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下怨而上不知/백성들은 원망하는데 왕은 모르고 있다면 토붕이다.

solpee 2019. 11. 8. 16:52

 

《漢紀9 武帝 元朔 元 (癸丑, 前128

 

 

 8. 서락이 편지를 올려서 말하였다.

 "신이 듣건데, 천하의 걱정거리는 토붕에 있지 와해에 있지 않다고 하는데, 옛날이나 오늘날이나 마찬가지 입니다.

 8. 徐樂上書曰:「臣聞天下之患,在於土崩,不在瓦解,古今一也。

 

 무엇을 토붕이라 합니까? 진의 말기가 그것입니다. 진섭은 천승 같은 높은 지위도 없었고, 한 치의 땅도 갖고 있지 않았고, 왕공이나 대인이나 명족의 후예도 아니었으며, 향촌에서 명예를 갖고 있지도 않았고, 공자·증자·묵자와 같은 현명함이나 도주와 의돈 같은 부유함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何謂土崩?秦之末世是也。陳涉無千乘之尊、尺土之地,身非王公、大人、名族之後,鄕曲之譽,非有孔、曾、墨子之賢,陶朱、猗頓之富也范蠡居於陶,自號陶朱公,治產至鉅萬。猗頓,魯人,用盬鹽起,與王者埒富。

 

 그러나 궁벽한 골목길에서 일어나 창을 잡고 떨치며 한쪽 어깨를 드러내며 큰소리로 부르짖으니, 천하에서는 그 바람을 좇았습니다. 이것이 그렇게 된 연고는 무엇입니까? 백성들은 곤란한데 주군은 휼민하지 않고, 아랫사람들은 원망하는데 위에서는 알지 못하였으며, 풍속은 이미 문란하였으나 정치는 닦여지지 않은 데서 말미암았던 것입니다.

 然起窮巷,奮棘矜,棘,與戟同。師古曰:矜者,戟之把也。矜,讀曰?,其巾翻。偏袒大呼,呼,火故翻。天下從風。此其故何也?由民困而主不恤,下怨而上不知,俗已亂而政不脩。

 

 이 세 가지가 바로 진섭이 밑천으로 삼았던 것들인데, 이것을 토붕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걱정거리는 '토붕'에 있다고 말합니다.

 此三者,陳涉之所以爲資也,此之謂土崩。故曰天下之患在乎土崩。

 

 무엇을 와해라고 합니까?

 오·초·제·조의 군사가 이것입니다. 일곱 나라가 크게 반역하기로 모의하고서 부르짖기를, 모두 만승의 군주를 칭하며 갑옷을 입은 병사를 수십만 명이나 이끌고 있어서 위엄은 경내를 엄하게 하기에 충분하였고, 재물도 그 병사와 백성들을 권고하기에 충분하였지만 그러나 그들은 서쪽으로 가서는 한 치의 땅도 빼앗을 수 없었고 몸은 중원에서 잡혀 버렸는데, 이것은 그 연고가 무엇입니까?

 何謂瓦解?吳、楚、齊、趙之兵是也。七國謀爲大逆,號皆稱萬乘之君,帶甲數十萬,威足以嚴其境內,財足以勸其士民;然不能西攘尺寸之地師古曰:攘,謂侵取漢也。而身爲禽於中原者,此其故何也?

 

 권력은 필부(진섭)보다 가볍거나 군사가 진섭의 군대보다 약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당시에는 먼저 돌아가신 황제의 덕이 아직 다 쇠퇴하지 않아서 고향에서 편안히 지내며 현재의 풍속을 즐기는 백성들이 있었으니, 그러므로 제후들이 자기 국경 밖에서는 도움을 줄 수 없었는데, 이것을 와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천하의 근심거리는 와해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非權輕於匹夫而兵弱於陳涉也。當是之時,先帝之德未衰而安土樂俗之民衆,樂,音洛。故諸侯無竟外之助,師古曰:竟,讀曰境。此之謂瓦解。故曰天下之患不在瓦解。

 

 이 두 가지는 안위의 분명한 요건이니, 현명한 군주가 마땅히 유의하여 깊이 살펴야 할 것입니다.

 근래에 관동 지방에서 자주 오곡이 풍년이 들지 않았고, 몇 년 동안 회복되지 않아서 백성들은 대부분 궁핍한데, 이에 변경의 일까지 겹치게 되었으니, 계산하여 미루고 이치에 따라 이를 보건데, 백성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것에 마땅히 불안하게 느낄 것입니다.

 此二體者,安危之明要,賢主之所宜留意而深察也。

間者,關東五穀數不登,年歲未復,民多窮困,重之以邊境之事;數,所角翻。師古曰:復,扶目翻。重,直用翻。推數循理而觀之,民宜有不安其處者矣。

 

 불안하니,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란 다만 만 가지 변화하는 근원을 관찰하여 안위의 기틀을 밝히고 이를 묘당에서 잘 닦아서 아직 형체가 생기지 않은 근심거리를 없애는 것이고, 그 요점은 오로지 천하에 토붕의 형세가 없도록 기하는 것뿐입니다."

 不安,故易動;易動者,土崩之勢也。易,以豉翻。故賢主獨觀萬化之原,明於安危之機,脩之廟堂之上而銷未形之患也,其要期使天下無土崩之勢而已矣。」

 

 편지가 상주되자 천자는 세 사람을 불러 말하였다.

 "공들은 모두 그동안 어디에 있었소? 어찌하여 서로 만나 보는 것이 늦었단 말이오."

 書奏,天子召見三人,謂曰:「公等皆安在,何相見之晚也!」皆拜爲郎中。《考異》曰:《漢書‧主父偃傳》,云「元光元年,三人上書」;按嚴安《書》云「徇南夷,朝夜郎,降羌、僰,略薉州」,此等事皆在元光元年後,蓋誤以「朔」字爲「光」字耳。主父偃尤親幸,一歲中凡四遷,爲中大夫;大臣畏其口,賂遺累千金。或謂偃曰:「太橫矣!」遺,于季翻。橫,戶孟翻。偃曰:「吾生不五鼎食,死卽五鼎烹耳!」張晏曰:五鼎,牛、羊、豕、魚、麋也。諸侯五,卿大夫三。孔穎達曰:少牢陳五鼎:羊一,豕二,膚三,魚四,腊五。師古曰:五鼎烹,謂被鑊烹之誅。爲主父偃被誅張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