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天下雖平,忘戰必危/천하가 비록 평화로워도 전쟁을 잊으면 위태롭다.

solpee 2019. 11. 8. 16:50

 

《漢紀9 武帝 元朔 元 (癸丑, 前128

 

 

 6. 동이의 예군인 남려 등을 합하여 28만 명이 항복하니, 창해군을 설치하였다. 사람을 옮기는 비용이 남이에 비등하여 연과 제 사이에서 소동이 일어났다.

 6. 東夷薉君南閭等共【章:乙十一行本「共」作「□」;孔本同,熊校同。】二十八萬人降,爲蒼海郡;服虔曰:薉貊在辰韓之北,高麗、沃沮之南,東窮大海。師古曰:南閭,薉君名。《食貨志》:彭吳開道通薉貊、朝鮮,置滄海郡。陳壽《夫餘傳》:魏時,夫餘庫有玉璧、珪瓚,傳世以爲寶。耆老言先代所賜,其印文言「濊王之印」。國有故城名濊城,蓋本濊貊之地。又《濊傳》云:武帝滅朝鮮,置樂浪郡,自單單大嶺以西屬樂浪,自嶺以東七縣,都尉主之,皆以濊爲民,今不耐濊,皆其種也。班《志》,樂浪東部都尉治不耐縣。薉,音濊。降,戶江翻。《考異》曰:《史記‧平準書》曰:彭吳賈滅朝鮮,置蒼海之郡。按:滅朝鮮,置蒼海,兩事也,不知何者出賈之謀。人徒之費,擬於南夷,燕、齊之間,靡然騷動。

 

 

 8. 임치 사람 주부언과 함께 엄안, 무종 사람 서락 등이 서신을 올려 일에 관하여 말하였다.

 애초에 주부언은 제·연·조를 돌아다녔는데, 모두 후한 대우를 받을 수가 없엇고, 재생들은 서로 배척하면서 받아들이지를 않았는데, 집안이 가난하여 빌리러 하여도 얻은 것이 없어서 마침내 서쪽으로 가서 관으로 들어와 대궐 아래에서 편지를 올렸더니, 아침에 상주하자 대궐에서 저녁에 불러 들였다. 말한 것은 아홉 가지 일인데, 그 중에 여덟 가지는 율령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흉노 정벌을 관한 것이었다.

 8. 臨菑人主父偃、趙武靈王自號主父,支庶因以爲氏。嚴安,無終人徐樂,班《志》,無終縣屬右北平郡,春秋無終子之國。皆上書言事。

始,偃游齊、燕、趙,皆莫能厚遇,諸生相與排擯不容;家貧,假貸無所得,乃西入關上書闕下,朝奏,暮召入。所言九事,其八事爲律令,一事諫伐匈奴,其辭曰:

 

"사마법에서 말하였습니다. '나라가 크더라도 전쟁을 좋아하면 망하고 천하가 비록 평화롭다 하여도 전쟁을 잊으면 반드시 위험이 닥친다.' 무릇 성을 내는 것은 덕스러움을 거역하는 일이며, 무기라는 것은 흉기이며, 다툰다는 것은 마지막 대목입니다. 무릇 전쟁에서 승리하기를 힘쓰며 무력에 관한 일을 끝까지 한 사람은 후회하지 않은 사람이 없습니다.

「《司馬法》曰:『國雖大,好戰必亡;天下雖平,忘戰必危。』師古曰:司馬穰苴善用兵,著書言兵法,謂之《司馬法》。一說:司馬,古主兵之官,有軍陳用師之法。余據《史記》,齊威王使大夫追論古者《司馬兵法》而附穰苴於其中,因號《司馬穰苴兵法》。好,呼到翻。夫怒者逆德也,兵者凶器也,爭者末節也。夫務戰勝,窮武事者,未有不悔者也。

 

 옛날 진의 황제가 전국을 병탄하고 승리하기에만 힘쓰며 쉬지 않고 흉노를 공격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사가 간하였습니다. '아니됩니다. 무릇 흉노는 성곽에 살거나 맡기고 쌓아 놓는 일이 없으니, 옮겨 다니는 것이 새처럼 거동하니, 잡아서 제압하기가 어렵습니다.

 昔秦皇帝幷吞戰國,務勝不休,欲攻匈奴。李斯諫曰:『不可。夫匈奴,無城郭之居,委積之守委,于僞翻。積,子智翻。委積者,倉廩之藏也。鄭氏曰:少曰委,多曰積。遷徙鳥舉,難得而制也。

 

 경무장을 하고 깊이 들어가면 반드시 양식이 끊어지고, 양식을 있게 하고서 가면 무거워서 일할 곳에 다다르지 못합니다. 그 땅을 빼앗는다 하여도 이로움이 되기에는  부족하고, 그 백성들을 잡아와도 조화를 이루며 지켜나가기에는 부족합니다. 이기면 반드시 그들을 죽여야 하는데,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할 일이 아니고, 중국을 피폐하게 하여 흉노를 즐겁게 하니, 이는 장기적인 계책이 못됩니다.'

 輕兵深入,糧食必絕;踵糧以行,重不及事。得其地,不足以爲利也;得其民,不可調而守也;李奇曰:不可和調也。勝必殺之,非民父母也;靡敝中國,師古曰:靡,散也,音縻。快心匈奴,非長策也。』

 

 진의 황제는 이를 듣지 않았고, 드디어 몽념으로 하여금 병졸을 거느리고 호를 공격하게 하여 땅 천리를 개척하여 하를 경계로 하였습니다. 땅은 본디 소택이고 소금기가 있어서 오곡이 나지 않습니다. 그런 다음에 천하의 정남을 징발하여 북하를 지키게 하여 병사들을 노천에 들어 내놓게 한 것이 10여 년이나 되니, 죽은 사람을 헤아릴 수가 없지만 끝내 하를 넘어서 북쪽으로 갈 수가 없었는데, 이는 어찌 사람의 숫자가 부족하고 무기와 장비가 갖추어지지 않아서이겠습니까?

 그 형세가 안 되었습니다.

 秦皇帝不聽,遂使蒙恬將兵攻胡,辟地千里,辟,讀曰闢。以河爲境。地固沮澤、鹹鹵,不生五穀。沮,將預翻。五穀,黍、稷、菽、麥、稻;或曰:黍、稷、秫、稻、粱。然後發天下丁男以守北河,河水逕安定、北地、朔方界,皆北流;至高闕,始屈而東流;過雲中楨陵縣,又屈而南流。故朔方、雲中之北,謂之北河。杜佑曰:衞青渡西河至高闕破匈奴,河自今靈武郡之西南便北流,千餘里,過九原郡乃東流。時帝都在秦,所謂西河,疑是此處;其高闕當在河之西也。《史記》,趙武靈王築長城,自代並陰山,下至高闕,則與《漢書》符矣。其河自九原東流千里,在京師直北,《漢史》卽云「北河」,斯則西河之側者。暴兵露師十有餘年,死者不可勝數,勝,音升。終不能踰河而北,是豈人衆不足,兵革不備哉?其勢不可也。

 

 또 천하로 하여금 말의 꼴과 사람들의 양식을 나르게 하려면, 동수와 낭야처럼 배를 띄울 수 있는 군에서 시작하여 북하까지 전운으로 수송하는데 대체로 30종(1鍾;6斛 4斗)에 1석(石;10斗)을 옮기게 됩니다. 남자는 바쁘게 농사를 지어도 양향을 대기에 부족하고, 여자는 방적을 하여도 휘장과 장막을 만들기에 부족하니, 백성들은 쓰러지고 피폐하고 고아와 과부, 노약자들을 길러 줄 수 없어 도로에서 죽은 사람이 서로 바라보게 되자, 대개 천하 사람들은 비로소 진에 반란하였습니다.

 又使天下蜚芻、輓粟,師古曰:運載芻槁,令其疾至,故曰飛芻。輓,謂引車船也。起於東腄、琅邪負海之郡,轉輸北河,率三十鍾而致一石。「東腄」,《漢書》作「黃腄」。師古曰:黃、腄二縣並在東萊。言自東萊及琅邪緣海諸郡皆令轉輸至北河。六斛四斗爲鍾,計其道路所費,凡用一百九十二斛,乃得一石至。杜佑曰:腄,卽今文登縣。腄,直睡翻,又音誰。男子疾耕,不足於糧餉,女子紡績,不足於帷幕,百姓靡敝,靡,美爲翻。孤寡老弱不能相養,道路死者相望,蓋天下始畔秦也。

 

 고황제에 이르러서 천하를 평정하고 변방에서 땅을 경락하였는데, 흉노가 대곡의 밖에 모여 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공격하고자 하였습니다. 이에 어사인 성진이 간하여 이르기를, '안 됩니다. 무릇 흉노의 성품은 짐승처럼 모였다가 새처럼 흩어지는데, 이를 쫓는 것은 마치 그림자를 치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 폐하께서 풍성한 덕을 가지고 흉노를 공격하는 것은 신이 가만히 이를 위험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하였습니다.

 及至高皇帝,定天下,略地於邊,聞匈奴聚於代谷之外而欲擊之。御史成進諫曰:『不可。夫匈奴之性,獸聚而鳥散,從之如搏影。師古曰:搏,擊也。搏人之陰影,言不可得。余謂影隨物而生者也,存滅不常,難得而搏之。今以陛下盛德攻匈奴,臣竊危之。』

 

 고제는 듣지 않고 북쪽으로 가서 대곡에 이르렀다가 과연 평성에서 포위를 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고황제는 이를 후회함이 몹시 심하였고, 마침내 유경으로 하여금 가서 화친의 약조를 맺게 하였고, 그러한 뒤에 천하 사람들이 전쟁을 잊어버렸습니다.

 高帝不聽,遂北至於代谷,果有平城之圍。高皇帝蓋悔之甚,乃使劉敬往結和親之約,事見《高帝紀》。然後天下忘干戈之事。

 

 무릇 흉노를 잡아서 제압하기가 어려운 것은 한 세대의 일이 아니니, 가서 도적질하고 침략하고 달아나는 것이 직업이기 때문이고, 천성이 본디 그러합니다. 위로 우·하·은·주의 시기로 올라가 보아도 본디 책임지우고 감독하지 아니하고 금수로 길러 주었지 사람에 소속시키지 않았습니다. 무릇 위로 우·하·은·주시대의 통치 방법을 보지 않고, 아래로 근세에 실패하였던 것을 따르면, 이는 신이 크게 걱정하는 바이며, 백성들이 아프고 고생스러워하는 바입니다."

 夫匈奴難得而制,非一世也;行盜侵驅,師古曰:來侵邊竟而驅掠人畜也。所以爲業也,天性固然。上及虞、夏、殷、周,固弗程督,師古曰:程,課也;督,視責也。禽獸畜之,畜,許六翻。不屬爲人。夫上不觀虞、夏、殷、周之統,而下循近世之失,此臣之所大憂,百姓之所疾苦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