飄風不終朝/회오리는 하루 아침을 불지 않는다. 立冬仲候地始凍3日(11/15) 『飄風不終朝[piāo fēng bù zhōng cháo] 驟雨不終日[zhòu yǔ bù zhōng rì](표풍부종조, 취우부종일) 』《道德經·23章》 노자 도덕경 23장에 나오는 말이다. 사람들이 이러쿵저러쿵 말해도 태연한 것이 좋다. 태풍이 불어온다 하더라도 한나절이면 지나간다. 장대비가 아무리 쏟아.. 카테고리 없음 2019.11.14
故聖王務敎化而省禁防/성스러운 왕은 교화에 힘쓰고 금지하고 방지하는 것은 줄였다. 《漢紀11 武帝 元朔 5年》 (丁巳, 前124) 1. 겨울, 11월, 을축(5)일에승상 설택이 면직되었다. 공손홍으로 승상을 삼고 평진후(발해 고성현)에 책봉하였다. 승상을 후로 책봉한 것은 공손홍에서부터 시작하였다. 1. 冬,十一月,乙丑,薛澤免。以公孫弘爲丞相,封平津侯。〈勃海郡高成縣有.. 카테고리 없음 2019.11.14
제10강(11/13)立冬節仲候地始凍初日 제10강(11/13) 1.文字學 ☞.只可意會, 不可言傳。出处:语出《庄子·天道》 [zhǐ kě yì huì,bù kě yán chuán] “世之所贵道者,书也。书不过语,语有贵也。语之所贵者,意也,意有所随。意之所随者,不可以言传也,而世因贵言传书。” 2.書法雅言 3.槿堂體本 ☞.'貴於能改過' 意思.. 카테고리 없음 2019.11.13
公孫弘. 張騫. 張湯과 汲黯./공손홍. 장건. 장탕과 급암. 《漢紀10 武帝 元朔 3年》 (乙卯, 前126) 2. 공손홍이 포로된 이불을 덮고, 먹는 것은 두 종류의 공기를 먹지 않았다. 급암이 말하였다. "공손홍은 삼공의 자리에 있어서 녹봉이 아주 많은데도 포로 된 이불을 덮으니, 이는 속이는 것입니다." 황상이 공손홍에게 묻자, 공손홍이 사과하며 말.. 카테고리 없음 2019.11.09
上失其道,民散久矣/위에서 도를 잃으면, 백성들은 흩어진다. 《漢紀9 武帝 元朔 2年》 (甲寅, 前127) 6. 곽해는 평생 눈만 흘겨도 사람을 죽이는 일이 많았는데, 황상은 그 소문을 듣고 관리를 내려 보내어 곽해를 체포하여 처리하게 하였는데, 죽인 것은 모두 사면령 이전에 있었다. 지의 어떤 유학생이 사자를 모시고 앉아 있었는데 그 손님이 곽해.. 카테고리 없음 2019.11.09
下怨而上不知/백성들은 원망하는데 왕은 모르고 있다면 토붕이다. 《漢紀9 武帝 元朔 元年》 (癸丑, 前128) 8. 서락이 편지를 올려서 말하였다. "신이 듣건데, 천하의 걱정거리는 토붕에 있지 와해에 있지 않다고 하는데,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8. 徐樂上書曰:「臣聞天下之患,在於土崩,不在瓦解,古今一也。 무엇을 토붕이라 합니까? .. 카테고리 없음 2019.11.08
天下雖平,忘戰必危/천하가 비록 평화로워도 전쟁을 잊으면 위태롭다. 《漢紀9 武帝 元朔 元年》 (癸丑, 前128) 6. 동이의 예군인 남려 등을 합하여 28만 명이 항복하니, 창해군을 설치하였다. 사람을 옮기는 비용이 남이에 비등하여 연과 제 사이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6. 東夷薉君南閭等共〈【章:乙十一行本「共」作「□」;孔本同,熊校同。】〉二十八萬.. 카테고리 없음 2019.11.08
皇后所爲不軌於大義,不得不廢/대의에 어긋난 황후를 폐출하다. 《漢紀9 武帝 元光 5年》 (辛亥, 前130) 5. 가을, 7월, 여자 무당 초복 등이 진황후에게 귀신에게 제사 지내어 엽승하고 황후에게 미혹술(남자를 홀리는 기술)을 가르쳤는데, 사건이 발각되자 무제는 어사 장탕으로 하여금 이를 끝까지 처리하게 하였다. 장탕이 깊게 그 무리들을 끝까지 조.. 카테고리 없음 2019.11.08
無德而富貴謂之不幸/덕없이 부귀한 것을 불행이라 한다. 《漢紀9 武帝 元光 5年》 (辛亥, 前130) 1. 겨울, 10월에 하간왕이 와서 조현하면서 아악을 바치니, 삼옹궁에서 마주하고 조서로 물은 대책이 30여 가지의 일이었는데, 그의 대답은 도술을 미루어서 말하였고, 일의 적당함을 얻었고, 문장은 간단하나 분명하게 지적하였다. 1. 冬,十月,河.. 카테고리 없음 2019.11.08
兵事以嚴終/군사는 엄한 것으로 끝을 맺는다. 己亥年 孟冬季 亥月 立冬節 初候 水始氷 初日(11/8) 《漢紀9 武帝 元光 元年》 (丁未, 前134) 2. 위위 이광이 교기장군(정벌 배반담당)이 되어 운중에 주둔하였고, 중위 정불식이 거기장군이 되어 안문, 산서성에 주둔하였다가 6월이 되자 철수하였다. 이광과 정불식은 모두 변경의 태수로 군사를 거느려서 당시에 이름이 났다. 2. 衞尉李廣爲.. 카테고리 없음 2019.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