如冰炭之自然얼음과 숯불은 자연스럽게 본성을 드러낸다. 《魏紀9 元帝 景元 元年》 (庚辰, 260) 15. 상서 왕침이 예주 자사가 되었다. 처음에 도찯하자 예하의 성과 병사와 백성들에게 알리는 칙령을 내렸다. "만약에 장리의 옳고 그른 것을 진술하거나 백성들이 걱정하는 것을 말하는 자에게는 500곡의 곡식을 주겠다. 만약에 자사의 잘잘못이나 조.. 카테고리 없음 2020.02.13
고귀향공의 죽음 그리고 원제의 등극. 《魏紀9 元帝 景元 元年》 (庚辰, 260) 3. 황제는 권위가 날로 쇠퇴하는 것을 보고붆삼을 이기지 못하였다. 5월 7일에 시중 왕침·상서 왕경· 산기상시 왕업을 불러서 말하였다. "사마소의 마음은 가는 사람도 다 아느니리. 나는 앉아서 폐위되는 욕을 당할 수는 없으니, 오늘 마땅히 경과 .. 카테고리 없음 2020.02.13
2020년 2월 13일 오전 02:37蟄蟲始振 櫻桃風 末日(寅月念日). 蓬萊散人 狂草 霜餘水反壑 / 서리 녹아 내린 물 계곡으로 흘러가고 風落木歸山 /바람에 지는 나무 닢 산으로 돌아가네. 冉冉歲華晩 / 어느덧 세월 흘러 한 해가 저물어 가니, 昆蟲皆閉關 / 벌레들도 모두 다 숨어 움츠리네. 飄飄靜上人 / 표표히 떠나가는 靜이란 이름의 스님은 橫吹紫鸞笙 .. 카테고리 없음 2020.02.13
窮武之雄,斃於不仁(무을 끝까지 쓰면 어질지 못한 데서 죽는다.)蟄蟲始振 櫻桃風 末日(寅月念日). 《魏紀 高貴鄕公 甘露 3年》 (戊寅, 258) 1. 봄, 정월에 문흠이 제갈탄에게 말하였다. "장반·초이는 우리가 나가서 도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엿고, 전단·전역은 또 무리를 이끌고 거꾸로 투항하였으니, 이는 적이 대비하지 안을 때이므로 싸워볼 수 있습니다. 1. 春,正月,文欽謂諸.. 카테고리 없음 2020.02.13
譙周作《仇國論》/ 蟄蟲始振 櫻桃風 4日(陰 寅月 19日). 《魏紀 高貴鄕公 甘露 2年》 (丁丑, 257) 6. 한의 강유는 위가 관중에 있는 병사를 나누어서 회남 지역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빈틈을 이용하여 진천을 공격하려고 수만 명을 인솔하고 낙곡을 나오서 침령에 도착하였다. 6. 漢姜維聞魏分關中兵以赴淮南,欲乘虛向秦川,〈秦地四塞以爲.. 카테고리 없음 2020.02.12
王祥之孝. 《魏紀 高貴鄕公 甘露 元年》 (丙子, 256) 11.사공 정충을사도로 삼고, 좌복야 노육을 사공으로 삼았다. 노육이 이 자리를 표기장군 왕창·광록대부 왕관·혹은 사예교위인 낭야 사람 왕상에게 양보하겠다고 굳게 주장하였으나 조서를 내려서 허락하지 않았다. 11. 以司空鄭沖爲司徒,左僕.. 카테고리 없음 2020.02.11
소릉여공을 폐하고 고귀향공을 세웠다. 蟄蟲始振 櫻桃風 3日(음 正月18日). 《魏紀 高貴鄕公 正元 元年》 (甲戌, 254) 7. 황제는 이풍이 죽자 속으로 특별히 불평하였다. 안동장군 사마소가 허창에서 진수하고 있었는데, 그를 불러서 강유를 공격하라고 조서를 내렸다. 9월에 사마소가 병사를 거느리고 들어와서 황제를 알현하였는데, 황제가 평락관에 행차하여 군.. 카테고리 없음 2020.02.09
明鑑所以照形,古事所以知今. 蟄蟲始振 櫻桃風 初日(正月旣望) 《魏紀7 邵陵厲公 嘉平 4年》 (壬申, 252) 5. 오의 반후는 성격이 강하고 사나웠는데, 오의 주군이 병이 들자, 후는 사람들을 시켜서 손홍에게 여후가 칭제하였던 옛날 일을 묻게 하였다. 주위 사람들이 그녀의 포학함을 이기지 못하고 그녀가 깊이 잠든 틈을 엿보다가 그녀의 목을 졸라 죽.. 카테고리 없음 2020.02.09
'昔季文子三思而後行',夫子曰:'再思可矣。' 《魏紀7 邵陵厲公 嘉平 3年》 (辛未, 251) 12. 오의 입절중랑장 육항이 시상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건업에 가서 병을 치료하였다. 병에 차도가 있어서 임지로 돌아가게 되자 오의 주군이 눈물을 흘리며 함께 작별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전에 참소하는 말을 듣고, 너의 아버지와 대의문제에.. 카테고리 없음 2020.02.08
司馬懿의 쿠데타! 東風解凍 迎春花風 末日 (元宵節). 《魏紀7 邵陵厲公 嘉平 元年》 (己巳, 249) 1. 봄, 정월 6일에 황제가 고평릉을 차자아서 배알하는데, 대장군 조상과 그의 동생인 중령군 조희·무위장군 조훈·산기상시 조언이 모두 쫓아갔다. 태부 사마의가 황태후의 명령을 가지고 여러 성문을 닫아걸고 군사를 챙겨서 무고를 점거하게 .. 카테고리 없음 2020.0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