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後梁紀3 太祖 乾化 2年》〈壬申, 912年〉 ㉞. 영왕 주우규가 이미 찬탈하고 등극하니, 여러 오래된 장수들이 대부분 분노하였으므로 비록 굽혀서 은례를 덧붙여 주었으나 끝내는 기뻐하지 않았다. 고애사가 하중에 도착하자 호국절도사인 기왕 주우겸이 울면서 말하였다. "선황께서 수십 년 동안 기업을 개창하였는데, 전날에 궁액에서 변란이 일어나서 들려오는 소문이 심히 좋지 않았는데도 나는 번진의 자리만 지키고 있었으니 마음속으로 이를 수치스럽게 생각하오." 주우규는 주우겸에게 시중· 중서령을 덧붙여 주고 조서를 내려서 스스로 변호하고 또 그를 징소하였다. ㉞. 郢王友珪既篡立,諸宿將多憤怒,雖由加恩禮,終不悅。告哀使至河中,護國節度使冀王朱友謙泣曰:「先帝數十年開創基業,前日變起宮掖,聲聞甚惡,〈聞,音問。〉吾備位藩鎮,心竊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