可見矣。罘罳之名旣立,於是隨其所施而附著以爲之名,其在宮闕則爲闕上罘罳,臣朝於君,至闕下復思所奏是也。在陵垣則爲陵上罘罳,王莽斫去陵上罘罳,而曰使人無復思漢者是也。卻而求之上古,則《禮記》疏屛亦其物也。疏者,刻爲雲氣而中空玲瓏也。又有網戶,刻爲連文,遞爲綴屬,其形如網也。宋玉曰「網戶朱綴刻方連」是也。旣曰刻,則是雕木爲之,其狀如網耳。後人因此遂有直織絲網而張之簷窗以護禽雀者。文宗甘露之變,出殿北門,裂斷罘罳而去,是眞網也。此又沿放《楚辭》而施網焉者也。元微之爲承旨時詩曰︰「蘂珠深處少人知,網索西臨太液池,浴殿曉聞天語後,步廊騎馬笑相隨。」自註云︰「網索在太液池上,學士候對歇於此。」予按網索,乃是無壁或有窗處,以索掛網,遮護飛雀,故云網索,猶掛鈴之索爲鈴索也。宋元獻《喜子京召還爲學士詩》曰︰「網索軒窗邃,鑾坡羽衞重。」用微之句也。若並今世俗語求之,則門屛鏤明格子是也。其制與青瑣同類,顧所施之地不同而名亦隨異耳。〉訓攀輿呼曰︰〈呼,火故翻。〉

 

 "신이 주문으로 드리는 일이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폐하께서는 궁전에 들어가실 수 없습니다."

 금오위의 병사가 이미 전각에 오르니, 나립언은 경조의 순찰병 300여 명을 인솔하고 동쪽으로부터 오고, 이효본은 어사대에 종사하는 사람 200여 명을 인솔하고 서쪽으로부터 와서, 모두 전각에 올라 이리 저리 다니며 공격하자, 환관은 피를 흘리며 억울하다고 외쳤으며 죽고 다친 사람이 10여 명이었다.

 「臣奏事未竟,陛下不可入宮!」金吾兵已登殿;羅立言帥京兆邏卒三百餘自東來,〈邏,郎佐翻。〉李孝本帥御史臺從人二百餘自西來,〈從,才用翻。〉皆登殿縱擊,宦官流血呼冤,死傷者十餘人。

 

 승여가 잇달아 뻗어서 선정문 안으로 들어갔고 이훈이 가마에 올라타며 소리치기를 더욱 긴급히 하자 황상은 그를 꾸짖엇고, 환관 치지영이 주먹을 뻗쳐 그의 가슴ㅂ을 때려서 땅에 스러뜨렸다. 승여가 이미 들어가고 나서 문이 뒤이어 닫히자 환관들은 모두 만세를 외쳣고, 백관은 놀라고 두려워하여 흩어지고 나갔다.

 乘輿迤邐入宣政門,〈迤,移爾翻。邐,力爾翻。宣政門,宣政殿門也。〉訓攀輿呼益急,上叱之,宦者郗志榮奮拳毆其胸,偃於地。〈郗,丑之翻。毆,烏口翻。偃者,偃仰而仆也。〉乘輿旣入,門隨闔,宦者皆呼萬歲,百官駭愕散出。

 

  이훈은 일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을 알고 따라다니는 관리의 녹색 적삼을 벗겨 입고 말을 달려서 밖으로 나가 길에서 큰서리치며 말하였다.

 "내가 무슨 꾀로 유배되겠는가?"

 사람들은 그것을 의심하지 않았다. 왕애· 가속· 서원여가 중서성으로 돌아와서 서로 말하였다.

 "황상깨서 또 연영전을 열고 우리들을 불러서 이 문제를  부탁할 것이오."

 양성의 관리가 재상에게 가서 그 이유를 물으니, 모두 말하였다. 

 "무슨 일인지 모르니 공들은 각자 편한 대로 하시오!"

 구사량 등은 황상이 그 모의에 관여한 것을 알고 원망하고 화를 내며 불손한 말을 드러내지 않자, 황상은 부끄럽고 두려워하여 다시 말하지 않았다.

 訓知事不濟,脫從吏綠衫衣之,〈衣,於旣翻。〉走馬而出,揚言於道曰︰「我何罪而竄謫!」人不之疑。王涯、賈餗、舒元輿還中書,相謂曰︰「上且開延英,召吾屬議之。」兩省官詣宰相請其故,皆曰︰「不知何事,諸公各自便!」士良等知上豫其謀,怨憤,出不遜語,上慙懼不復言。

 

 구사량 등은 조우신책부사인 유태륜, 위중경 등에게 명령하여 각기 금병 500명을 인솔하고 칼날을 드러내고 궁전 문을 나가 도적을 토벌하도록 하였다. 왕애 등이 곧 회식을 하려고 하는데, 관리가 보고하였다.

 "어떤 병사가 안에서 나왔는데, 사람을 만나기만 하면 번번이 죽입니다!"

 왕애 등은 낭패하여 걸어서 달아났고 양성과 금오위의 이졸 1천여 명은 문을 메우고 다투어 나갔는데, 문이 곧 닫히자 그 가운데 나갈 수 없었던 사람 600여 명이 모두 죽었다.

 士良等命左、右神策副使劉泰倫、魏仲卿等各帥禁兵五百人,露刃出閤門討賊。〈復,扶又翻。帥,讀曰率。〉王涯等將會食,〈諸宰相每日會食於政事堂。〉吏白︰「有兵自內出,逢人輒殺!」涯等狼狽步走,兩省及金吾吏卒千餘人塡門爭出;門尋闔,其不得出者六百餘人皆死。

 

 구사량 등은 군사를 나누어 궁전 문을 닫고 여러 관사를 수색하여 도적의 무리를 잡앗다. 여러 관사의 이졸과 백성 중에 궁전 내에서 술을 매매하던 사람은 모두 죽었는데, 죽은 사람은 또 1천여 명이었고 가로누운 시체와 흐르는 피가 낭자하게 땅을 칠하였으며 여러 관사의 인장과 도적· 휘장· 기명이 모두 없어졌다. 또 기병 각기 1천여 명을 파견하여 성 밖으로 나가서 도망한 사람을 쫓게 하고 또 군사를 보내어 성 안을 크게 수색하도록 하였다. 서원여는 옷을 바꾸고 단기로 안화문을 나갔으나 금병이 쫓아가 그를 사로잡았다. 왕애는 걸어서 영창리의 차 가게에 도착하였으나 금병이 사로잡악서 좌군에 넣었다.

 士良等分兵閉宮門,索諸司,捕賊黨。〈索,下客翻;下同。〉諸司吏卒及民酤販在中者皆死,死者又千餘人,橫尸流血,狼藉塗地,諸司印及圖籍、帷幕、器皿俱盡。又遣騎各千餘出城追亡者,又遣兵大索城中。舒元輿易服單騎出安化門,〈安化門,長安南面西頭第一門。〉禁兵追擒之。王涯徒步至永昌里茶肆,禁兵擒入左軍。

 

 왕애는 이 당시 나이가 일흔 살 남짓이었으며 차꼬와 수갑이 채워졌는데, 매질하며 심문하니 고통을 이기지 못하고 스스로 거짓으로 자복하기를, 이훈과 더불어 대역을 시행하고 정주를 받들어 세우기로 모의하였다고 하였다. 왕번은 장흥리의 사저로 돌아와서 문을 닫고 그의 군사를 가지고서 스스로 막았다. 신책군의 장수가 문에 도착하여 큰소리로 말하였다.

 "왕애 등이 모반하였는데, 그대 상서를 일으켜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여 어호군이 뜻을 전하도록 하였습니다."

 왕번은 기뻐하고 나가서 그를 만났다. 장수가 달려와서 재삼 축하하자, 왕번은 속은 것을 알고 눈물을 흘리면서 갔는데, 좌군에 도착하여 왕애를 보고 말하였다.

 涯時年七十餘,被以桎梏,掠治不勝苦,〈被,皮義翻。桎,職日翻。梏,古沃翻。掠,音亮。治,直之翻。勝,音升。〉自誣服,稱與李訓謀行大逆,尊立鄭注。王璠歸長興里私第,〈【章︰十二行本「里」作「坊」;乙十一行本同;孔本同。】〉閉門,以其兵自防。〈河東節度之兵也。〉神策將至門,呼曰︰「王涯等謀反,欲起尚書爲相,魚護軍令致意!」〈魚弘志時爲右神策護軍中尉。將,卽亮翻。〉璠喜,出見之。將趨賀再三,〈將,卽亮翻。〉璠知見紿,涕泣而行;至左軍,見王涯曰︰

 

 ............................하략................................

 「二十兄自反,胡爲見引?」涯曰︰「五弟昔爲京兆尹,不漏言於王守澄,〈王涯第二十,王璠第五。漏言事見上卷五年。〉豈有今日邪!」璠俛首不言。又收羅立言於太平里,及涯等親屬奴婢,皆入兩軍繫之。戶部員外郎李元皋,訓之再從弟也,訓實與之無恩,亦執而殺之。故嶺南節度使胡証,家鉅富,〈証,音正。〉禁兵利其財,託以搜賈餗入其家,執其子溵,殺之。〈溵,音殷。〉又入左常侍羅讓、詹事渾鐬、翰林學士黎埴等家,〈左常侍,左散騎常侍也。鐬,火外翻。〉掠其貲財,掃地無遺。鐬,瑊之子也。坊市惡少年因之報私仇,殺人,剽掠百貨,〈剽,匹妙翻。〉互相攻劫,塵埃蔽天。

癸亥,百官入朝,〈朝,直遙翻。〉日出,始開建福門,〈建福門在大明宮丹鳳門之右。〉惟聽以從者一人自隨,〈從,才用翻。〉禁兵露刃夾道。至宣政門,尚未開。時無宰相御史知班,百官無復班列。〈《新書‧儀衞志》曰︰朝日,殿上設黼扆、躡席、熏爐、香案,御史大夫領屬官至殿西廡,從官朱衣傳呼,促百官就列。文武班于兩觀,監察御史二人立于東西朝堂甎道以涖之。平明,傳點畢,內門開,監察御史領百官入。夾階監門校尉二人執門籍,曰唱籍,旣視籍,曰「在」,入畢而止。次門亦如之。序班于通乾、觀象門南,武班居文班之次。入宣政門,文班自東門而入,武班自西門而入,至閤門亦如之。夾階校尉十人同唱,入畢而止。宰相、兩省官對班于香案前,百官班于殿庭,左右巡使二人分涖于鼓鍾樓下。先一品班,次二品班,次三品班,次四品班,次五品班;每班尚書省官爲首。武班供奉者立于橫街之北,次千牛中郎將,次千牛將軍,次過狀中郎將一人,次接狀中郎將一人,次押柱中郎將一人,次排階中郎將一人,次押散手仗中郎將一人,次左右金吾衞大將軍。凡殿中省監、少監、尚衣、尚舍、尚輦、奉御分左右,隨繖扇而立。東宮官居上臺之次,王府官又次之。唯三太、三少、賓客、庶子、王傅隨本品。侍中奏外辦,皇帝步出西序門,索扇,扇合;皇帝升御座,扇開,左右留扇各三。左右金吾將軍一人奏「左右廂內外平安。」通事舍人贊,宰相、兩省官再拜升殿。朝罷,皇帝步入東序門。觀此,可以知甘露之亂,蕩無朝儀矣。〉上御紫宸殿,問︰「宰相何爲不來?」仇士良曰︰「王涯等謀反繫獄。」因以涯手狀呈上,召左僕射令狐楚、右僕射鄭覃等升殿示之。上悲憤不自勝,〈勝,音升。〉謂楚等曰︰「是涯手書乎?」對曰︰「是也!」「誠如此,罪不容誅!」因命楚、覃留宿中書,參決機務。使楚草制宣告中外。楚敍王涯、賈餗反事浮汎,〈其敍事浮汎,蓋以王涯等非實反也。〉仇士良等不悅,由是不得爲相。

時坊市剽掠者猶未止,命左、右神策將楊鎭、靳遂良等各將五百人分屯通衢,〈靳,居焮翻。〉擊鼓以警之,斬十餘人,然後定。

甲子,以右僕射鄭覃同平章事。

賈餗變服潛民間經宿,自知無所逃,素服乘驢詣興安門,自言︰「我宰相賈餗也,爲奸人所汚,〈興安門,大明宮南面西來第一門。汚,烏故翻。〉可送我詣兩軍!」門者執送西軍。〈西軍,右神策軍也,在大明宮西西內苑中。〉李孝本改衣綠,〈衣,於旣翻。〉猶服金帶,以帽障面,單騎奔鳳翔,〈欲依鄭注也。〉至咸陽西,追擒之。

甲子,以右僕射鄭覃同平章事。

李訓素與終南僧宗密善,往投之。宗密欲剃其髮而匿之,其徒不可。訓出山,〈剃,他計翻。山卽謂終南山。〉將奔鳳翔,爲盩厔鎭遏使宋楚所擒,〈盩厔,音舟窒。〉械送京師。至昆明池,訓恐至軍中更受酷辱,謂送者曰︰「得我則富貴矣!聞禁兵所在搜捕,汝必爲所奪,不若取我首送之!」送者從之,斬其首以來。

乙丑,以戶部侍郎、判度支李石同平章事,仍判度支。前河東節度使李載義復舊任。〈王璠得罪,故載義復舊任。〉

左神策出兵三百人,以李訓首引王涯、王璠、羅立言、郭行餘,右神策出兵三百人,擁賈餗、舒元輿、李孝本獻于廟社,徇于兩市。〈唐太廟在朱雀街東第一街之東北來第二坊。太社在街西第一街之西北來第二坊。兩市,長安城中東市、西市也。〉命百官臨視,腰斬于獨柳之下,梟其首於興安門外。親屬無問親疏皆死,孩穉無遺,〈穉,直利翻。〉妻女不死者沒爲官婢。百姓觀者怨王涯榷茶,或詬詈,或投瓦礫擊之。〈詬,許候翻,又古候翻。詈,力智翻。礫,郎狄翻。〉

 

 사마광이 말하였다.

 "노하는 사람은 모두 왕애와 가속이 문학에서 명성을 가지고 있었고, 애초에 이훈과 정주의 모의를 알지 못하였으니, 횡액을 받아 일족이 뒤엎어지는 재앙을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신은 홀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무릇 넘어지고 위태로웠으나 붙들지 않았으니 어찌 저들을 재상으로 채용하겠습니까? 왕애와 가속은 높은 지위에서 편안하였고 큰 복록으로 배를 불렸으며, 이훈과 정주는 소인이고 간사함을 다하고 음흉함을 다하여 힘써 장상을 차지하였습니다.

 臣光曰︰論者皆謂涯、餗有文學名聲,初不知訓、注之謀,橫罹覆族之禍。〈【章︰十二行本「禍」下有「憤歎其冤」四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退齋校同;張校同,云無註本亦無。】〉〈橫,戶孟翻。〉臣獨以爲不然。夫顚危不扶,焉用彼相!〈《論語》載孔子之言。焉,於虔翻。〉涯、餗安高位,飽重祿;訓、注小人,窮奸究險,〈究,極也。〉力取將相。

 

 왕애와 가속은 그들과 더불어 어깨를 나란히 하며 부끄러움으로 여기지 않고 국가가 위태로웠으나 걱정거리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훔치듯 합치고 억지로 용납하여 하루 또 하루를 반복하면서 스스로 몸을 보전할 수 있는 훌륭한 책략을 얻었으니 다른 사람은 나만 같지 못하다고 생각하였습니다.

 涯、餗與之比肩,不以爲恥;國家危殆,不以爲憂。偷合苟容,日復一日,〈復,扶又翻。〉自謂得保身之良策,莫我如也。

 

 만약 사람들로 하여금 모두 이와 같이 하고도 재앙을 받지 않는다면 간사한 신하는 누군들 그것을 원하지 않겠습니까? 어느 날 아침에 예상하지 못한 재앙이 발생하여 다리가 꺾이고 목 베는 형벌을 받았으니, 대개 하늘이 그를 죽인 것이지 구사량이 어찌 그들을 족멸할 수 있었겠습니까!"

 若使人人如此而無禍,則奸臣孰不願之哉!一旦禍生不虞,足折刑剭,〈《易》曰︰鼎折足,覆公餗,其刑剭,凶。剭,音屋。剭者,誅殺不於市。周制,誅大臣適甸師謂之剭。折,而設翻。〉蓋天誅之也,士良安能族之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