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周紀5 世宗 顯德 6年》 (己未, 959) 8. 3월 19일에 조서를 내려서 북비가 아직 수복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장차 창주에 가겠다고 하면서 의무절도사 손행우에게 명령하여 서산로를 막게 하고, 선휘남원사 이정조(이연조)를 권동경유수· 판개봉부사로 삼고, 삼사사 장미를 권대내도부서로 삼았다. 여름 4월 15일에 한통이 주문을 올려서 창주에서부터 물길을 다스려서 거란의 경계로 들어가게 하였는데, 건녕군(乾寧軍: 하북 靑縣) 남쪽에 목책을 세우고 무너진 제방을 보수하며 배수구 36개를 개착하여 드디어 영(瀛: 하간시)· 막(莫: 하북 임구 막주진)으로 통하게 하였다고하였다. 8. 甲子,詔以北鄙未復,將幸滄州,〈九域志:大梁至滄州一千二百里。〉命義武節度使孫行友扞西山路,〈扞定州西山路,以防北漢救契丹也。〉以宣徽南院使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