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鼠憑社貴[shǔpíngshèguì]/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5日(陰9戌月/1朔)癸巳

《南北朝 宋紀16 順帝 昇明 元年》〈丁巳, 477年〉 ㉓. 윤12월 16일에 후군장군 양운장을 선선 태수로 삼았는데, 이에 태종의 폐신 가운데 금성에 있는 사람이 없었다. ㉓. 乙未,以後軍將軍楊運長爲宣城太守;於是太宗嬖臣無在禁省者矣。〈嬖,卑義翻。又,博計翻。〉 심약이 론하였다. "무릇 인군이 남쪽을 향하여 앉아 있게 되면 아홉 겹 속에 깊숙이 떨어져 있게 되고, 아침저녁으로 모시고 받들게 되니 뜻으로 보아 경사들과는 막혀 있게 되어 폐달에서의 임무는 마땅히 유사가 갖고 있게 된다. 이미 그리하고 나서 은혜는 친한데서 생겨나고 신뢰는 은혜로 말미암아서 굳어지며 꺼리는 자세는 없어지고 쉽게 가까이 하는 기색이 있게 된다. 沈約論曰:夫人君南面,九重奧絕,〈重,直龍翻。〉陪奉朝夕,義隔卿士,階闥之任,宜有司存。旣而恩以狎生..

카테고리 없음 2020.10.17

一士不可親,弓長射殺人[yīshì bùkě qīn,gōngzhǎng shè shārén]一士는 王, 弓長은 張/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5日(陰9戌月/1朔)癸巳

《南北朝 宋紀15 明帝 泰始 7年》〈辛亥, 471年〉 ㉓. 왕경문이 항상 가득가득 꽉 차는 것을 우려하여 여러 차레 자리와 책임을 사양하였으나 황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왕경문이 외척인데다 지위가 높고 세력이 왕성해지고, 장영은 여러 번 군대를 거느렸으므로 그들을 장래에는 신임하기가 어렵다고 의심하고, 마침내 스스로 요언을 지어 말하였다. ㉓. 王景文常以盛滿爲憂,屢辭位任,上不許,然中心以景文外戚貴盛,張永累經軍旅,疑其將來難信,乃自爲謠言曰: "한 선비는 가까이할 수 없고, 궁장은 활을 쏘아 사람을 죽이네." 왕경문이 더욱 두려워하여 스스로 표문을 올려 양주 자사를 해직하고자 하였는데, 마음이 심히 간절하고 지극하였다. 조서를 내려 회답하였다. 「一士不可親,弓長射殺人。」〈射,而亦翻。〉景文彌懼..

카테고리 없음 2020.10.17

栖心浩然[qīxīn hàorán]널리 마음 공부하다/ 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5日(陰9戌月/1朔)癸巳

《南北朝 宋紀15 明帝 泰始 7年》〈辛亥, 471年〉 ⑱. 위의 현조(탁발홍)는 총명하고 예지가 있으며 일찍 성숙했고, 강직하고 굳세며 결단성이 있었으나 黃·老·浮屠의 학문을 좋아해서 매번 조정의 신하들과 사문을 불러 보면서 함께 현묘한 이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부귀를 가볍게 여겼고, 항상 세상을 등질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숙부이자 중도대관인 경조왕 탁발자추는 생각이 깊고 고상하며 인자하고 후덕하여 평소에 칭찬을 받고 있어서 제위를 선양하려고 하였다. ⑱. 魏顯祖聰睿夙成,剛毅有斷;而好黃、老、浮屠之學,每引朝士及沙門共談玄理,雅薄富貴,常有遺世之心。以叔父中都大官京兆王子推沈雅仁厚,素有時譽,欲禪以帝位。〈中都大官卽□□□□□穆帝之子。斷,丁亂翻。沈,持林翻。〉 당시 태위 원하가 여러 군대를 감독하며 사막의 남쪽에 주..

카테고리 없음 2020.10.16

履霜有漸,堅冰自至[lǚshuāngyǒujiàn jiānbīng zìzhì]서리가 밟히다가 어름이 언다/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4日(陰8/30)壬辰

《南北朝 宋紀15 明帝 泰始 7年》〈辛亥, 471年〉 ⑩. 가을, 7월에 파릉애왕 유휴약이 건강에 도착하였는데, 9일에 집에서 죽음을 내리고, 시중·사공을 추증하였다. 다시 계양왕 유휴범을 강주 자사로 삼았다. 당시에 황상이 여러 동생들을 모두 제거하엿는데, 오직 유휴범만이 사람됨과 재주가 평범하고 졸렬하여 황상의 시기함을 받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온전할 수 있었다. ⑩. 秋,七月,巴陵哀王休若至建康;乙丑,賜死於第,贈侍中、司空。復以桂陽王休範爲江州刺史。〈復,扶又翻。〉時上諸弟俱盡,唯休範以人才凡劣,不爲上所忌,故得全。〈爲後休範稱兵張本。〉 심약이 평론하였다. "성인이 법률을 수립하고 제도를 후세에 전하면서 반드시 선황들의 말씀이라고 하는 까닭은 대개 남긴 교훈과 남아잇는 풍습이 다음 세대에 충분히 미치게 하려는 것..

카테고리 없음 2020.10.16

有異相,當爲天子[yǒuyìxiāng,dāngwèitiānzi]상이 달라 당연 천자될 상/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4日(陰8/30)壬辰

《南北朝 宋紀14 明帝 泰始 6年》〈庚戌, 470年〉 ⑩. 6월 11일에 강주자사 왕경문을 상서좌복야·양주자사로 삼고, 상서복야 원찬을 우복야로 삼았다. 황상이 궁중에서 큰 연회를 열었는데, 궁여들을 발가벗기고 그것을 보자, 왕황후가 부채로 얼굴을 가렸다., 황상이 화를 내며 말하였다. "처갓집은 참으로 궁상맞구려! 지금 함께 즐기고 있는데, 어찌하여 혼자는 보지 않는 것이오?" ⑩. 六月,癸卯,以江州刺史王景文爲尚書左僕射、揚州刺史,以尚書僕射袁粲爲右僕射。 上宮中大宴,裸婦人而觀之,〈裸,郎果翻。〉王后以扇障面。上怒曰:「外舍寒乞!〈寒乞,猶言窮陋也。〉今共爲樂,何獨不視!」 왕왕후가 말하였다. "즐기는 일에는 그 방법이 있는데, 어찌하여 고모와 누나 그리고 여동생이 모여 있는데, 궁여들을 발가벗게 하여 웃음거리로 삼습..

카테고리 없음 2020.10.16

順福迕禍[shùnfúwùhuò]따르면 복을 내리고 거스르면 재앙을 내렸다./ 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3日(陰8/29)辛卯

《南北朝 宋紀14 明帝 泰始 4年》〈戊申, 468年〉 ㉔. 이보다 먼저 중서시랑·사인을 모두 명류로 삼았으나, 태조가 처음으로 한사 추당을 기용하고, 세조가 사인과 서인을 썪어서 뽑았는데, 소상지·대법흥이 모두 용사하였다. ㉔. 先是,中書侍郎、舍人皆以名流爲之,〈史曰先是,謂元嘉以前,《通鑑》因而書之。先,悉薦翻。〉太祖始用寒士秋當,〈秋當,人姓名。《姓譜》:秋姓,秋胡之後。〉世祖猶雜選士庶,巢尚之、戴法興皆用事。〈士,謂巢尚之;庶,謂戴法興。皆,俱也。〉 황상이 즉위하게 되자, 좌우의 세인들을 모두 기용하여, 유격장군 완전부·중서통사사인 왕도륭·원외산기량 양운장 등이 함께 정사에 참여하였는데, 권력이 황제와 버금가서 소상지·대법흥이 미칠 수가 없었다. 及上卽位,盡用左右細人,〈細,微也,纖也,小也。細人,言纖微小人也。〉游擊將軍阮佃..

카테고리 없음 2020.10.15

一失豪釐,其差遠矣[yīshīháolí,qíchàyuǎnyǐ]/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3日(陰8/29)辛卯

《南北朝 宋紀14 明帝 泰始 3年》〈丁未, 467年〉 ①. 봄, 정월, 장영 등이 성을 버리고 밤에 숨어버렸다. 마침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려 사수가 얼어서 합쳐졌으므로, 장영 등은 배를 버리고 걸어서 달아낫는데, 사졸 중에 얼어서 죽은 자가 반을 넘었고, 손과 발이 잘려진 자가 10명 가운데 7~8명이었다. 위 울원이 그 전방을 맞이하여 공격하고, 설안도가 그 후방을 타며 여량(서주)의 동쪽에서 장영 등을 대파하니, 죽은 자가 1만여 명이었고, 드러누운 시체는 60여 리에 걸쳐 있었으며, 내버린 군수물자와 무기는 헤아릴 수 없었는데, 장영은 발가락과 손가락이 역시 떨어졌으나 심유지와 함께 겨우 죽음을 면하였으며, 양남진이주(섬서 한중)자사인 원공조 등은 위에 사로잡혔다. ①. 春,正月,張永等棄城夜遁。〈《..

카테고리 없음 2020.10.15

상동왕 유욱의 등극/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2日(陰8/28)庚寅

《南北朝 宋紀12 明帝 泰始 元年》〈乙巳, 465年〉 ㉔. 시월 29일에 황제가 여러 비·공주를 불러서 앞에다 한 줄로 배열시키고 좌우 사람에게 강요하여 그들을 욕보이도록 하였다. ㉔. 戊午,帝召諸妃、主列於前,強左右使辱之。〈強,其兩翻。〉 ........................................................중략............................................................ 南平王鑠妃江氏不從。〈妃卽江湛之妹。鑠,式灼翻。〉帝怒,殺妃三子南平王敬猷、廬陵王敬先、安南侯敬淵,鞭江妃一百。 先是民間訛言湘中出天子,〈先,悉薦翻。〉帝將南巡荊、湘二州以厭之。〈厭,一涉翻。師古曰:塞,當也。〉明旦,欲先誅湘東王彧,然後發。 初,帝旣殺諸公,恐羣下謀己,以直閤將軍宗越、譚..

카테고리 없음 2020.10.14

無復人理[wú fù rén lǐ]다시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갖지 못하다. / 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2日(陰8/28)庚寅

南北朝 宋紀12 明帝 泰始 元年》〈乙巳, 465年〉 ㉓. 폐제가 諸父(叔父,堂叔 등)들을 두려워하고 꺼리며 그들이 밖에서 우환을 만들까 두려워하여서 모두 건강에 모아놓고 궁전 내에 가두고 구타하고 채찍질하였으며 능멸하고 끌고 다녔으니 다시는 인간으로서의 도리를 갖지 못하였다. ㉓. 帝畏忌諸父,恐其在外爲患,皆聚之建康,拘於殿內,毆捶陵曳,無復人理。〈親親悌長,人之常理;廢帝悖之。毆,烏口翻。捶,止橤翻。復,扶又翻,又如字。〉 상동왕 유욱·건안왕 유후인·산양왕 유휴우는 모두 살찌고 건장하였는데, 황제가 대나무 바구니를 만들어 담아가지고 저울질하고서 유욱이 더욱 살찐 까닭에 그를 '猪王'이라고 하고, 유휴인을 '殺王'이라고 하였으며, 유휴우를 '賊王'이라고 하였다. 세명의 왕은 나이가 많았기 때문에 더욱 그 들을 미워하였..

카테고리 없음 2020.10.14

長於附會,又飾以典文[zhǎngyúfùhuì,yòushìyǐdiǎnwén]견강부회를 잘하고 이를 법조문과 문장으로 꾸미다. / 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2日(陰8/28)庚寅

《南北朝 宋紀12 明帝 泰始 元年》〈乙巳, 465年〉 ⑪.폐제는 어렸으나 조급하고 포학하였다. 즉위하게 되자 처음에는 태후와 대신 그리고 대법흥 등을 어려워하여서 감히 스스로 방자하지 못하였다. 태후가 이미 죽고 나서 황제의 나이가 점차 많아지니 하고 싶은 것이 있었으나, 대법흥이 번번이 그것을 억제하고 황제에게 말하였다. ⑪. 廢帝幼而狷暴。〈狷,吉掾翻。〉及卽位,始猶難太后、大臣及戴法興等,未敢自恣。太后旣殂,〈去年,太后殂。〉帝年漸長,〈長,知兩翻。〉欲有所爲,法興輒抑制之,謂帝曰: "官家[guānjiā]에서 하는 것이 이와 같으면 영양( 무제 후에 즉위하였으나 폐위되었다.)을 만들려고 할 것입니다." 폐제는 차츰 평안할 수 없었다.총애를 받는 환관 화원아에게는 하사하여 주는 것이 헤아릴 수 없었는데, 대법흥이 항..

카테고리 없음 2020.10.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