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主上屈法申恩,吞舟是漏/법을 어기면서 은혜를 베풀고, 배를 삼킬 큰 고기를 위하여 그물이 새도록 만들었다.

solpee 2019. 8. 25. 06:12

 

《梁紀2 武帝 天監 5年 (丙戌, 506

 

 

 16. 임천왕 소굉은 기실인 오흥 사람 구지로 하여금 편지를 써서 진백지(북위의 평남장군이자 양을 배반하고 위에 붙었슴)에게 보내도록 하고 말했다.

 16.三月,臨川王宏使記室吳興丘遲為書遺陳伯之曰:

 

 "그대가 갔을 때를 살펴보면 다른 연고가 있어서가 아니고 바로 안으로 자기를 살피지 못하였기 때문이며 밖으로 유언비어를 받아서 나쁜 길로 깊이 빠지고 함부로 날뛰어서 여기에 이르렀습니다.

「尋君去就之際,非有它故,直以不能內審諸己,外受流言,沈迷猖蹶,以至於此。

 

 주상께서는 법을 굽혀서 은혜를 펼치시고 배를 삼킬 만한 큰 고기를 위하여 그물이 새도록 하시어 놓아주었고, 장군의 소나무와 잣나무는 잘라지지 않았으며 친척은 편안히 살며 높은 누각은 아직 기울어지지 않았으며 애첩도 아직 있습니다.

 主上屈法申恩,吞舟是漏,將軍松柏不翦,親戚安居,高台未傾,愛妾尚在。

 

 그러나 장군은 고기가 끓는 솥에서 놀고 제비 집은 날아가는 장막 위에 보금자리를 틀듯이 하니 역시 이상하지 않습니까! 생각하시어 일찍 좋은 계책에 힘쓰고 스스로 다복한 길을 찾으십시오."

 而將軍魚游於沸鼎之中,燕巢于飛幕之上,不亦惑乎!想早勵良圖,自求多福。」

 

 경인일(25)에 진백지가 수양에 있는 양성에서 무리 8천 명을 끼고 와서 항복하였는데, 위인들이 그의 아들인 진호아를 죽였다. 조서를 내려서 다시 진백지를 서예주 자사로 삼았지만 임지에 아직 가지 않았는데 다시 그를 통직산기상시(내직: 또 배신할까?)로 삼았다.

 庚寅,伯之自壽陽梁城擁眾八千來降,魏人殺其子虎牙。詔復以伯之為西豫州刺史;未之任,復以為通直散騎常侍。久之,卒於家。

 

 

 33.애초에, 한의 귀의후인 이세의 말년에 여러 獠族 [liáozú;라오족] 이 처음으로 출현하였으며, 북으로는 한중에서부터 남으로는 공(卭qióng;사천 서창)·작(笮;사천 한현)에 이르고 산과 골짜기를 널리 채웠다. 이세가 사망하고 나자 촉의 백성은 대부분 동쪽으로 이동하였고, 산과 계곡의 빈 터는 모두 라오족이 점거하는 바가 되었다.

 33.十一月,初,漢歸義侯勢之末,群獠始出,北自漢中,南至邛、笮,佈滿山谷。勢既亡。蜀民多東徙,山谷空地皆為獠所據。

 

 그들 가운데 군현에서 가깝고 한족과 섞여 사는 사람은 자못 조세를 잘 보냇으나 멀리 깊은 산에 있는 사람은 군현이 통제할 수 없었다.양주·익주 두 주에서는 해마다 라오족을 정벌하여서 스스로 윤택하였고, 공사간에 이를 이익으로 삼았다.

 其近郡縣與華民雜居者,頗輸租賦,遠在深山者,郡縣不能制。梁、益二州歲伐獠以自潤,公私利之。

 

 형만이 양주 자사가 되자 라오족 중에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은 모두 안도하고 본업을 즐겼으며 먼 곳에 있는 사람들은 감히 노략질을 하지 못하였다.

 及邢巒為梁州,獠近者皆安堵樂業,遠者不敢為寇。

 

 형만은 이미 파직되어 떠나자 위는 양지를 자사로 삼고, 부수안을 익주 자사로 삼았다. 양지는 성격이 잔혹하고 포학하여 인정을 얻지 못하였다. 라오왕 조청형이 양의 군사를 이끌고 주의 경계 내로 들어와서 노략질을 하자 양지는 군사를 파견하여 이들을 격파하였다. 부수안은 은혜를 베풀고 신의를 펴서 라오족과의 화합을 크게 진작시켰다.

 巒既罷去,魏以羊祉為梁州刺史,傅豎眼為益州刺史。祉性酷虐,不得物情。獠王趙清荊引梁兵入州境為寇,祉遣兵擊破之。豎眼施恩布信,大得獠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