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槿堂體本(11/15)/ 立冬節中候地始凍5日(陰10/12 )戊辰.

槿堂體本(11/15) ☞. 不眠愚社稷, 無力濟黎元. ☞. 欲尊先謙, 過難成祥. 《圍爐夜話· 淸 王永彬》 ☞. 水能善下方成海, 山不矜高自齊天。《孔子家語》 水惟善下方成海, 山不矜高自極天. 聖人胸中有大道, 得失成败在其中. ☞. 登祚号爲永樂太恩澤. ☞. 客散茶甘留舌本, 睡餘書味在胸中. 《晩興· 陸游》 幷檐幽鳥語璁瓏,一榻蕭然四面風。客散茶甘留舌本,睡餘書味在胸中。浮云變態吾何與,腐骨成塵論自公。剩欲與君談此事,少须明月出溪東。 ☞. 有宴駕棄國以甲寅年酉就陵於是立碑. ☞. 世才己齊日月懸千古應與雲泉作四鄰雲. ☞. 刻薄成家, 理無久享. 倫常乖舛, 立見消亡.《朱柏廬治家格言》 남에게 각박하게 하여 집안을 이룬 자는 이를 오래 누리지 못하며, 윤상(윤리)을 어그러뜨린 집은 곧바로 소멸하고 망하고 만다. ☞. 欲尊先謙, 過難成祥. ☞. ..

카테고리 없음 2021.11.14

遼의 晉 合幷 1. / 立冬節中候地始凍2日(陰10/9 )乙丑.

《後漢紀1 高祖 天福 12年》〈丁未· 947〉 ⑤. 정월 5일에 요에서는 진주(晉主: 황제 석중귀)를 부의후로 삼고 황룡부에 안치하였다. 황룡부는 즉 모용씨의 화룡성이다. 요황제가 이태후에게 말하였다. "듣건대 석중귀는 어머니의 명령을 듣지 않아서 이 지경에 이르렀다 하는데 스스로 편안한대로 하여 더불어 가지 않겠다고 요구할 수 있습니다." 태후가 말하였다. "석중귀는 첩을 섬기면서 심히 공손하였습니다. 실수한 것은 선황의 뜻을 어기고 두 나라의 우호관계를 끊은 것뿐이었습니다. 지금 다행스럽게도 큰 은혜를 입어 생명을 온전히 하고 가문을 보전하였으니 어미가 아들을 따르지 않으면 누구에게 돌아가기를 바라겠습니까?" ⑤. 辛卯,契丹以晉主為負義侯,置於黃龍府。黃龍府,即慕容氏和龍城也。〈歐史曰:自幽州行十餘日,過平州..

카테고리 없음 2021.11.12

遼 侵攻과 晉 滅亡 2. / 立冬節中候地始凍(땅이 얼기 시작)1日(陰10/8 )甲子.

《後晉紀6 齊王 開運 3年》〈丙午· 946〉 16일에 황제는 비로소 두위 등이 항복하였다는 소식을 들었고, 이날 저녁에 또 장언택이 활주에 도착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이송· 풍옥· 이언도를 불러 금중에 들어가서 일을 계획하게 하고, 유지원에게 조서를 내려서 군사를 징발하여 들어와서 구원하라고 하려고 하였다. 壬申,帝始聞杜威等降;是夕,又聞彥澤至滑州,召李崧、馮玉、李彥韜入禁中計 事,欲詔劉知遠發兵入援。〈太原距洛陽一千二百里,洛陽至大梁又二百八十里,就使劉知遠聞命投袂而起亦無及矣。〉 17일에 아직 날이 밝지 않았는데, 장언택이 봉구문에서 관문을 부수고 들어오니 이언도가 금군 500을 거느리고 그들에게 나아갔으나 막을 수가 없었다. 장언택은 명덕문 밖에서 군사를 정돈시키니 성 안은 크게 시끄러웠다. 癸酉,未明,彥澤自封丘門..

카테고리 없음 2021.11.09

遼 侵攻과 晉 滅亡 1. / 立冬節初候水始氷4日(陰10/6 )壬戌.

《後晉紀6 齊王 開運 3年》〈丙午· 946〉 ㉚. 두위는 비록 귀척이어서 상장이 되었으나 성격이 나약하고 겁쟁이었다. 편비(偏裨: 대장의 부장들, 偏將, 裨將, 佐將)는 모두 절도사이었으나 다만 날마다 서로 받들고 영접하며 주연을 베풀고 즐거움을 일삼았을 뿐 군사를 논의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㉚. 杜威雖以貴戚為上將,性懦怯。偏裨皆節度使,〈自李守貞至宋彥筠皆節度使也。〉但日相承迎,置酒作樂,罕議軍事。 자주자사· 겸북면전운사인 이곡이 두위와 이수정에게 유세하였다. "지금 대군이 항주(恒州: 정정현)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어서 밥을 짓는 연기가 서로 바라보입니다. 만약 삼고목(三股木=鹿角: 수중방어용 목책)을 많이 물속에 설치하고 그 위에 땔감을 쌓고 흙을 펴면 다리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은밀히 성 안에 있는 사람..

카테고리 없음 2021.11.09

槿堂體本(11/8)/立冬節初候水始氷3日(陰10/5 )辛酉.

槿堂體本(11/8) ☞. 山寺訪僧歸帶月, 芳林携客醉眼花.《唐代:鲍溶》 径草渐生长短绿,庭花欲绽浅深红。夜瑟弦惊绿流水,暖松花放碧香烟。窗间夜学凝残烛,轩下朝吟向暖风。幽客携琴好归去,七丝闲和百泉声。野寺访僧归带月,芳林携客醉眠花。 ☞. 陰洋和而(後)雨澤江, 夫婦和而(後)家道成. ☞.☞. ☞. 上廣開土境平安好太九. ☞. 世亂疎儒術, 時危忌太言. 《不寐: 白沙》 ☞. 近來學得鳥龜灋, 得縮頭時且縮頭. 《增廣賢文》 ☞. 伸. 叉手雙虛托, 低頭攀 ☞. 安如盤石性靈㝬暢 明月入㨬爲孤獨 瀚墨香金沙萬事隨緣. ☞. 積德者不傾. ☞. 初. 由其不能學, 所入遂異閭. 兩家各生 《符讀書城南· 昌黎· 韓愈》 ☞. 士矜才則德薄, 女衒色則情放. 《馮夢龍· 警世通言》 남자가 잘난 체하면 천박하여지고, 여자가 잘난 체 하면 몸을 마구 굴린다. 故知士矜才..

카테고리 없음 2021.11.08

雜詩와 雜諺/立冬節初候水始氷2日(陰10/4 )庚申.

雜詩와 雜諺 不寐(잠 못 이루며) 李恒福(1556∼1618(명종 11∼광해군 10)) 世亂疎儒術 : 어지러운 세상, 공자 가르침 멀고 時危忌太言 : 시절 위태로워 중요한 말을 꺼리는구나 不眠憂社稷 : 잠 못 이루고 나라 걱정하면서도 無力濟黎元 : 창생들을 구제할 만한 힘도 없도다 草草新年夢 : 초조해 하는 것은 새해의 꿈 蕭蕭古驛軒 : 쓸쓸한 것은 옛 역사로다 家鄕已千里 : 고향집 벌써 천리나 멀어 誰肯問寒暄 : 그 누가 내 안부를 물어줄거나 오늘의 孟子 1. 좁으면서도 넓은 이야기 齊宣王問曰: 「文王之囿方七十里, 有諸? 」 孟子對曰: 「於傳有之. 」 제선왕이 물었다. "문왕의 사냥터는 사방 70 리였다고 하는데 정말입니까?" 맹자가 대답했다. "그렇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曰: 「若是其大乎? 」 曰: ..

카테고리 없음 2021.11.08

심빈의 순국과 순국절도사 두위/立冬節初候水始氷2日(陰10/4 )庚申.

《後晉紀5 齊王 開運 2年》〈乙巳· 945〉 ⑤. 2월 1일에 황제가 활주에 도착하였고, 안심기에게 명령하여 업도에 주둔하게 하였다. 7일에 황제는 활주를 출발하였고, 8일에 전주에 도착하였다. 12일에 마전절 등의 여러 부대가 차례로 북상하였다. 유지원이 이 소식을 듣고 말하였다. "중국이 피폐하니 스스로 지키는 것도 충분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마침내 강한 오랑캐에게 가로질러 도전하여 그들을 이겼다 하여도 오히려 후환이 있을 것인데 하물며 이기지 못함에야?" ⑤. 二月,壬辰朔,帝至滑州,〈【章:十二行本「州」下有「壬申」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退齋校同。】〉命安審琦屯鄴都。甲戌,帝發滑州;乙亥,至澶州。己卯,馬全節等諸軍以次北上。〈上,時兩翻。〉劉知遠聞之曰:「中國疲弊,自守恐不足;乃橫挑強胡,〈挑,徒了翻。〉勝之猶有後患,..

카테고리 없음 2021.11.07

잊을 수 없는 사람· 법정/立冬節初候水始氷1日(陰10/3 開天節)己未.

* 그는 과연 무소유였을까? 아니면 글쓰기 위한 방편이었을까? 무소유를 부추기고 꼬드겨서 김영현님의 길상사를 헌납받았을까? 그럼 왜 무소유라면서 김영현님이 헌납한 길상사를 속가의 조카에게 물려 줬을까? 글 쓰는 것도 태어나는 것이라 참 잘 쓰는 분은 맞다. 그러나 선지식이 아닌 위선자 였을까? 참으로 알 수 없는 일이다. 잊을 수 없는 사람 法頂 水然스님! 그는 정다운 道伴이요, 善知識 이었다. 慈悲가 무엇인가를 입으로 말하지 않고 몸소 행동으로 보여준 그런 사람이었다. 길가에 무심히 피어 있는 이름 모를 풀꽃이 때로는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듯이, 그는 사소한 일로써 나를 감동케 했던 것이다. 수연 스님! 그는 말이 없었다. 항시 조용한 미소를 머금고 있을 뿐, 묻는 말에나 대답을 하였다. 그러한 그를..

카테고리 없음 2021.11.06

소외된 유지원과 요의 침입/立冬節初候水始氷1日(陰10/3 開天節)己未.

《後晉紀5 齊王 開運 元年》〈甲辰· 944〉 ㉓. 어떤 사람이 황제에게 말하였다. "폐하께서 북적을 방어하여 천하를 안정시키려고 한다면 상유한이 아니면 아니 됩니다." ㉓. 或謂帝曰:「陛下欲禦北狄,安天下,非桑翰不可。」〈請罷馮道,請用桑維翰,蓋出一人之口。前史謂維翰倩人以言於帝,通鑑皆曰「或」者,疑其辭。〉 6월 6일에 다시 추밀원을 설치하고, 상유한을 중서령· 겸추밀사로 삼아 일에 크고 작은 것 없이 모두 그에게 맡겼다. 수 개월 사이에 차츰 다스려졌다. 丙午,復置樞密院,〈罷樞密院見二百八十二卷高祖天福四年。〉以維翰為中書令兼樞密使,事無大小,悉以委之。數月之間,朝廷差治。〈治,直吏翻。〉 ㉔. 활주에서 하를 터서 변· 조· 선· 복· 운 다섯 주의 경내를 물에 잠기게 하고 양산을 돌아서 문수에서 합류하게 하였다. 조서를 내..

카테고리 없음 2021.11.06

遼의 建國과 後晉의 이상한 황제 계승/霜降節末候蟄蟲咸俯5日(陰10/2)戊午.

《後晉紀2 高祖 天福 2年》〈丁酉, 937年〉 55. 이 해에 거란에서는 연호를 고쳐 회동이라 하고 국호를 대요라 하였으며, 공경과 여러 관직은 모두 중국을 모방하고 중국인들을 채용하였는데, 조연수를 추밀사로 삼고 얼마 안 있어 겸정사령으로 삼았다. 55. 是歲,契丹改元會同,國號大遼,公卿庶官皆倣中國,參用中國人,以趙延壽為樞密使,尋兼政事令。〈為遼人用趙延壽以圖晉張本。 《後晉紀3 高祖 天福 5年》〈庚子· 940〉 ㉟. 애초에, 황제는 안문관 북쪽을 잘라내어서 요에 뇌물로 주었는데, 이로부터 토욕혼은 모두 요에 속하였으며 그들의 탐욕과 학대를 고통스럽게 여겨서 중원에 귀부할 것을 생각하였는데, 성덕절도사 안중영이 다시 그들을 유혹하자 이에 토욕혼이 부락 1천여 장을 인솔하고 오대에서 도망해 왔다. ㉟. 初,帝割鴈..

카테고리 없음 2021.1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