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 글 3233

후량의 멸망.1./秋分節中候蟄蟲塊(壞·培·啓)戶4日(陰8/25)壬午

《後唐紀1 莊宗 同光 元年》〈癸未, 923年〉 ⑳. 황제(이존욱)는 위국부인 유씨와 황제의 아들인 이계급을 보내어 흥당으로 돌려보내고 그들과 결별을 하며 말하였다. "일의 성패는 이 한 번의 결전에 달려 있는데, 만약 그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우리 가족을 위궁에 모아서 그곳을 불태우시오." 이어서 두노혁· 이소굉· 장헌· 왕정언에게 명령하여 함께 동경을 지키게 하였다. ⑳. 帝遣魏國夫人劉氏、皇子繼岌歸興唐,與之訣曰:「事之成敗,在此一決;若其不濟,當聚吾家於魏宮而焚之!」〈史言帝此行非有廟勝之策。〉仍命豆盧革、李紹宏、張憲、王正言同守東京。〈帝以魏州為東京興唐府。〉 10월 2일에 황제는 대군을 인솔하고 양유에서 하를 건너 3일에 운주에 도착하여 한밤중에 군을 전진시켜 문을 넘었는데, 이사원을 선봉으로 삼아 4일 아침에 양의..

카테고리 없음 2021.09.30

등극하는 진왕이존욱/秋分節中候蟄蟲塊(壞·培·啓)戶2日(陰8/23)庚辰

《後唐紀1 莊宗 同光 元年》〈癸未, 923年〉 ①. 봄, 2월에 진왕은 교서를 내려서 백관을 두고, 네 진의 판관들 가운데 앞선 왕조(唐)의 사족을 선발하여 재상으로 삼으려고 하였다. 하동절도판관 노질이 그것이 되기에는 으뜸이었으나 노질이 굳게 사양하며 의무절도판관 두노혁과 하동절도판관 노정을 그것으로 삼기를 요청하니, 왕은 즉시 두노혁과 노정을 불러서 행대 좌· 우승으로 하고 노질을 예부상서로 삼았다. ①. 春,二月,晉王下教置百官,於四鎮判官中選前朝士,欲以為相。〈四鎮,河東、魏博、易定、鎮冀。朝,直遙翻。相,息高翻;下同。〉河東節度判官盧質為之首,質固辭,〈盧質慢罵晉王諸弟,又能辭相位於惟新之朝,是必有見也。〉請以義武節度判官豆盧革、河東觀察判官盧程為之;王即召革、程拜行臺左、右丞相,〈考異曰:薛史唐紀作「盧澄」。今從實錄、莊宗列傳..

카테고리 없음 2021.09.29

張承業/秋分節中候蟄蟲塊(壞·培·啓)戶(벌레 집에 문을 봉한다)1日(陰8/22)乙卯

《後梁紀5 均王 貞明 3年》〈丁丑, 917年〉 ⑧. 진왕이 진양으로 돌아왔다. 왕은 연속하여 매년 출정을 하였으므로 무릇 군부와 정사는 한가지로 감군사 장승업에게 맡겼다. 장승업은 농업과 양잠을 권고하고 독려하여 금전과 양곡을 축적하고 무기와 말을 가두며 사고 조세를 징수하거나 법을 집행하면서 귀척에게도 너그러이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군성이 엄숙하고 청렴해졌으며 먹을 군량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⑧. 晉王還晉陽。〈自魏州還晉陽。〉王連歲出征,凡軍府政事一委監軍使張承業,承業勸課農桑,畜積金穀,收市兵馬,徵租行法不寬貴戚,由是軍城肅清,〈軍城,謂晉陽軍城也。〉饋餉不乏。 왕이 혹시 때에 따라서 저포를 하거나 영인에게 상을 내려 주려 하여 전이 필요하였지만 그것에 인색하여 돈은 얻을 수 없었다. 왕이 마침내 전고에 주연을..

카테고리 없음 2021.0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