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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昔季文子三思而後行',夫子曰:'再思可矣。'

solpee 2020. 2. 8. 20:40

 

《魏紀7 邵陵厲公 嘉平 3 (辛未, 251)

 

 

 12. 오의 입절중랑장 육항이 시상에 주둔하고 있었는데, 건업에 가서 병을 치료하였다. 병에 차도가 있어서 임지로 돌아가게 되자 오의 주군이 눈물을 흘리며 함께 작별하면서 말하였다.

 "내가 전에 참소하는 말을 듣고, 너의 아버지와 대의문제에서 돈독하게 지내지 못하였는데, 이것으로 너에게 빚을 졌구나. 앞뒤로 보낸 책망하여 묻는 편지를 다 태워 없애서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게 하라."

 12. 吳立節中郎將陸抗屯柴桑,詣建業治病。病差,差,楚懈翻,病瘳也。當還,吳主涕泣與別,謂曰:「吾前聽用讒言,與汝父大義不篤,以此負汝;前後所問,一焚滅之,莫令人見也。」一焚滅之,言一切悉焚滅之也。責問陸遜事,見上卷正始六年。

 이때 오의 주군은 태저였던 손화가 자못 죄가 없었다는 것을 깨닫고, 겨울, 11월에 오의 주군이 남교에서 제사지내고 돌아오다가 풍질을 만났는데, 손화를 다시 불러오려고 하였다. 전공주와 시중 손승·중서령 손홍이 굳게 이 문제를 놓고 다투듯 막으니 마침내 중지하였다.

 是時,吳主頗寤太子和之無罪,冬,十一月,吳主祀南郊還,得風疾,欲召和還;全公主及侍中孫峻、中書令孫弘固爭之,爭者,恐和復立,爲己患也。乃止。

 

 오의 주군은 태자 손량이 너무 어려서 부탁할 사람을 의논하였는데, 손준이 대장군 제갈각을 추천하여 큰일을 부탁할 만하다고 하였다. 오의 주군은 제갈각은 성격이 강퍅하여 스스로 멋대로 할 것이라고 의심하자 손준이 말하였다.

 "현재 조정의 신하 가운데 재주로 제갈각에 미치는 자가 없습니다."

 吳主以太子亮幼少,議所付託,孫峻薦大將軍諸葛恪可付大事。此時通吳國上下皆以恪爲才,而峻薦之。峻本無殺恪之心也,恪死於峻手,其罪在恪。峻旣竊權,授之弟綝以亂吳國,其罪在峻。讀史者其審諸!吳主嫌恪剛很自用,很,戶懇翻。峻曰:「當今朝臣之才,無及恪者。」

 

 이에 무창에 있는 제갈각을 불렀다.

 제갈각이 막 길을 떠나려고 하는데, 상대장군 여대가 경계하여 말하였다.

 "세상은 바야흐로 많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대는 매사에 반드시 열번씩 생각하십시오."

  乃召恪於武昌。恪將行,上大將軍呂岱戒之曰:「世方多難,難,乃旦翻。子每事必十思。」

 

 제갈각이 답하였다.

 "옛날에 계문자는 세 번 생각한 다음에 실행하였고, 부자는 이르기를 '두 번 생각하면 좋을 것이다.'라고 이야기하였는데, 이제 그대는 저 제갈각에게 열 번 생각하라고 하니 저 제갈각이 열등하다는 것이 분명하오."

 여대가 대답할 말이 없었고, 모두 그가 실언한 것이라고 하였다.

 恪曰:「昔季文子三思而後行,夫子曰:『再思可矣。』見《論語》。季文子,魯大夫季孫行父也。今君令恪十思,明恪之劣也!」岱無以答,時咸謂之失言。

 

 우희가 평론하였다.

 虞喜論曰:

 

 "무릇 천하를 가지고 부탁한다는 것은 지극히 중대한 일이다. 신하로서 군주의 권위를 시행한다는 것은 지극히 어려운 일이다. 이 두 가지 지극한 것을 겸하고서 만 가지의 기틀을 총괄하며 그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夫託以天下,至重也;以人臣行主威,至難也;兼二至而管萬機,能勝之者鮮矣。勝,音升。鮮,息淺翻。

 

 여후는 나라의 으뜸가는 기로인데, 뜻과 도량은 넓고 먼 곳에 있어서 겨우 열 번 생각하라는 말로써 그에게 경계하였으나, 열등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져서 거절당하였다. 이것은 원손(제갈각의 자)의 소홀함이며 기민함과 영명함이 모두 갖추어지지 않은 사람임을 말하는 것이다.

 呂侯,國之元耆,元耆,猶言元老也。志度經遠,甫以十思戒之,而便以示劣見拒;此元遜之疏,機神不俱者也!諸葛恪,字元遜。疏,讀曰疎。機者,逢事會而發;神者,人之靈明;逢事會而靈明無以應之,則爲不俱矣。

 

 만약에 열 번 생각하라는 뜻을 통하여 그 시대에 해야 할 일에 대해 널리 자문을 구하고, 좋은 일을 번갯불보다 빨리 듣고, 간하는 소리를 바람이 옮기는 것보다 더 급하게 좇았다면, 어찌 전당에 엎드려져서 흉악한 녀석의 칼에 맞아 죽었겠는가?(제갈각은 자기를 천거한 손준에게 죽는다.)

 若因十思之義,廣諮當世之務,聞善速於雷動,從諫急於風移,豈得隕身殿堂,死於凶豎之刃!謂恪後爲孫峻所殺也。

 

 세상 사람들은 그의 뛰어난 말재주를 기이하게 여겼고, 급작스럽게 볼만하다 하고, 여후가 대답을 하지 못한 것을 구차하였다고 비웃었지만 안전함과 위험함, 처음과 나중의 염려를 생각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봄기운의 번성함을 즐긴 것이며, 가을 열매가 입에 달다는 것을 잊은 것이다.

 世人奇其英辯,造次可觀,造,七到翻。而哂呂侯無對爲陋,哂,矢忍翻。不思安危終始之慮;是樂春藻之繁華,樂,音洛。忘秋實之甘口也。

 

 옛날에 위나라 사람들이 촉을 정벌하면서 촉 사람들이 방어하는데, 정병이 엄하게 갖추고 바로 출발할 즈음 불의는 바야흐로 내민과 바둑을 두었는데 속으로 싫어하거나 귀찮아하는 기색이 없었다. 내민은 반드시 적을 격파할 수 있을 것이라고 여겼고, 그는 밝은 전략을 마음속에 확실하게 정해놓고 있기 때문에 겉모양에서 근심하는 기색을 차장보지 못하였다고 말하였다.

 昔魏人伐蜀,蜀人禦之,精嚴垂發,而費禕方與來敏對棋,意無厭倦。敏以爲必能辦賊,事見上卷正始五年。言其明略內定,貌無憂色也。

 

 하물며 장녕(?)조차도 '군자가 일을 맡아서 다가갈 때 두려워하여야 꾀를 잘 내어 성공한다.'고 하였으니, 촉은 풀 같이 작은 나라인데 바야흐로 큰 적을 향하여 계획하는 바가 잇고 오직 지키며 싸우기만 한다고 하여도 어찌 자기를 자랑하고 여유를 가지며 편안히 하면서 근심이 없었겠는가!

 況長寧以爲君子臨事而懼,好謀而成,臨事而懼,好謀而成,《論語》記孔子言,而所謂長寧者,未知其爲誰也。蜀爲蕞爾之國,蕞,祖外翻。而方向大敵,所規所圖,唯守與戰,何可矜己有餘,晏然無戚!

 

 이는 불의의 성품이 관대하고 간결한 것 때문이지만 세세한 것을 맏지 않아서 갑자기 항복한 사람인 곽순(곽수)의 해침을 당하게 되었으니, 어찌 저쪽에서 징조가 보이고 이쪽에서 화가 만들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과거에 장녕이 불문위를 논평하였다는 말을 들었는데, 지금 원손이 여후의 충고를 거역한 것을 보니, 두 가지 일은 같은 성질의 것이고 모두 세상을 위한 거울이 될 만하다."

 斯乃禕性之寬簡,不防細微,卒爲降人郭偱【章:甲十六行本作「循」;乙十一行本同;下均同。】所害,「偱」,當作「脩」,註見後。卒,子恤翻。豈非兆見於彼而禍成於此哉!見,賢遍翻。往聞長寧之甄文偉,甄,別也。今覩元遜之逆呂侯,二事體同,皆足以爲世鑒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