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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失豪釐,其差遠矣[yīshīháolí,qíchàyuǎnyǐ]/寒露節中候雀入大水爲蛤3日(陰8/29)辛卯

solpee 2020. 10. 15. 05:39

《南北朝 宋紀14 明帝 泰始 3年》〈丁未, 467年

 

 ①. 봄, 정월, 장영 등이 성을 버리고 밤에 숨어버렸다. 마침 하늘에서 큰 눈이 내려 사수가 얼어서 합쳐졌으므로, 장영 등은 배를 버리고 걸어서 달아낫는데, 사졸 중에 얼어서 죽은 자가 반을 넘었고, 손과 발이 잘려진 자가 10명 가운데 7~8명이었다. 위 울원이 그 전방을 맞이하여 공격하고, 설안도가 그 후방을 타며 여량(서주)의 동쪽에서 장영 등을 대파하니, 죽은 자가 1만여 명이었고, 드러누운 시체는 60여 리에 걸쳐 있었으며, 내버린 군수물자와 무기는 헤아릴 수 없었는데, 장영은 발가락과 손가락이 역시 떨어졌으나 심유지와 함께 겨우 죽음을 면하였으며, 양남진이주(섬서 한중)자사인 원공조 등은 위에 사로잡혔다.

 ①. 春,正月,張永等棄城夜遁。《考異》曰:《宋‧本紀》,去年冬,「永、攸之大敗,遂失淮北四州及豫州淮西地。」《宋略》,今年正月,「永、攸之師次彭城,虜掩其輜重,敗王穆之於武原,薛安都開彭城以納虜,永等引退;虜追之,王師敗績;畢捺亦舉兗州歸虜,遂失淮北之地。」《魏‧帝紀》,去年九月,「常珍奇、薛安都內屬,張永、沈攸之擊安都,詔尉元救彭城,西河公石救懸瓠。十一月,畢衆敬內屬。十二月己未,次于秺,周凱、張永、沈攸之相繼退走。」今年正月癸巳,「尉元破永、攸之於呂梁東。閏月,沈文秀、崔道固舉州內屬。」按青冀今歲始叛宋,去年豈得已失淮北!安都爲永、攸之所逼,故降魏,豈得今年永、攸之始次彭城,安都始納魏兵乎!蓋去冬穆之等已敗退,今春永大敗耳。今從《後魏‧帝紀》。會天大雪,泗水冰合,永等棄船步走,士卒凍死者太半,手足斷者什七八。尉元邀其前,薛安都乘其後,大破永等於呂梁之東,《水經註》:泗水自彭城東南過呂縣南。泗水之上有石梁焉,故曰呂梁。尉,紆勿翻。死者以萬數,枕尸六十餘里,枕,職任翻。委棄軍資器械不可勝計;勝,音升。永足指亦墮,與沈攸之僅以身免,梁、南秦二州刺史垣恭祖等爲魏所虜。

 

 황상이 그 소식을 듣고 채흥종을 불러서 패배하였다는 편지를 그에게 보이면서 말하였다.

 "나는 경에게 심히 부끄럽구려!"

 장영의 호칭은 좌장군으로 낮추어졌고, 심유지의 관직을 면직시키고 정양공으로서 직책을 관장하도록 하고, 돌아가서 회음에 주둔하게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서 회하 북방에 있는 네 개의 주와 예주 안에 있는 회하의 서쪽을 잃게 되었다.

 上聞之,召蔡興宗,以敗書示之曰:「我愧卿甚!」永降號左將軍;攸之免官,以貞陽公領職,還屯淮陰。《漢志》,桂陽郡有湞陽縣。沈約《志》,宋泰始三年改湞爲貞,屬廣興公相。由是失淮北四州及豫州淮西之地。淮北四州,青、冀、徐、兗。豫州淮西,汝南、新蔡、譙、梁、陳、南頓、潁川、汝南、汝陰諸郡也。《考異》曰:《後魏‧帝紀》:閏月,「沈文秀、崔道固舉州內屬。」《宋‧索虜傳》曰:「永、攸之敗退,虜攻青、冀二州,執文秀、道固。又下書曰:『淮北三州民,自天安二年正月三十日壬寅昧爽已前罪,一切原免。』按青州破在五年,淮北三州,蓋謂徐、司、豫。壬寅二十日,壬子三十日也。

 

 배자야가 평론하였다.

 "옛날에 제의 환공이 葵丘(商丘,開封,菏澤三合部 民權縣東北)에서 자만하여 9국이 배반하였고, 曹公이 장송에게 예를 취하지 않아서 천하가 분열되었다. 한 번 터럭만큼 작은 것이라도 잃어버리면 그 차이는 멀어지게 된다.

 裴子野論曰:昔齊桓矜於葵丘而九國叛;《公羊傳》曰:貫澤之會,齊桓公有憂中國之心,不召而至者,江人、黃人也。葵丘之會,桓公震而矜之,叛者九國。曹公不禮張松而天下分。見六十五卷漢獻帝建安十三年。一失豪釐,其差遠矣。

 

 태종(명제유욱) 초기에 위세와 명령이 미치는 곳이 백 리를 넘지 않았으니, 병졸들은 離反할 마음을 가지게 되엇고, 병사들은 확신에 찬 얼굴색을 가지지 못했지만, 정성스러운 마음을 열고 사랑과 성실함이 널리 퍼질 수 있도록 하니, 은헤에 감사하거나 후덕함에 복종하지 않은 사람이 없었고, 목숨을 다하고 죽음을 본받으려고 하였고, 그러므로 서쪽은 꺽이고 북쪽은 소탕되어 경내는 옷자락 올리듯 쉽게 열리게 되었다.

 太宗之初,威令所被,不滿百里,被,皮義翻。卒有離心,士無固色,而能開誠心,布款實,莫不感恩服德,致命效恐,故西摧北蕩,㝢內褰開。

 

 이미 그렇게 하고서 6군은 승리한 소식을 바치고 지방의 작은 세력이 손을 묶게 되자 천자는 그 나머지 위세를 사려고 군대를 내보냈으나 명분이 없었기에 긴 회하의 이북은 갑자기 융의 땅이 되고 말았다.

 旣而六軍獻捷,方隅束手,天子欲賈其餘威,賈,音古。師出無名,長淮以北,倐忽爲戎。

 

 애석하구나! 만약 텅 빈 마음으로 나아가며, 교만하지 않게 치지 않았다면, 세 명의 배반이 어찌 일어났겠는가? 고조는 갑옷과 투구에 서케와 이가 생기게 하면서 강역을 개척하였으나, 나중의 자손들은 하루에 영토가 백리나 오그라들게 하였다. 조상의 업적을 유지하는 것이 어찌 쉽다고 말할 것인가!"

 惜乎!若以嚮之虛懷,不驕不伐,則三叛奚爲而起哉!三叛,薛安都、畢衆敬、常珍奇也。高祖蟣虱生介冑,蟣,居豨翻。蝨,色櫛翻。經啓疆埸;埸,音亦。後之子孫,日蹙百里。《大雅‧召旻》之詩曰:昔先王受命,有如召公,日辟國百里;今也日蹙國百里。播穫堂構,豈云易哉!《書‧大誥》曰:若考作室,旣底法,厥子乃弗肯堂,矧肯構!厥父菑,厥子乃弗肯播,矧肯穫!易,以豉翻。

 

 ②. 위의 울원은 팽성의 군대가 황폐하게 된 이후에 공적으로나 사적으로나 빈곤하게 되자, 冀州(河北信都)·相州(鄴城 河南安陽北郊)·濟州(碻磝;今聊城茌平县高垣墙村)·兗州(滑台;河南 滑縣) 네 주의 곡식을 징발하고 장영이 버린 배 900척을 빼앗아서 淸河를 따라 싣고 운반하여 새로운 백성(徐州民)들을 구휼하게 해달라고 요청하였는데, 위에서 따랐다.

 ②. 魏尉元以彭城兵荒之後,公私困竭,請發冀、相、濟、兗四州粟,相,息亮翻。濟,子禮翻。取張永所棄船九百艘,沿清運載,以賑新民;新民,謂新取徐州之民;謂沿清水而運載也。艘,蘇遭翻。賑,津忍翻。魏朝從之。朝,直遙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