主上屈法申恩,吞舟是漏/법을 어기면서 은혜를 베풀고, 배를 삼킬 큰 고기를 위하여 그물이 새도록 만들었다. 《梁紀2 武帝 天監 5年》 (丙戌, 506) 16. 임천왕 소굉은 기실인 오흥 사람 구지로 하여금 편지를 써서 진백지(북위의 평남장군이자 양을 배반하고 위에 붙었슴)에게 보내도록 하고 말했다. 16.三月,臨川王宏使記室吳興丘遲為書遺陳伯之曰: "그대가 갔을 때를 살펴보면 다른 연고가 있어.. 카테고리 없음 2019.08.25
返老還童[fǎn lǎo huán tóng] 返老還童[fǎn lǎo huán tóng] [요약] (返: 돌아올 반. 老: 늙은이 로. 還: 돌아올 환. 童: 아이 동) 늙어서 더욱 氣力이 旺盛해 짐을 비유한 말. [동어] 返老歸童 [유사] 老當益壯(나이는 많지만 그 意志가 더욱 강해짐) [출전]《神仙傳 卷六 淮南王 편》 [내용] 이 성어는 神仙傳 卷六 회남왕편.. 카테고리 없음 2019.08.25
家利而怪先,國興而妖豫/집이 이로우려면 괴이한 일이 먼저 생기고 나라가 흥하려면 요상한 일이 먼저 일어난다. 《梁紀1 武帝 天監 4年》 (乙酉, 505) 19. 위 태극전 서쪽처마에서 영지가 자랐는데, 위 황제가 그것을 시중 최광에게 보이니, 최광이 표문을 올렸다. 19.八月,壬寅,魏有芝生於太極殿之西序,魏主以示侍中崔光。光上表,以為: "이것은 장자가 말하는 '열기가 증발하면 균을 만든다.'라.. 카테고리 없음 2019.08.24
射策通明者即除為吏/사책에 통달하고 밝은 사람을 선발하여 관리로 임용시켰다. 《梁紀1 武帝 天監 4年》 (乙酉, 505) 1. 봄, 정월 초하루 계묘일에 조서를 내려서 말했다. "두 개의 한은 현명한 인재를 등용하였는데 경학가가 아닌 사람이 없었으며, 바른 길을 항상 잘 지키니 명분은 서고, 행동은 성공하였다. 1. 春,正月,癸卯朔,詔曰:「二漢登賢,莫非經術,服膺.. 카테고리 없음 2019.08.24
進賢黜佞,則妖弭慶集矣/어진 사람은 올리고 아첨꾼을 내치면 경사가 모일 것! 《梁紀1 武帝 天監 3年》 (甲申, 504) 6. 이보다 먼저 전사 사원현이 병아리를 헌상하였는데, 네 개의 날개와 네 개의 발을 가진 것이어서 조서를 내려 시중 최광에게 묻도록 하였다. 최광이 표문을 올려서 말하였다. 6.夏,四月,先是,典事史元顯獻雞雛,四翼四足,〔典事,猶今尚書六.. 카테고리 없음 2019.08.24
廉能莫不知勸/청렴하고 재능있는 사람은 알려지고 격려받았다. 《梁紀1 武帝 天監 元年》 (壬午, 502) 20.계유일(15)에 조서를 내렸다. "공거부는 방목과 폐석의 곁에 각각 상자 하나씩을 설치하고, 만약 고기를 먹는 사람(공무원)이 말을 하지 못할 것이 있거나 횡의(백성들의 정치에 대한 견해)를 하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것을 방목함에 넣고, 만약.. 카테고리 없음 2019.08.24
梁의 건국 《梁紀1 武帝 天監 元年》 (壬午, 502) 7. 애초에, 대사마는 황문시랑 범운·남청하 태수 심약·사도부 우장사 임방과 함께 경릉왕의 서쪽 저택에 있었으며, 서로 속으로 좋아하고 돈독하고 치밀하였는데, 이떼에 이르러 범운을 끌어서 대사마 자의참군·영녹사로 삼고, 심약을 표기대장.. 카테고리 없음 2019.08.22
근당체본 7 槿堂體本 7. ☞.禮以和爲貴, 道在物之先。 有子曰 禮之用 和爲貴 先王之道 斯爲美 小大由之《論語 學而》 老子曾說“道在物先”,又說“物在道中”《道德經》 ☞.宜子孫長貴。 長貴富樂未央。長相思毋相忘。長宜子孫。《隋唐鏡銘》 ☞.萬年子孫永寶用亨。《周代鐘鼎銘》 其萬年子.. 카테고리 없음 2019.08.20
부릉왕을 폐하여 동혼후로 삼았다. 《齊紀10 和帝 中興 元年》 (辛巳, 501) 36. 애초에, 해릉왕을 폐하였을 때 황태후는 나가서 파양왕 소장의 옛날 집에 거주하면서 선덕궁이라 불렀다. 을사일(9)에 소연이 서덕태후의 명령으로 추가로 부릉왕 소보권을 페하여 동혼후로 삼고,저후(저영거)와 태자 소송을 서인으로 하였다. 36.. 카테고리 없음 2019.08.19
宦者黃泰平刀傷其膝,仆地,張齊斬之/환관 황태평이 칼로 무릎을 베자 장제가 동혼후의 목을 베었다. 《齊紀10 和帝 中興 元年》 (辛巳, 501) 35. 대항에서 패하게 되자 무리들의 마음이 흉흉하고 두려워하였다. 여법진 등은 병사와 백성들이 도망가서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였다. 그러므로 성을 닫고 다시 병사를 내보내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하고 길게 울타리를 세워놓고 해자와 목책을.. 카테고리 없음 2019.08.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