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栖心浩然[qīxīn hàorán]널리 마음 공부하다/ 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5日(陰9戌月/1朔)癸巳

solpee 2020. 10. 16. 20:08

《南北朝 宋紀15 明帝 泰始 7年》〈辛亥, 471年

 

 ⑱. 위의 현조(탁발홍)는 총명하고 예지가 있으며 일찍 성숙했고, 강직하고 굳세며 결단성이 있었으나 黃·老·浮屠의 학문을 좋아해서 매번 조정의 신하들과 사문을 불러 보면서 함께 현묘한 이치에 대해 이야기할 때마다 부귀를 가볍게 여겼고, 항상 세상을 등질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 숙부이자 중도대관인 경조왕 탁발자추는 생각이 깊고 고상하며 인자하고 후덕하여 평소에 칭찬을 받고 있어서 제위를 선양하려고 하였다.

 ⑱. 魏顯祖聰睿夙成,剛毅有斷;而好黃、老、浮屠之學,每引朝士及沙門共談玄理,雅薄富貴,常有遺世之心。以叔父中都大官京兆王子推沈雅仁厚,素有時譽,欲禪以帝位。中都大官卽□□□□□穆帝之子。斷,丁亂翻。沈,持林翻。

 

 당시 태위 원하가 여러 군대를 감독하며 사막의 남쪽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치전으로 그를 소환하게 했다. 이미 도착하고 나자 공경들을 모아서 큰일을 논의하였지만 모두가 감히 먼저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임성왕 탁발운은 탁발자추의 동생인데, 대답하였다.

 時太尉源賀督諸軍屯漠南,馳傳召之。傳,株戀翻。旣至,會公卿大議,皆莫敢先言。任城王雲,子推之弟也,任,音壬。對曰:

 

 "폐하께서는 바야흐로 융성하고 태평하게 하고 사해를 덮어 군림하였으니, 어찌 위로는 종묘를 어기고 아래로는 많은 백성들을 버릴 수 있겠습니까? 또한 아버지에게서 아들로 전위하는 것은 그 내력이 오래 되었습니다. 폐하께서 반드시 먼지 나는 일을 버리려고 하신다면 황태자가 마땅히 정통을 계승해야 합니다.

 「陛下方隆太平,臨覆四海,覆,敷又翻。豈得上違宗廟,下棄兆民。且父子相傳,其來久矣。陛下必欲委棄塵務,則皇太子宜承正統。

 

 무릇 천하라는 것은 조종의 천하인데, 폐하께서 만약 旁支(旁系 親族)에게 고쳐서 전수한다면 아마도 옛 성인들의 뜻을 그릇되게 하고 간사하고 난리를 일으키려는 사람의 마음을 열게 될까 두려운데, 이것이 바로 화복의 근원이 되니 신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夫天下者,祖宗之天下;陛下若更授旁支,恐非先聖之意,啓姦亂之心,斯乃禍福之原,不可不愼也。」

 

 원하가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지금 황숙에게 보위를 선양하려고 하는데, 신은 昭穆(종묘제례의 차례)이 문란하여 후세에는 반드시 逆祀(제사의 항렬을 무너뜨림)했다는 비난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바라건대 임성왕의 말을 깊이 생각하여 주십시오."

 源賀曰:「陛下今欲禪位皇叔,臣恐紊亂昭穆,後世必有逆祀之譏。《春秋》:魯莊公薨,子般弒,季友立閔公;閔公復弒,立僖公。閔公,弟也,僖公,兄也。及僖公薨,魯人以先大後小爲順,遂躋僖公於閔公之上。仲尼以臧文仲不知者三,縱逆祀其一也。言宗廟之祀,姪爲昭而叔爲穆,亂也,後世必以逆祀貽譏。更,工衡翻。紊,亡運翻。昭,時招翻。願深思任城之言。」

 

 동양공 탁발비 등이 말하였다.

 "황태자가 비록 성덕이 일찍 드러났다고 하더라도 그러나 실제로는 너무(5세) 어립니다. 폐하께서는 춘추(18세)로 보아 넉넉하시고, 처음으로 만기를 돌아보시는데, 어찌하여 오직 홀로의 선행만을 높이려 하시고 천하 사람들을 마음에 두지 않으시니 종묘는 어찌할 것이며, 많은 백성은 어찌하시겠습니까?"

 東陽公丕等日:「皇太子雖聖德早彰,然實沖幼。陛下富於春秋,始覽萬機,柰何欲隆獨善,不以天下爲心,其若宗廟何!其若億兆何!」

 

 상서 육발이 말하였다.

 "폐하께서 만약 태자를 버리시고 제왕들로 교체할 것을 논의한다면, 신은 청컨대 전정에서 목을 베고 죽을 지언정 감히 조서를 받들 수 없습니다."

 황제가 화가 나서 안색이 변했으며, 환자이자 선부상서인 추천 사람 조흑에게 물으니, 조흑이 말하였다.

 尚書陸馛曰:「陛下若捨太子,更議諸王,臣請刎頸殿庭,不敢奉詔!」馛,蒲撥翻。刎,扶粉翻。帝怒,變色;以問宦者選部尚書酒泉趙黑,黑曰:

 

 "신은 죽음으로써 황태자를 받들고 추대할 것이며, 다른 것은 알지 못합니다."

 황제는 잠자코 있었다.

 그때 태자 탁발굉이 태어난 지 5년이 되었는데, 황제는 그가 어리니 그러므로 탁발자추에게 전위하려고 한 것이다. 중서령 고윤이 말하였다.

 "신은 감히 많은 말은 하지 않겠으나 바라건대 폐하께서는 위로는 종묘에서 부탁한 중임을 생각하시고 주공이 성왕을 안고 보필하였던 지난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臣以死奉戴皇太子,不知其他!」帝默然。陸馛之言則怒而變色,趙黑之言則默然心服者,以衆屬於正嫡也。但朝廷大議,作色於陸馛而默爾於宦官,臣庶何觀!魏之朝綱可想而見矣。選,須絹翻。時太子宏生五年矣,帝以其幼,故欲傳位子推。中書令高允曰:「臣不敢多言,願陛下上思宗廟託付之重,追念周公抱成王之事。」

 

 황제가 마침내 말하였다.

 "그렇다면 태자를 세우고 여러 공들이 그를 보필한다면 어찌 안 될 것이 있겠오."

 또 말하였다.

 "육발은 곧은 신하이니, 반드시 나의 아들을 보필할 수 있을 것이오."

 마침내 육발을 태보로 삼고, 원하와 더불어 부절을 가지고 황제의 옥새와 그 인끈을 받들고 태자에게 전위하게 하였다. 20일에 고조가 황제에 즉위하였고, 대사면령을  내리고, 연호를 연흥으로 고쳤다. 

 帝乃曰:「然則立太子,羣公輔之,有何不可!」高允之言婉而當,且發於衆言交進之後,故轉移上意,爲力差易。又曰:「陸馛,直臣也,必能保吾子。」乃以馛爲太保,與源賀持節奉皇帝璽紱傳位於太子。璽,斯氏翻。《考異》曰:《後魏‧天象志》云:「上迫於太后,傳位太子。」按馮太后若迫顯祖傳位,當奪其大政,安得猶總萬機!今從《帝紀》。丙午,高祖卽皇帝位,諱宏,顯祖獻文皇帝之長子也。大赦,改元延興。

 

 고조는 어려도 지극한 성품을 갖고 잇어서 지난해에 현조에게 종기가 나자 고조는 친히 입으로 빨았다. 선양 받을 때는 슬피 울어 스스로를 이기지 못하였다. 현조가 그 까닭을 물으니, 대답하였다.

 "아버지를 대신하는 감정이 안에서 마음으로 절통합니다."

 21일에 현조가 조서를 내려서 말하였다.

 "짐은 그윽한 옛날을 마음으로 그리워하고, 뜻은 욕심이 없고 깨끗하여 이에 저궁에게 명령하여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니, 짐은 한가로이 恭己(본 뜻은 현명한 신하가 있어 임금은 침묵하다의 뜻이나, 여기선 정치에 신경 쓰지 않고 유유자적 하다.)하면서 널리 마음을 닦을 것이오."

 高祖幼有至性,前年,顯祖病癰,高祖親吮。吮,徂兗翻。及受禪,悲泣不自勝。勝,音升。顯祖問其故,對曰:「代親之感,內切於心。」

丁未,顯祖下詔曰:「朕希心玄古,志存澹泊,爰命儲宮踐升大位,澹,徒覽翻。踐,慈衍翻。朕得優遊恭己,栖心浩然。」

 

 여러 신하들이 상주하였다.

 "옛날에 한 고조는 황제를 칭하면서 그의 아버지를 높여 태상황으로 삼아 천하를 통솔하지 않는 것을 밝혔습니다.(한 고조 6년 BC201년) 지금 황제께서는 어리므로 만기의 큰 정사는 오히려 폐하께서 마땅히 그 일을 총괄하셔야 합니다. 삼가 존호를 올려서 태상황제라고 하겠습니다."

 현조가 그것을 좇았다.

 羣臣奏曰:「昔漢高祖稱皇帝,尊其父爲太上皇,明不統天下也。見十一卷漢高帝六年。今皇帝幼沖,萬機大政,猶宜陛下總之。謹上尊號曰太上皇帝。」太上皇帝之號始此。上,時掌翻。顯祖從之。

 

 23일에 상황이 숭광궁으로 옮겨가서 살았는데, 采椽(서까래)을 다듬지 않았고, 흙으로 만든 계단이었을 뿐이며, 나라의 큰일들은 모두 보고를 받았다. 숭광궁은 북원 가운데에 있었는데 또한 苑 가운데의 서쪽 산에다가 鹿野浮圖를 선립하고 선승들과 더불어 그곳에서 살았다.

 己酉,上皇徙居崇光宮,采椽不斲,徐廣曰:采,一名櫟,一作柞。《索隱》曰:采,木名,卽今之櫟木也。余謂采椽者,蓋自山采來椽,因而用之,不施斧斤,示樸也。椽,重緣翻。土階而已;國之大事咸以聞。崇光宮在北苑中,又建鹿野浮圖於苑中之西山,釋子相傳,以爲尸迦國波羅柰城東北十里許有鹿野苑,本辟支佛住此,常有野鹿,故以名苑。今倣西國而建浮圖也。又據《魏書》,道武帝天興二年,破高車,以其衆起鹿野苑於南臺陰,北距長城,東苞白登,屬之西山,廣輪數百里,蓋因代都鹿苑之舊名,附合西國鹿野之事而建此浮圖也。與禪僧居之。禪,時連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