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테고리 없음

張承業/秋分節中候蟄蟲塊(壞·培·啓)戶(벌레 집에 문을 봉한다)1日(陰8/22)乙卯

solpee 2021. 9. 27. 19:01

《後梁紀5 均王 貞明 3年》〈丁丑, 917年〉

 

 ⑧. 진왕이 진양으로 돌아왔다. 왕은 연속하여 매년 출정을 하였으므로 무릇 군부와 정사는 한가지로 감군사 장승업에게 맡겼다. 장승업은 농업과 양잠을 권고하고 독려하여 금전과 양곡을 축적하고 무기와 말을 가두며 사고 조세를 징수하거나 법을 집행하면서 귀척에게도 너그러이 하지 않았다. 이로 인하여 군성이 엄숙하고 청렴해졌으며 먹을 군량에도 부족함이 없었다.

 ⑧. 晉王還晉陽。〈自魏州還晉陽。〉王連歲出征,凡軍府政事一委監軍使張承業,承業勸課農桑,畜積金穀,收市兵馬,徵租行法不寬貴戚,由是軍城肅清,〈軍城,謂晉陽軍城也。〉饋餉不乏。

 

 왕이 혹시 때에 따라서 저포를 하거나 영인에게 상을 내려 주려 하여 전이 필요하였지만 그것에 인색하여 돈은 얻을 수 없었다. 왕이 마침내 전고에 주연을 배설하고 그의 아들인 이계급으로 하여금 장승업을 위하여 춤을 추게 하니 장승업이 보대와 비단과 말을 갖고 그에게 증정하였다.

 王或時須錢蒱博及給賜伶人,而承業靳之,〈靳,居焮翻,吝惜也。〉錢不可得。王乃置酒錢庫,令其子繼岌為承業舞,承業以寶帶及幣馬贈之。

 

 왕이 전 더미를 가리키며 이계급의 어릴 적 이름을 부르면서 장승업에게 말하였다.

 "화가가 전이 없으니 칠가(장승업)는 의당 전 한 더미를 그에게 주어야 하는데 보대와 폐마로는 아직은 후하지 않소."

 장승업이 말하였다.

 "낭군의 전두는 모두 저 장승업의 봉록에서 나온 것이고, 이 전은 대왕께서 전사를 양성하기 위한 것이니, 저 장승업은 감히 공적인 물건을 가지고 사적으로 사례하지 아니합니다."

 王指錢積呼繼岌小名謂承業曰:「和哥 乏錢,七哥宜以錢一積與之,帶馬未為厚也。」〈張承業第七。晉王以兄事承業,呼之為七哥。〉承業曰:「郎君纏碩皆出承業俸祿,唐人凡為人舞,人則以錢綵寶貨謝之,謂之纏頭。此錢,大王所以養戰士也,承業不敢以公物為私禮。」

 

 왕이 기뻐하지 않고 술에 의지하여 말로 그를 모욕하였다.

 장승업이 화가 나서 말하였다.

 "이 노복은 오래된 칙사일 뿐입니다. 자손을 위해서 계획한 것이 아니고 그 고전을 아껴서 왕께서 패업을 이루시도록 도우려는 까닭인데, 그렇지 않다면 왕께서 스스로 그것을 가져다 사용하시지 노복에게 물어서 무엇하십니까? 그러나 재물이 다 없어지면 백성들도 흩어지고 하나도 이루는 것이 없을 뿐입니다."

 王不悅,憑酒以語侵之,承業怒曰:「僕老敕使耳!非為子孫計惜此庫錢,所以佐王成霸業也,不然,王自取用之,何問僕為!不過財盡民散,一無所成耳。」〈晉王他日率如張承業之言。〉

 

 왕이 화가 나서 이소영을 돌아보고 검을 찾자, 장승업이 일어나서 왕의 옷을 잡아당기며 울면서 말하였다.

 "이 노복은 선왕의 고탁하는 명을 받고 국가를 위하여 변적을 죽일 것을 맹세하였는데, 만약 고물을 아낀 것 때문에 왕의 손에 죽는다면 이 노복은 지하에 가서 선왕을 알현하여도 부끄러움이 없을 것입니다. 오늘 왕께 왓으니 청컨데 죽여 주십시오."

 王怒,顧李紹榮索劍,承業起,挽王衣〈索,山客翻。挽,武遠翻,引也。〉泣曰:「僕受先王顧託之命,誓為國家誅汴賊,〈朱氏居汴,李氏名其為賊。〉若以惜庫物死於王手,僕下見先王無愧矣。〈先王,謂晉王克用。〉今日就王請死!」

 

 염보가 옆에서 장승업의 손을 풀고 물러가도록 하자, 장승업이 분발하여 주먹으로 염보를 구타하여 땅에 넘어뜨리고 욕하여 말하였다.

 "염보는 주온의 패거리이면서도 우리 진의 큰 은혜를 입었는데, 일찍이 충성을 다하여 보답하지 않고 도리어 아첨하는 것을 가지고 스스로를 보존하려고 한단 말인가?"

 조태부인이 이를 듣고 급히 왕을 부르게 하자, 왕이 두령워서 머리를 조아리며 장승업에게 사죄하여 말하였다.

 "내가 술로 실수하여 칠가의 뜻을 거슬렀고 반드시 또 태부인에게도 죄를 지었으니, 칠가는 내가 술을 아프도록 마신 것을 가지고서 그 허물을 나누어 주시오!"

 閻寶從旁解承業手令退,承業奮拳毆寶踣地,罵曰:〈毆,烏口翻。踣,蒲北翻。〉「閻寶,朱溫之黨,受晉大恩,〈言閻寶北梁降晉,晉不殺而寵貴之。〉曾不盡忠為報,顧欲以諂媚自容邪!」曹太夫人聞之,遽令召王,〈史書曹太夫人者,以見嫡母劉夫人不可得而令其子。〉不惶恐叩頭,謝承業曰:「吾以酒失忤七哥,〈忤,丑故翻。〉必且得罪於太夫人,七哥為吾痛飲以分其過。」

 

 진왕은 연속해서 넉 잔을 마셨는데, 장승업은 끝내 마시려 하지 않았다. 왕이 들어가자 태부인이 사람을 시켜서 장승업에게 사죄하여 말하였다.

 "어린아이가 특진을 거슬렸기에 적시에 이미 그에게 볼기를 쳤소."

 다음날에 태부인이 왕과 더불어 장승업으 집에 가서 그에게 사과하였다.

 얼마 안 있다가 승제하여 장승업에게 개부의동삼사· 좌위상장군· 연국공을 제수하였다. 장승업은 굳게 사양하고 받지 않고 다만 당의 관직만을 칭하면서 종신토록 이르렀다.

 王連飲四卮,承業竟不肯飲。王入宮,太夫人使人謝承業曰:「小兒忤特進,〈張承業於時官特進,意亦晉王承制授之也。〉適已笞之矣。」明日,太夫人與王俱至承業第謝之。〈史言晉王之在魏,皆張承業足饋餉以輔之;亦內有曹夫人,故承業得行其志。〉未幾,〈幾,居豈翻。〉承制授承業開府儀同三司、左衛上將軍、燕國公。承業固辭不受,但稱唐官以至終身。

 

 장서기 노질은 술을 좋아하고 경박하고 오만하여 일찍이 왕의 여러 동생들을 부를 때에 돼지와 개라고 하니, 왕이 그에게 이를 악물었다. 장승업이 그것이 화에 이르게 될까 두려워하여 틈을 이용하여 말하였다.

 "노질이 자주 무례하니 청컨데 대왕을 위하여 그를 죽이게 하여 주십시오."

 왕이 말하였다.

 "나는 바야흐로 현명한 인재를 불러들여서 공업을 성취하려 하는데 칠가는 어찌하여 말하는 것이 지나치십니까?"

 장승업이 일어나 즉시 축하를 하며 말하였다.

 "왕께서 이와 같을 수 있다면, 어찌 천하를 못 얻을까 걱정하겠습니까?"

 노질은 이로 말미암아 벗어남을 얻었다.

 掌書記盧質,嗜酒輕傲,嘗呼王諸弟為豚犬,王銜之;承業恐其及禍,乘間言曰:「盧質數無禮,〈間,古莧翻。數,所角翻。〉請為大王殺之。」王曰:「吾方招納賢才以就功業,七哥何言之過也!」承業起立賀曰:「王能如此,何憂不得天下!」質由是獲免。〈史言張承業惟能足兵,且能保護士君子。〉

 

 진왕의 원비는 위국의 한부인이고 다음은 연국의 이부인이며 그 다음은 위국의 유부인이다. 유부인이 가장 총애를 받았는데 그의 아버지는 성안 사람이며 의복(醫卜)을 업으로 삼고 있었다. 부인이 어릴 때에 진의 장수인 원건풍이 노략질하다가 그를 얻게 되어서 왕궁에 들어왔는데, 성격이 교활하고 사나우며 음란하고 투기하였지만 진왕을 좇아 위주에 있었으며, 아버지가 그가 귀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위궁에 가서 배알하기를 올리자, 진왕이 원건풍을 불러서 그에게 보였다.

 晉王元妃衛國韓夫人,次燕國伊夫人,次魏國劉夫人。劉夫人最有寵,〈書晉宮之次者,以見其宮中貫魚失序。〉其父成安人,〈成安,漢斥丘縣,北齊置成安縣,唐屬相州,時屬魏州。九域志:成安在魏州西一百里。〉以醫卜為業。夫人幼時,晉將袁建豐掠得之,入于王宮,性狡悍淫勡,〈悍,下罕翻,又侯旰翻。〉從王在魏;父聞其貴,詣魏宮上謁,〈上,時掌翻。〉王召袁建豐示之。

 

 원건풍이 말하였다.

 "처음에 부인을 얻었을 때에 누런 수염을 한 어르신네가 있어서 그녀를 보호하였는데 바로 이분이오."

 왕이 부인과 이야기를 하자, 부인이 바야흐로 여러 부인들과 총애를 다투면서 문지(門地: 가문)를 가지고 서로 높이고자 하여서 그녀의 가문이 한미한 것을 수치로 생각하여 크게 화가 나서 말하였다.

 建豐曰:「始得夫人時,有黃鬚丈人護之,此是也。」王以語夫人,〈語,牛倨翻。〉夫人方與諸夫人爭寵,以門地相高,恥其家寒微,大怒曰:

 

 "첩이 고향을 떠날 때에 대략 기억나는데 첩의 아버지는 불행하게도 어지러운 군사들 속에서 죽어서 첩이 시신을 지키며 그를 위해 애곡하고 떠나왔는데 지금 어떤 전사옹(田舍翁: 늙은 농부)이 감히 여기 까지 왔단 말인가?"

 명령하여 궁문에서 유수(劉叟: 유영감)에게 태형을 치게 하였다.

 「妾去鄉時略可記憶,妾父不幸死亂兵,妾守尸哭之而去,今何物田舍翁敢至此!」命笞劉叟于宮門。〈父且笞之,而何有於君!異日李存渥之事,無足怪也。