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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동왕 유욱의 등극/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2日(陰8/28)庚寅

solpee 2020. 10. 14. 19:40

《南北朝 宋紀12 明帝 泰始 元年》〈乙巳, 465年

 

 ㉔. 시월 29일에 황제가 여러 비·공주를 불러서 앞에다 한 줄로 배열시키고 좌우 사람에게 강요하여 그들을 욕보이도록 하였다.

 ㉔. 戊午,帝召諸妃、主列於前,強左右使辱之。強,其兩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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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南平王鑠妃江氏不從。妃卽江湛之妹。鑠,式灼翻。帝怒,殺妃三子南平王敬猷、廬陵王敬先、安南侯敬淵,鞭江妃一百。

先是民間訛言湘中出天子,先,悉薦翻。帝將南巡荊、湘二州以厭之。厭,一涉翻。師古曰:塞,當也。明旦,欲先誅湘東王彧,然後發。

初,帝旣殺諸公,恐羣下謀己,以直閤將軍宗越、譚金、童太一、沈攸之等有勇力,引爲爪牙,賞賜美人、金帛,充牣其家。江左以直閤將軍出入省閤,總領宿衞。牣,滿也。越等久在殿省,衆所畏服,皆爲帝盡力;爲,于僞翻。帝恃之,益無所顧憚,恣爲不道,中外騷然。左右宿衞之士皆有異志,而畏越等不敢發。時三王久幽,不知所爲。湘東王彧主衣會稽阮佃夫、內監始【章:甲十一行本「始」作「吳」;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興王道隆、江左之制,天子及諸王皆有內監。內監,齋監也。齋內自主帥以下,皆得監察之。會,工外翻。佃,音田。學官令臨淮李道兒晉制:諸王國置學官令一人。與直閤將軍柳光世及帝左右琅邪淳于文祖等謀弒帝。帝以立后故,假諸王閹人。閹,於廉翻。彧左右錢藍生亦在中,彧密使候帝動止。

先是帝遊華林園竹林堂,先,悉薦翻。竹林堂,華林園後堂也。使宮人倮相逐;倮,郎果翻。一人不從命,斬之,夜,夢在竹林堂,有女子罵曰:「帝悖虐不道,悖,蒲妹翻。明年不及熟矣!」帝於宮中求得一人似所夢者斬之。又夢所殺者罵曰:「我已訴上帝矣!」《通鑑》不語怪,而獨書此事者,以明人不可妄殺,而天聰明爲不可欺也。於是巫覡言竹林堂有鬼。是日晡時,帝出華林園。建安王休仁、山陽王休祐、會稽公主並從,覡,刑狄翻。晡,奔謨翻。從,才用翻。湘東王彧獨在祕書省,祕書省,藏圖書之所,在禁中。不被召,益憂懼。被,皮義翻。

 

 폐제가 평소 主衣(의복책임자)인 오흥 사람 수적지를 미워하여서 볼 때마다 번번이 이를 갈았는데, 완전부는 그가 모의한 것을 수적지와 외감전사인 동양 사람 주유·세개주인 남팽성 사람 강산지·세개장인 진릉 사람 왕경칙·중서사인 대명보에게 알렸는데, 수적지 등이 그 소식을 듣고서 모두 호응하였다.

 帝素惡主衣吳興壽寂之,見輒切齒,惡,烏路翻。《風俗通》:吳王壽夢之後;又有大夫壽越。阮佃夫以其謀告寂之及外監典事東陽朱幼、李延壽《恩倖傳論》曰:若徵兵動衆,大興人役,優劇遠近,斷於內監之心;譴辱詆訶,恣於典事之口;抑符緩詔,姦僞非一。書死爲生,請謁成市,左臂揮金,右手刊字,紙爲銅落,筆爲利染。細鎧主南彭城姜產之、晉氏渡江,立南彭城郡於晉陵界。鎧,可亥翻。《考異》曰:「產」,或作「彥」,《宋書》、《宋略》、《南史》皆作「產」,今從之。細鎧將晉陵王敬則、吳分吳郡無錫以西爲毗陵郡。晉東海王越世子名毗,而東海國故食毗陵,懷帝永嘉五年改爲晉陵郡。將,卽亮翻。中書舍人戴明寶,寂之等聞之,皆響應。

 

 주유는 미리 안팎의 사람들을 챙기고 전감생으로 하여금 비밀리에 유휴인·유휴우에게 알리도록 하였다. 이때 황제가 남쪽으로 순행을 하려고 하자 심복 종월 등이 모두 밖에 나가서 여장을 꾸렸고, 오직 대주 번승정이 화림합을 먹고 있었다. 유공세와 번승정은 고향사람이었고, 때문에 몰래 그를 받아들였는데, 번승정이 곧 명령을 받았다. 무릇 함께 모의한 사람이 10여 명이었다.

 幼豫約勒內外,使錢藍生密報休仁、休祐。時帝欲南巡,腹心宗越等並聽出外裝束,唯隊主樊僧整防華林閤。防守華林閤門也。柳光世與僧整,鄕人,因密邀之;僧整卽受命。柳氏本河東人,僑居襄陽;樊僧整蓋亦河東人也。凡同謀十餘人。

 

 완전부는 힘이 적어서 성공하지 못할까 걱정하고 다시 불러서 합치려고 하니, 수적지가 말하였다.

 "모의하는 것이 넓어지면 혹시 누설되니 많은 사람을 다시 불러서 번거롭게 할 필요는 없다."

 그날 저녁에 황제가 시종을 다 물리치고 여러 무당들과 화려한 색깔의 옷을 입은 여자 수백 명과 더불어 죽림당에서 귀신을 화살로 쏘았다. 일이 끝나고 음악을 연주할 참에 수적지가 칼을 뽑아 가지고 앞으로 들어가고 강산지가 그 다음이며 순우문조 등이 모두 그 뒤를 따랐다. 유휴인이 걷는 소리가 아주 빠른 것을 듣고서 유휴우에게 말하였다.

 阮佃夫慮力少不濟,更欲招合,少,詩沼翻。壽寂之曰:「謀廣或泄,不煩多人。」其夕,帝悉屛侍衞,屛,必郢翻。與羣巫及綵女數百人綵女,倣後漢采女之制。射鬼於竹林堂。射,而亦翻;下射之同。事畢,將奏樂,壽寂之抽刀前入,姜產之次之,淳于文祖等皆隨其後,休仁聞行聲甚疾,謂休祐曰:

 

 "일이 일어났다."

 서로 좇아서 경양산으로 달아낫다. 황제가 수적지가 오는 것을 보고서 활을 빼내어서 화살을 쏘앗으나 맞지 않앗다. 채색의 옷을 입은 여자들이 모두 달아났고 황제 역시 달아나는데, 크게 '寂寂[jìjì]'이라고 세 번 소리치니 수적지가 쫓아가서 그를 시해하였다. 숙위에게 선포하였다.

 "상동왕이 태황태후의 명을 받아서 광폭한 군주를 제거하고 지금 이미 평정하였다."

 궁정에서는 당황하여 어찌할 바를 몰랐다.

 「事作矣!」相隨奔景陽山。文帝元嘉二十三年,起景陽山於華林園。帝見寂之至,引弓射之,不中。綵女皆迸走,帝亦走,大呼「寂寂」者三,中,竹仲翻。迸,北孟翻。呼,火故翻。寂之追而弒之。年十七。宣令宿衞曰:「湘東王受太皇太后令,除狂主,今已平定。」殿省惶惑,未知所爲。

 

 유휴인이 비서성에 가서 상동왕을 접견하고 바로 신하라고 자칭하였으며, 서당으로 데리고 올라가 어좌에 올라가서 여러 대신을 접견하게 하였다.

 休仁就祕書省見湘東王,卽稱臣,引升西堂,登御座,召見諸大臣。見,賢遍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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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于時事起倉猝,王失履,跣至西堂,猶著烏帽。著,陟略翻。坐定,休仁呼主衣以白帽代之。江南,天子宴居著白紗帽。令備羽儀,雖未卽位,凡事悉稱令書施行。

 

 태황태후의 명령을 선포하고 폐제의 죄악을 일일이 헤아리고 상동왕에게 명하여 황제의 지위를 이어받도록 하였다. 날이 밝자 종월 등이 비로소 들어왔는데, 상동왕이 아주 후하게 위로하며 맞았다.

 宣太皇太后令,數廢帝罪惡,數,所具翻。命湘東王纂承皇極。及明,宗越等始入,湘東王撫接甚厚。

 

 폐제의 친동생이며 사도·양주자사인 예장왕 유자상은 고집이 세고 패악하여 형의 기풍을 갖고 있었는데, 30일에 상동왕이 태황태후의 명으로 유자상과 회계공주에게 죽음을 내렸다. 건안왕 유후인 등은 비로소 나가서 외부의 사택에 머무를 수 있었다. 사장을 감옥에서 석방하였다. 폐제의 시신이 아직도 태의의 문 입구에 가로뉘어 있었다. 채흥종이 상서우복야 왕욱에게 말하였다.

 廢帝母弟司徒、揚州刺史豫章王子尚,頑悖有兄風,悖,蒲內翻,又蒲沒翻;下同。己未,湘東王以太皇太后令,賜子尚及會稽公主死。會,工外翻。建安王休仁等始得出居外舍。外舍,外第也。釋謝莊之囚。謝莊以誄殷貴妃被囚,事見上。廢帝猶橫尸太醫閤口。蔡興宗謂尚書右僕射王彧曰:

 

 "이 사람은 비록 흉측하고 패악하였으나 요컨대 천하의 주군이었으니 의당 간단하게 상례를 치르면 대강이라도 충분할 것인데 만약 줄곧 이와 같이 내버려 둔다면 사해에서 반드시 이것을 타는 사람이 잇을 것입니다."

 이에 그를 말릉현의 남쪽에 장사지냈다.

 「此雖凶悖,要是天下之主,宜使喪禮粗足;若直如此,四海必將乘人。」言乘此以奉辭伐罪。王彧,湘東王妃兄也,故蔡興宗與之言。粗,坐五翻。乃葬之秣陵縣南。葬於秣陵縣南郊壇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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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初,湘東王母沈婕妤早卒,婕妤,音接予。卒,子恤翻。路太后養之。王事太后甚謹,太后愛王亦篤。王旣弒廢帝,欲慰太后心,下令以太后弟子休之爲黃門侍郎,茂之爲中書侍郎。

論功行賞,壽寂之等十四人皆封縣侯、縣子。

十二月,庚申朔,以東海王禕爲中書監、太尉。禕,吁韋翻。進鎭軍將軍、江州刺史晉安王子勛爲車騎將軍、開府儀同三司。騎,奇寄翻。癸亥,以建安王休仁爲司徒、尚書令、揚州刺史,以山陽王休祐爲荊州刺史,桂陽王休範爲南徐州刺史。乙丑,徙安陸王子綏爲江夏王。

 

 ㉕. 12월 7일에 상동왕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고, 대사면령을 내렸으며 연호를 고쳤다 폐제 때의 우매한 명령과 그릇된 책봉은 모두 삭제하였다.

 ㉕. 丙寅,湘東王卽皇帝位,大赦,改元。至此始改元泰始。其廢帝時昏制謬封,並皆刊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