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司馬懿의 쿠데타! 東風解凍 迎春花風 末日 (元宵節).

solpee 2020. 2. 8. 06:19

 

《魏紀7 邵陵厲公 嘉平 (己巳, 249)

 

 

 1. 봄, 정월 6일에 황제가 고평릉을 차자아서 배알하는데, 대장군 조상과 그의 동생인 중령군 조희·무위장군 조훈·산기상시 조언이 모두 쫓아갔다. 태부 사마의가 황태후의 명령을 가지고 여러 성문을 닫아걸고 군사를 챙겨서 무고를 점거하게 하고, 병사를 주어 나아가서 낙수의 부교에 주둔하게 하며, 사도 고유를 불러 가절을 가지고 대장군의 일을 임시로 수행하게 하여 조상의 군영을 점거하게 하였다. 태복 왕관에게 중령군의 일을 수행하게 하여 조희의 군영을 점거하게 하였다.

 1. 春,正月,甲午,帝謁高平陵,高平陵,明帝陵也。《水經註》:大石山在洛陽南,山阿有魏明帝高平陵。孫盛曰:高平陵去洛城九十里。大將軍爽弟中領軍羲、武衞將軍訓、散騎常侍彥皆從。從,才用翻。太傅懿以皇太后令,閉諸城門,勒兵據武庫,授兵出屯洛水浮橋;《水經註》:洛城南出西頭第二門曰宣陽門,漢之小苑門也,對閶闔,南直洛水浮桁。召司徒高柔假節行大將軍事,據爽營;太僕王觀行中領軍事,據羲營。

 

 이어서 황제에게 조상의 죄악을 상주하였다.

 "신이 옛날에 요동에서 돌아오니 선황께서 폐하와 진왕, 그리고 신에게 조서를 내리시어 침상에 오르게 하시고, 신의 팔을 잡고 뒷일을 깊이 염려하셨습니다.

 신이 이르기를 '태조와 고조도 신에게 뒷일을 위촉하셨는데, 이것들은 폐하께서 보신 바인데 아무런 걱정과 소생한 바가 없었습니다. 만일 뜻과 같이 되지 않는다면 신은 마땅히 목숨을 걸고서 밝으신 조서를 받들겠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因奏爽罪惡於帝曰:「臣昔從遼東還,先帝詔陛下、秦王及臣升御牀,把臣臂,深以後事爲念。事見上卷明帝景初三年。臣言『太祖、高祖亦屬臣以後事,屬,之欲翻。按《晉紀》,懿自爲文帝所信重,太祖未嘗以後事屬之也,若文帝則以明帝屬懿。此自陛下所見,無所憂苦。萬一有不如意,臣當以死奉明詔。』

 

 지금 대장군 조상은 고명을 배반하여 버리고, 국가의 전범을 무너뜨리고 문란하게 하여서 안으로는 참람하게도 황제의 것을 본떠서 사용하고, 밖으로는 권력을 전횡하여 여러 군영을 파괴하고 금군을 모두 장악하였으며, 여러 관직 가운데 요직은 모두 그와 친한 사람을 배치하였고, 궁중의 숙위도 사사로운 사람으로 바꾸어서 뿌리와 근거가 서로 지반이 되게 만들어놓고 방종하고 방자함이 날로 심해지고 있습니다.

 今大將軍爽,背棄顧命,背,蒲妹翻。陸德明曰:顧,音古。敗亂國典,內則僭擬,外則專權,破壞諸營,敗,補邁翻。壞,音怪。盡據禁兵,羣官要職,皆置所親,殿中宿衞,易以私人,根據盤互,縱恣日甚。

 

 또한 황문 장당을 도감으로 삼고, 지존이신 황제를 엿보고 두 궁궐 사이를 갈라놓아 골육을 상해하고 있으니 천하가 흉흉하고 사람들은 위태롭고 두려움을 품고 있습니다. 폐하께서는 바로 기생하는 자리에 앉아 계시게 되엇으니 어찌 오래도록 편안하시겠습니까? 이것은 먼저 선황께서 폐하와 신을 황제의 침상에 올라오게 하시고 말씀하신 본래의 뜻이 아닙니다.

 又以黃門張當爲都監,監,古銜翻。伺察至尊,離間二宮,伺,相吏翻。間,古莧翻。傷害骨肉,天下洶洶,人懷危懼。陛下便爲寄坐,寄坐,謂雖處天子之位,猶寄寓也。豈得久安!此非先帝詔陛下及臣升御牀之本意也。

 

 신은 비록 나이가 많아 노쇠하였다고 하나 감히 지난날의 말씀을 잊겠습니까? 태위와 신과 장제 등은 모두 조상이 군주를 없애려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하고, 그 형제들이 병사를 통제하여 숙위하게 하기에는 마땅하지 아니하여, 영녕군에 상주를 올렸고, 황태후는 신에게 칙령을 내리시어 상주한 대로 사행하게 하셨습니다.

 臣雖朽邁,朽邁,謂年老衰朽,日月已過也。敢忘往言!太尉臣濟等皆以爽爲有無君之心,兄弟不宜典兵宿衞,奏永寧宮,皇太后令敕臣如奏施行。

 

 신은 오직 주관하는 사람과 황문령에게 칙서를 내려 이르기를 '조상과 조희, 조훈이 가진 관리와 군사를 철폐하여 후의 신분으로 자기 집에 가 있게 하고, 더 이상 머물러서 거가를 머무르게 하지 말게 하며, 감히 저지하려고 머문다면 바로 군법으로 일을 끝내라.'라고 하였습니다. 신은 오직 힘껏 빨리 병사를 거느리고 낙수의 부교에 주둔하게 하면서 비상사태를 살펴 엿보고 있습니다."

 臣輒敕主者及黃門令『罷爽、羲、訓吏兵,以侯就第,不得逗留,以稽車駕;敢有稽留,便以軍法從事!』臣輒力疾將兵屯洛水浮橋,伺察非常。」輒,專也。懿雖挾太后以臨爽,而其奏自言輒者至再,以天子在爽所也。

 

 조상은 사마의가 상주한 일에 대해 알았지만 황제에게 통보하지 않았다. 급박하게 몰리게 되어 어찌할 줄을 모르고 거가를 이수 남쪽에 유숙하게 하고 나무를 잘라서 녹각을 만들고, 둔전하고 있던 병사 수천 명을 동원하여 지키게 하였다.

 爽得懿奏事,不通;迫窘不知所爲,留車駕宿伊水南,《水經註》:來儒之水,出于半石之山,西南流逕大石山,又西至高都城東,西入伊水。伊水又東北過伊闕中,又東北至洛陽縣南,北入于洛。伐木爲鹿角,發屯田兵數千人以爲衞。魏武創業,令州郡例置田官,故洛陽亦有屯田兵。

 사마의는 시중인 고양 사람 허윤과 상서 진태로 하여금 조상에게 유세하여 마땅히 일찍 스스로 돌아와 죄를 인정하라고 하였고, 또한 조상이 믿는 전중교위 윤대목으로 하여금 조상에게 '다만 관직만 면직시키는 것뿐이라.'고 말하게 하면서 낙수를 가지고 맹세하게 하였다.

 懿使侍中高陽許允及尚書陳泰說爽,宜早自歸罪,說,輸芮翻。又使爽所信殿中校尉尹大目謂爽,唯免官而已,魏、晉之制,有殿中將軍、中郎、校尉、司馬。尹大目說爽,猶未疑司馬氏也,至其追語文欽乃覺耳。以洛水爲誓。...................................중략......................................

泰,羣之子也。

初,爽以桓範鄕里老宿,範,沛國人,譙、沛鄕里也。老,耆也。宿,舊也。於九卿中特禮之,然不甚親也。及懿起兵,以太后令召範,欲使行中領軍。範欲應命,其子止之曰:「車駕在外,不如南。」範乃出。至平昌城門,《水經註》:平昌門,故平門也,洛城南出西頭第三門。城門已閉。門候司蕃,故範舉吏也,司,姓也。《左傳》鄭有司臣。範舉手中版示之,矯曰:「有詔召我,卿促開門!」蕃欲求見詔書,以此觀之,此時猶用版詔,至晉時則有青紙詔矣。範呵之曰:「卿非我故吏邪,何以敢爾?」乃開之。範出城,顧謂蕃曰:「太傅圖逆,卿從我去!」蕃徒行不能及,遂避側。避於道旁也。懿謂蔣濟曰:「智囊往矣!」濟曰:「範則智矣;然駑馬戀棧豆,爽必不能用也。」駑,音奴。言爽顧戀室家而慮不及遠,必不能用範計。棧,士限翻。

範至,勸爽兄弟以天子詣許昌,發四方兵以自輔。爽疑未決,範謂羲曰:「此事昭然,卿用讀書何爲邪!於今日卿等門戶,求貧賤復可得乎!復,扶又翻。且匹夫質一人,尚欲望活;此謂漢末劫質也。質,音致。卿與天子相隨,令於天下,誰敢不應也!」俱不言。範又謂羲曰:「卿別營近在闕南,中領軍營,懿已遣王觀據之,惟別營在耳。洛陽典農治在城外,洛陽典農中郎將、典農都尉所治也。呼召如意。今詣許昌,不過中宿,中宿,次宿也。《左傳》曰:命汝三宿,汝中宿至。陸德明曰:中,丁仲翻。許昌別庫,足相被假;許昌別庫貯兵甲;洛陽有武庫,故曰別庫。被假,謂授兵也。被,皮義翻。所憂當在穀食,而大司農印章在我身。」羲兄弟默然不從,自甲夜至五鼓,甲夜,初夜也。夜有五更:一更爲甲夜,二更爲乙夜,三更爲丙夜,四更爲丁夜,五更爲戊夜。爽乃投刀於地曰:「我亦不失作富家翁!」範哭曰:「曹子丹佳人,生汝兄弟,㹠犢耳!曹眞,字子丹。㹠,與豚同。小豕曰㹠,小牛曰犢。何圖今日坐汝等族滅也!」

爽乃通懿奏事,白帝下詔免己官,奉帝還宮。爽兄弟歸家,懿發洛陽吏卒圍守之;洛陽令所主吏卒也。四角作高樓,令人在樓上察視爽兄弟舉動。爽挾彈到後園中,彈,徒案翻。樓上便唱言:「故大將軍東南行!」爽愁悶不知爲計。

戊戌,有司奏「黃門張當私以所擇才人與爽,疑有姦。」收當付廷尉考實,辭云:「爽與尚書何晏、鄧颺、丁謐、司隸校尉畢軌、荊州刺史李勝等陰謀反逆,須三月中發。」於是收爽、羲、訓、晏、颺、謐、軌、勝幷桓範皆下獄,劾以大逆不道,下,遐稼翻。劾,戶槪翻,又戶得翻。與張當俱夷三族。《考異》曰:《魏氏春秋》曰:「宣王使晏典治爽等獄,晏窮治黨與,冀以獲宥。宣王曰:『凡有八族,』晏疏丁、鄧等七姓。宣王曰:『未也。』晏窮急,乃曰:『豈謂晏乎?』宣王曰:『是也。』乃收晏。」按宣王方治爽黨,安肯使晏典其獄!就令有之,晏豈不自知與爽最親而冀獨免乎!此殆孫盛承說者之妄耳。

初,爽之出也,司馬魯芝留在府,聞有變,將營騎斫津門出赴爽。營騎,大將軍營騎士也。津門,洛城南出西頭第一門也,亦曰建城門。騎,奇寄翻。及爽解印綬,綬,音受。將出,主簿楊綜止之曰:「公挾主握權,捨此以至東市乎?」言必將見誅於市也。有司奏收芝、綜治罪,治,直之翻。太傅懿曰:「彼各爲其主也,爲,于僞翻。宥之。」頃之,以芝爲御史中丞,綜爲尚書郎。

魯芝將出,呼參軍辛敞欲與俱去。敞,毗之子也,其姊憲英爲太常羊耽妻,敞與之謀曰:「天子在外,太傅閉城門,人云將不利國家,於事可得爾乎?」爾,猶云如此也。憲英曰:「以吾度之,度,徒洛翻。太傅此舉,不過以誅曹爽耳。」敞曰:「然則事就乎?」憲英曰:「得無殆就!殆,近也。爽之才非太傅之偶也。」偶,匹也。敞曰:「然則敞可以無出乎?」憲英曰:「安可以不出!職守,人之大義也。凡人在難,難,乃旦翻。猶或卹之;爲人執鞭而棄其事,不祥莫大焉。且爲人任,爲人死,親昵之職也,昵,尼質翻。《左傳》:晏子曰:君爲社稷死則死之,若爲己死,非其私昵,誰敢任之!昵,私愛也。此言親者則可爲質任,愛昵者則可爲之死。從衆而已。」敞遂出。事定之後,敞歎曰:「吾不謀於姊,幾不獲於義!」幾,居希翻。

 이에 앞서 조상이 왕침과 태산 사람 양호를 벽소하였는데, 왕침이 양호에게 명령에 순응하라고 권고하였다. 양호가 말하였다.

 "몸을 맡겨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이 또한 어찌 쉽겠소?"

 왕침이 드디어 갔다.

 조상이 실패하기에 이르자 왕침은 옛 관리여서 면직되었는데 이에 양호에게 말하였다.

 "나는 경이 전에 했던 말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양호가 말하였다.

 先是,爽辟王沈及太山羊祜,沈勸祜應命。祜曰:「委質事人,復何容易!」先,悉薦翻。沈,持林翻;下同。質,如字。復,扶又翻。易,以豉翻。沈遂行。及爽敗,沈以故吏免,乃謂祜曰:「吾不忘卿前語。」

 

 양호가 말하였다.

 "이 일이 처음에는 거기에까지 이르리라고 생각했던 것은 아니요."

 조상의 사촌 동생 조문숙은 하후령녀를 처로 삼았는데, 일찍이 과부가 되었고 자식이 없어서 그녀의 아버지 하후문녕이 그녀를 시집보내려고 하였다. 하후령녀는 칼로 두 귀를 자르고 스스로 맹세하고 늘 조상에게 의지하여 살았다.

 祜曰:「此非始慮所及也!」言始慮亦不料爽至此,不欲受知幾之名也。

 爽從弟文叔妻夏侯令女,夏侯氏之女名令女。夏,戶雅翻。早寡而無子,其父文寧欲嫁之;令女刀截兩耳以自誓,居常依爽。

 

 조상이 주살되자 그녀의 집에서 편지를 올려 조씨 집안과의 혼인관게를 끊겠다고 하고서 억지로 영접하여 돌아오게 하고 다시 장차 그녀를 시집보내려고 하였더니, 하후령녀가 몰래 침실로 들어가서 칼을 가져다가 스스로 코를 자르니 그 집안 사람들이 놀라서 그녀에게 말하였다.

 "사람이 세상에 살아 있는 것은 마치 가벼운 먼지가 약한 풀에 서식하는 것과 같을 뿐인데, 어찌하여 스스로 이렇게 고생하기에 이르렀다는 말인가? 또한 지아비의 집안은 이멸되어 이미 없어졌는데, 이를 지키는 것이 누구를 위한 것인가?"

 爽誅,其家上書絕昏,強迎以歸,復將嫁之;強,其兩翻。復,扶又翻;下同。令女竊入寢室,引刀自斷其鼻,斷,丁管翻。其家驚惋,惋,烏貫翻,驚歎也。謂之曰:「人生世間,如輕塵棲弱草耳,何至自苦乃爾!且夫家夷滅已盡,守此欲誰爲哉!」爲,于僞翻。

 

 하후령녀가 말하였다.

 "내가 듣건대 어진 사람은 번성하느냐 쇠퇴하느냐를 가지고 절개를 고치지 않는다고 하였으며, 의로운 사람은 존재하느냐 없어지느냐를 가지고 마음을 바꾸지 않는다고 하였습니다. 조씨가 전에 번성하였을 때에는 숭상하며 끝까지 보존하기를 바랐는데, 하물며 지금 쇠망하였다 하여 어찌 차마 버린단 말이오. 이는 금수와 같은 행동이니 내가 어찌 그렇게 하겠소?"

 사마의가 이 소식을 듣고 그녀를 현명하다고 생각하여 아들을 빌어다가 양자로 길러서 조씨 집안의 후사로 살게 하는 것을 허락하였다.

 令女曰:「吾聞仁者不以盛衰改節,義者不以存亡易心。曹氏前盛之時,尚欲保終,況今衰亡,何忍棄之!此禽獸之【章:甲十六行本「之」作「不」;乙十一行本同;孔本同;熊校同。】行,吾豈爲乎!」司馬懿聞而賢之,聽使乞子字養爲曹氏後。

 

 하안 등이 바야흐로 용사를 하면서 스스로가 한 시대를 풍미하는 재주가 걸출하다고 생각하며 다른 사람이 따라올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하안이 일찍이 명사들을 품평하여서 말하였다.

 "'오직 깊기만 하여 천하의 뜻을 통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하후태초가 바로 이러한 사람이다. '오직 기미를 알아 천하의 힘쓸 것을 성취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사마자원이 바로 이 사람이다. '오직 신비스러워서 서두르지 않으면서 속히 하고, 가지 않으면서 도착하는 사람'이라면, 내가 그런 말을 들었지만 아직도 그러한 사람을 보지 못하였다."

 대개 신비스러운 상황의 인물이 자기 자신이고 싶어 한 것이다.

 何晏等方用事,自以爲一時才傑,人莫能及。晏嘗爲《名士品目》曰:「『唯深也故能通天下之志』,夏侯泰初是也。『唯幾也故能成天下之務』,司馬子元是也。『唯神也不疾而速,不行而至』,吾聞其語,未見其人。」蓋欲以神況諸己也。夏侯玄,字泰初。司馬師,字子元。晏引《易‧大傳》之辭以爲品目。幾,居希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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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選部郎劉陶,曄之子也,少有口辯,少,詩照翻。鄧颺之徒稱之以爲伊、呂。陶嘗謂傅玄曰:「仲尼不聖。何以知之?智者於羣愚,如弄一丸於掌中;而不能得天下,何以爲聖!」玄不復難,難,乃旦翻。但語之曰:語,牛倨翻。「天下之無常也,今見卿窮。」及曹爽敗,陶退居里舍,乃謝其言之過。

 

 관로의 외삼촌이 관로에게 말하였다.

 "네가 전에 하안과 등양이 실패할 것을 어떻게 알았는가?"

 관로가 대답하였다.

 "등양이 걸음을 걸을 때 근육이 뼈에 붙어 있지 않았고, 맥이 살을 통제하지 못하였으며, 일어서는데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어서 마치 손발이 없는 것 같았으니, 이러한 것이 바로 '鬼躁(귀신같은 조행 즉 근육과 뼈가 가볍고 붕 떠서 연약한 것)'입니다.

 管輅之舅謂輅曰:「爾前何以知何、鄧之敗?」輅曰:「鄧之行步,筋不束骨,脈不制肉,起立傾倚,若無手足,此爲鬼躁;

 

 하안이쳐다볼 때에는 혼이 집을 지키지 않았고, 피는 화려한 색깔이 없었으며, 정신은 연기처럼 붕 떠 있었고, 얼굴은 마른나무와 같았으니, 이것이 바로 '鬼幽(용모가 바짝 말라서 정신이 없는것 같은 모양으로 살아있는 모습이 아닌 모습)'입니다.

 이 두 사람은 모두 오래 복을 누릴 상은 아니었습니다."

 何之視候則魂不守宅,血不華色,精爽煙浮,容若槁木,此爲鬼幽;二者皆非遐福之象也。」管輅之與何、鄧言也,其陳義近於古人;至答其舅論何、鄧之所以敗,則相者之說耳,何前後之相戾也!

 하안의 성품은 스스로를 기뻐하는 사람이어서 흰 가루를 손에서 떼어 놓지 않앗고, 걸음을 걸으면서 자기의 그림자를 돌아보았다. 더욱 노·장의 책을 좋아하여 하후현·순찬과 산양 사람 왕필의 무리들과 다투어 청담을 하였고, 허무를 숭상하면서 육경을 성인의 찌꺼기라고 하였다.

 이로 말미암아서 천하의 사대부들은 다투어 그를 흠모하여 본받으려고 하엿고, 드디어 풍습이 되어 유행하니 다시는 통제할 수 없었다. 순찬은 순욱의 아들이다.

 何晏性自喜,喜,許記翻。粉白不去手,以自塗澤也。行步顧影。尤好《老》、《莊》之書,好,呼到翻。與夏侯玄、荀粲及山陽王弼之徒,競爲清談,祖尚虛無,謂《六經》爲聖人糟粕。《莊子》曰:桓公讀書於堂上,輪扁斲輪於堂下,釋椎鑿而上,問桓公曰:「敢問公所讀者何言邪?」公曰:「聖人之言也。」曰:「聖人在乎?」公曰:「已死矣。」曰:「然則君之所讀者,古人之糟粕已矣,古之人與其不可傳者死矣。」糟,酒滓也。司馬云:爛食曰粕。又云:糟爛爲粕。許愼曰:粕,已漉粗糟也。音匹各翻,又普白翻。由是天下士大夫爭慕效之,遂成風流,不可復制焉。清談之禍始此。粲,彧之子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