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一士不可親,弓長射殺人[yīshì bùkě qīn,gōngzhǎng shè shārén]一士는 王, 弓長은 張/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5日(陰9戌月/1朔)癸巳

solpee 2020. 10. 17. 06:09

《南北朝 宋紀15 明帝 泰始 7年》〈辛亥, 471年

 

 ㉓. 왕경문이 항상 가득가득 꽉 차는 것을 우려하여 여러 차레 자리와 책임을 사양하였으나 황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나 마음 속으로는 왕경문이 외척인데다 지위가 높고 세력이 왕성해지고, 장영은 여러 번 군대를 거느렸으므로 그들을 장래에는 신임하기가 어렵다고 의심하고, 마침내 스스로 요언을 지어 말하였다.

 ㉓. 王景文常以盛滿爲憂,屢辭位任,上不許,然中心以景文外戚貴盛,張永累經軍旅,疑其將來難信,乃自爲謠言曰:

 

 "한 선비는 가까이할 수 없고, 궁장은 활을 쏘아 사람을 죽이네."

 왕경문이 더욱 두려워하여 스스로 표문을 올려 양주 자사를 해직하고자 하였는데, 마음이 심히 간절하고 지극하였다. 조서를 내려 회답하였다.

一士不可親,弓長射殺人。」射,而亦翻。景文彌懼,自表解揚州,情甚切至。詔報曰:

 

 "사람이 귀하고 중요한 지위에 있지만, 그러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물을 뿐이다. 대명(457~464)의 시대에 巢와 徐, 그리고 二戴는 직위가 집극에 지나지 않았으나 권력은 인주를 지나쳤다. 지금 원찬이 복야와 영선을 지내고 있으나 사람들이 때때로 원찬이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였으며, 원찬이 상서령으로 옮겨서 그 관직에 있어도 의심하지 않았는데, 사람들의 마음이 원찬을 향하여도 욕심이 없고 깨끗한 모습 역시 다시 평일의 모습을 고치지 않았다.

 「人居貴要,但問心若爲耳。言但問其存心如何耳。大明之世,巢、徐、二戴,位不過執戟,權亢人主巢,謂巢尚之;徐,謂徐爰;二戴,謂法興、明寶。亢,口浪翻,高也。今袁粲作僕射領選,選,須絹翻。而人往往不知有粲,粲遷爲令,居之不疑;人情向粲,淡然亦復不改常日

 

 이러한 태도로써 귀한 지위와 중요한 직책에 있었으니, 마땅히 근심과 두려움에 떨지 않았겠는가?

 무릇 귀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위험의 두려움이 있고, 비천한 사람에게는 구덩이에 묻히는 근심이 있고, 화를 피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무심하게 운명에 맡기는 것만 못하니, 존망의 요체는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같은 이치일 뿐이다

 以此居貴位要任,當有致憂競不?袁粲之簡淡雅素,自足以鎭雅俗;而明帝謂其可以託孤,則眞違才易務矣。然粲才雖不足,以死繼之,無愧於爲臣之大節;其視褚淵,相去豈不遠哉!復,扶又翻。「競」,當作「兢」。不,讀曰否。夫貴高有危殆之懼,卑賤有塡壑之憂,有心於避禍,不如無心於任運,存亡之要,巨細一揆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