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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귀향공의 죽음 그리고 원제의 등극.

solpee 2020. 2. 13. 11:27

 

《魏紀9 元帝 景元 元 (庚辰, 260)

 

 

 3. 황제는 권위가 날로 쇠퇴하는 것을 보고붆삼을 이기지 못하였다. 5월 7일에 시중 왕침·상서 왕경· 산기상시 왕업을 불러서 말하였다.

 "사마소의 마음은 가는 사람도 다 아느니리. 나는 앉아서 폐위되는 욕을 당할  수는 없으니, 오늘 마땅히 경과 더불어 스스로 나아가서 그를 토멸해야겠다.'

 3. 帝見威權日去,不勝其忿。勝,音升。五月,己丑,召侍中王沈、沈,持林翻,下同。尚書王經、散騎常侍王業,謂曰:「司馬昭之心,路人所知也。言路人亦知其將篡。吾不能坐受廢辱,今日當與卿自出討之。」卿下當有等字。

 

 왕경이 말하였다.

 "옛날 노나라의 소공은 계씨들의 전횡을 참아내지 못하다가 패하여 도망하여 나라를 잃었고, 천하 사람들의 웃음거리가 되었습니다. 지금 권력이 그들의 집안에 있게 된 지가 이미 오래 되었고, 조정의 사방에는 모두 그를 위하여 죽을 사람들이 있고, 반역이냐 순응이냐 하는 이치를 돌아보지 않은지가 하루 정도만이 아닙니다.

 王經曰:「昔魯昭公不忍季氏,敗走失國,爲天下笑。魯季氏世執魯國之政。至昭公時,伐之,不勝,公孫于齊,次于陽州,死于乾侯。事見《左傳》。今權在其門,爲日久矣,朝廷四方皆爲之致死,爲,于僞翻。不顧逆順之理,非一日也。

 

 또 숙위들은 텅 비어잇고, 병기와 갑옷도 적고 약한데, 폐하께서는 무슨 물자를 이용하시려고 하시며, 하루아침에 이와 같이 하여서 고질병을 제거하려고 하다가 그것을 더 깊게 하는 일은 없겠습니까? 화란은 아마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니 마땅히 다시금 자세히 살펴야 할 것입니다."

 황제는 마침내 황소조(노란 비단에 쓴 조서)를 꺼내서 땅으로 던지면서 말하였다.

 且宿衞空闕,兵甲寡弱,陛下何所資用;而一旦如此,無乃欲除疾而更深之邪!禍殆不測,宜見重詳。」重,直用翻。重,再也。詳,審也。帝乃出懷中黃素詔投地《說文》曰:素,白緻繒也。此黃素詔者,蓋以白緻繒染爲黃色以書詔。曰:

 

 "이를 실행하겠다고 결정하였다. 바로 죽게 된다고 한들 무엇이 두려우랴! 하물며 반드시 죽는 것은 아닐 것인데."

 이에 태후에게 들어가서 아뢰었다. 왕침·왕업이 달려가 사마소에게 보고하면서 왕경을 불러 함께 가자고 하였으나 왕경은 좇지를 아니하였다.

「行之決矣!正使死何懼,況不必死邪!」於是入白太后。沈、業奔走告昭,呼經欲與俱,經不從。帝禮遇王沈,呼爲文籍先生,而臨變乃爾,吁!《考異》曰:《世語》曰:經因沈、業申意。今從《晉諸公贊》。

 

 황제가 드디어 칼을 뽑고 연에 올라 전중에서 숙위하는 창두와 관동을 이끌고 북을 울리면서 나아갔다. 사마소의 동생인 둔기교위 사마주는 황제를 동지거문에서 만났는데, 주의 사람들이 나무라니 사마주의 무리들이 달아났다.

 중호군 가충이 박에서 들어와 막아서며 황제와 함께 남쪽 궁궐의 아래에서 싸웠는데, 황제가 스스로 칼을 사용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몰러나려고 하자 기독인 성졸의 동생이며 태자사인인 성제가 가충에게 물었다.

 帝遂拔劍升輦,率殿中宿衞蒼頭官僮鼓譟而出。昭弟屯騎校尉伷遇帝於東止車門,左右呵之,伷衆奔走。伷,讀曰胄。中護軍賈充自外入,逆與帝戰於南闕下,帝自用劍。衆欲退,騎督成倅弟太子舍人濟問充曰:

 

 "사태가 급한데 마땅히 무엇이라고 말해야 합니까?"

 가충이 말하였다.

 "사마공이 너희들을 기른 것은 바로 오늘을 위해서이다. 오늘의 일은 물어볼 것도 없다."

 성제가 바로 창을 뽑아 앞에 있는 황제(曹髦;20歲)를 찌르니 수레 아래에서 죽었다.

「事急矣,當云何?」充曰:「司馬公畜養汝等,畜,許六翻。騎督,督騎兵。《晉志》,太子舍人職比散騎、中書等侍郎。時未立太子,不應置東宮官屬;濟本昭之私人,授以是官耳。騎,奇寄翻。倅,七內翻。正爲今日。爲,于僞翻。今日之事,無所問也!」濟卽抽戈前刺帝,殞于車下。時年二十。刺,七亦翻。

 

 사마소가 이 소식을 듣고 크게 놀라서 스스로 땅에 떨어지듯 넘어졌다. 태부 사마부가 달려가서 황제엑 넓적다리를 베게하고 곡하였는데 아주 애통해 하면서 말하였다.

 "폐하를 살해한 것은 신의 죄입니다."

 사마소가 조정안으로 들어와서 군신회의를 소집하였다.

 昭聞之,大驚,自投於地。太傅孚奔往,枕帝股而哭甚哀,枕帝於股也。《左傳》:齊崔杼弒其君光,晏子枕尸股而哭之,三踊而出。枕,職任翻。曰:「殺陛下者,臣之罪也!」

昭入殿中,召羣臣會議。

 

 상서좌복야 진태가 오지 아니하였는데 사마소가 그의 외삼촌인 상서 순의에게 그를 부르게 하니 진태가 말하였다.

 "세상의 논의하는 자들은 저 진태를 외삼촌과 비교하고 있지만 이제 외삼촌은 저 진태만 못합니다."

 자제들과 안팎에서 함께 그를 다그치니 마침내 들어가서 사마소를 보자 비통해 하였고, 사마소가 또한 그를 마주하고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尚書左僕射陳泰不至,昭使其舅尚書荀顗召之,泰曰:「世之論者以泰方於舅,方,比也。今舅不如泰也。」言顗阿附司馬氏,而己忠於魏室。子弟內外咸共逼之,乃入,見昭,悲慟,昭亦對之泣曰:

 

 "현백(진태의 자), 경은 나를 어떻게 처리하겠소?"

 진태가 말하였다.

 "다만 가충의 목을 자르면 조금은 천하 사람들에게 사죄가 될 뿐입니다."

 사마소가 한참 있다가 말하였다.

 "경은 그 다음에 할 일을 생각해 보시오."

 진태가 말하였다.

 "저 진태는 오직 여기까지 진언할 뿐, 그 다음 할 일은 모릅니다."

 사마소는 다시 말하지 아니하였다. 순의는 순욱의 아들이다.

「玄伯,陳泰,字玄伯。卿何以處我?」處,昌呂翻。泰曰:「獨有斬賈充,少可謝天下耳。」少,詩沼翻。《考異》曰:《魏氏春秋》曰:「帝之崩也,太傅司馬孚、尚書右僕射陳泰枕帝尸於股,號哭盡哀。大將軍入禁中,泰見之悲慟,大將軍亦對之泣,謂曰:『玄伯其如我何?』泰曰:『獨有斬賈充,少可以謝天下耳。』大將軍久之曰:『卿更思其他。』泰曰:「豈可使泰復發後言!』遂歐血薨。」裴松之以爲違實。今從干寶《晉紀》。昭久之曰:「卿更思其次。」泰曰:「泰言惟有進於此,言當以弒君之罪罪昭。不知其次。」昭乃不復更言。復,扶又翻。顗,彧之子也。彧,於六翻。

 태후는 명령을 내려서 고귀향공의 조싱을 선포하고 폐하여 서인으로 삼고, 민간 예법으로 장사지내게 하였다. 왕경과 그의 가족을 잡아 들여서 정위에게 회부하였다. 왕경이 그의 어머니에게 사과하니 어머니는 안색을 변하지 아니하고 웃으면서 응답하였다.

 "사람이 누구나 죽지 않겠느냐마는 정말로 마땅히 죽을 곳을 얻지 못할까 두려웠는데, 이런 일로 목숨을 버리게 되니 무슨 한이 있겠느냐?"

 太后下令,罪狀高貴鄕公,廢爲庶人,葬以民禮。收王經及其家屬付廷尉。經謝其母,母顏色不變,笑而應曰:「人誰不死,正恐不得其所;以此幷命,何恨之有!」非此母不生此子。

 

 주살되자 옛 부하 관리인 향웅이 이들을 위하여 곡을 하엿고 저자와 거리에 있는 사람들이 애통해 하였다. 왕침은 이 공로로 안평후에 책봉되었다. 8일에 태부 사마부 등이 편지를 올려서 왕의 예를 가지고 고귀향공을 장사지내도록 하여달라고 청하니 태후가 이를 허락하였다.

 及就誅,故吏向雄哭之,哀動一市。向,姓也,音式亮翻。王沈以功封安平侯。庚寅,太傅孚等上言,請以王禮葬高貴鄕公,太后許之。

 

 중호군 사마염에게 연왕 조우의 아들인 상도햐공 조황을 업에서 영접해 오게 하여 명제의 후사로 삼았다. 사마염은 사마소의 아들이다.

 使中護軍司馬炎迎燕王宇之子常道鄕公璜於鄴,《水經註》曰:白祀溝水出廣陽縣之婁城東,東南逕常道城西,故鄕亭也,西去良鄕城四十里,魏少帝璜所封也。廣陽,故燕國。以爲明帝嗣。炎,昭之子也。

 

 7. 6월 1일에 태후가 상도향공의 이름을 환으로 바꾸라고 조서를 내렸다. 2일에 상도향공이 낙양에 들어왔고, 이날로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때 나이가 15세였으며, 대사면령을 내리고 기원을 고쳤다.

 7. 六月,癸丑,太后詔常道鄕公更名奐。更,工衡翻。甲寅,常道鄕公入洛陽,是日,卽皇帝位,年十五,大赦,改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