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履霜有漸,堅冰自至[lǚshuāngyǒujiàn jiānbīng zìzhì]서리가 밟히다가 어름이 언다/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4日(陰8/30)壬辰

solpee 2020. 10. 16. 16:49

《南北朝 宋紀15 明帝 泰始 7年》〈辛亥, 471年

 

 ⑩. 가을, 7월에 파릉애왕 유휴약이 건강에 도착하였는데, 9일에 집에서 죽음을 내리고, 시중·사공을 추증하였다. 다시 계양왕 유휴범을 강주 자사로 삼았다. 당시에 황상이 여러 동생들을 모두 제거하엿는데, 오직 유휴범만이 사람됨과 재주가 평범하고 졸렬하여 황상의 시기함을 받지 않았으니, 그러므로 온전할 수 있었다.

 ⑩. 秋,七月,巴陵哀王休若至建康;乙丑,賜死於第,贈侍中、司空。復以桂陽王休範爲江州刺史。復,扶又翻。時上諸弟俱盡,唯休範以人才凡劣,不爲上所忌,故得全。爲後休範稱兵張本。

 

 심약이 평론하였다.

 "성인이 법률을 수립하고 제도를 후세에 전하면서 반드시 선황들의 말씀이라고 하는 까닭은 대개 남긴 교훈과 남아잇는 풍습이 다음 세대에 충분히 미치게 하려는 것이다. 태조가 나라를 경영하려는 대의는 비록 광대하였지만 가정을 융성시키는 방법에서는 부족하였다.

 沈約論曰:聖人立法垂制,所以必稱先王,蓋由遺訓餘風,足以貽之來世也。太祖經國之義雖弘,隆家之道不足。

 

 팽성왕은 옛 것에 비추어 살피지 않고, 한갓 곤제의 의리만을 보고 아직 임금과 신하의 예의를 알지 못하였으며, 가족의 정을 가지고 국가통치가 이루어지기를 희망하였으며, 인주된 자가 시기하는데도 오히려 무례를 범하고 은혜가 야박하게 되었는데도 아직 깨닫지 못하고 훈계하는 것을 질책하는 미천한 행실을 하기에 이르렀으니, 드디어 친척을 멸망시키는 큰 재화를 이루었다.

 彭城王照不窺古,徒見昆弟之義,未識君臣之禮,冀以家情行之國道,主猜而猶犯,恩薄而未悟,致以呵訓之微行,遂成滅親之大禍。謂文帝殺彭城王義康也。沈約言義康之罪,文帝當呵而訓之,不當遂殺之也。行,下孟翻。

 

 처음 실마리를 열 때 틈을 만들어서 그것을 후세 사람들에게 전하였다. 태종께서는 틈이 생긴 것을 바꾸려는 정을 통하여 이미 시행한 전례에 근거하여 큰 가지를 잘라 떨어뜨리고 돌아보아 생각하기를 기다리지 않았다. 이미 그렇게 하고 나니 본 뿌리는 비호해줄 사람이 없어서 어린 군주는 고립되었고, 신기는 세력이 괴약해져서 기울고 옮겨졌으며, 신령한 운명은 즐겨하는 것을 따라가다가 바뀌니, 이는 대개 서리가 밟히게 되고 조금씩 나아가서 굳게 어름이 어는 것이 스스로 닥칠 것인데, 그 유래하는 것은 멀다."

 開端樹隙,垂之後人。太宗因易隙之情,據已行之典,翦落洪枝,謂據文帝已行之典而翦除兄弟也。洪,大也;枝,兄弟也。嫡統爲本,支庶爲枝。易,弋豉翻。不待顧慮。旣而本根無庇,幼主孤立,神器以勢弱傾移,靈命隨樂推回改,樂,音洛。斯蓋履霜有漸,堅冰自至,所由來遠矣。

 

 배자야가 평론하였다.

 "무릇 호랑이를 씹어 삼키는 짐승도 자기 새끼를 사랑할 줄 알고, 이리와 싸우는 새는 다른 둥지를 보호하지 않는다. 태종(유욱)은 螟蛉(명령:푸른 나방과 나비의 유충, 즉 양자를 뜻함. 나비나 벌이 명령의 새끼를 길러 자기 아들로 삼는다. 또 명제는 고자여서 제왕의 아들을 자기 아들로 삼았다.)을 보호하고 사랑하면서 동기들을 죽였으니, 이미 원래의 하늘이 맺어준 혈연관계를 모르고 아버지와 아들의 자연스런 관게를 알지 못하였다.

 裴子野論曰:夫噬虎之獸,知愛己子;搏貍之鳥,非護異巢。太宗保字螟蛉,剿拉同氣,旣迷在原之天屬,未識父子之自然。《詩》曰:螟蛉之子,蜾臝負之。敎誨爾子,式穀似之。故世俗謂抱養者爲螟蛉。又曰:脊令在原,兄弟急難。剿,子小翻,絕也。拉,盧合翻。

 

 송의 덕이 종막을 고하는 것은 하늘이 폐절한 것은 아니다. 무릇 위기에 처하게 되고 패망하게 한 군주 가운데 일찍이 가지를 먼저 버리고 곁가지인 방계의 서열을 사랑하고 보호하지 않은 사람이 없으니, 총애하고 친한 사람을 밀어 올리고 정성을 다하면서 아버지와 형제를 질시하고 미워하였다.

 宋德告終,非天廢也。夫危亡之君,未嘗不先棄本枝,嫗煦旁孼;鄭康成曰:體曰嫗,氣曰煦。陸德明曰:嫗,於具翻;徐於甫翻。煦,許具翻;徐況甫翻。孼,魚列翻。《說文》:庶子爲孼。旁孼,旁枝之庶子也。推誠嬖狎,嬖,卑義翻,又博計翻。疾惡父兄。惡,烏路翻。

 

 앞에 가던 수레가 엎어졌는데 뒤에 오는 수레도 같은 길을 가고 있다. 설령 현제들이 나라를 소유했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하늘에 배향하는 것을 잃지 않을 것인데, 그러나 다른 사람이 궁궐에 들어온다면 장차 일곱 개의 사당에서의 제사가 끊어질 것이니, 일찍이 이러한 생각을 품을 일은 없었지만, 단 마음으로 잘라냈다.

 前乘覆車,後來幷轡。借使叔仲有國,猶不失配天;而他人入室,將七廟絕祀;曾是莫懷,甘心揃落。揃,子踐翻。

 

 진무(晉武皇 司馬炎)가 문명황후(사마염의 모친)의 부탁(셋째 司馬攸를 천거)을 위배(둘째 司馬衷을 세움:혼군 중의 혼군이었다.)하니 중주를 전복시킨 사람은 가후(惠帝 사마충의 정처 가남풍)였으며, 태조께서 초령의 맹세(文帝 劉義隆이 初寧陵에 갔을 때 누나 회계공주의 면전에서 동생 劉義康을 죽이지 않겠다 맹세하곤 나중에 죽였다.)를 버리니, 합전에 오른 사람은 원흉(元凶은 효무제 劉劭)이었다. 화와 복은 문이 없으며, 어찌 그것을 미리 선택할 수 있겠는가? 형제간에 우애 있는 것이 또한 편안하지 않겠는가?"

 晉武背文明之託,而覆中州者賈后;事見《晉武帝紀》。背,蒲妹翻。太祖棄初寧之誓,而登合殿者元凶。事見《文帝紀》。禍福無門,奚其豫擇!友于兄弟,不亦安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