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南北朝 宋紀16 順帝 昇明 元年》〈丁巳, 477年〉 ㉓. 윤12월 16일에 후군장군 양운장을 선선 태수로 삼았는데, 이에 태종의 폐신 가운데 금성에 있는 사람이 없었다. ㉓. 乙未,以後軍將軍楊運長爲宣城太守;於是太宗嬖臣無在禁省者矣。〈嬖,卑義翻。又,博計翻。〉 심약이 론하였다. "무릇 인군이 남쪽을 향하여 앉아 있게 되면 아홉 겹 속에 깊숙이 떨어져 있게 되고, 아침저녁으로 모시고 받들게 되니 뜻으로 보아 경사들과는 막혀 있게 되어 폐달에서의 임무는 마땅히 유사가 갖고 있게 된다. 이미 그리하고 나서 은혜는 친한데서 생겨나고 신뢰는 은혜로 말미암아서 굳어지며 꺼리는 자세는 없어지고 쉽게 가까이 하는 기색이 있게 된다. 沈約論曰:夫人君南面,九重奧絕,〈重,直龍翻。〉陪奉朝夕,義隔卿士,階闥之任,宜有司存。旣而恩以狎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