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遼 侵攻과 晉 滅亡 1. / 立冬節初候水始氷4日(陰10/6 )壬戌.

solpee 2021. 11. 9. 18:50

《後晉紀6 齊王 開運 3年》〈丙午· 946

 

 ㉚. 두위는 비록 귀척이어서 상장이 되었으나 성격이 나약하고 겁쟁이었다. 편비(偏裨: 대장의 부장들, 偏將, 裨將, 佐將)는 모두 절도사이었으나 다만 날마다 서로 받들고 영접하며 주연을 베풀고 즐거움을 일삼았을 뿐 군사를 논의하는 일은 거의 없었다.

 ㉚. 杜威雖以貴戚為上將,性懦怯。偏裨皆節度使,〈自李守貞至宋彥筠皆節度使也。〉但日相承迎,置酒作樂,罕議軍事。

 

 자주자사· 겸북면전운사인 이곡이 두위와 이수정에게 유세하였다.

 "지금 대군이 항주(恒州: 정정현)에서 지척의 거리에 있어서 밥을 짓는 연기가 서로 바라보입니다. 만약 삼고목(三股木=鹿角: 수중방어용 목책)을 많이 물속에 설치하고 그 위에 땔감을 쌓고 흙을 펴면 다리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은밀히 성 안에 있는 사람과 약속하여 불을 들어 서로 호응하고서 밤중에 장사들을 모집하여 오랑캐의 군영을 부수고 들어가서 안팎에서 세력을 합하면 오랑캐는 반드시 도망갈 것입니다."

 제장들이 모두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였으나 홀로 두위만은 안 된다고 하고 이곡을 파견하여 남쪽으로 가서 회와 맹에 도착하여 군대 양식을 감독하게 하였다.

 磁州刺史兼北面轉運使李穀說威及李守貞曰:〈磁,牆之翻。說,式芮翻。〉「今大軍去恆州咫尺,煙火相望。若多以三股木置水中,積薪布土其上,橋可立成。〈三股木者,用木三條,交股縳之,其下16開為三足,以寘水中。〉密約城中舉火相應,夜募將士斫虜營而入,表裹合勢,虜必遁逃。」諸將皆以為然,獨杜威不可,遣穀南至懷、孟督軍糧。

 

 요는 대군으로 진의 군대 앞에서 막게하고 몰래 그의 장수인 소한과 통사인 유중진을 파견하여 100의 기병과 파리한 사졸을 거느리고 나란히 서산으로 가서 진의 군대 배후로 나가서 진의 보급로와 돌아가는 길을 끊게 하였다. 땔나무를 하거나 나물을 캐는 사람이 그들을 만나면 모두 노략질 당하였고, 도망하여 돌아온 사람들이 있는데 모두 오랑캐 무리가 강성하다고 이야기하니 군영 안에서는 두려워하였다.

 契丹以大軍當晉軍之前,潛遣其將蕭翰、通事劉重進將百騎及羸卒,並西山出晉軍之後,斷晉糧道及歸路。〈羸,倫為翻。並,步浪翻。斷,音短。〉樵采者遇之,盡為所掠;有逸歸者,皆稱虜眾之盛,軍中忷懼。

 

 소한 등이 난성에 도착하자 성 안에서 수자리 서던 1천여 명이 그들이 도착한 것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가 낭패하여 그들에게 항복하였다. 용가 진의 백성들을 붙잡아서 모두 그들의 얼굴에 뜸을 뜨면서 말하였다.

 "칙서를 받들면 죽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을 놓아주어 남쪽으로 도주하게 하였는데, 운반하는 장정들이 길에서 그들을 만나면 모두 수레를 버리고 놀라서 무너졌다. 소한은 요황제의 장인(述律阿揼의 아들)이다.

 翰至欒城,〈忷,許勇翻。舊唐書地理志曰:欒城縣,漢常山郡之開縣也。後魏於開縣古城置欒城縣,屬趙州,唐屬恆州。九域志:欒城縣在恆州南六十三里。范成大北使錄曰:趙州三十里至欒城。金人改趙州為沃州。〉城中戍兵千餘人,不覺其至,狼狽降之。契丹獲晉民,皆黥其面曰「奉敕不殺」,縱之南走;運夫在道遇,棄車驚潰。翰,契丹主之舅也。〈契丹后族皆以蕭為氏。歐史曰:翰,契丹之大族,其號阿揼。翰之妹亦嫁契丹主德光。而阿揼本無姓氏,契丹呼翰為國舅。既入汴,將北歸,以為宣武節度使,李崧為製姓名曰蕭翰,於是始姓蕭。宋白曰:蕭翰,述律阿揼之子。〉

 

 12월 1일에 이곡이 스스로 편지를 써서 은밀히 주문을 올려 대군의 위험하고 급한 형세를 조목조목 말하고 거가가 활주로 행차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고행주와 부언경을 파견하여 호종하게 하고 군사를 발동하여 전주와 하양을 지켜서 오랑캐가 달려와 부딜칠 것을 대비하게 하엿으며, 군장인 관훈을 파견하여 말을 달려 그것을 올리게 하였다.

 十二月,丁巳朔,李穀自書密奏,具言大軍危急之勢,請車駕幸滑州,遣高行周、符彥卿扈從,及發兵守澶州、河陽以備虜之奔衝;遣軍將關勳走馬上之。〈高行周、符彥卿,一時名將也。滑、澶及河陽,河津之要也。使晉主能用李穀之言,安得有張彥澤輕騎入汴之禍乎!走馬上之,急報也。宋自寶元、康定以前,凡邊鎮率有走馬承受之官。從,才用翻。澶,時連翻。上,時兩翻。〉

 

 3일에 황제는 비로소 대군이 중도에 주둔하였다는 소식을 들었다. 이날 저녁에 관훈이 도착하였다.

 4일에 두위가 주문을 올려 군사를 보태 달라고 요청하자 조서를 내려 궁금을 지키는 사람들을 모두 징발하여 수백 명을 얻어서 그에게 보내게 하였다. 또 조서를 내려 하북과 활· 맹· 택· 노의 꼴과양식 50만을 꺼내서 군영 앞에 이르게 하였는데, 독려하고 압박하는 것이 엄격하고 급하니 도처에서 솥의 물이 끓듯 하였다.

 己未,帝始聞大軍屯中度;〈甲寅,杜威等至中度;己未,大梁始聞之。強寇深入,諸軍孤危,而驛報七日始達,晉之為兵可知矣。〉是夕,關勳至。杜威奏請益兵,詔悉發守宮禁者得數百人,赴之。〈自古以來,重戰輕防,未有不敗者也。發數百人,不足以增大軍之勢,而重閉之防闕矣。〉夕詔發河北及滑、孟、澤、潞芻糧五十萬詣軍前;〈五十萬,合束、石之數言之。〉督迫嚴急,所在鼎沸。

 

 5일에 두위는 또 종자인 장조 등을 파견하여 와서 급한 상황을 보고하게 하였는데 장조 등이 돌아가다가 요군들에게 붙잡혔다. 이로부터 조정과 전방의 군영에는 소식이 양쪽으로 통하지 않았다.

 辛酉,威又遺從者張祚等來告急,〈從,才用翻。〉祚等還,〈還,從宣翻。〉為契丹所獲。自是朝廷與軍前聲問兩不相通。

 

 당시 숙위병이 모두 행영에 있었는데 인심은 벌벌 떨며 계책을 세우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 개봉윤 상유한은 국가의 위험이 아침저녁에 있었기 때문에 황제를 알현하고 사태를 말하게 해달라고 요구하였는데, 황제는 바야흐로 원중에서 매를 길들이며 사양하고 만나지 않았다. 또 집정자들에게 가서 이를 말하였으나 집정자들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물러나서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진씨는 혈식(血食: 犧牲 즉 종묘에 올리는 제사)하지 못할 것이오."

 時宿衛兵皆在行營,人心懍懍,〈懍,力錦翻。〉莫知為計。開封尹桑維翰,以國家危在旦夕,求見帝言事;〈見,賢遍翻。〉帝方在苑中調鷹,〈調鷹者,調習之也,使馴狎而附人。〉辭不見。又詣執政言之,執政不以為然。〈執政,謂馮玉、李彥韜等。〉退,謂所親曰:「晉氏不血食矣!」〈言晉必亡,宗廟不祀。蓋晉氏之亡,不獨桑維翰知之,通國之皆知之。〉

 

 황제는 스스로 거느리고 북정하려고 하자 이언도가 간하여 중지하였다. 당시에 부언경이 비록 행영직사를 맡았다고 하더라도 황제가 그를 남겨서 형주구에서 수자리 서게 하였다.

 6일에 조서를 내려서 귀덕절도사 고행주를 북면도부서로 삼고 부언경을 그의 부사로 삼고 함께 전주에서 수자리 서게 하였으며, 서경유수 경연광으로 하양에서 수자리 서게 하여 또 형세를 벌려 놓았다.

 帝欲自將北征,李彥韜諫而止。〈將,即亮翻。〉時符彥卿雖任行營職事,帝留之,使戍荊州口。壬戌,詔以歸德節度使高行周為北面都部署,以彥卿副之,共戍澶州;以西京留守景延廣戍河陽,且張形勢。〈史言三將戍河津,雖張形勢而兵力甚弱。〉

 

 봉국도지휘사인 왕청이 두위에게 말하였다.

 "지금 대군이 항주와 5리 떨어져 있는데 이곳을 지키면 어떠하오? 군영은 고립되었고 식량은 다하여서 형세로 보면 장차 스스로 무너지게 되었소. 청컨대 보졸 2천으로 선봉을 삼아주면 다리를 탈취하여 길을 열 것이니, 공은 여러 군대를 인솔하고 그 뒤를 이어주어서 항주에 들어갈 수만 있다면 걱정이 없을 것이오."

 곽위는 허락하고 왕청과 송언균을 파견하여 함께 전진하게 하였다. 왕청이 싸우는 것이 매우 예리하여 요가 지탱할 수 없어서 형세가 조금 물러났는데, 제장들이 대군으로 이를 니어달라고 요청하였으나 두위는 허락하지 않았다.

 奉國都指揮使王清言於杜威曰:「今大軍去恆州五里,守此何為!營孤食盡,勢將自潰。請以步卒二千為前鋒;奪橋開道,公帥諸軍繼之;得入恆州,則無憂矣。」〈帥,讀曰率,下同。〉威許諾,遣清與宋彥筠俱進。清戰甚銳,契丹不能支,勢小卻;諸將請以大軍繼之,威不許。

 

 송언균은 요에 패배하였으나 강을 건너 언덕에 이르러 면할 수 있었다. 왕청만이 홀로 휘하의 군사를 인솔하고 강북 쪽에 진을 치고 힘써 싸워서 서로 죽이고 부상당하는 사람이 생기자 누차 두위에게 구원을 요청하였지만 두위는 끝내 한 명의 기병도 파견하여 그들을 돕게 하지 않았다. 왕청은 그 무리들에게 말하였다.

 "상장이 군사를 장악하고 앉아서 우리들이 곤란하고 급한 상황을 보고도 구원하지 않으니 이는 반드시 다른 뜻이 있을 것이다. 우리들은 마땅히 죽음으로써 나라에 보답할 뿐이다."

 무리들이 그의 말에 감동하여 물러나는 사람이 없었으며, 저녁이 되어도 싸움은 쉬지 않았다. 요는 새로운 군사로 그곳에 계속 이어주니, 왕청과 군사들은 전멸되었다. 이 일로 말미암아 여러 군대가 모두 사기가 떨어졌다. 왕청은 명주 사람이다.

 彥筠為契丹所敗,〈敗,補賣翻。〉浮水抵岸得免。〈【章:十二行本「免」下有「因退走」三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清獨帥麾下陳於水北力戰,互有殺傷,屢請救於威,威竟不遣一騎助之。清謂其眾曰:「上將握兵,〈將,即亮翻。〉坐觀吾輩困急而不救,此必有異志。吾輩當以死報國耳!」眾感其言,莫有退者,至暮,戰不息。契丹以新兵繼之,清及士眾盡死。〈李縠為杜威晝畫計而不行,猶可曰言之易而行之難。至於王清力戰而救,則其欲賣國以圖已利,心迹呈露,人皆知之矣。〉由是諸軍皆奪氣。清,洺州人也。

 

 8일에 요는 멀리서 군사들로 진의 군영을 둘러싸니 안팎이 단절되었고, 군영 안에는 식량도 다하였다. 두위는 이수정· 송언균과 더불어 용에 항복할 것을 모의하고 두위는 몰래 심복을 파견하여 요의 아장에 가서 무거운 상을 달라고 요구하게 하였다. 요황제가 그들을 속여 말하였다.

 "조연수의 위엄과 명망이 평소 얕아서 중국에서 황제 노릇을 할 수 없을까 두렵다. 네가 과연 항복한 사람이라면 마땅히 너를 그것으로 삼을 것이다."

 두위가 기뻐하며 드디어 항복할 계책을 정하였다.

 甲子,契丹遙以兵環晉營,〈環,音宦。〉內外斷絕,軍中食且盡。杜威與李守貞、宋彥筠謀降契丹,威潛遣腹心詣契丹牙帳,邀求重賞。契丹主紿之曰:「趙延壽威望素淺,恐不能帝中國。汝果降者,當以汝為之。」威喜,遂定降計。〈趙延壽父子以是陷契丹。杜威之才智未足以企延壽,其墮契丹之計,無足怪者。覆轍相尋,豈天意邪!〉

 

 10일에 갑옷 입은 군사를 매복시키고 제장들을 소환하여 나가서 항복할 뜻을 그들에게 표시하면서 서명하게 하였다. 제장들이 놀라며 감히 말하는 사람이 없고 다만 '네 네' 하며 명령을 들었다. 두위는 합문사인 고훈을 파견하여 그것을 싸가지고 요에 가게 하니 요황제가 조서를 내려 그를 위로하고 맏아들였다.

 丙寅,伏甲召諸將,出降表示之,使署名。諸將駭愕,莫敢言者,但唯唯聽命。〈唯,于癸翻。〉威遣閤門使高動齋詣契丹,契丹立賜詔慰納之。

 

 이날에 두위는 군사들에게 나가서 밖에서 진을 칠 것을 모두에게 명령하니 군사들이 모두 뛸 듯이 기뻐하며 장차 싸울 것이라고 생각하였는데, 두위가 친히 그들을 타이르며 말하였다.

 "지금 양식은 다 떨어지고 길은 막혀있으니 마땅히 너희들과 함께 살 계책을 찾아야겠다."

 이어서 무장을 해제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군사들이 모두 통곡하였는데 소리가 들판을 진동시켰다. 두위와 이수정이 이어서 무리들 속에서 소리 높여 말하였다.

 "주상께서 이미 덕망을 잃고 간사한 사람들을 신임하여 우리를 시기하였소."

 듣는 사람들 가운데 이를 갈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是日,威悉命軍士出陳於外,〈陳,讀曰陣。〉軍士皆踴躍,以為且戰,威親諭之曰:「今食盡塗窮,當與汝曹共求生計。」因命釋甲。軍士皆慟哭,聲振原野。〈史言晉軍之心皆不欲降契丹,迫於其帥而從之耳。〉威、守貞仍於眾中揚言:「主上失德,信任奸邪,猜忌於已。」聞者無不切齒。

 

 요황제는 조연수를 파견하여 자포를 입고 진 군영에 가서 사졸들을 위로하고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저것들이 모두 너희들의 물건이다."

 두위이하의 사람들이 모두 말 앞에서 영접하고 알현하였으며, 역시 자포를 가져다가 두위에게 입히고서 진군들에게 보였는데 그 사실은 모두 그를 희롱하는 것 뿐이었다. 두위를 태부로 삼고 이수정을 사도로 삼았다.

 契丹主遣趙延壽衣赭袍至晉營,慰撫士卒,曰:「彼皆汝物也。」杜威以下,皆迎謁於馬前;亦以 赭袍衣威以示晉軍,其實皆戲之耳。〈契丹主非特戲杜威、趙延壽也,亦以愚晉軍。彼其心知軍之不誠服也,駕言將以華人為中國主,是二人者必居一於此。晉人謂喪君有君,皆華人也,夫是以不生心,其計巧矣。然契丹主巧於愚弄,而入汴之後,大不能制河東,小不能制群盜,豈非挾數用術者有時而窮乎!衣,於既翻。〉以威為犬傅,李守貞為司徒。

 

 두위는 요황제를 이끌고 항주 성 아래에 도착하여 순국절도사 왕주에게 이미 항복한 상황을 가지고서 타이르니, 왕주 역시 나와서 항복하였다.

 12일에 요황제가 항주에 들어갔다. 군사를 파견하여 대주를 기습하게 하니 자사인 왕휘가 성을 가지고 그에게 항복하였다.

 威引契丹主至恆州城下,諭順國節度使王周以已降之狀,周亦出降。戊辰,契丹主入恆州。遣兵襲代州,刺史王暉以城降之。〈契丹以勝勢脅降代州,而太原不為之動,以劉知遠、郭威在也。九域志:恆州西北至代州三百四十里。〉

 

 이보다 먼저 요에서는 누차 역주를 공격하였는데, 자사인 곽린이 굳게 지키면서 그들을 막았다. 요황제가 매번 성 아래를 지나면서 가리키며 탄식하여 말하였다.

 "내가 천하를 집어삼킬 수 있었는데, 이 사람에게 막히게 되었다."

 두위가 이미 항복하기에 이르자 요황제는 통사 경승미를 파견하여 역주에 가서 그의 무리들을 유혹하고 타이르게 하였는데, 무리들이 모두 항복하자 곽린은 저지할 수 없었고 드디어 경승미에게 죽음을 당하였다. 곽린은 형주 사람이다.

 先是契丹屢攻易州,刺史郭璘固守拒之。〈先,悉薦翻。璘,離珍翻。〉契丹主每過城下,指而歎曰:「吾能吞併天下,而為此人所扼!」及杜威既降,契丹主遣通事耿崇美至易州,誘諭其眾,〈誘,音酉。〉眾皆降;璘不能制,遂為崇美所殺。〈史言大廈之顛,非一木所能支。〉璘,邢州人也。

 

 의무절도사 이은과 안국유후 방태도 모두 요에 항복하였다. 요황제가 손방간을 의무절도사로 삼고, 마답을 안국절도사로 삼으며, 객성부사인 마숭조를 권지항주사로 삼았다.

 요에서는 한림승지· 이부상서인 장려가 요황제에게 말하였다.

 "지금 대요는 이미 천하를 얻었으니 중국의 장상은 의당 중국 사람을 기용하여 그것으로 삼아야 하고 북방 사람이나 좌우에 있는 가까이하고 익히 아는 사람을 기용하는 것은 마땅하지 않습니다. 만약에 정령이 어드러지고 잃는다면 인심은 복종하지 않을 것이니 비록 이를 얻는다 하여도 오히려 장차 이를 잃을 것입니다."

 요황제가 좇지 않았다.

 義武節度使李殷,安國留後方犬,皆降於契丹。契丹主以孫方簡為義武節度使,麻荅為安國節度使,〈宋白曰:麻荅,本名解里,阿保機之從子也。其父曰撒刺,歸梁,死於汴。〉以客省副使馬崇祚權知恆州事。

契丹翰林承旨、吏部尚書張礪言於契丹主曰:「今大遼已得天下,〈高祖天福二年,契丹改國號大遼,事見二百八十一卷。〉中國將相宜用中國人為之,不宜用北人及左右近習。苟政令乖失,則人心不服,雖得之,猶將失之。」契丹主不從。〈使契丹主用張礪言,事未可知也。〉

 

 군사를 이끌고 형과 상에서 남쪽으로 가니 두위는 항복한 군사들을 거느리고 좆았다. 장언택을 파견하여 2천의 기병을 거느리고 먼저 대량을 탈취하게 하고 또 이민들을 어루만져서 편안하게 하였으며 통사 부주아를 도감으로 삼았다.

 引兵自邢、相而南,〈契丹之兵依山南下以臨晉。相,息亮翻。〉杜威將降兵以從。〈從,才用翻。或問:杜威不降契丹,晉可保乎!曰:設使杜威藉將士之力,擊退契丹,契丹主歸北完聚,必復南來,晉不能支也。使其間有英雄之才,奮然出力,擊破契丹,使之不敢南向,則負震主之威,挾不賞之功,將士又將扶立以成篡事,石氏必不能高枕大梁,劉知遠亦不可得而狙伺其旁也。〉遣張彥澤將二千騎先取大梁,且撫安吏民,以通事傅住兒為都監。〈監,古銜翻。〉

 

 두위가 항복하는데, 황보우는 애초에 모의에 참여하지 않았다. 요황제가 황부우를 파견하여 먼저 군사를 거느리고 대량에 들어가게 하려고 하였으나 황보우가 사양하였으며, 물러나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였다.

 "나의 지위가 장상이 되어서 패배하여 죽을 수도 없었는데 차마 다시 그 주인이 되기를 도모할 수 있겠소!"

 평극에 도착하여 종자에게 말하였다.

 "나는 여러 날 음식을 먹지 아니하였지만 무슨 면목으로 다시 남쪽으로 가겠는가?"

 드디어 목을 눌러 죽었다.

 장언택이 배나 빠른 속도로 말을 달려 밤중에 백마진을 건넜다.

 杜威之降也,皇甫遇初不預謀。契丹主欲遣遇先將兵入大梁,遇辭;退,謂所親曰:「吾位為將相,敗不能死,忍復圖其主乎!」〈復,扶又翻;下同。〉至平棘,〈平棘,漢古縣,唐帶趙州。九域志曰:平棘故城,春秋棘蒲邑。十三州志云:戰國時改為平棘。〉謂從者曰:「吾不食累日矣,何面目復南行!」遂扼吭而死。〈從,才用翻。吭,古郎翻。〉

張彥澤倍道疾驅,夜渡白馬津。〈張彥澤以澶、孟有戍兵,故從白馬津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