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李徵古. 安友進/辛丑䄵冬至節末候水泉動4日(음12/1)丙辰.

solpee 2022. 1. 3. 06:09

《後周紀5 世宗 德 5年》 (戊午, 958)

 

 51. 애초에, 당의 태부· 겸중서령인 초공 송제구는 붕당을 많이 심어놓고 조정의 권한을 오로지 굳게 하려고 하였으며, 조급하게 진급하려는 인사들이 다투어 그에게 붙어서 추천하고 장려하여 나라의 원로로 삼았다.

 추밀사인 진각과 부사인 이징고는 송제구의 세력을 믿고 더욱 교만하였다.

 허문진 등이 자금산에서 패배하게 되자, 진각은 송제구· 이경달과 더불어 호주에서 숨어서 돌아오니, 나라의 사람들은 두려워하였다.

 51. 初,唐太傅兼中書令楚公宋齊丘多樹朋黨,欲以專固朝權,〈朝,直遙翻。〉躁進之士爭附之,推獎以為國之元老。樞密使陳覺、副使李徵古恃齊丘之勢,尤驕慢。及許文稹等敗於紫金山,覺與齊丘、景達自濠州遁歸,〈事見上卷上年。〉國人忷懼。〈忷,許拱翻。〉

 

 당주가 일찍이 한탄하였다.

 "나의 국가가 아루아침에 이 지경에 이르렀구나!"

 이어서 눈물을 흘렸다.

 이징고가 말하였다.

 "폐하께서 마땅히 군사를 잘 다스려서 적을 막아야 하는데, 눈물을 흘리니 어찌합니까? 어찌하여 술을 지나치게 마십니까? 곧 유모가 오지 않을까요?"

 당주의 얼굴색이 변하였지만 이징고의 행동거지는 태연자약하였다. 마침 사천대에서 주문을 올렸다.

 唐主嘗歎曰:「吾國家一朝至此!」因泣下。徵古曰:「陛下當治兵以扞敵,〈治,直之翻。〉涕泣何為!豈飲酒過量邪,將乳母不至邪﹖」唐主色變,而徵古舉止自若。會司天奏:

 

 "천문에서 변화가 있으니 인주는 의당 자리를 피하여 재앙을 물리쳐야 합니다."

 당주가 마침내 말하였다.

 "화란이 바야흐로 무성한대 내가 만기를 놓아 버리고 마음을 고요한 속에 놓아둔다면 누가 나라를 의탁할 사람이겠소?"

 이징고가 말하였다.

 "송공(제구)은 나라를 만드는 사람이니, 폐하께서 만약에 만기를 싫증내신다면 어찌하여 나라를 들어서 그에게 주지 않습니까?"

 「天文有變,人主宜避位禳災。」唐主乃曰:「禍難方殷,〈禳,如羊翻。難,乃旦翻。〉吾欲釋去萬機,棲心沖寂,誰可以託國者﹖」徵古曰:「宋公,造國手也,陛下如厭萬機,何不舉國授之!」

 

 진각이 말하였다.

 "폐하께서는 깊은 궁궐 안에 계시고 나라의 일은 모두 송공에게 위임하시면, 먼저 시행한 뒤에 보고 드리고, 신 등은 때때로 들어와서 시중들면서 석가모니와 노자를 이야기 하면 될 뿐입니다."

 당주는 마음으로 성이 나서 즉각 중서사인인 예장 사람 진교에게 조서의 초안을 잡아서 실행하게 하였다. 진교가 황공하여 알현하기를 청하고 말하였다.

 "폐하께서 한 번 이 조서에 서명하면 신이 다시 알현할 수가 없습니다."

 覺曰:「陛下深居禁中,國事皆委宋公,先行後聞,臣等時入侍,談釋、老而已。」唐主心慍,〈慍,於運翻。〉卽命中書舍人豫章陳喬草詔行之。〈洪州,豫章郡。〉喬惶恐請見,曰:「陛下一署此詔,臣不復得見矣!」〈見,賢遍翻。復,扶又翻。〉

 

 이어서 그것이 안 된다는 것을 극단적으로 말하였다. 당주는 웃으면서 말하였다.

 "너 역시 그것이 잘못이라는 것을 아는가?"

 마침내 중지하였다. 이로부터 진왕(이경수)이 진으로 나가는 것을 통하여, 이징고를 그 부사로 삼게 하고, 진각이 주에서 돌아오자 역시 가까이 하는 직책을 파직시켰다.

 因極言其不可。唐主笑曰:「爾亦知其非邪﹖」乃止。由是因晉王出鎭,以徵古為之副,〈事見上。〉覺自周還,〈還,從宣翻,又如字。〉亦罷近職。

 

 종모는 평소에 이덕명과 잘 지냈는데, 이덕명이 죽은 것 때문에 송제구를 원망하였으며, 사절의 책임을 받들고 나서 당으로 돌아오게 되자, 당주에게 말하였다.

 "송제구는 나라의 위태로운 틈을 타고 급히 찬절(篡竊: 찬탈하다)하려고 모의하였고, 진각과 이징고는 그의 우익이니 이치로 보아서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진각이 주에서 돌아와서 황제의 명령을 고쳐서 당주에게 말하였다.

 "듣건대 강남에서 몇 해를 계속하여 명령을 거역한 것은 모두 재상인 엄속의 꾀라 하니 당연히 나를 위하여 그를 목 베어야 하오."

 당주는 진각이 평소에 엄속과 틈이 있는 것을 알고 굳게 이를 믿지 않았다.

 鍾謨素與李德明善,以德明之死怨齊丘;〈李德明死見上卷三年。〉及奉使歸唐,言於唐主曰:「齊丘乘國之危,遽謀篡竊,陳覺、李徵古為之羽翼,理不可容。」陳覺之自周還,〈見上三月。〉矯以帝命謂唐主曰:「聞江南連歲拒命,皆宰相嚴續之謀,當為我斬之。」〈為,于偽翻。〉唐主知覺素與續有隙,固未之信。

 

 종모가 이 사실을 주에 다시 회답을 받게 해달라고 청하자, 당주는 마침내 종모가 복명을 통하여 말씀을 올렸다.

 "오래 왕사를 거역한 것은 모두 신의 우매하고 미혹한 때문이며 엄속의 죄가 아닙니다."

 황제가 이 말을 듣고 크게 놀라서 말하였다.

 "이와 같은 사실을 살펴본 즉 엄속은 바로 충신이다. 짐은 천하의 주인으로서 어찌 다른 사람을 시켜서 충신을 죽이겠는가?"

 종모가 돌아와서 당주에게 보고하였다.

 당주는 송제구 등을 주살하고자 하여 다시 종모를 파견하여 들어가서 황제에게 품의하였다. 황제는 다른 나라의 신하이기 때문에 가부를 말하지 않았다.

 鍾謨請覆之於周,〈審覆其言之虛實於周也。〉唐主乃因謨復命,上言:「久拒王師,皆臣愚迷,非續之罪。」帝聞之,大驚曰:「審如此,則續乃忠臣,〈言嚴續果能為其主設謀以拒周,乃忠臣也。〉朕為天下主,豈敎人殺忠臣乎!」謨還,以白唐主。〈還,從宣翻。〉

唐主欲誅齊丘等,復遣謨入稟於帝。〈復,扶又翻。〉帝以異國之臣,無所可否。

 

 12월 23일에 당주는 지추밀원 은숭의에게 명령하여 송제구· 진각· 이징고의 죄악을 폭로하라는 조서를 초안 잡게 하고, 송제구가 구화산에 잇는 옛날 은거지로 돌아가는 것을 들어주고, 관작은 옛날 그대로 두게 하였으며, 진각은 책망을 받아 국자박사가 되어 선주에 안치되었고, 이징고는 관작이 깎이고 빼앗겨 자진할 것이 내려졌다. 나머지 무리들은 묻지 않았다.

 己亥,唐主命知樞密院殷崇義草詔暴齊丘、覺、徵古罪惡,聽齊丘歸九華山舊隱,官爵悉如故;〈宋齊丘隱九華山,見二百七十七卷唐明宗長興二年,吳睿皇之太和三年也。〉覺責授國子博士,宣州安置;徵古削奪官爵,賜自盡;黨與皆不問。遣使告于周。

 

 

 53. 평로절도사· 태사· 중서령인 진왕 안심기의 마부인 안우진이 그의 애첩과 간통하여쓴데, 애첩은 이 사실이 누설될까 두려워하여 안우진과 더불어 안심기를 죽이려고 모의하니, 안우진이 안된다고 하자, 그 애첩이 말하였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당연히 도리어 너를 고발할 것이다."

 안우진이 두려워서 이를 좇았다.

 53. 平盧節度使、太師、中書令陳王安審琦僕夫安友進與其嬖妾通,〈嬖,卑義翻,又必計翻。〉妾恐事泄,與友進謀殺審琦,友進不可,妾曰:「不然,我當反告汝。」友進懼而從之。

 

 

《後周紀5 世宗 德 6年》 (己未, 959)

 

 1. 봄, 정월 7일에 안심기가 술에 취하여 깊이 잠을 자는데, 애첩이 안심기가 ㅔ고 있는 검을 가져다가 안우진에게 주어서 그를 살해하게 하고 이어서 장하에 있던 시비를 다 죽여서 입을 열지 못하게 하였다. 며칠 뒤에 그의 아들인 안수충이 비로소 이를 알고 안우진 등을 뼈를 다 발라냈다.

 1. 春,正月,癸丑,審琦醉熟寢,妾取審琦所枕劍〈枕,職任翻。〉授友進而殺之,仍盡殺侍婢在帳下者以滅口。後數日,其子守忠始知之,執友進等寛之。〈寛,古瓦翻。 之。

 

 3. 당의 송제구가 구화산에 도착하니 당주는 그 집을 봉쇄하라고 명령하고 담장에 구멍을 뚫어 음식을 주게 하였다. 송제구가 탄식하며 말하였다.

 "내가 옛날에 양황제의 가족을 태주에 유폐하는 꾀를 바쳤으니, 의당 그것이 여기에 미쳐야 하겠지!"

 마침내 목매어 죽었다. 시호를 추무(醜繆: 품행이 방탕하여 멋대로 행동하는 것을 醜라 하고, 명분과 실질이 어긋나는 것을 繆라고 함)라고 하였다.

 3. 唐宋齊丘至九華山,唐主命鎖其第,穴牆給飲食。齊丘歎曰:「吾昔獻謀幽讓皇帝族於泰州,〈事見二百八十一卷晉天福二年。〉宜其及此!」乃縊而死。〈《考異》曰:《江表志》:「齊丘至青陽,絕食數日,家人亦菜色。中使云:『令公捐館,方始供食。』家人以絮塞口而卒。」今從《江南錄》、《紀年》。〉諡曰醜繆。〈繆,靡幼翻。〉

 

 애초에, 한림학사 상몽석이 지선정원이어서 기밀정치에 참여하였는데, 송제구의 무리를 깊이 싫어하여 자주 당주에게 말하였다.

 "이 무리들을 제거하지 않으면 나라는 반드시 위태로워지고 맙니다."

 풍연기와 우잠의 무리와 더불어 쟁론하였다.

 初,翰林學士常夢錫知宣政院,參預機政,深疾齊丘之黨,數言於唐主曰:〈數,所角翻。〉「不去此屬,〈去,羌呂翻。〉國必危亡。」與馮延己、魏岑之徒日有爭論。

 

 오래 있다가 선정원에서 파직되어 상몽석은 울적하여 뜻을 얻지 못하였고, 다시 일에 참여핮 못하여 멋대로 술을 마시다가 죽었다. 송제구가 죽고 나자 당주가 말하였다.

 "상몽석이 평생 송제구를 죽이려고 하였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게 된것이 한스럽구나!"

 상몽석에게 좌복야를 추증하였다.

 久之,罷宣政院,夢錫鬱鬱不得志,不復預事,縱酒成疾而卒。〈通鑑二百八十五卷晉齊王開運三年,已書常夢錫縱酒事,去年又書夢錫笑馮延己之黨事。蓋縱酒已非一日,久乃成疾而卒。〉及齊丘死,唐主曰:「常夢錫平生欲殺齊丘,恨不使見之!」贈夢錫左僕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