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譙周作《仇國論》/ 蟄蟲始振 櫻桃風 4日(陰 寅月 19日).

solpee 2020. 2. 12. 06:00

 

《魏 高貴鄕公 甘露 2年 (丁丑, 257)

 

 

 6. 한의 강유는 위가 관중에 있는 병사를 나누어서 회남 지역으로 간다는 소식을 듣고, 빈틈을 이용하여 진천을 공격하려고 수만 명을 인솔하고 낙곡을 나오서 침령에 도착하였다.

 6. 漢姜維聞魏分關中兵以赴淮南,欲乘虛向秦川,秦地四塞以爲固,渭水貫其中。渭川左右,沃壤千里,世謂之秦川。率數萬人出駱谷,至沈嶺。

 

 이때 장성에는 곡식을 쌓아놓은 것이 아주 많았는데, 지키는 병사는 적어서 정서장군이며 도독옹·량제군사인 사마망과 안서장군 등애가 병사를 데리고 나아가서 이곳을 점거하여 강유를 막았다. 강유는 망수에서 진지를 구축하고 자주 도전하였으나, 사마망·등애느 응전하지 아니하였다.

 이때 강유가 자주 출병하여 촉 사람들의 근심과 고생을 하자 중산대부 초주가 '구국론'을 지어서 풍간하였다.

 時長城積穀甚多,而守兵少,征西將軍、都督雍‧涼諸軍事司馬望雍,於用翻。及安西將軍鄧艾進兵據之,以拒維。維壁於芒水,《水經註》:駱谷水出郿塢東南山駱谷,北流逕長城西,又北流注于渭,渭水又東,芒水從南來注之;水出南山芒谷,北逕盩厔縣竹圃中,又北流注于渭。余按駱谷在今洋州眞符縣,屈回八十里,凡八十四盤。數挑戰,數,所角翻。挑,徒了翻。望、艾不應。

是時,維數出兵,蜀人愁苦,中散大夫譙周作《仇國論》以諷之《續漢志》曰:中散大夫,秩六百石;《漢官》曰:秩比二千石。胡廣曰:光祿大夫,本爲中大夫,武帝元狩五年,置諫大夫爲光祿大夫,世祖中興,以爲諫議大夫。又有太中、中散大夫。此四等於古者爲天子之下大夫,視列國之上卿。曰:

 

 "언떤 사람이 물었다. '옛날에 약한 나라가 강한 나라를 이길 수 있었다면 그 술책은 어떤 것이오?' 대답하였다. '내가 듣기로는 큰 나라에 살면서 아무런 근심거리가 없는 사람은 항상 거만한 짓을 많이 하고, 작은 나라에 살면서 걱정거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은 항상 잘 하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거만한 짓을 많이 하면 혼란이 생겨나고 잘하겠다는 생각을 하면 잘 다스려지는 일이 나타나는 것은 이치로 보아서 늘 그런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문왕은 백성들을 양육하여 적은 수를 가지고 많은 수를 빼앗았고, 구천은 많은 사람을 애호하여서 약한 세력을 가지고 강한 세력을 격파하였으니 이것이 그 술책이오.'

「或問往古能以弱勝強者,其術如何?曰:吾聞之,處大無患者常多慢,處小有憂者常思善;處,昌呂翻。多慢則生亂,思善則生治,理之常也。故周文養民,以少取多,句踐卹衆,以弱斃強,此其術也。文王治岐,由方百里起,三分天下有其二,所謂以少取多也。句踐歸越,弔死問疾,十年生聚,十年敎訓,以弱越斃強吳。

 

 어떤 사람이 말하였다. '전에 항우는 강하였고 한은 약했는데, 서로 더불어 전쟁을 하다가 항우는 한과 홍구를 기준으로 나누기로 약속하고 각기 돌아가서 백성들의 뜻이 이미 정해졌기 때문에 움직이기가 어렵다고 생각하였지만, 병사를 인솔하고 항우를 추격하여 끝내 항씨를 쓰러뜨렸습니다. 어찌 반드시 문왕이 한 일처럼 해야만 되겠습니까?'

 或曰:曩者,項強漢弱,相與戰爭,項羽與漢約分鴻溝,各歸息民,張良以爲民志已定,則難動也,率兵追羽,終斃項氏。事見十卷漢高帝四年。豈必由文王之事乎?

 

 말하였다. '상·주 시대에는 왕이나 후는 대대로 높임을 받았고, 군신관계도 오랫동안 굳건하며 백성들의 관습도 한결같았소. 뿌리를 깊이 박은 것은 뽑기가 어렵고, 굳은 것을  점거하고 있는 것은 옮기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시기였다고 한다면 비록 한 고조 같은 사람이라도 어찌 칼을 잡고 말을 채찍질하며 천하를 얻을 수 있었겠습니까?

  曰:當商、周之際,王侯世尊,言世世居尊位也。君臣久固,民習所專;民習見君臣之分明,故專於戴上。深根者難拔,據固者難遷。當此之時,雖漢祖安能杖劍鞭馬而取天下乎!

 

 진이 제후제도를 철폐하고 태수를 두게 된 다음부터 백성들은 진나라의 역역으로 피로해져서 천하가 흙이 무너지듯 하였으니, 혹 1년에 한 번씩 바꾸었고, 혹은 매달 공의 지위에 있는 사람들을 바꾸었으니, 새나 짐승들도 놀라서 어디로 가야 할지를 몰랐습니다. 이에 크고 강한 사람들이 아울러 다투어서 호랑이와 이리가 물어뜯듯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재빠르게 달려가는 자는 많은 것을 얻고, 천천히 늦게 가는 자는 병탄되었습니다.

 及秦罷侯置守之後,謂罷列國諸侯分置三十六郡,郡置守也。民疲秦役,天下土崩,或歲易主,或月易公,鳥驚獸駭,莫知所從,於是豪強並爭,虎裂狼分,疾搏者獲多,遲後者見吞。

 

 지금 우리와 저쪽은 모두 나라를 전해주면서 세대를 바꾸어 내려왔으니, 이미 진나라 말기처럼 솥에서 불이 끓는 것 같은 시기는 아니고, 실로 6국이 동시에 대치하고 있는 형세와 같아서 그러므로 문왕의 방법을 가지고 할 수는 있어도 한 고조의 방법으로는 어려울 것이오. 무릇 백성이 피로하면 소란하고 어지러운 징조가 나타나고, 윗사람이 거만해지고 아랫사람이 흉포해지면 와해되는 형세가 시작됩니다.

 今我與彼皆傳國易世矣,旣非秦末鼎沸之時,實有六國並據之勢,故可爲文王,難爲漢祖。夫民之疲勞,則騷擾之兆生,上慢下暴,則瓦解之形起。

 

 속담에 '화살을 여러 차례 쏘아서 맞추지 못하는 것은 잘 조준하여 쏘는 것만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이러한 연고로 지혜로운 사람은 작은 이익 때문에 눈을 돌리2지 않고 속으로 비슷할 것 같다고 하여 걸음걸이를 밖지 않는 것이며 시기로 보아 될 수 잇다고 생각한 다음에 움직이고, 몇 차례 부딪쳐본 다음에 거동하는 것이오

 諺曰:『射幸數跌,不如審發。』跌,差也,射數差而不中,不如審而後發也。《書》曰:若虞機張,往省括于度則釋。是故智者不爲小利移目,不爲意似改步,孔穎達曰:舉足謂之步。爲,于僞翻。時可而後動,數合而後舉,

 

 그러므로 탕·무의 군사들은 두 번 싸우지 않고 이겼던 것이니 진실로 백성들의 노력을 중시하였고, 시기를 잘 헤아렸던 것입니다.

 만약에 마침내 궁극적으로무력을 사용하여 정벌한다면 흙이 무너지는 것 같은 형세가 생길 것이며 불행하게도 어려움을 만날 것이니 비록 지혜를 가지고 있는 자라도 장차 이러한 것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故湯、武之師不再戰而克,湯伐桀,鳴條一戰而革夏命;武王伐紂,一戎衣而天下大定。誠重民勞而度時審也。度,徒洛翻。如遂極武黷征,征伐不欲數,數則黷。土崩勢生,不幸遇難,難,乃旦翻。雖有智者將不能謀之矣。」姜維以數戰亡蜀,卒如譙周之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