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梁과 趙·晉 연합군 그리고 白鄕戰鬪/ 白露節末候群鳥養羞3日(陰8/14)辛未

solpee 2021. 9. 19. 16:46

《後梁紀2 太祖 開平 4年》〈庚午, 910年〉

 

 ㊳. 조왕 왕융이 다시 진에 긴급함을 보고하자, 진왕이 번한부총관 이존심으로 진양을 지키게 하고, 스스로 군사를 거느리고 찬황에서 부터 동쪽으로 내려갔는데, 의무절도사 왕처직은 장수를 파견하여 군사를 거느리고서 좇게 하였다.

 ㊳. 趙王鎔復告急於晉,〈復,扶又翻。王景仁等之軍侵逼,故復告急。〉晉王以蕃漢副總管李存審守晉陽,自將兵自贊皇東下,〈贊皇縣以山得名。宋白曰:贊皇本漢鄗縣地,隋開皇六年置贊皇縣,縣南有贊皇山,因名。按九域志,宋廢贊皇縣為鎮,屬高邑縣。高邑縣在趙州西南四十二里。〉王處直遣將將兵以〈【章:十二行本「以」上有「五千」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從。〈從,才用翻。〉

 

 12월 25일에 진왕이 조주에 도착하여 주덕위와 더불어 합동하여 양의 풀을 베고 땔감을 채취하려고 나온 병사 200명을 붙잡아서 그들에게 물어 말하였다.

 "처음에 낙양을 출발하면서 양주(주전충)는 어떤 호령을 내렸는가?"

 대답하였다.

 "양주가 상장 왕경인에게 경계하여 말하기를, '진주에서 이랬다저랬다하니 끝내 자손의 우환이 될 것이다. 지금 모두 정에의 군사를 너에게 줄 것이니, 진주는 비록 철옹성이라 하더라도 반드시 나를 위하여 빼앗으라.' 고 하였소."

 진왕은 조로 보내라고 명령하였다.

 辛巳,晉王至趙州,與周德威合,獲梁芻蕘者二百人,〈刈草曰芻,采薪曰蕘。蕘,如招翻。〉問之曰:「初發洛陽,梁主有何號令﹖」對曰:「梁主戒上將云:『鎮州反覆,終為子孫之患。今悉以精兵付汝,鎮州雖以鐵為城,必為我取之。』」〈必為,于偽翻。〉晉王命送於趙。〈使趙人聞此言,以堅其附晉之心。〉

 

 26일에 진왕이 진군하여 백향에서 30리 떨어졌는데, 주덕위 등을 파견하여 호족의 기병으로 양의 진영을 압박하며 도전하였지만 양의 군사들이 나오지 아니하였다.

 27일에 다시 나아가서 백향과 5리 떨어진 야하의 북쪽에 군영을 갖추고 또 호족의 기병을 파견하여 양의 군영에 다가가서 말을 달려 활을 쏘며 또 그들을 꾸짖었다.

 양의 장수인 한경 등이 보병과 기병 3만을 거느리고 세 길로 나누어 그들을 추격하였는데, 갑옷과 투구는 모두 비단을 입히고 금과 은으로 장식하여 광채가 빛나니, 진병들이 이것을 바라보고는 기분을 빼앗겼다.

 壬午,晉王進軍,距柏鄉三十里,遣周德威等以胡騎迫梁營挑戰,〈挑,徒了翻。〉梁兵不出。癸未,復進,距柏鄉五里,營於野河之北,又遣胡騎迫梁營馳射,且詬之。〈復,扶又翻。詬,古候翻,又許候翻。〉梁將韓勍等將步騎三萬,分三道追之,鎧冑皆被繒綺,鏤金銀,光彩炫耀,〈被,皮義翻。繒,慈陵翻。鏤,郎豆翻。炫,熒絹翻。〉晉人望之奪氣。

 

 주덕위가 이존장에게 말하였다.

 "양인들의 뜻은 싸우는데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군사를 빛나게 하려는데 있을 뿐이오. 그들의 날카로움을 꺾지 못한다면 우리 군사는 이기지 못할 것이오."

 마침내 군대를 순회하며 말하였다.

 "저들은 모두 변주의 천무군인데 도살자나 술장사, 날품팔이 기리고 장사꾼 무리일 뿐이니, 옷과 갑옷이 비록 곱다고는 하나 열이 너희들 한 사람을 당할 수 없을 것이다. 한 놈을 사로잡으면 스스로 부자가 되기에 충분하며 이는 기이한 재화이니 기회를 놓지지 마라."

 周德威謂李存璋曰:「梁人志不在戰,徒欲曜兵耳。不挫其銳,則吾軍不振。」乃徇于軍曰:「彼皆汴州天武軍,〈五代會要曰:開平元年四月,改左、右長直為左、右龍虎軍,左、右內衙為左、右羽林軍,左、右堅銳夾馬突將為左、右神武軍,左、右親隨軍將馬軍為左、右龍驤軍。其年九月,置左、右天興,左、右廣勝軍,仍以親王為軍使。二年十月,置左、右神捷軍。十二月,改左、右天武為左、右龍虎軍,左、右龍虎為左、右天武軍,左、右天威為左、右羽林軍,左、右羽林為左、右天威軍,左、右英武為左、右神武軍,左、右神武為左、右英武軍。前朝置神虎等六軍,謂之衛士,至是以天武、天威、英武等六軍易其軍號,而任勳舊焉。〉屠酤傭販之徒耳,衣鎧雖鮮,十不能當汝一。擒獲一夫,足以自富,此乃奇貨,不可失也。」

 

 주덕우는 스스로 1천여 정에 기병을 거느리고 그들의 양쪽 끝을 치고 좌우에서 말을 돌진하며 나가고 드러가기를 서너 번 하여 100여 명을 포로로 잡았고, 또 싸우기도 하고 또 물러나기도 하면서 야하에서 떨어져서 멈추자 양의 군사 역시 퇴각하였다.

 德威自引千餘精騎擊其兩端,〈陳有厚薄,中軍堅厚,不可衝擊;擊其兩端,以其薄也。〉左右馳突,出入數四,俘獲百餘人,且戰且卻,距野河而止;梁兵亦退。

 

 주덕위가 진왕에게 말하였다.

 "적의 기세가 심히 왕성하니 의당 군사를 정비하고서 그들의 쇠약해지기를 기다려야 되겠습니다."

 진왕이 말하였다.

 "우리는 외로운 군대이고 멀리서 왔으며 다른 사람을 구원하는 일이 시급하며, 삼진의 군대는 까마구가 모인 것 같으니 속전하는 것이 유리한데도 공은 마침내 군사를 누르며 신중을 기하려고 하는데 왜 그렇소?"

 德威言於晉王曰:「賊勢甚盛,宜按兵以待其衰。」王曰:「吾孤軍遠來,救人之急,三鎮烏合,利於速戰,〈鎮、定、河東,是為三鎮。言三鎮之兵合而為一,當乘初至之銳以破敵;曠日持久,情見勢屈,敵人聞之,其心必離。〉公乃欲按兵持重,何也﹖」

 

 주덕위가 말하였다.

 "진· 정의 군사는 성을 지키는 데는 뛰어나지만 야전에는 부족합니다. 또 우리가 믿고 있는 것은 기병인데 평원인 광야에서는 유리하여 말을 달려 적진에 돌입할 수 있습니다.

 지금 적의 보루의 문을 막아버리면 기병은 그 발을 펼칠 곳이 없어지고, 또 중과부적이고 저들에게 우리의 허실만 알게 한다면 사태가 위험해집니다."

 왕이 기뻐하지 않고 물러나 장막 속에 누웠지만 제장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다.

 德威曰:「鎮、定之兵,長於守城,短於野戰。且吾所恃者騎兵,利於平原廣野,可以馳突。今壓賊壘門,騎無所展其足;且眾寡不敵,使彼知吾虛實,則事危矣。」王不悅,退臥帳中,諸將莫敢言。

 

 주덕위는 가서 장승업을 보고 말하였다.

 "대왕께서 자주 승리하자, 적을 가벼이 여기며 힘을 헤아리지 않고 속전하기에만 힘쓰고 있소. 지금 적과의 거리가 지척인데 경계하는 것은 하나의 물뿐이어서, 저들이 만약에 다리를 만들어 ㅇ리에게 공격해오면 우리 군은 즉각 모조리 없어질 것이오. 물러나서 고읍에 진을 치고 도적을 유인하여 군영을 떨어지게 하고, ㅓ들이 나오면 돌아오고, 저들이 돌아가면 나가며, 별도로 경무장한 기병으로 그들의 양식을 노략질하는 것만 같지 못하니, 1개얼이 지나지 않아서 그들을 깨뜨리는 것이 분명하오."

 德威往見張承業曰:「大王驟勝而輕敵,〈謂夾寨之勝也。〉不量力而務速戰。〈量,音良。〉今去賊咫尺,所限者一水耳,〈謂野河之水也。〉彼若造橋以薄我,我眾立盡矣。不若退軍高邑,〈高邑,漢鄗縣,光武更名高邑,唐屬趙州。九域志:在州西南四十二里,在柏鄉北三十餘里。〉誘賊離營,〈誘,音酉。離,力智翻。〉彼出則歸,彼歸則出,別以輕騎掠其饋餉,不過踰月,破之必矣。」

 

 장스업이 들어가서 휘장을 걷어 올리고 진왕을 어루만지며 말하였다.

 "이 어찌 왕께서 편안히 잠을 잘 때입니까? 주덕위는 노장이며 군사를 아는 사람이니 그의 말을 소홀히 할 수 없습니다."

 진왕이 비스듬히 일어나 말하였다.

 "나도 바야흐로 그것을 생각하였소."

 이때에 양의 군사는 성채의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는데, 항복한 사람이 있어서 그들을 힐문하니, 말하였다.

 承業入,褰帳撫王曰:〈褰,起虔翻。〉「此豈王安寢時耶!周德威老將知兵,其言不可忽也。」王蹶然興曰:「予方思之。」時梁兵閉壘不出,有降者,詰之,〈降,戶江翻。詰,去吉翻。〉曰:

 

 "왕경인이 바야흐로 부교를 많이 건조하였습니다."

 왕이 주덕위에게 말하였다.

 "과연공의 말과 같소."

 이날에 군영을 들어 물러나 고읍을 지켰다.

 「景仁方多造浮橋。」王謂德威曰:「果如公言。」是日,拔營,退保高邑。

 

《後梁紀2 太祖 乾化 元年》〈庚午, 910年〉

 

 ②. 백향에서는 근래에 저장된 꼴이 없어서 양의 군사들이 꼴을 베어 자급하게 하니, 진인들이 매일 유격군으로서 그곳을 초략하였는데도 양의 군사는 나오지 않았다. 주덕위가 호족 기병으로 하여금 군영을 에워싸고 말을 달ㄹ며 활을 쏘고 그들을 욕하게 하자, 양의 군사들이 매복이 있는 것으로 의심하여 더욱 감히 나오지 못하였으며, 가옥의 띠와 좌석을 잘라서 말을 먹이니 말들이 대부분 죽었다.

 ②. 柏鄉比不儲芻,〈比,毗至翻,近也。言近時趙人不儲芻於柏鄉,蓋亦虞梁兵之至以資敵也。〉梁兵刈芻自給,晉人日以遊軍抄之,〈抄,楚交翻。〉梁兵不出。周德威使胡騎環營馳射而詬之,〈環,音宦。詬,古候翻。〉梁兵疑有伏,愈不敢出,剉屋茅坐席以飼馬,〈剉,寸臥翻。飼,祥吏翻。〉馬多死。

 

 정월 2일에 주덕위는 별장인 사건당· 이사원과 더불어 정예의 기병 3천을 거느리고 양의 보루의 문을 압박하며 그들에게 욕하니, 왕경인과 한경이 화가 나서 모든 무리를 거느리고 나왔다.

 주덕위 등이 옮겨 다니며 싸우면서 고읍 남쪽에 이르렀는데, 이존장이 보병을 데리고 야하의 상류에 진을 치자, 양의 군사는 가로로 수 리에 걸쳐서 앞을 다투어 다리를 빼앗으려고 하니, 진· 정의 보병이 그들을 방어하였으나 형세는 지탱할 수 없었다. 진왕이 광위도지휘사 이건급에게 말하였다.

 丁亥,周德威與別將史建瑭、李嗣源將精騎三千壓梁壘門而詬之,王景仁、韓勍怒,悉眾而出。德威等轉戰〈【章:十二行本「戰」下有「而北」二字;乙十一行本同;孔本同;張校同。】〉至高邑南;李存璋以步兵陳於野河之上,〈陳,讀曰陣;下同。〉梁軍橫亙數里,競前奪橋,鎮、定步兵禦之,勢不能支。晉王謂匡衛都指揮使李建及曰:

 

 "도적이 다리를 지난다면 다시는 통제하지 못한다."

 이건급이 사졸 200을 뽑아서 창을 잡고 큰 함성을 지르며 힘써 싸워서 그들을 물리쳤다. 이건급은 허주 사람이고, 성은 왕이며, 이한지의 가자이다.

 「賊過橋則不可復制矣。」建及選卒二百,援鎗大譟,〈復,扶又翻。援,于元翻。〉力戰卻之。建及,許州人,姓王,李罕之之假子也。〈薛史:李建及本姓王,少事李罕之。光啟中,罕之選部下驍勇百人以獻李克用,建及在籍中,後以功賜姓名。〉

 

 진왕이 높은 언덕에 올라가서 관망하여 말하였다.

 "양의 군사는 나아가기를 다투며 왁자지껄한데 우리의 군사는 정돈되어 조용하니 우리가 반드시 이길 것이다."

 싸웠으나 사시에서 오시까지는 이기고 지는 것이 결정되지 않았다. 진왕이 주덕위에게 말하였다.

 "양군이 이미 맞붙어 있고 형세로 보아 떨어질 수 없으니 나의 흥망은 이 한 번의 거사에 달려 있다. 내가 공을 위하여 먼저 오를 것이니 공은 뒤를 따를 수 있을 것이오."

 晉王登高丘以望曰:「梁兵爭進而囂,〈囂,虛驕翻,又牛刀翻。〉我兵整而靜,我必勝。」戰自巳至午,勝負未決。晉王謂周德威曰:「兩軍已合,勢不可離,我之興亡,在此一舉。我為公先登,公可繼之。」

 

 주덕위가 고삐를 잡아당기며 간하였다.

 "양 군사의 형세를 보니 수고로움과 평안함으로 그들을 제압할 수 있는 것이나 힘을 가지고서는 이기기가 쉽지 않습니다. 저들은 군영에서 30여 리 떨어져 있어서 비록 마른 양식을 지니고 있다 하더라도 역시 먹을 겨를이 없으며, 해가 기울어진 다음에는 굶주림과 목마름은 속에서 압박하고 화살과 칼날은 밖에서 엇갈려 사졸들은 피로에 지쳐서 반드시 물러날 생각을 갖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때를 당하여 우리는 정예의 기병을 가지고 그들을 올라타면 반드시 크게 승리할 것입니다. 지금은  아직 아닙니다."

 왕이 마침내 중지하였다.

 德威叩馬而諫曰:「觀梁兵之勢,可以勞逸制之,未易以力勝也。〈為,于偽翻。易,以豉翻。〉彼去營三十餘里,雖挾糗糧,亦不暇食,日昳之後,飢渴內迫,矢刃外交,〈糗,去久翻。昳,徒結翻。日昃也。〉士卒勞倦,必有退志。當是時,我以精騎乘之,必大捷。於今未可也。」王乃止。〈梁、晉爭天下,周德威以勇聞,是難能也;然觀其制勝,以計不以勇,是又難能矣。〉

 

 당시 위· 활의 군사는 동쪽에 진을 치고 송· 변의 군사는 서쪽에 진을 쳤다. 포시가 되었는데도 양의 군사는 아직 밥을 먹지 못하여서 병사들은 싸울 뜻이 없었으므로 왕경인 등이 군사를 이끌고 점차 물러나자 주덕위가 신속히 소리쳤다.

 "양의 군사가 달아난다."

 진의 군사들이 크게 소리를 지르며 다투어 나아가자 위· 활의 군사가 먼저 퇴각하였으며, 이사원이 무리를 인솔하고 서쪽 진지 앞에서 말하였다.

 時魏、滑之兵陳於東,宋、汴之兵陳於西。至晡,梁軍未食,士無鬬志,景仁等引兵稍卻,周德威疾呼曰:〈呼,火故翻。〉「梁兵走矣!」晉兵大譟爭進,魏、滑兵先退,李嗣源帥眾譟於西陳之前曰:

 

 "동쪽 진영은 이미 도주하였는데, 너희는 어찌 오래 머물러 있느냐?"

 양의 군사가 서로 놀라며 두려워하다가 드디어 크게 무너졌다. 이존장이 보병을 이끌고 그것을 올라타고 소리쳤다.

 "양인들도 또한 우리의 사람들이니 부형과 자제들 가운데 군량을 운송하는 사람은 죽이지 말라."

 이에 전사들은 모두 갑옷을 벗고 병기를 던져서 이를 버리니 함성소리가 천지를 진동하였다.

 「東陳已走,爾何久留!」梁兵互相驚怖,遂大潰。〈置陣延亙,東西不相知,為敵所譟,故驚怖而潰。帥,讀曰率。怖,普布翻。〉李存璋引步兵乘之,呼曰:「梁人亦吾人也,父兄子弟餉軍者勿殺。」於是戰士悉解甲投兵而棄之,囂聲動天地。

 

 조인들이 심· 기의 유감 때문에 약탈할 것은 돌아보지 않고 다만 분발하여 번뜩이는 칼로 그들을 뒤쫓으니, 양의 용양과 신첩의 정예 군사가 거의 다 없어졌고 야하에서부터 백향에 이르기까지 쓰러진 시체가 땅을 덮었다.

 왕경인· 한경· 이사안은 수십 기를 데리고 도주하였다. 진의 군사가 밤에 백향에 도착하니 양의 군사는 이미 떠나가고, 양식· 자재· 병기를 버린 것이 이루 헤아릴 수 없었다. 무릇 참수한 것이 2만 급이었다.

 趙人以深、冀之憾,不顧剽掠,〈憾梁遣杜廷隱等殺深、冀戍兵也。剽,匹妙翻。〉但奮白刃追之,梁之龍驤、神捷精兵殆盡,〈薛史本紀:開成二年,以尹皓部下五百人為神捷軍。〉自野河至柏鄉,僵尸蔽地。〈僵,居良翻。〉王景仁、韓勍、李思安以數十騎走。〈王景仁嘗以勞逸制梁兵,而不知又為周德威以勞逸制之也。〉晉兵夜至柏鄉,梁兵已去,棄糧食、資財、器械不可勝計。〈勝,音升。〉凡斬首二萬級。

 

 이사원 등은 도망하는 사람들을 뛰쫓아 형주에 도착하였으며 하삭이 크게 진동하였다. 보의절도사 왕단이 경계를 엄하게 하고 그런 연후에 성문을 열어 패배한 사졸들을 받아들이고서 물자와 양식을 주고 흩어져 보내어 본래의 도로 돌려보냈다. 진왕이 군사를 수습하여 조주에 주둔하였다.

 李嗣源等追奔至邢州,〈九域志:自柏鄉西南至邢州一百五十餘里。〉河朔大震。保義節度使王檀嚴備,然後開城納敗卒,給以資糧,散遣歸本道。晉王收兵屯趙州。

 

 두정은 등이 양의 군사가 패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심· 기를 버리고 떠나가면서 두 주의 정장들을 모두 몰아서 노비로 삼고 노약자들은 그들을 파묻어서 성안에 있는 것은 파괴된 담장 뿐이었다.

 8일에 다시 양사후를 북면도초토사로 삼고 군사를 거느리고 하양에 주둔하여 흩어진 군사를 수습하고 모집하게 하니, 열흘 남짓 동안 1만 명을 얻었다.

 杜廷隱等聞梁兵敗,棄深、冀而去,悉驅二州丁壯為奴婢,老弱者阬之,城中存者壞垣而已。

癸巳,復以楊師厚為北面都招討使,將兵屯河陽,收集散兵,旬餘,得萬人。

 

 14일에  진와이 주덕위와 사건당을 파견하여 3천의 기병을 거느리고 단· 위로 가게하고 장승업과 이존장은 보병을 데리고 형주를 공격하게 하고, 스스로는 대군을 거느리고 그들의 뒤를 이어주면서 하북이 주현에 격문을 보내어 이로움과 해로움을 가지고 알아듣게 하였다.

 己亥,晉王遣周德威、史建瑭將三千騎趣澶、魏,〈趣,七喻翻。澶、魏,二州名。澶,市連翻。〉張承業、李存璋以步兵攻邢州,自以大軍繼之,移檄河北州縣,諭以利害。

 

 주전충이 별장인 서인부를 파견하여 군사 1천 명을 거느리고 서산에서부터 밤중에 형주로 들어가 왕단을 도와 성을 지키게 하였다.

 24일에 왕경인의 초토사를 파면하고 평장사를 점령하였다.

 帝遣別將徐仁溥將兵千人,自西山夜入邢州,〈西山即太行連延至上黨諸山。〉助王檀城守。己酉,罷王景仁招討使,落平章事。〈以其敗也。